소설리스트

238화 증기의 시대 (6) (238/341)

증기의 시대 (6)

프랑스의 중심지이자 수도, 파리.

아직 파리하면 팟-하고 떠오르는 에펠탑은 없었지만, 후대에도 명성 자자한 세느 강은 이때도 부진세느곤곤래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도 없이 70만이라는 사람이 사는 파리는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

···지는 않았다.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대중교통, ‘버스’가 대중들에게 선보여지는 첫날.

무엇이든 처음은 힘들고, 복잡하고, 난리라고 했던가.

그 말처럼 파리 곳곳은 이른 아침부터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차례대로 줄!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올라타 주십시오!”

“악! 어떤 새끼가 내 발 밟았어!?”

“갸아아아악! 나 좀 잡아줘! 떠내려간다!”

“선배니이이임!”

“나중에 보자, 쇼산나!”

군중에 발이 밟히는 건 예삿일, 인파에 떠밀려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 땡, 땡, 땡, 땡, 땡.

“만석! 만석입니다! 못 타신 승객 분들께선 다음 차량을 기다려주십쇼!”

“그게 뭔 소리야?! 벌써 세 대째 놓쳤는데 또 놓치라고?”

“닥치고 내 돈 가져가!”

“키에에엑!!!”

이런 씨발.

반듯하게 제복에 명찰까지 달고 설레는 마음을 담아 첫 출근한 이삭의 민족 소속 버스 안내원들은 출근한 지 30분 만에 퀭해진 눈으로 밀려오는 사람들을 도로 밀어내고 있었다.

“선배님, 이게,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우리가 예상했던 인파에 수 배는 되잖습니까!”

“그래, 나도 뒤질 것 같다. 그래도 어쩌냐? 위쪽에선 앞으로 일주일만 빡세게 버티면 그 뒤론 안정될 거라 하데.”

“아니, 사람 더 뽑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가 일주일 뒤에 이렇게 안 바빠지면? 필요 없어진 직원 숫자만큼 네가 직접 자를 거야?”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러면 궁시렁 댈 시간에 자리에 기대 잠깐 쉬기나 해라. 앞으로 조금만 가면 다음 정거장이니까.”

- 땡, 땡, 땡, 땡, 땡!

그의 말마따나 다시 정거장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웅성거리는 객차 안을 향해 고깔을 들고 외친다.

“이번 정거장은 파리 7구 르 파티옹, 르 파티옹입니다. 내리실 문은 뒷문입니다. 들어오신 앞문은 새로 타실 탑승객분들께서 사용하시기 때문에 뒷문 이용해주십시오.”

“캬아, 이거 진짜 안이 따듯하잖아? 신기하네.”

“게다가 한 번 탈 때 요금이 1수면 싼데?”

“···난 결정했어. 이렇게 따뜻하고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는데 동전 두 닢이면 싸지. 앞으로 난 이거 타고 다닌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일주일을 넘어 한 달이 지나자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린 길을 걷는 대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건 더 이상 신기하고 대단한 경험이 아닌 일상이 되어 갔다.

19세기 초, 파리의 모습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아는 미래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기욤에 의해.

***

1804년, 3월 말 저녁.

파리, 상공회의소.

프랑스 상공업자들과 은행들의 어르신 노릇을 한다는 상공회의소의 명색답게, 상공회의소의 입구는 요근래 유행하는 건축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세공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삭의 민족에서 사온 가스등까지 꽂아 놓자 상공회의소 근처는 이게 아침 8시인지, 아니면 밤 8시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런 상공회의소 앞에서, 나는 초등학생들이 가지고 노는 슬라임 액체괴물 마냥 흐물흐물해진 상태로 자동차 시트에 누워 말하고 있었다.

“···플로리앙 씨.”

“예, 사장님.”

“그, 제가 꼭 직접 가야 하나요?”

원래 이런 건 사장님, 회장님은 따악 웅장한 전용 의자에 앉아 있고 부사장이나 부회장, 아니면 비서 같은 대타가 대신 참여하는 거 아닌가?

“사장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신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어휴, 당연히 농담이었죠. 가야지. 그럼, 가야하고 말고.”

그으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러라고 월급 따박따박 꽂아주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나? 그르치 않나아?

“사장님.”

“예?”

“제가 사장님과 근 20년을 같이 일하면서 한 가지 능력을 깨우쳤는데 말입니다. 뭔지 아십니까?”

“뭔데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기욤 드 툴롱이란 인간 군상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야아, 그거 좀 무서운데요.”

“저도 어디 사는 누가 버스 하나, 자동차 대기소 하나 만들어 놓고 노선 설정이니 구인이니 하는 나머지 업무를 짬 때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귀찮고, 부수적인 사교활동 같은 건 제가 알아서 다 처리했을텐데 말입니다.”

“제에가 짜암을 때린 건 아니구요오.”

“···호오, 매우 용기 있는 발언이십니다.”

아니. 내가 뭘 얼마나 시켰다고!

그 뭐냐, 파리 버스 노선 좀 짜고, 하는 김에 필요한 인력 교육 및 보충도 좀 하고, 하는 김에 영국에 수출도 좀 해볼 수 있나 알아보라고도 좀 하고.

오케이. 인정. 짬 좀 때렸습니다.

“흠흠, 제가 이래 봬도 사장인데, 그 막. 자잘자잘한 것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잖습니까.”

“그게 지금 한 달 동안 집에 두 번 들어간 사람 앞에서 나올 말씀이신가요?”

“···그 옛날 동방에 있는 어떤 나라에서는 국왕이 70살 넘은 신하를 죽기 2주 전까지 일을 시켰다고 하더라구요. 그거에 비하면 ···, 플로리앙 씨?”

“······.”

서늘하다. 차가운 시선이 날아와 내 가슴에 꽂힌다. 브루투스를 곁에 두던 카이사르의 마음이 이랬을까?

“······퇴근하십쇼.”

“감사합니다, 사장님.”

플로리앙 씨는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젠장.

피곤한 다리를 질질 끌고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상공회의소에서 사람들이 나와 내 옆에 찰싹 붙었다.

“각하, 드디어 오셨군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었는데 먼저 시작하고 계시지 그랬습니까?”

“허어, 각하께서 안 오셨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자자, 얼른 들어가시지요!”

하얀 콧수염과 함께 돈 꽤나 바른 것 같은 정장을 입은··· 아니 저거 우리 회사 거 아닌가?

아무튼 그를 따라 들어가니 척 봐도 부르주아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 수십이 연회장을 빌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자, 다들 주목! 오늘의 주인공이 오셨습니다!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님이십니다!”

“오오! 총감 각하, 어서오십쇼!”

“세상에 그 기욤이 왔어.”

아, 이렇게 시선이 집중되는 거 싫은데. 이 기욤은 천상 아웃사이더란 말이야.

“각하, 각하! 제가 정말 좋은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죄송합니다만 술 마신 지금 말고, 나중에 정신 말짱할 때 저희 본사 비서실로 와서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하! 제게 딱 1만 리브르만 빌려주시면 기필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10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오, 잘됐네요. 마침 상공회의소니, 상공회의소한테 빌리시면 되겠네요.”

“각하, 제 사촌 동생의 딸이 아주 참한데 ···.”

“애인 있습니다.”

“허허 참, 각하께서 이렇게 행차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저희가 항상 초대장을 보내드려도 대리인만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워낙 바빠서 말입니다.”

거, 삐졌다는 말을 엄청 돌려서 하시네. 어디 귀족 방계 출신이신가?

아. 그건 나지.

벌써부터 피곤하다. 집에 가서 코냑 좀 마시고 자고 싶어.

“각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예에, 뭐.”

“이쪽으로 오시지요. 미리 좋은 방을 잡아놨습니다.”

나이 지긋한 중년 신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작게 말했다.

“저런 어중이떠중이들한테 시달리지 마시고 방에서 좀 쉬시지요.”

“흠.”

그를 따라 건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다른 방들에 비해 두 배쯤 되는 넓은 방이 나왔다.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간 내가 맞이한 건,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었다.

“반갑습니다, 각하! 전 조그맣게 포목상을 하고 있는···.”

“전 목재를 취급하는···.”

“각하, 전······.”

“반갑습니다. 기욤입니다.”

대충 봐도 떼돈을 벌어들이시는 분들 같은데 다들 아주 겸손하시네.

“여긴 뭐하는 모임입니까?”

“허허, 혼자만 알기 아까운 좋은 정보가 있으면 서로 나누는 그런 친목 모임이지요.”

암요, 그러시겠죠.

“그런데 절 왜 그런 ‘좋은’ 모임에 데리고 오셨는지요?”

“허허, 이번에도 사업을 성공시키신 미다스의 손을 가진 각하의 고견을 몇 가지 들어보고 싶은 이 늙은이들의 마음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습니까?”

흠. 시작부터 구라질이라니.

일단 속에 담고 있지도 않은 말 하는 데에 매우 능숙하다. 체크.

“죄송합니다만 제가 군바리 출신이라 직설적인 걸 좋아해서 말입니다.”

“아니, 아니. 정말입니다. 각하의 고견을 듣고 싶기에 이렇게 모신겝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왜 각하를 아니꼽게 보겠습니까? 저희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이신데.”

“···제가요?”

“암요, 암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쓰잘데기없는 법조항만 줄줄 외우는 놈들에게서 이 프랑스 경제를 지킨 사람이 바로 각하 아니십니까.”

그거야... 맞긴 하지. 최고가격제 같은 미친 정책을 막긴 했으니.

“이번 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들이 이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니 작업 시작하는 게 쉬워지지 뭡니까.”

그것도 맞긴 하지. 이젠 죄 버스 타고 정시에 딱딱 내리니까.

···어라? 생각해보니까 나 좀 대단할지도?

“그것뿐이겠습니까? 출퇴근 시간이 줄었으니 그만큼 일을 더 시킬 수 있어서 좋지요!”

“···음?”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낸다, 이게 바로 장사의 제 1원칙 아니겠습니까.”

“영국에 애덤 스미스 선생이 있다면 우리 프랑스에는 기욤 드 툴롱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 경쟁! 기욤 각하의 효율성! 두 가지야말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초석 아니겠습니까.”

“전 아직도 각하께서 만드신 간편 식사를 볼 때마다 감탄합디다! 그 누구도 중히 여기지 않던 찌꺼기를 모아 훌륭한 제품으로 탄생시키다니. 그거야말로 효율의 극치 아니겠습니까!”

“어, 어, 예?”

대화의 템포가 왜 이래?

“자자, 다들 각하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알겠지마는, 지금 이 자리를 왜 만들었는지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아아, 내 미안합니다. 너무 흥분해서리.”

“큼큼, 거 너무 볼품없는 꼴을 보였구료.”

날 데려온 중년 신사는 흡족하게 웃더니, 내게 상석을 권했다.

“일단 오늘은 보시기만 하셔도 됩니다. 뭐든지 처음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 예에.”

내가 자리에 앉자 그들도 각자 자리에 착석했다.

“예, 그러면 앞으로 다들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 공장은 앞으로 일당 1리브르 10수를 유지하려고 하오.”

“흐음. 그러면 저희 방직공장 친구들이 별로 좋아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있소? 처음 임금 정하길 그렇게 정했는데. 뭐,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그렇게 인상 없이 유지하면 되겠지.”

“그러면 나쁘지 않겠군. 밑에 놈들도 옆 공장 임금이 고대로인 거 보면 굳이 안 대들지 않겠소?”

이거, 어디서 많이 읽어 본 광경 같은데.

기업 사장들이 모여서 신나게 뒷담을 까잡수는 선이 아니라 담합한다?

트러스트잖아 씨발.

“당신들 다 미쳤군.”

내 말 한마디에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 잘했다고 꼬라봐. 꼬라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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