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7화 돈, 돈, 돈 (1) (217/341)

돈, 돈, 돈 (1)

기관차의 시운전은 성공했다. 아, 정정하자. 대성공이다.

내가 대충 91년 즈음부터 밀어붙였으니 햇수로만 6년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 아닌가.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성공할만하지.

10톤에 다다르는 이 강철마는, 드디어 답답한 파리의 100평 짜리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을 노닐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는지 힘차게 증기터빈과 실린더를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 커다랗게 이삭의 민족이라는 간판을 단 미네소타 제철소는, 매일 아침마다 따끈따끈한 철강을 뽑아내기 시작했고, 철강은 나오는 대로 철도레일로 변신해 착착 노선을 늘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 사장님 오셨습니까.”

“르봉 씨,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이제 일반 연구원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승진시킨 르봉 씨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

일전에 파리 중앙조병창에서 숙련공들이 말하길, 강철은 최고급 스칸디나비아 산 철광석을 제련해야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내게 현대적인 고로가 있는 이상, 남한테 웃돈 주고 원자재 때오기는 싫거든.

그 말마따나, 고로가 있다 해도 이제 막 뛰기 시작하는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 미네소타 산 철광석을 갈아 넣어 철강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술의 부재 때문인지 철광석 품질에 꽤 영향을 받긴 하는 것 같다.

결국 해답은 하나다. R&D를 빡세게 굴릴 수밖에.

내가 만약에 평범한 철광석으로 강철을 쭉쭉 뽑아내기 시작하면 내게 빅-엿을 먹여준 스웨덴 왕인지 뭔지 하는 그 새끼 눈에서 피눈물을 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르봉 씨는 갖가지 수식과 표로 점철된 종이뭉치를 집어 들고 내게 말했다.

“계속해서 산소배합비율을 조절하며 실험한 결과, 이제는 굳이 상등품 철광석이 아니더라도 강철을 생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강철이라고 해도 질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요.”

“충분합니다. 계속 수고해주십시오.”

“예, 사장님!”

원래 첫발자국을 내딛는 시장선도자는 대가리가 깨져가면서 배우는 법이다. 그런데 대가리 대신 쇳덩어리 몇 개 깨지는 거면 얼마나 수지타산이 좋은가.

앞으로 3년. 딱 3년만 있으면 군데군데 파먹긴 했지만 미네소타에서 루이지애나까지 철도 구간이 완성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년 간 멍 때리면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음 연락선은 언제 띄운답니까?”

“오늘 오전 7시라고 합니다.”

“후, 1시간 뒤군요. 알겠습니다. 일 보세요.”

이 아메리카가 더럽게 넓은 탓에, 루이지애나-미네소타를 연결하는 우편은 이주일에 한 번 씩 배를 타고 수거, 전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택에 미네소타에서 보낸 편지가 파리까지 전달되기 까지는 약 세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내가 보내니까 그렇지, 보통 사람들이었으면 편지 한 통이 가는데 6개월 즈음은 걸렸을 거다.

쯧, 전화라도 있었으면, 아니 전보라도 있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아쉽구만.

자연스럽게 미네소타에서 내가 내리는 지시는 지금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내릴 수밖에 없었고, 지금 내가 편지지에 써내려가는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알자스-로렌 지역 철광산 매입을 타진 할 것.

올해 2분기 예상보고서는 잘 보았으니, 내년 1분기부터 4분기 예상 회계보고서를 보내 줄 것.]

첫 번째는 알자스-로렌 철광산 매입.

농사하긴 좋지만 공장 세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프랑스 아닌가. 그런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석탄과 철광석 매장지가 있는 알자스-로렌에 어서 알을 박지 않으면 누가 홀라당 먹어버릴지 모른다.

아무리 아메리카가 신천지고 자원의 보고라고 한들,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까지 온다면 운임이 장난 아닐 거다. 그렇다면 프랑스 본토에도 어느 정도 기반시설과 산업시설을 확충해야 쌤쌤이 되겠지. 원자재가 들어오는 구멍은 많으면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좋다.

두 번째는 회계보고서.

파리에 있는 우리 회계팀을 못 믿는 건 아니다. 다만 사업이 비대해지고, 해외 법인이 하나 둘 생기다 보니 아직 이 18세기의 회계사들로서는 한계가 있을 거다. 그렇게 한계가 오면 ‘아 이거 좀 날림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대충 뭉겔까?’하는 심정이 우후죽숙 생기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아니라고? 당장 2022년에도 몇 번 씩 회계부정이 터졌는데 뭐가 아니야.

기업이 무너지는 건 댐과 같다. 댐이 조그마한 구멍 하나가 뚫리는 것부터 시작해 무너지는 것처럼, 기업도 조그마한 실수나 부정 하나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누가 뭘 숨겼다는 가정 하에 말하는 거지만, 아직 월스트리트도 없고 하버드 예일 MBA출신들이 고안해내는 21세기 금융공학은 생각지도 못하는 이 시대에, 내가 대강 눈대중으로 훑어보면 구리구리한 냄새를 못 맡을 수가 없다.

나는 밀랍을 녹여 도장에 바른 후, 편지지에 대고 도장을 눌러 봉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어느 새인가 우정선(郵政船)이 도착해 편지를 내리고 있었다.

“고생이 많습니다.”

“아니, 사장님 아니십니까.”

“이거 파리 그르넬흐 거리로 보내주십시오.”

“항상 그랬듯 급행이신가요?”

“물론이죠. 대금은 파리 이삭의 민족에 제 이름으로 청구하십시오.”

“예이. 알겠습니다요.”

우정선 선장은 내 편지를 받아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사장님 앞으로 배달된 우편이 상당하지 뭡니까?”

“우편이요? 보낼 사람이 딱히 없는데.”

“잠시만 기다리십쇼.”

선장은 화물칸으로 들어가더니 안에서 웬 보따리를 가져와 내 앞으로 턱-하고 내밀었다.

대강 어림잡아도 수십 통은 될 거 같은데.

“이게 다 웬 겁니까?”

“뭐, 여러 군데에서 온 거지요. 파리, 툴롱, 마르세유, 아 참. 인도 캘커타도 있더군요.”

“······캘커타?”

웬 캘커타? 내가 인도에 뭐 아는 사람이 있던가?

“편지 감사합니다. 이건 팁이니 누벨 오를레앙에서 한 잔 걸치십시오.”

“아유 뭘 이런 걸 다! 헤헤헤! 사장님, 언제든지 편히 이용해주십쇼!!”

뱃사람 특유의 싹싹한 미소를 짓는 선장을 뒤로하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탁자에 편지보따리를 풀었다.

“어디보자...”

대강 몇 장을 뜯어 봉인을 풀고 읽어 내려가니 다 비슷비슷한 내용이다. 사교계에서 안부와 신년인사를 묻는 편지들. 지금이 3월이니 대강 이걸 보낼 때는 1월 초 였겠구만. 이해가 간다.

아니면 ‘우리 아들이 참 똑똑한데 일자리가 없어요.’라며 청탁이나 투자 자금을 부탁하는 편지.

이 대로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대충 편지를 분류하니 양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신년인사 말고 다른 쪽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발송지를 읽으니, 캘커타다. 아, 이게 아까 말한 그 편지겠구만.

- 톡.

[삼가 강녕하십니까, 각하.

각하의 안배와 배려 덕택에 소관은 지금 더할 나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가 누구한테 안배나 배려를 해준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누구지?

[아! 저는 요새도 이따금씩 각하와 함께했던 지중해 바다를 가르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공훈과 전투, 소관 호레이쇼 넬슨은 각하 덕에···]

음, 이건 스팸메일이군.

아니, 그런데 님 왜 인도임?

눈을 빠르게 내려 편지 끝을 보자, <대영제국 인도방면 함대사령관 호레이쇼 넬슨>이라는 칭호가 눈에 띤다.

아. 이거 혹시... 나 때문인가?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내가 분명 피트한테 ‘얘 능력은 있는데, 입을 너무 턴다? 가까이 하면 안 될 듯?’이라고 보낸 것 같다.

와아. 윌리엄 피트 이 인간. 그래서 인도 벽지로 보내버렸구만? 실력은 있어야하는데 중앙에서는 먼 곳으로? 무서운 사람이야 하여간.

스팸메일을 고이 옆으로 치우고, 다음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오우 쒯.

기욤의 경제학개론 수업을 수강하신 로베스피에르 척척학사님께서 대체 무슨 용무로 편지를 보내셨을까. 혹시 재수강을 신청하신다거나 교수 목을 따겠다는 무서운 소리는 아니겠지.

다행히도 로베스피에르가 보내온 서신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기욤 드 툴롱 총감에게, 이번 국민의회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의원의 반이 이번에 바뀌겠지요. 덩달아 행정부 장관들도 이번에 새로 선거할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재선거 때가 되긴 했지?

본래 지금의 의회는 이렇게 임기를 오래 끌 생각이 아니었다.

제헌의회로 헌법을 만들고, 입법의회로 그 위에 기둥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국민의회를 만들어 2년 임기의 의원을 선출하고 의원 선거는 한 번에 반 씩, 최종적으로는 매년 유기적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하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 또 전쟁, 그리고 또오오 전쟁이 일어나며 제헌의회의 임기가 연장되어 입법의회가 되더니 더 임기가 연장되어 국민의회까지 제헌의회 의원들이 연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정국이 안정되니 본래처럼 선거로 물갈이를 해보겠다는 거구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걸 왜 국외에 있는 나한테?

[덩달아 이번에 재무총감도 임기가 다 됐으니 새로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시에예스 당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에예스 당수도 기욤 총감의 재무총감직 복귀를 원하고 계십니다.]

아하, 이 인간들 또 내 목에 목줄 채울 생각이었구만?

[콩도르세 총감은 고령을 이유로 당분간 정치 활동이 힘들 거라고···(중략) 팔팔한 기욤 총감이라면 능히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더 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편지를 슥-하고 스팸메일이 있는 탁자 저편으로 치웠다.

로베스피에르 이 인간아.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커피를 토했는데 내가 제 발로 기어들어가? 응 선거 같은 거 안 나가면 그만이야.

프랑스로 가기엔 아직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

1796년 10월.

베르사유.

“우리 제헌의회에서부터 의원직을 맡은 현 국민의회 의원 일동은, 헌법에 적힌 민주주의 수호와 자유, 평등, 박애를 지키기 위하여, 후세에 길이 독재를 경고하는 좋은 예로 남고자 이번 국민의원 선거에 나가지 않을 것을 천명합니다.”

- 땅! 땅! 땅!

“와아아!! 혁명 만세! 헌법 만세! 국민의회 만세!”

- 짝짝짝짝!

의결을 의미하는 의장봉이 세 번 나무판을 치자, 당수인 시에예스, 로베스피에르 두 사람을 시작으로 모든 국민의원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2년 동안 현 의원들은 이 의사당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혁명인사들의 고인물 화, 썩은물 화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모든 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제 자리를 뒷사람에게 양보하고자 했다.

그렇게 두 달 후, 1796년 12월.

“와아아아!!”

“감사합니다! 낭트의 시민 여러분, 이 조제프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낭트에서 과반의 득표를 업고 국민의원에 당선된 조제프 푸셰는 당당히 베르사유로 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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