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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국제 철도건설주식회사 (2) (230/341)

국제 철도건설주식회사 (2)

[네이선 지사장이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으나 검토결과 문제는 없음.]

“···상세한 내용은 보안 상 프랑스 본토로 오면 말해주겠음.”

흠. 역시 사장님께는 이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고견이 있으신 거였다. 결코 자이언트-빅 아메리카 모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었다.

네이선은 파리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 날아온 공문을 쭈욱 읽어 내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어쩌시렵니까, 지사장님?”

“사장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신 듯 하니, 이제 제 할 일을 해야지요.

···오랜만에 해군성과 전쟁부 친구들 얼굴 좀 봐야겠군요.”

“바로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네이선의 말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지사장실 너머로 사라진 후 얼마 뒤.

이삭의 민족 지사가 위치한 시티 오브 런던의 한 사거리에는 두 대의 마차가 나란히 멈춰 섰다.

크기는 어느 정도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두 대의 마차 모두 때가 타도 잘 보이지 않는 검은색 차체에, 그 차체를 앞에서 끄는 말도 겨우 한 마리.

돈 좀 있는 자본가나 지주들이 타고 다니는 멋들어진 마차라기보다는 돈에 쪼들리는 중산층이 타고 다닐 법한 마차였다.

“···해군 나리가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그러는 육군은 왜 여기 있소?”

나란히 갓길에 댄 마차에서 나란히 나온 두 군인은 서로를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오셨군요. 지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두 사람을 중재한, 건 도로까지 나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비서였다.

“아니, 오늘 지사장니께서 초대한 건 저 아서 뿐 아니었습니까? 이 물개, 아니. 해군 나리는 뭡니까?”

“쯧, 하여간에 돈 없다고 빌빌 대는 거지 땅개, 아니. 육군이라 그런지 말이 조금 험하군.”

“병사들 밥 먹일 돈까지 뜯어가서 배에다가 박아대는 어디 누구들 덕분에 험해질 수밖에 없어서 말이지.”

“허허, 싸우지 마시지요. 두 분 모두 지사장님의 소중한 손님이십니다.”

붉은색 군복을 입은 육군 장교와 푸른색 군복을 입은 해군 장교는 비서의 말에 헛기침을 내보였지만 서로를 향한 눈초리는 변하지 않았다.

“자자, 그러지 말고 올라가시지요. 지사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그 잠깐의 고요를 놓치지 않고, 비서는 두 사람을 나란히 2층을 향해 밀어 넣었다.

‘어어’하는 사이에 응접실로 들어간 두 사람을 기다리는 건 젊은 독일계 프랑스인.

“아서 웰즐리 육군 소령님, 토마스 하디 해군 중령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앉으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흠.”

“흠흠.”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두 장교는 또다시 헛기침을 하며 푹신한 손님용 의자에 몸을 기댔다.

네이선은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둘이 네이선을 얼마나 기껍게 보고 있는 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맞은편에 앉은 육군 장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형님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아서 소령님? 최근 인도에서 마이소르 왕국과 분쟁이 있었다고 하던데, 인도 총독이신 리처드 웰즐리 의원이 심히 힘드시겠습니다.”

“하하, 힘들다니요. 오히려 형님은 무척이나 좋아라 하시는 것 같더군요. 공짜로 공훈을 세울 기회니 말입니다. 어딜 감히 미개한 토인들 따위가 레드코트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들으니 참 맞는 말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서 소령께서도 곧 인도로 출발하신다고 하던데...”

“하하, 맞습니다! 다음 달에 출항할 예정입니다.”

아서 웰즐리 소령은 무척이나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자와 저를 부르셨는지요?”

“이 자? 엄연히 계급에서 차이가 나는데 이 자? 혹시 육군은 상관에 대한 예의도 가르쳐주지 않나?”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네이선은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두 분께 적당한 투자처가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불렀습니다.”

“···투자처?”

“오! 그거 어서 빨리 듣고 싶군요!”

‘이 새끼 왜 이래?’

눈을 빛내며 몸까지 기울이는 토마스 하디 중령의 모습에, 아서 웰즐리 소령은 그런 마음을 품었다.

일전에 기욤이 하디와 그 동기들에게 주식 단타로 은혜를 내려주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네이선은 손에 쥐었던 밀크티를 찻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렇게 좋아해주시니 저도 정보를 푸는 보람이 있군요. ···여러분 혹시 국제철도건설주식회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 들어봤습니다! 요새 런던 배불뚝이 금융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뜨거운 주제던데요.”

“음음. 당연합니다. 쌈짓돈을 넣어놓기만 하면 나중에 수 배로 돌아올 텐데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수 배로 늘어난다구요?”

하디가 눈을 빛내자, 네이선은 사람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나 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던가요?”

“물론 없지요! 없다마다요!”

“아서 웰즐리 소령님은 관심 있으십니까?”

“뭐어, 돈 버는 소릴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하하, 사지 않아도 되니 한 번 들어나보시지요. 그러니까 철도 완공시 연 이율은···.”

별 볼일 없던 로스차일드 가문을 백국의 금고지기까지 이끈 가문 특유의 아가리질. 네이선은 어느새 물려받은 재능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천천히, 누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유대인을 앞세운 이삭의 민족은 영국 곳곳을 향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프랑스.

파리, 방첩사령부.

분명히 해가 중천에 떠있는 낮인데도, 방첩사령부에 위치한 한 방은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지하에 자리해 햇빛 한 줄기 들지 않고, 벽에는 축축한 이끼가 군데군데 슬어 방을 퀴퀴하게 만드는 방.

그 방에는 의자에 결박당한 한 남자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두 군인이 있었다.

“끄...끄르륵....”

“···진전은 없나?”

“회유도 하고, 겁박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했지만 도통 입을 안 엽니다.”

“쯧. 이거 일이 귀찮게 됐군.”

곱슬거리는 금발에 남자답게 각진 턱을 가진 미셸 네 대위는 궐련을 입에 물며 짜증을 냈다.

이 영국 간첩을 잡은 지도 꽤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이 자가 뭘 위해 왔는지 알아내질 못하고 있었으니 퍽 답답할 노릇이었다.

“부사령관님께 말씀드리면 머리를 부여잡으시겠군.”

그러나 별 수 있나. 미셸은 감옥에서 나와 계단을 올랐다.

똑, 똑, 똑.

- 누구지?

“대위 미셸 네입니다. 보고할 내용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 아, 들어와도 좋네.

“예, 장군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딜 나가려는 건지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장군이 미셸을 맞이해주었다.

“미셸, 짧게 해줄 수 있나? 내가 오늘 어디 가볼 곳이 있어서 말이네.”

“그것이...”

미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국 간자 놈이 도통 입을 열지 않습니다.”

“···아, 이거 일 났네.”

나폴레옹은 얼굴을 찡그리며 질린 듯 말했다.

“그러면 당연히 경찰부에서 여태껏 방첩사는 뭘 했냐고 당장 경찰부에게 그 놈 신병을 내놓으라는 태클이 들어올 텐데.”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입을 안 여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제기랄.”

나폴레옹은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또 사령관나리한테 직쌀나게 깨지겠구만. 경찰부 놈들한테 빌미를 줬다고.”

“······죄송합니다. 장군.”

“마 됐다. 마침 사령관실 바닥 무늬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이 안 나던 참이라.

···이제 가서 자네 일 보게.”

“예, 장군.”

경례를 올려붙이고 착잡한 얼굴로 방을 나서는 미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폴레옹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도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대낮부터 장군이 복도를 활보하자, 방첩부 직원들이 경례를 우렁차게 박아댔고, 나폴레옹은 그 때마다 피곤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맞장구쳐주었다.

“언제는 장군님 소리만 들어도 히죽히죽 대더니 이제는 별 감흥도 없나봐?”

“그 소리도 몇 년 째인데 당연하제.”

나폴레옹은 미리 건물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던 둘째 여동생, 폴린에게 그리 말하며 마차 문을 열었다.

“마부. 그르넬흐 거리, 이삭의 민족으로 갑시다.”

“예이!”

***

“아니, 아직 근무시간 아니야?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

“걱정마라. 반차 썼다.”

나폴레옹 형은 그리 말하면서 내가 비싸게 산 손님용 소파에 몸을 턱하고 기댔다.

“장군이나 되는 사람이 반차를 이렇게 막 쓰다니. 그렇게 근무하면서 내 혈세를 월급으로 받아가는 게 너무너무 마음에 안 드는 걸.”

“왜? 꼽냐?”

“개꼬운데?”

“꼬우면 탈세해라.”

세상에 공무원이 저런 말을 일삼다니. 역시나 21세기에서는 군인, 소방관, 경찰이 돌아가면서 파업하는 프랑스란 나라 아니랄까봐 지금부터 공무원들 태도가 글러먹었다.

안되겠어. 어서 빨리 라부아지에와 머독, 트레비식에게 채찍을 때려 알파고 님을 이 세상에 탄생시켜야...

“또 뭐 이상한 생각하고 있제?”

“아닌데용?”

“눈깔이 요리조리 돌아가는 거 보니까 딱 그렇고만 뭐가 아니야. ···그런데.”

나폴레옹 형은 말을 끊더니 자기가 눈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혹시 연애해볼 생각 있냐?”

“연애? 형이 지금 제인 씨와 하는 그거?”

“그래. 연애.”

“그을쎄에...?”

내가 턱을 쓸어내리며 그렇게 말하자, 나폴레옹 형은 자세를 고쳐 앉고서는 쏜살같이 속사포를 꽂기 시작했다.

“내가 해봤는데 연애라는 게 참,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한테 좋거든? 너도 보면 사업이라는 게 그··· 뭐시냐. 그래,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어서...”

“창의적인 직업은 맞긴 하지.”

“그래! 그렇다니까!”

뭐야, 왜 이렇게 혼자 난리야. 혹시 어디서 중매 서달라고 협박이라도 받았나?

“형, 딱 말해봐. 누가 형 알몸 사진이라도 찍었어? 그걸로 협박이라도 해?”

“뭐? 사진은 뭐고 찍는 건 뭔데? 그리고 협박이라니? 니는 내가 그런 거 당할 병신으로 보이나?”

으음. 병신은 맞는데 그 정도로 병신은 아닌 듯?

“아무튼 협박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차아암 참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마침 그 사람이 짝이 없어가지고 걱정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나한테 소개시켜주겠다?”

“그렇지!”

연애라, 연애.

“뭐, 나쁘지 않지. 그래서 누군데? 어디 사는 누구?”

“폴린.”

“이름이 폴린이야? 형 동생이랑 똑같네?”

“보나파르트.”

머 시발?

“아잇 씻팔! 지금 장난해?!”

“왜, 왜?! 니 왜 그러는데?”

“내가 걔 아장아장 걸을 때 마지막으로 봤는데 걔랑 사귀라고? 형 미쳤어?!”

“도대체 뭐가 문젠데? 그루시 그 양반 누나 봐라. 콩도르세 국장 그 양반하고 20살 넘게 차이 나는데 결혼 했잖냐!”

이, 이 시발. 좆같은 프랑스 문화 시발. 내 안의 유교 탈레반이 미쳐 날뛰려고 해.

“이 미친 양반이 날 감방에 처넣으려고 하나?!”

“감방에 가긴 왜 가나? 걔도 이제 성인이야 성인!”

“갸아아악! 안 돼! 절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오라버니, 그렇게 제가 싫으신가요?”

나긋나긋한 여자 목소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 보았다.

오.

오우.

오우야.

생각해보니까 가끔은 눈에 흙이 들어갈 수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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