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첫인상 (6) (228/341)

첫인상 (6)

1799년 초.

파리 외곽, 생제르망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그 기관··· 머시기 차라는 게 뭐라고?”

“증기기관을 활용해서 바퀴를 움직이는 거래요.”

“말은?”

“말이 필요가 없대요. 석탄만 때우면 자기가 알아서 앞으로 간다는데요?”

“어이구, 나 젊을 때는 상상도 못하는 게 마구마구 나오는구먼.”

“이보게. 그걸 어디서 만들었다고 했었지? 왕립 아카데미?”

“아니, 이삭의 민족이라던데?”

“또 이삭의 민족이야? ···안전은 하다던가?”

“보나파르트 장군이 직접 타보고 감탄했다던데, 그런 고위 인사가 타봤다면 안전하겠지?”

“흠, 듣고 보니 그렇겠구만.”

즐길 거리라곤 가끔씩 도시에 방문하는 서커스단이나 오페라, 커피와 함께 노가리 까는 거 밖에 없는 실로 노잼인 18세기.

세계 최초라는 그 ‘말 없는 운송수단’이 철도를 달린다는 풍문은 파리 시민들로 하여금 가족들과 함께 이 생제르망 기차역을 방문하게 만들었다.

물론 정말 ‘말 없는 운송수단’을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건 생탕투안 구에 사는 라 모 화학자였지만 역사책을 탐독하는 사학자들이나 알 법한 내용이지, 일반인들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라 모 학자만 집에서 이를 북북 갈 뿐이었다.

각설하고, 누군가는 ‘그러다가 예전에 퀴뇨라는 돌팔이의 발명품처럼 어디 들이박는 거 아니야?’라며 불안해했지만, 어디 이 프랑스가 그런 ㅈ만이들만의 나라였던가?

그런 걸로 쫄 사람들이었으면 살기 좆같다고 바스티유에 대가리 들이밀지도 않았을 터.

이제 막 세워진 생제르망 기차역의 수용인원이 초과되고, 곳곳에 임시로 세워둔 말뚝 바로 앞까지 사람들이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따끈따끈한 수프 있어요! 펄펄 끓는 물도 있습니다!”

“이보시오, 나 수프 한 국자만 주시오.”

“아이고 그러문입죠!”

거기에 추운 겨울 새벽이라는 배경을 틈타, 한몫 잡아보려는 장사치들까지 합쳐지자, 생제르망 기차역에는 정말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어지고 말았다.

- 딸랑, 딸랑, 딸랑!

“삐이익! 삐이익!”

그렇게 모두가 옥신각신할 때, 기차역 옥상에서 망원경을 쥐고 저 멀리를 바라보던 역무원이 무언가를 보고서는 커다란 종을 울리며 호루라기를 불어대기 시작했다.

“시민 여러분 모두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위험합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역무원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한 헌병들이 철도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밀어내길 잠시.

드디어 사람들의 눈에도 마치 불이 난 곳에서 올라오는 듯 한 검은 연기가.

귀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질적인 소음이.

차근차근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란 침엽수림을 헤치고, 저 멀리 르 아브르에서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검은색의 강철로 몸을 둥글게 말아 어찌보면 갑충(甲蟲)처럼 보이고, 앞에는 기다란 원통이 쉴 새 없이 검은 연기를 밖으로 토해내었다.

파리를 감싸고 있는 숲을 진동시키는 그것에, 누군가는 어릴 적 베게 앞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숲의 괴물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인간 이성과 합리가 만들어낸 기적이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누군가는 그저 신기한 광경에 꺄르륵-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행동은 같았으니.

- 치이이이이익!

후끈한 증기를 뿜어내며 마침내 그 ‘증기 기관차’라는 게 멈추고, 자신의 단단한 몸을 철도역에 뉘이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슬며시 손을 그것에 가져다 댔다.

누군가는 동화 속 괴물을 만지 듯 두려움을 담아서, 누군가는 이 거대한 탈 것을 만든 기술자와 과학자들에게 경외심을 담아서, 누군가는 그저 신기해서.

어린 아이부터 일흔을 먹은 노인, 경비를 서던 군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팔이 말뚝을 넘어 강철로 만든 경이(驚異)를 향해 뻗어나갔다.

경이는 전설 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던 괴물이 아니었다.

사악한 마법사의 요술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신의 사도가 내려준 성물(聖物)이 아니었다.

그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 미신적인 존재가 내려준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이 생각해내고 만들어낸 발명품이었으며, 인간이 쓰지 않으면 그저 무거운 철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자신들이 아니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생물도 사용할 수 없는,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

사람들의 마음이 품었던 일말의 의심과 걱정, 불안이라는 첫인상은 어느새 햇살에 눈이 녹듯 녹아버리고 그 자리를 확신과 자부심이 채웠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는 얼마나 더 대단할까, 10년 뒤에는 이 세상에 무엇이 오고갈까.

태어날 적, 세상을 걷는 법으로 자신들의 발과 말이라는 동물의 발을 이용할 줄만 알았던 사람들은 드디어 기계라는 문명의 발을 이용하여 세상을 걷기 시작했다.

1799년.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

“기관차 말인데···.”

“그러면 이제 툴루즈까지 얼마가 걸리는 거지?”

“다음에는 철도가 어디로 이어진다던데···.”

증기기관차 시연 후 이주일 째. 이제 사람들은 파리 어디를 가던가, 기관차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심심한 시대에 이렇게 큰 가십거리가 뜻 하는 건 두 가지 중 하나 아닌가. 쪽박을 차던가, 대박을 차던가.

다행히도, 정기운행을 개시한 르 아브르-파리 증기기관차 노선을 본 시민들이

“끼에엑! 마법사의 소행이다!”

“성수! 성수를 끼얹어!”

“가톨릭 만세! 흉물을 때려 부수자!”

-라며 게거품을 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체의 미신을 배격한 인간 이성의 대승리!”

“절 이번에 디종의 시장으로 뽑아주신다면 다음 기관차 노선을 무조건 유치하겠습니다!”

“그래서 기관차 관련주는 언제 상장되나요?”

오히려 여론은 호의적이다 못해 머릿속 사고회로가 행복회로로 교체된 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편승할 겸 추가로 특집 기사에 내 인터뷰 몇 개 실어서 내니 효과도 제대로였다.

[파리에 나타난 성 니콜라오스의 썰매? 이삭의 민족이 선보이는 신비한 운송수단, 기관차란 무엇인가?! <포브스>, 이삭의 민족 사장 기욤 드 툴롱과 단독 취재!]

“나! 나 주시오!”

“저리 비켜! 내가 먼저 왔단 말이야!”

“줄, 줄을 서주세요!”

혹시나 바짝바짝 마음을 졸이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첫인상을 좋게 박으려고 노력했으니, 내 노력이 보답 받은 기분이다.

이제 남은 건 예산과 자원을 더 투입해 이삭의 민족 명의로 전국에 철도를 놓고 영원토록 개꿀을 빨아먹기만 하면 된다!

여태까지는 너무 긴 유통과정 속에서 썩어버리는 바람에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던 음식물도, 무거운 탓에 운임이 수배로 들던 건설자재들도, 유람하는 관광객들까지 모두 이 기욤의 철도에 놓인 기욤의 기관차를 타게 될 거다.

막, 돈이 막, 복사가 된다고!

“그러면 자네 돈으로 다 하면 될 것을 날 왜 찾아왔는가?”

“원래 혼자 먹으면 탈나거든요.”

나는 루이 오귀스트 씨를 향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석유왕 록펠러와 그의 기업이 괜히 반갈죽, 아니 십갈죽이 된 게 아니다.

있을 때 마음을 베풀어야 나중에 혹시 맞을 때도 안 아프게 맞는 거라고.

“게다가 이 철도라는 게 그리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 철도에 드는 원자재 뽑아내는 건 자네 회사 아닌가? 그런데 왜 못 만드나?”

“에헤이, 제가 만들고 제가 쓰면 손실이 난답니다?”

“?”

루이 오귀스트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야레 야레, 이 기욤의 경제 교실을 또 열 때가 되었구만.

“혹시 종이 있습니까, 루이?”

“한 장이면 충분하겠나?”

그는 자기가 책을 쓰려고 모아놓은 원고지 중 하나를 뽑아 내게 펜과 함께 건네주었다.

나는 동그라미를 큼직하게 세 개 그린 후 그를 향해 말했다.

“자, 제 제철소에서 이제 원자재를 생산하죠?”

“그렇네만.”

“이걸 1차 생산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이 제철소는 사람도 고용하고 고로에 유지비도 쓰니 비용이 발생하겠죠?”

“그렇지?”

나는 이제 두 번째 동그라미를 펜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건 이제 제철소에서 철을 받아 기관차와 철도를 만드는 2차 생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2차 생산은 제철소에서 철을 구입하고 노동자까지 고용한 뒤, 나중에 철도가 완공되면 이용객들에게 요금을 받아냅니다.”

루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다가, 문득 이상한 걸 느낀 듯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세 번째 원은 뭔가?”

“그것 때문에 루이 오귀스트 씨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

나는 두 번째 원에 써넣었던 ‘이용객에게 요금을 받아낸다’는 내용 위에 줄을 슥슥 긋고 세 번째 원에 써넣었다.

“기존에 1차, 2차 생산 과정에서는 손실이 발생합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라던가, 유지비라던가, 특히나 이 2차 생산 과정이 그런 게 두드러지죠. 기반시설이 다 완공될 때까지는 원금 회수가 안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완공 후에는 돈이 쉽게 모이는 것 아닌가?”

어허. 이 사람아. 그게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데 돈을 거기 묶어놔야겠어?

“한 곳에 돈이 묶이고 유용이 불가능해지면 회사 전체의 여윳돈이 부족해집니다. 그건 곧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고, 몸집을 불리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물론 묶인 돈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해결할 수는 있지만, 내가 왜 은행한테 이자라는 손해를 보면서 내 돈을 허락 맡고 쓰겠나?

“따라서 전 이 2차 생산을 짬 때릴 겁니다.”

“누구한테? ···설마 자네 짐, 아니 나를 말하는 겐가?”

어우 눈치도 빠르셔라. 역시 전직 베르사유 집주인 아니랄까봐 바로 알아차리시네.

“철도 건설회사 하나를 만들고 그 회사 주식을 만들어 팔 예정이거든요. 다만 철도 운행 요금 회수권은 모회사에 귀속되는 자회사를 말이죠.”

내 제철소에서 철을 찍고, 이 철도 건설회사가 그 철을 산 다음 건설을 하면, 3차로 내가 요금을 빤 뒤에 자회사에 배당을 해주는 거지.

“그걸 사람들이 사겠나? 껍질만 남겨놓는 거랑 뭐가 다른가?”

“어유, 다르죠. 정상적으로는 제가 배당금을 다 드릴 텐데.”

목줄이 내 손에 있을 뿐.

루이 오귀스트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내게 그걸 말해주는 건가?”

“우리 프랑스에 딱히 투자 같은 건 안하는데 돈은 밑으로 10대까지 놀고먹을 만큼 많이 쌓아놓은 분이 루이 오귀스트 외에 또 있습니까?”

거 아저씨 어차피 돈 어디 쓰지도 안잖아. 나한테 맡겨 놓고 배당만 타가라니까?

난 돈 안 묶여서 좋고, 댁은 쓰지도 않는 돈으로 꽁돈 벌어서 좋고.

***

1799년 2월 초.

파리, 어딘가의 뒷골목.

“헉, 헉, 흐읍!!”

한 남자가 어둠을 틈타 건물들의 그림자 사이로 들어간 후, 숨을 멈췄다.

- 쫓아라!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 삐이익! 거수자 발생! 거수자 발생!

경찰관 한 무리가 그의 앞을 우르르 지나가고, 한참 후, 남자는 손으로 막았던 입을 다시 풀고 숨을 토해냈다.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큰일은 이미 난 거 같은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남자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었지만, 뒤에서 나온 우악스런 손은 그런 남자의 손을 쉽게 비틀어버렸다.

“아아악!!”

“이 영국 간첩 놈, 드디어 잡았다.”

방첩사령부 소속 미셸 네 대위는 군홧발로 남자의 목을 찍어 누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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