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 (3)
사업을 처음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경영학을 배운 사람들 열에 아홉은 시장조사라고 답할 것이다.
첫 번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과연 사람들이 이걸 돈 주고 사줄 것인가?
예를 들어서 내가 치킨을 만들어 시장에 내놨는데, 사람들이 사기는커녕 ‘아니 신호등치킨이라니 이딴 걸 누가 먹어요?’라며 얼굴을 찡그리면 안 될 거 아닌가.
두 번째. 시장에 현재 나와 있는 브랜드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의 제품은 무엇을 강점으로 가지고 어느 것을 포기했는가?
생각해보자. 내가 무슨 요리왕 비룡도 아니고 아무리 치킨을 잘 튀긴다 해도, 석박사 출신으로 가득 찬 대기업 치킨회사 연구팀만큼 치킨 시즈닝을 잘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세 번째. 제품을 판매 했을 때 최소 이익률인 11퍼센트가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면 추가적인 이윤을 어디서 창출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신호등 치킨이라는 괴식을 만들지도 않았고 대기업과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 마리당 3천원이라는 싼값에 치킨을 튀겨 팔기로 한 기욤 씨는 과연 가게 유지비와 세금을 다 털어내고도 돈을 가져갈 수 있을까? 내가 생가하기엔 아니올시다인데.
괜히 우리 집 근처 골목길에 있는 치킨집이 6개월마다 망하고 새 치킨집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막말로 내가 처음 빵 팔아서 돈 벌 때도 최소 이익률 11퍼센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단 말이다.
네 번째. 소비자에게 충분한 재구매 의사를 구할 수 있는가. 쉽게 말해서, 소비자들이 다시 내 제품을 찾게 해야 한다.
여기선 예시를 조금 바꿔보자. 치킨집에서 뭐··· 그래 전자레인지를 파는 전파상이라고 말이지.
치킨은 한 번 먹으면 끝나는 소모품이지만, 전자레인지는 한 번 사면 대강 망가질 때까지 거뜬히 쓰는 제품이다. 여기서 고려해봐야 할게, 전자레인지를 너무 튼튼하게 만들면 팔 때는 어드밴티지가 되지만 나중에는 디스 어드밴티지가 된다는 거다.
왜냐고? 안 망가지면 누구도 내 제품을 새로 안 사줄 테니까. 그래서 보통 제조사들은 아무리 손상 없이 잘 써도 10년 쯤 지나면 제품이 슬슬 맛탱이가 가게 설계한다.
그런데 잘못해서 1개월 만에 박살나면 제품평이 얼마나 개박살나겠나. 아파트 부녀회에서 입담 좀 늘어놓는다 싶은 아주머니가 ‘어머머 저 회사 제품은 너무 약하더라고요. 호호.’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 끝이나 마찬가지.
따라서 기업들은 그 중간 어드메를 잘 찾아서 부녀회장 아주머니가 ‘한 10년 썼으면 튼튼하게 잘 썼지.’라고 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흑흑, 사업이 이렇게나 어렵읍니다...
그렇게 모든 걸 종합해서 괜찮은 제품을 괜찮은 이익률로 만들었다고 치자.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1단계를 통과했습니다! 이제 이걸 누구한테 얼마에 팔지, 과연 사회가 이걸 용납할지에 대해 고민하세요!
시발. 그렇다. 이건 사실 마왕성 토벌이 아니라 초보자 마을에서 슬라임 잡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제품을 존나게 만들어서 시장에 뿌려도 사람들이 좋아할지 안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주 판매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안 좋게 보면 불편러들이 달라붙어 피켓 시위를 할 수도 있는 게 이 세상 아닌가.
이걸 경영학에서는 표적시장 선정 및 포지셔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어어어 중요한 건,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니까, 이 게임을 어떻게 팔아먹어야 잘 팔아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사장님, 그게 저희랑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저흰 그냥 기술자고 군ㅇ ···아니 경비원 아닙니까. 그쪽으로는 생각 하나 안 해본 사람들에게 거창한 조언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 그것 때문에 당신들을 이 꼭두새벽에 여기 부른 건데.
나는 별말 없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린 후, 커다란 도화지를 우리 직원들이 모여 앉아있는 탁자 위로 슥-하고 내밀었다.
“웬 겁니까?”
“자, 다들 펜 하나씩 나눠줄 테니 거기에 ‘보드게임’하면 생각나는 걸 다 적어보십쇼.”
“···예? 그게 대체 뭔...?”
뭐긴 뭐야. 브레인스토밍이지.
나는 뒷짐을 지고, 수십 명의 직원들이 앉은 앞을 거닐며 말했다.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걸 적어보십쇼. 단순히 재밌다, 재미없다-그런 류의 감정이어도 상관없고, 그걸 넘어서 ‘아, 나는 이런 류의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같이 고차원적인 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거면 모두 그 도화지에 적어주십쇼.”
“예에...”
“사, 사장님! 전 글을 모릅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글 아는 분과 모르는 분을 붙여놓은 거니 옆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뭐 어려운 걸 시킨 건 아니기에, 곧장 펜을 쥐고 뭐라뭐라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누구는 턱을 긁으면서 골똘히 생각하고, 누구는 대충 머리에 떠오르는 걸 써내려가는 듯 순식간에 도화지를 채우길 한참.
처음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때는 아침 7시를 가리키던 시계가 이제 10시를 가리키자, 빠릿빠릿했던 사람들의 손도 어느새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나는 두 손을 세게 마주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자, 참고로 가장 많은 걸 써내려간 분은 내일 하루 유급휴가를 드리겠습니다.”
마법과도 같은 말, 유급휴가.
방금 전까지 ‘아, 오늘 점심 뭐더라?’라고 풀린 눈으로 시계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깃들고,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이 제 뺨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잠을 깨웠다.
암. 돈 받으면서 쉬는 건 못 참지. 나도 그래.
***
“사장님, 점심 드시러 안 가시렵니까?”
“먹고는 싶은데 일이 많아서요.”
나는 수거한 종이 수십 장을 사무실 탁자에 올려놓으며 답했다.
“뭐어... 그러면 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깃거리라도 사무실에 가져올까요?”
“그래주시면 고맙죠.”
“헤헤, 제가 스튜에 살코기 넉넉하게 담아서 가져오겠습니다요!”
앞니 하나가 빠진 입으로 실실 웃으며 말하는 노동자에게,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 달칵.
문이 닫히고, 사무실에 혼자 남자 왠지 모를 적적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그래, 일하자 일. 일을 해야 요런 이상야릇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커피를 한 잔 내린 후, 자리에 앉아 첫 번째 도화지를 들추고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자 몇 가지 점이 눈에 띈다.
[룰이 간단하면 좋겠음.]
[술 먹으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면 좋겠음.]
이거 쓴 친구는 노동자가 분명하다. 이 18세기 말,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은 죄 내가 ‘이만큼 배웠소.’하고 꺼드럭대기 바쁘거든. 영국 귀족들 중에서는 기존에 있던 예법도 부심 부리겠다고 더 어렵게 바꾸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다음 장을 펼치니, 이번에는 다른 말이 나온다.
[단순하지 않고, 여러 경우의 수가 나오면 좋겠음.]
[머리 쓰는 맛이 있으면 좋겠음.]
먹물 좀 먹은 소리. 이쪽은 아마 기술팀 소속 엔지니어겠구만.
나는 잔을 들어 올려 커피를 목 뒤로 넘겼다. 카페인이 몸에 퍼질 때까지 대강 5분 이랬던가. 잠시 생각도 할 겸 의자에 깊숙이 허리를 기댔다.
역시 브레인스토밍을 맡겨보길 잘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인 사이에서도 이렇게 의견이 팍팍 갈리는데 독불장군처럼 나갔으면 큰일 날 확률이 더 높았겠지.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역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정답지를 미리 보고 온 것 뿐이지.
워렌 버핏처럼 경제와 기업의 흐름을 예측할 수도 없고, 헨리 포드처럼 황무지에 자동차의 도시를 만들어낼 만큼의 능력도 없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할 수도 없고, 이건희 회장처럼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지.
그래도, 한 가지.
주변의 소리를 경청하는 건 자신 있었다.
- 똑똑!
“사장님, 스튜 가져왔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예의 그 앞니 빠진 노동자가 내게 찬합을 내밀고 있었다.
***
이 프랑스는 뭐랄까. 굉장히 이상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정확히는 동네 성당에서 말해주는 도덕관인데.
일단 수요일과 금요일에 고기를 먹으면 개새끼고.
생각해봤는데, 전 요새 잘못한 게 없는데요?- 라면서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해야 하는 고해성사를 안 보면 개새끼고.
내가 번 돈의 10분의 1을 성당에 내지 않으면 개새끼고.
그 외에 7대 죄악이라고 해서, 남에게 교만하거나, 음란하거나, 인색하거나, 남을 질투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나태하면 개새끼다.
뭐어... 다른 건 그렇다 쳐도 7대 죄악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그렇다고 하자.
파리 뒷골목을 가면 매춘부가 보이고, 왕이 왕비 말고 정부를 안두니까 사람들이 ‘님 고자임? 어떻게 한 여자만 바라볼 수가 있음?’이라고 까고, 왕이 전쟁 나가서 왕비 말고 매춘부랑 뒹굴다 성병에 걸리니까 ‘오오 우리 왕은 정력왕이구나! 개쩐다!’라고 기뻐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솔직히, 내 시선으로 봤을 때는 뭐 이런 모순적인 도덕관이 어디있나 싶지만 현실이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그냥 남들이 헌금봉투 낼 때, 스리슬쩍 몰래 빈 봉투만 넣을 뿐이지.
여하튼 각설하고, 이런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 중 8할은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믿고 있었다.
“신부님, 도와주세요!”
“오, 아멘. 무슨 일이십니까, 어린 양이여.”
“신부님, 어서 저 간악한 음란한 사탄의 무리를 무찔러 주세요!”
“아, 그건 좀.”
하지만 첩에 애까지 딸린 신부님들은 그런 말은 외면하고, 그 대신 애꿎은 오락에 대고 지랄하는 걸로 자신들의 위신을 지키기 바빴다.
“카드놀이는 사탄의 놀이! 카드를 멀리하십시오! 도박을 멀리하십시오! 대신 헌금을 하십시오!”
“너··· 그런 거 하니?”
“으아악, 아니야!”
참으로 병신 같은 일이지만 사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초등학생 때 집에서는 애니메이션, 학교에서는 듀-얼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GOP에서는 할 게 없으니 소초원들과 개인정비시간에 주사위 굴리며 보드게임에 2년을 꼴아 박은 나로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임을 만들어 보는 거야 쉬웠다.
그러나 그 사람들, 특히나 가톨릭을 믿는 절대 다수의 프랑스인들이 내가 만든 게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즐기게 하려면 교회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저 틀니딱딱 가톨릭 탈레반들의 입에서 ‘저건 사탄의 놀음이다.’라는 말이 안 튀어나오게 하는 건 무척이나마 어려운 일이었다.
그 뭐냐, 내가 교회 재산 30억 리브르를 싸그리 압류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긴 한데...
결국 가톨릭 탈레반들이 성경을 치켜들고 데우스 볼트!-를 외치지 않게 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 뿐이었다.
제 2의 커피. 그거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