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철도건설주식회사 (1)
대영제국, 시티 오브 런던.
<이삭의 민족>의 차명 회사인 프라이스 세무법인 사무실.
[TIMES. 파리의 혁신, 증기로 가는 운송수단이 세상에 나오다!
···(중략)
이삭의 민족, 철도건설회사 신규 해외투자자 절찬 모집 중! 거기 그대! 전도유망한 산업에 올라탈 기회는 되었는가!?]
고급스러운 사무실 안,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이는 신문을 다시 접어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1면에 실으신 기사 내용, 본사에서 무척이나 흡족해 하더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월터 사장님.”
“하하하, 별로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그리 좋아해주시니 이 늙은이 마음이 으쓱으쓱해집니다 그려.”
“글 솜씨를 보면 아직 아드님 대신 현직에 있어도 될 것 같습니다만.”
“허허, 제 나이도 이제 예순입니다. 인쇄기 앞에서 잉크냄새 맡을 시기는 한참 지났지요. 이젠 가끔씩 소일거리 삼아서만 쓰려고 합니다.”
<타임즈>의 전직 사장이자 편집장인 존 월터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눈앞에 앉아 점잖게 홍차를 홀짝이는 젊은이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 <타임즈>와 <포브스>의 협력 관계를 조금 더 연장하는 걸 고려해달라고 본사에 요청해주실 수 있으신지...”
“아, 미국 판매 건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이제 10년짜리 계약 기간이 거의 다 지나갔군요.
···뭐, 걱정마십시오. 우리 이삭의 민족은 한 번 협력관계를 구축한 이후, 상호 간에 신뢰만 꾸준히 지켜준다면 절대 친구를 버리지 않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기욤 사장님께선 참으로 도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악수를 청했고, 젊은 이삭의 민족 지사장은 기꺼이 그의 손을 맞잡고 배웅해주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사무실, 지사장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자리에 앉아 제 앞에 있는 홍차를 치우고 대신 위스키를 빈 잔에 따랐다.
“대체 사장님은 무슨 생각이신 건지.”
네이선은 위스키를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오늘 아침 파리에서 배달된 공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갔다.
[최대한 많은 수의 영국인 투자자를 곧 창립될 철도건설회사에 유치하길 바람.]
간결한 지시, 그 밑에 조그맣게 달려있는 필기체 사인까지.
평소에 사장님이 보내던 양식 그대로 네이선 앞으로 배달된 공문은, 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외부 자본 비율이 높아지는 게 사장님과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텐데?”
투자자들은 원래 보수적이다. 회사가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잘하던 것만 계속 하길 바라는 법.
거기에 외국인이라면 한 술 더 떠 회사 배당금이 외국으로 유출되기까지 할 텐데. 과연 이게 맞는 일인가.
물론 세계 굴지의 증권거래소인 런던을 초토화시킨 사장님의 전적을 생각해보면, 나름 노리는 수가 있을 수도 있겠다! - 싶다가도.
사장님이 혹시 미국에서 병이라도 얻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듣자하니 아메리카에는 모기가 무서운 열병을 옮긴다고 하지 않는가. 혹시나 사장님이 괴물 모기에 물려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결국 네이선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하, 이렇게 까지 머리 아픈 거면 차라리 형 대신 신성로마제국으로 갈걸 그랬어.”
아버지,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삼형제에게 각각 신성로마제국, 나폴리, 영국으로 보내 유럽 각지에서 이삭의 민족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혈기 넘치는 네이선은 돌아다니는 돈의 흐름 자체가 다른 영국 지사장을 맡기를 원했고, 결국 영국 지사장 자리를 쟁취해냈으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던가.
네이선은 이리 저리 쉴 새 없이 데굴데굴 굴러대고 있었다.
해군성, 전쟁부, 재무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무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동시에,
사장님께서 원하셨던 것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를 긴밀하게 유착시키기 위해 맨체스터에 위치한 몇몇 면직물공장을 인수했으며,
와트 사와의 협업관계도 날이 가면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와트 그 양반 이제 일흔이라던데 몸에 좋은 중국산 차라도 몇 봉지 사다가 부쳐야겠구만.
결국 네이선은 한숨과 함께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뭐라는 지···. 좆도 모르겠음···.”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함. 계획 구성안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움.]
뭐 어쩔 수 있겠는가. 예전엔 프랑크푸르트 선제후의 금고지기인 로스차일드였다면, 이제는 툴롱 가와 이삭의 민족의 금고지기로서 혼신을 다할 수밖에.
***
전 세계가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번, 모두가 다 같이 좆 돼버릴 뻔 한 적이 있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잘사는 나라 국민이든 못 사는 나라 국민이든, 직업이 뭐든.
얼마 전까지 떵떵거리면서 돈을 뿌리고 다니던 공장장이 땡전 한 푼 없이 길바닥에 나앉고, 그 옆에는 그 사장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신문지를 깔고 앉는 진풍경.
후일 경제학자들과 사람들은 그걸 대공황이라고 불렀다.
전 세계의 경제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서로서로 얽히고설키는 바람에 일어난 거대한 재앙.
구시대였다면 그저 미국 하나가 주저앉고 끝날 일이었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갖가지 이해관계가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자, 영국이 쓰러지고, 프랑스가 쓰러지고, 독일이 쓰러지고, 이탈리아, 남아메리카가 차례차례 쓰러져버렸다.
돈의 관계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게 철도건설회사에 투자자를 받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요?”
“단순히 말하자면, 금융 폭탄이죠.”
마이어 씨의 말에, 나는 궐련을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금융폭탄, 말이십니까?”
“원래 도로나 다리 같은 기반시설이라는 게 시간이 꽤 들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우리의 귀중한 투자자인 루이 오귀스트 씨가 거액을 넘겨주긴 했지만 프랑스 전체에 철도를 깔려면 돈이 더 필요했다.
“당연히 투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배당금을 투자금만큼 환수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고, 우리 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목을 매겠지요.”
마이어 씨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는 계속 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 투자금이 모두 여윳돈인 사람이 있을까요?”
“···무슨 말씀이신 지요?”
“잃어도 되는 돈, 한 몇 년 없어도 되는 돈인 사람이 있겠냐는 말입니다.”
마이어 씨는 턱을 쓸어내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비율이 낮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로서는 찬스입니다.”
“찬스라?”
“저 치들 배당금은 우리 손에 달려있어요. 우리가 배당금을 끊어버리면? 퍼어엉!”
내가 손을 모아 폭발을 흉내내자, 바로 마이어씨가 바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건 불법이잖습니까.”
“당연하죠. 제가 언제 불법 아니라고 했습니까?”
내가 태연히 말하며 어깨를 들어 올리자, 마이어 씨는 마른 침을 삼켰다.
“······사장님께서는, 전쟁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역시 로스차일드야, 딱 맞추셨네.
그럼요, 당연하죠. YESYES치킨이라도 한 마리 물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전 전쟁을 일으키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경제봉쇄를 할 마음도 없구요.”
내가 봤을 때, 이미 프랑스는 확장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확장한 상태다. 아메리카에 생도맹그, 루이지애나, 거기에 또 확장을 하겠다고? 혹시 파산에 관심 있으십니까 휴먼?
프랑스의 입장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땅만 21세기까지 지켜도 로또 맞은 거나 다름없다.
거기에 난 멀쩡히 잘 사는 사람 사지로 내모는 악취미도 없고, 남의 영토고 나발이고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그냥 땅을 사버리면 그만이란 말이야.
내가 알기로 중국 빨갱이들 빼고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불허하는 나라는 본 적이 없으요.
“그러면?”
“그렇다고 맞고만 있을 생각도 없거든요.”
이건 보험이다. 보험.
이 각박한 세상에 보험 하나 안 들 수는 없지 않은가.
평시에는 멀쩡히 배당을 준다. 국적 상관없이 투자한대로 싹.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모회사인 내가 지급불능, 지급유예를 때려서 목숨 줄을 움켜쥐는 수밖에.
투자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느그들 나라 대빵이 당신네들 돈을 빵빵 터트리고 있습니다! 어서 전쟁 좀 멈추라고 피켓 좀 들어보세요!
어차피 이 병신 같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국가와 기업을 다르게 봐달라니, 수출금지나 수입금지를 풀어달라니 하는 소리는 모두 말도 안 되는 개소리.
나는 찬장에서 잘 숙성된 포도주를 꺼내 마이어 씨의 잔에 따라주었다.
“여기, 마시면서 들으시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몇 년 전에. 한 외교관이 제게 말하더군요.”
이번에는 내 잔.
검붉은 빛의 와인이 쪼르르하고 내 잔을 채웠다.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전쟁이 한 번은 터질 거라고.”
“쿨럭! 쿨럭!”
“우리 프랑스가 쌓아올린 혁명의 유산이, 제가 쌓아올린 이 회사가, 그 전쟁의 향방에 달려 있을 거랍디다.”
빠르면 1803년, 느리면 1813년이랬던가.
“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거죠.”
별 일이 없다면 정말 그냥 투자만 받은 거니까 상관없고, 별 일이 있다면 누가 됐던지 간에 발목을 저 하늘 높이 날려버릴 지뢰.
“아, 한 가지 더.”
“뭔가요, 사장님?”
“네이선 씨에게 항상 금고는 리브르 지폐로 채워 넣으라고 하세요. 파운드 대신.”
***
[전독일 계몽 잡지(Zeitschriften der deutschen Aufklärung), 파리의 대성공! 지금 투자하면 당신도 성공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삭의 민족 철도건설, 프랑크푸르트 증권 거래소 입성!]
“10주! 10주 주시오!”
“난 30주!”
“다 꺼져! 내가 100주, 주당 15 제국플로린으로 사겠소!”
신성로마제국.
[마드리드 신문(Gazeta de Madird), 이삭의 민족, 투자자 전격모집!]
“병신 같은 왕립은행에 예금했다가 국왕의 사치로 탕진할 바에는 건실한 외국 기업을 사는 게 백만 배는 낫겠다!”
“우우! 프랑스 총리는 저렇게 발로 뛰는데 우리 총리인 병신 고도이는 왕비 발가락 빨아주는 거 말고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프랑스에 식민지 가져다 바치는 거?”
스페인 왕국.
증기기관차의 성공소식과 더불어 전 유럽의 친계몽주의적 잡지가 해당 증기기관차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하던 철도건설회사가 각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자, 전 유럽 증권거래소는 때 아닌 홍역을 겪게 되었다.
물론, 개중에서도 제일은 바로.
“주 당 7파운드! 7파운드!”
“7파운드 5실링 아래로 내가 다 사겠소!”
“···이봐 이걸 정말 사도 괜찮겠나?”
“하! 사기 싫으면 관두라고! 증기기관이 처음 나왔을 때 그걸로 뭘 하냐면서 비웃던 새끼들은 다 템즈 강에 빠져 뒈지고 없어. 죄 다 배가 아파서 참을 수가 있었어야지! 이번도 똑같아, 변화에 편승하는 놈은 살고! 못 편승하면 템즈 강에 대가릴 꼬라박을 걸? 전재산 올인 가즈아!”
영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