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돈, 돈, 돈 (4) (220/341)

돈, 돈, 돈 (4)

커피.

피곤한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친구이자, 현 18세기 유럽인들의 친구이기도 한 커피가 처음 이 유럽 땅을 밟았을 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는가?

- 아니, 이게 뭔가?

- 그 뭐냐, 튀르크 인들이 마시는 건데, 내가 먹어보니까 향이 되게 좋더라고. 자네도 한 번 먹어보겠나?

- 튀르크 이교도들이 마시는 거라고?! 세상에 자네 제정신인가!?

- 아니, 왜?

- 그 놈들이 왜 그걸 마시겠나! 이교도 놈들이 먹는 검정물이라니! 그거 완전 타락의 산물 아닌가?!

- 어... 그른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 신부님! 주교님! 어서 이 얼 빠진 친구 놈을 살려주시옵소서!

- 오, 신이시여! 이보게 어서 이 성수를 몸 구석구석에 바르게나. 이교도 인들의 부정한 기운을 퇴치해줄 걸세.

- 감, 감사합니다.

- 참고로 성수 병 당 금화 열 닢이네.

- 예?

- 금화 열 닢이라고.

- 예?

그렇다.

유럽에서 처음 커피가 받은 취급은 피곤한 직장인들의 아침을 깨우는 친구가 아니라 이슬람을 믿는 이교도 튀르크 인들이 마시는 부정한 검정물이며 사탄의 음료, 사악한 나무의 검은 썩은 물이었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계몽주의자들도 주일 예배와 헌금은 꼬박꼬박하는데, 지금보다 2백 년 전이었으니 그 종교적 광풍이 얼마나 강했겠나.

- 커피를 마시는 건, 하느님께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다! 고로 짐은 오늘 부로 커피 음용을 금지하도록 하겠으니 모든 신민들 잘 지켜주길 바란다.

- 커피를 마셔? 네가 그러고도 유럽인이냐!?

- 모두들 홍차를 마십시다! 홍차야 말로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산물입니다! 오, 아멘!

- 하, 하지만 신부님! 홍차는 너무 비싼 걸요? 저희 같은 서민들은 홍차를 살 돈이 없습니다!

- 너 사탄.

- 예?

불과 백 년 전만해도 사막에 있는 도시 하나 먹어보겠다고 10만이나 되는 군대를 8번이나 사막 한 가운데로 보낸 시대답게, 광풍은 태풍으로 변해 온 유럽을 휩쓸기 시작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 요즈음 천것들이 우리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 그렇습니다. 교회를 개혁시키자니 뭐니 헛소리를 하던 루터, 칼뱅 그 두 불신자는 죽은 지 오래지만, 그 놈들의 정신을 잇자니 하는 참람한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니 이 어찌 심려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흐으음. 무슨 꾀가 있는 형제는 없습니까?

- 요새 커피라는 것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던데, 그걸로 관심을 돌려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주교님?

- 오, 형제님!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크, 마치 카드놀이를 사탄의 유혹으로 몰아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태풍은 단 한 사람의 언행으로 단숨에 진압되었으니.

- 여러분.

- 예, 성하.

- 요즈음 시끄러운 그 커피라는 것 말입니다.

- 죄, 죄송합니다. 더 단속을 철저히 하여 성하의 귀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 제가 먹어봤는데 말입니다.

- ···예?

- 그것 참 맛 좋은 차더군요.

- 성, 성하! 그건 튀르크 인들이 사탄과 결탁하여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만든 사생아입니다!

- 그래요? 그러면 제가 직접 그 커피라는 차에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례를 내리지요.

- ···예?

- 본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만물은 회개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이교도 튀르크 인에게서 가져온 부정한 것이더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직접 그 커피라는 차를 회개시키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지요?

당시 교황인 클레멘스 8세는 쿨하게 커피에 세례를 내리는 걸로 모든 논란을 종식시켰고, 억제기까지 없어진 커피는 불과 10여년도 안 되서 전 유럽에 퍼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걸 재현하겠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옙.”

“그러니까 지금... 후우, 미치겠구만.”

“왜요, 안됩니까?”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되니 안 되니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연도의 뒷자리 수가 한 번 바뀌고서 다시 만나게 된 탈레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니, 내 완벽한 계책을 듣고서 칭찬은 못해줄망정 왜 저런담.

생각해보자. 내 상품을 가로막는 게 무엇인가. 바로 틀니딱딱 가톨릭 탈레반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 틀니딱딱 가톨릭 탈레반들의 대빵은 누구인가. 바로 교황청에 계시는 교황 성하 아니신가.

그러니 교황과 쇼부를 쳐서 세례 좀 받겠다! 보셨습니까, 시골 가톨릭 사제들? 당사자와 원만하게 타협했으니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마세용.

음, 내가 생각해도 어디 나무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계획이다.

나 스스로에게 기특한 마음이 들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탈레랑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총감님은 죽어서 불경죄가 무섭지 않으십니까?”

“불경죄요?”

“사람은 죽으면 주께서 보시는 심판대로 가지 않습니까. 목자이신 주님께선 자신의 어린 양이 살아오며 지은 죄와 선행을 저울질해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시지요.”

“제가 한 번 죽어봤는데, 그런 거 없던데요?”

“아, 그러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아니 진짠데. 왜 자꾸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절 쳐다보십니까.

“그렇다면 총감께서 절 찾아오신 건 교황청과의 커넥션 때문이시겠군요.”

“그렇죠.”

“흐음.”

탈레랑은 턱을 쓸어내리며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마 교황청이 절 탐탁지 않아 하는 건 알고 하시는 거지요?”

“예? 탈레랑 차관은 본래 오툉의 주교 아니십니까?”

주교면 그래도 가톨릭에서 되게 높은 직위 아닌가. 교황청이랑 안 친한데 어떻게 주교가 되지?

탈레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건 혁명 전야의 일이지요. 이제 교황청에게 전 입에 담기 껄끄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하긴, 나랑 짝짜꿍해서 프랑스 내 교회재산 몰수에 성직자들 월급도 뺐었으니. 탈레랑이 한 걸 보면 교황청이 이를 북북 갈면 갈지, 곱게는 안 보겠구나.

“뭐어, 그래도 어떻게 사제직은 유지하고 있으니 편지야 써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만. 교황청에게 호화스러운 대접을 기대하시면 안 될 겁니다.”

“에이, 제가 언제 그런 거 따지는 거 보셨습니까.”

“···총감은 가끔 보면 저와 같은 프랑스인치고 너무 소탈하단 말이지요. 일단 바로 편지를 써서 이탈리아에 부칠 테니 몇 달 기다리셔야겠습니다.”

탈레랑은 그렇게 얘기하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내게 다시 말했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놀잇감을 만드시길래 교황청까지 찾아가신다는 겁니까?”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이 세상에 놀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으헤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사환을 불러 내가 짐 삼아 가지고 온 카드뭉치를 우리가 마주앉은 탁자 위에 쏟아냈다.

“아, 아니. 이게 다 뭡니까?”

“자, 이건 몬스터 카드라는 거에요.”

“···몬스터 카드?”

그날, 루이지애나 총독부에 위치한 탈레랑의 침실 불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

1797년 말.

이탈리아 반도, 교황청.

-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하늘을 달다가 높디높은 돔에 부딪혀 공명했다.

“흠. 흐음.”

“교, 교황 성하 괜찮으신지요?”

붉은 벨벳을 어깨에 두르고 금실과 흰 실로 수놓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자, 교황 비오 6세(Pius VI)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발을 멈추고 온화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형제. 잠시··· 잡생각이 나서 말이지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 성하.”

살이 보기 싫을 정도로 찐 것이 아니라,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찐 교황이 그리 말하자 자신을 걱정해주던 신부가 부복하고 다시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신부가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성하, 지금 그 자가 교황청 앞에 도착했다 합니다.”

“···그렇습니까.”

교황은 잠시 천장에 그려진 천재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성호를 그었다.

교황이 성호를 긋자, 옆에 있는 사제들이 덩달아 성호를 그었다.

비오 6세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구나. 세상의 등불을 자처하던 교회가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꼬.’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후,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의 1대 황제인 오토 1세 이후 전 세계의 가톨릭 교도들이 교황청의 교황의 아래 모여야 한다는 울트라몬타니즘(Ultramontanism)은 수백 년 전 독일인 신부와 스위스인 신부의 신랄한 비판 이후 이미 그 힘을 잃고 추락하고 있었다.

그동안 교황청의 가장 큰 힘이 되어주던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갈리카니즘(Gallicanismus)이라는, 명목 상으로만 교황의 밑에 소속되고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상세한 일은 교황의 재가 없이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겠다는 운동이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었다.

교황권을 그나마 지켜주던 프랑스가 이대로 이탈해버린다면 교황청으로서는 당혹스럽다 못해 절규를 내지를 입장이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라는 어떤 정치 지도자는 성직자들을 공무원처럼 국가가 다루겠다는 미친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취소되지 않았나.

세상에, 성직자를 공무원처럼 다루겠다고? 절대왕정의 독재가 좆같아서 혁명을 했다면서? 그러면 로베스피에르라는 그 자는 뭐지? 왕 말고 프린캡스를 하겠다는 건가? 이름을 아우구스투스 로베스피에르로 개명할 예정인가?

‘세상이 미쳐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미친 건지.’

그 답은 간단했다. 지금 만나는 이 사내가 알려줄 터.

- 덜커덕.

“프랑스 전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 각하께오서 교황 성하를 뵙고자 하옵니다!”

경비병이 문을 열고, 그 사이로 젊은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훤칠한 키에, 곱상한 얼굴, 거기에 서민들이 입고 다니는 검은 정장까지.

젊은이는 뚜벅뚜벅 걸어 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성하. 기욤 드 툴롱이라고 합니다.”

“저야 말로 반갑습니다, 기욤 재상. 귀하의 방문을 주께서 환영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비오 6세는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회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털어간 희대의 갈리카니즘 신봉자 아닌가. 첫마디가 교황을 적대하는 말이 아닌 걸로도 나름 괜찮은 출발이었다.

“그래요, 기욤 재상. 탈레랑 페리고르 전 주교로부터의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저와 긴히 나누고픈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성하.”

“···좋습니다. 재상. 무슨 말이지요?”

비오 6세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 남자가 어디까지 요구할까. 교황령 아비뇽의 프랑스 반환?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그 로베스피에르처럼 프랑스 사제들의 공무원화? 아비뇽의 양도는 각오한 일이지만 후자만큼은 내줄 수 없다. 더 이상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면 가톨릭은 무너지고 마니.

젊은 재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비오 6세 또한 절로 단전에 힘이 들어갔다.

“교황 성하.”

“듣고 있습니다, 기욤 재상.”

“제가 카드 게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실례지만 다시 한 번 말해주겠소?”

“제가 카드 게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세례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교황의 눈동자는 초점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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