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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첫인상 (2) (224/341)

첫인상 (2)

- 덜컹, 덜커덩.

“그래서 그 사람들 환영한답시고 어디까지 가는 거고?”

파리 한복판을 달리는 마차 안에서, 나폴레옹은 턱을 괸 채 제 옆에 있는 오랜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초 냄새를 싫어하는 자신 때문인지, 궐련에 불을 붙이는 대신 입에만 물고 질겅질겅 씹던 친구는 그 말에 나이브하게 대답했다.

“파리 외곽 쪽에 괜찮은 홀을 하나 빌렸거든.”

“홀? 홀까지 대관했다고? 돈 없다고 카드까지 만들어 팔면서 대관비는 어떻게 기껍게 냈나?”

“겨우 돈 몇 푼에 사람의 호의를 싸게 살 기회를 걷어차는 건 멍청이나 할 생각이잖아.”

“···호의를 싸게 사?”

친구 놈은 웃으면서 나폴레옹을 바라보았다.

“내가 명단을 슬쩍 봤는데, 대부분이 10대 소녀. 아니면 20대 초 숙녀들이더라고. 형도 알잖아, 우리도 다 지냈던 시절이니까. 다들 머리가 말랑말랑할 텐데 처음 만나는 자리가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스런 홀에다가, 사장이 직접 나와 환영까지 해주면 그게 그 말랑말랑한 머리에 얼마나 깊은 인상으로 박히겠어?”

“흠.”

나폴레옹이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턱을 쓸어내리자, 친구는 덧붙였다.

“형.”

“어, 왜?”

“형이 생각하기에 회사에게 가장 이상적인 고용인은 뭐라고 생각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떤 직원들이 회사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줄 거 같냐고.”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나폴레옹은 뭐 그런 걸 묻냐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려울 거 있나.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명령에 토 안다는 직원이겠제. 거기에 무슨 일을 맡기던 수월하게 해결할 만큼 능력도 있는.”

“그건 군인이고 이 양반아.”

“그러면 어떤 사람인데?”

“궁금하면 마차 요금 좀 내줘.”

“뭐? 야. 니가 내보다 수천 배는 더 벌 텐데, 무슨 벼룩에 간을 빼 먹나?”

“아, 그러면 말 안 해.”

와. 와. 저렇게 쪼잔한 게 행정부 수장이었다니, 나폴레옹은 저 또라이 밑에서 몇 년 간 갈려나간 재무부 직원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 그래 내가 낸다 내가. 그래서 뭔데?”

그제서야 친구 놈은 히죽거리며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성실하고, 말 잘 듣고, 군말 없는 직원. 물론 좋지 좋아. 하지만.”

“하지만?”

“제일 좋은 고용인은 ‘아, 내가 이 회사의 일원이다. 그러니 우리 회사가 잘되는 게 곧 내가 잘되는 길이다!’, 이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 뭐냐, 주인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주인의식이라, 그런 생각이 네가 원한다고 뚝딱 생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물론 아니지. 내가 괜히 인건비를 드럽게 많이 쓰는 줄 알어?”

그는 질겅질겅 한참을 씹은 탓에 흐물흐물해진 담배 한 개비를 마차 창 너머로 툭 던지며 이어 말했다.

“내가 곧 회사다. 회사가 잘되는 게 곧 내가 잘되는 길이다! 그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들려면 회사가 성장할 때 직원들에게도 달달한 뽀찌가 떨어져야 한다고. 어라, 내가 일을 해내면 해낼수록 회사가 잘되고, 내 월급봉투도 두둑해지네? 주인의식을 갖지 말라고 해도 가지게 될 걸.

두 번째는 이미지야 이미지. 아무리 보수가 좋아도 평판이 꺼림칙한 곳은 다들 기피하게 되어 있거든. 사형집행인이란 직업 봐봐, 보수가 좋아도 사람이 지원을 안 하니 대대손손 이어서 물려받잖아.

그러니 직원들이 스스로 자기가 원해서 일하게 하려면 돈을 빵빵하게 주고, 밖에서 보기에 건실하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면 돼.”

“···니 말고 다른 사업가나 공장장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

“뭐, 그러라지. 그 양반들이 언제는 안 그랬다고. 하루에 10수 주면서 부려먹다가 내가 강제로 무조건 최소 1리브르는 줘야 한다고 법을 통과시키니 얼마나 배알이 꼴리시겠어. 그런데 거기다가 돈을 더 얹어주라니, 배알이 꼴리다 못해 배때지가 터져나가실 지경이지.”

그는 품속에서 궐련을 하나 더 뽑아, 또 다시 입에 물며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 그 양반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난 좋단 말이야.”

“왜?”

“왜긴? 우리 똘똘하고 능력 있는 구직자 분들이 그런 똥 같은 곳을 가겠어, 아니면 복지 빵빵한 우리 이삭의 민족으로 오겠어?”

“···니 회사로 가제.”

“바로 그거야. 난 특별히 뭘 안 해도, 먹물 먹은 고급인력이 팍팍 들어온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하는 말인데.”

“?”

그는 나폴레옹은 바라보며 넌지시 얘기했다.

“형 혹시 아르바이트 해볼래?”

“아르바이트? 그게 머고?”

“그 뭐냐, 용돈 벌이. 섭섭지 않게 줄게.”

나폴레옹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돈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 스트레스 받느라 그런 거 할 여력이 없다.”

“아니, 아니. 들어 봐봐. 막 거창한 게 아니고, 글 몇 개 가져다 읽는 거야.”

“글?”

“그래. 글. 형 책 좋아하잖아. 이번에 작가지망생들이 쓰는 글 좀 가져다가 ‘아, 이 사람은 꽤 쓰네. 아, 이쪽은 더 다듬었으면 좋겠네.’ 이 정도로 간단히 평만 해주면 돼.”

“···나 말고 다른 사람 고용해도 되지 않나?”

“에이, 내 옆에 책 좋아하고 문학적 감수성도 풍부한 우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씨가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 주머니에 돈 찔러줄 필요가 있나. 기왕 돈 쓸 거면 친구 주머니 채워주는 게 낫지. 안 그래?”

요즘 일 때문에 화난 거 같은데, 좋아하는 글 읽으면서 기분 좀 풀면 좀 좋아. 기욤은 너덜너덜해진 담배를 또 다시 창밖으로 던지며 덧붙였다.

역시, 나폴레옹 자신이 다른 건 몰라도 친구는 잘 사귄 것 같았다.

***

마차에서 내려 기욤이 준비했다는 홀로 들어서자, 정장을 빼입은 몇몇이 다가와 나폴레옹와 기욤을 향해 손을 건넸다.

“각하! 오랜만입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먼로 의원, 아니 이제 먼로 대사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 원하시는 대로 불러주셔도 됩니다! 아, 이쪽 신사 분은 누구신지...?”

나폴레옹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국민방위대 육군 준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아! 각하께서 말씀하시던 친구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장군님. 민주공화당 의원이자 주불 미국대사인 제임스 먼로입니다.”

사람 좋게 생긴 미국인은 나폴레옹과 짧게 인사를 나누곤 기욤을 향해 말했다.

“이런 대단한 기회를 제 딸아이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뭘요, 따님께서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 뽑힌 거죠.”

“하하! 엘리자 그 아이가 들으면 좋아서 깡총 뛰겠습니다 그려. 자, 이제 들어가시지요. 신사된 도리로 소녀들보다 먼저 자리를 덥혀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은 천천히 홀 안으로 들어갔다.

***

‘떨지 말자, 떨지 말자.’

영국 햄프셔에서 먼 길을 온 제인은 두근두근 뛰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속으로 뇌까렸다.

제인이 탄 마차, 그러니까 척 보기에도 돈 꽤나 들인 듯 한 마차 안에는 척 보기에도 돈 꽤나 가진 듯 한 요조숙녀들이 하하호호거리며 자기들 가문을 서로 재기 바빴으니, 서민 출신인 제인이 불편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프랑스까지 와서 서로 자존심 싸움이나 하고, 완전 꼴불견 아니에요?”

“그러게나 말이···, 어머나!”

제인이 깜짝 놀라 옆을 쳐다보자,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소녀가 키득거리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얘, 얘, 나는 그게 아니라...”

“걱정 마세요. 전 영국인 아니거든요. 어디 가서 나불댈 생각도 없구요.”

“그, 그렇니...?”

꼬마 아이는 당돌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전 엘리자 먼로에요. 필라델피아 태생이죠.”

“···제인 오스틴이야, 햄프셔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왔단다.”

“언니, 잠깐 귀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응? 귀?”

제인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엘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닥였다.

“여긴 언니랑 저 말고 다 밥맛밖에 없는 거 같은데, 우리 친하게 지내는 거 어때요? 영국 촌녀랑 미국 촌녀면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미국인 꼬마의 말에 제인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

“언니, 빨리 가요! 이러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앞자리 다 뺏기겠어요!”

어린 아이들의 활동력은 원래 이런가? 제인은 마차에 내린 이후로도 14살 짜리 소녀의 손에 이끌려 달리다시피 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엘, 엘리자! 왜 앞자리를 맡자는 거니? 이유라도 설명해주렴.”

“저희 아빠가 그랬는데, 오늘 환영식에 어마어마한 사람이 온 대요!”

홀 가장 앞쪽에 있는 자리를 차지한 엘리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10살이란 나이 차이가 이 정도였던가. 제인은 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후, 나머지 숙녀들이 도착해 자리에 앉자. 몇몇 남자가 홀 가운데 있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개중 한 명의 얼굴은 제인으로서도 익히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오똑한 코에 훤칠한 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수년 전 런던에 자리한 한 사교회장에서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던 남자.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숙녀 여러분. 이삭의 민족 사장이자, 여러분을 이번 작가연수생으로 초대한 기욤 드 툴롱이라고 합니다.”

그가 나오자 뒤쪽에서 여럿 숙덕이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전직 수상이 직접 우릴 위해 나온 거야?”

“어떡해, 어떡해!”

그러던 말던, 그는 계속 단상 위에서 청중들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오랜 항해 때문에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여러분을 부르게 되어 심히 죄송합니다. 다만 여러분을 곤란케 하려는 이유가 아닌, 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함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여러분에게 기는 거대가 매우 크다.’, ‘많이 배우고 능력을 길러 자신과 좋은 계약관계로 만나자.’는 둥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사교계에서도 익히 들었던 단순한 수사였지만, 그가 어디 보통사람인가. 이미 제인과 엘리자,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처럼 대단한 사람이 직접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는 거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여러분이 쓴 글에 대해 평을 남길 평가원을 소개합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씨, 어서 단상으로 올라··· 악!”

뒤에서 갑작스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단상에서 쑥 내려간 기욤을 보고 의문을 표하는 청중들이 있었지만,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제인은 똑똑히 보고 말았다.

- 이, 이 미친노마! 내가 언제 한다고 했나!

- 아니, 침묵은 한다는 거지! 악! 왜 때리냐고! 그래서 안 할 거야? 저렇게 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와 이거 완전 나쁜 놈이네. 와아.

- 니, 나중에 보자.

다부진 몸에 곱상하게 생겼지만 키는 전직 재상보다 작은 한 남자가 단상 위로 불쑥 올라왔다.

“···그, 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합니다. 비록 문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군인이지만 성심껏 채점하도록 하겠습니다.”

능숙한 프랑스어지만 약간은 이탈리아어 억양이 섞인 말. 제인은 괜스레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2주 후.

“씨이이이이바아아아알.”

오늘도 상관에게 대차게 깨지고 온 나폴레옹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옷을 아무렇게나 침대 위에 던져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당장에 머리를 식히지 않으면 열 때문에 터져버릴 지경이었으니.

요즘에 낙으로 삼고 있는 건 기욤 그 녀석이 만든 카드놀이, 노는 거에는 사족을 못 쓰는 놈이 만들어서 그런가 중독성이 대단했다. 그 녀석,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지.

그 다음에는 바로 이 작가지망생들이 쓰는 글이었다. 괴테 같은 대문호에는 못 미치지만 원체 책을 좋아해서 그런가 나름 재미있었다.

“어디보자, 제인 오스틴. 제목은 <첫인상>이라.”

나폴레옹은 오늘 아침에 배달 된 종이 뭉치를 뒤로 넘기며 쭉 읽어 내려갔다.

“······이거 재밌는데?”

그의 집에는 새벽이 다 가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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