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1)
“후욱, 후욱.”
찬기를 막기 위하여 콧잔등부터 입을 덮은 천은, 들이쉰 숨을 다시 토해낼 때마다 축축하게 젖어갔다.
춥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축축해진 천에는 순식간에 살얼음이 얼었지만, 살얼음은 다시 입 밖으로 토해내는 훈김으로 녹아내리기를 반복했다.
- 히히힝!
“음?”
한참동안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데 집중하던 남자는, 누군가 말고삐를 잡아 당겨 말이 울음소리를 내는 걸 듣곤, 자신 또한 말고삐를 쥔 손을 당겨 자신의 애마를 멈춰 세웠다.
“워, 워. 이보게, 무슨 일인가!”
길잡이를 맡은 선두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자, 머리에 흰 깃털을 꽂은 길잡이는 손을 올려 저 멀리 지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는 캐나다. 영국인들 사는 곳.”
“그 말은 여기가 우리 누벨 프랑스의 끝이란 말인가?”
통역을 맡은 샤르보노가 황급히 남자의 말을 원주민들의 말로 번역해주자, 길잡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렇단 말이지!”
장장 4개월을 넘는 시간동안 달리고 달려 맞이한 누벨 프랑스의 끝,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 앞에 멈춰선 탐사대장 조아킴 뮈라는 등자에서 발을 떼고 말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 말은 나, 뮈라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첫 번째 프랑스인이라는 거고.”
뮈라는 애마의 등에 묶어놓은 짐을 풀어 그 속에 들어있는 삼색기를 꺼냈다.
“병사, 이걸 이곳에서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묶도록.”
“예, 소령님!”
수십 명의 탐사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리에서 가져온 삼색기가 나무 위에서 펄럭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북위 51도. 후일 프랑스령 미네소타 주라 불릴 곳이었다.
***
1794년 11월 초.
“우리 미국으로서는 건국 후 처음으로 국빈을 모시는 거라 많이 부족했을 텐데, 모쪼록 별 말 없이 이해해주어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워싱턴 각하. 무척 과분한 호의였습니다. 나중에 은퇴하시면 파리로 여행이라도 오시지요. 제가 직접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부두에 정박한 우리 프랑스 국적의 프리깃에 올랐다.
“기욤 각하, 안녕히 가세요!”
“우리 미국인들은 각하와 프랑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밟은 지도 어언 반년, 미국에 온지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가운데, 나는 드디어 필라델피아에서 떠날 수 있었다.
다음에 모종의 일로 온다 치면 워싱턴 D.C.가 수도가 되어있을 테니 필라델피아하고는 완전히 굿바이네.
미국일도 완전히 끝이겠다, 이제는 정말 개발딸 칠 일 뿐이다. 뭐하나 삐끗하면 어마무시한 일이 일어나는 외교가 아니라 사업이라니. 이 얼마나 신경의학적으로 좋은 일인가.
“총감님.”
아니. 이게 누구야. 제 할 일을 나한테 짬 때린 탈모씨 아니야. 루이지애나에서 머나먼 여기 필라델피아까지는 웬 일이셔.
“혹시 절 마중 나오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좀 감동일지도?
“지금 그런 말장난 할 때가 아닙니다. 이거··· 이것 좀 보십시오!”
쯧. 그러면 그렇지.
나는 한숨과 함께 탈레랑이 건넨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종이뭉치는 보고서였다. 수많은 숫자와 함께 간략한 지도가 첨부된 보고서 말이다.
만약 그 숫자들 앞에 있는 몇몇 단어, 그러니까 석탄이라던지 철광석이라던지 하는 단어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디 회사 회계보고서처럼 생겨먹은 보고서였다.
“대략 추정한 석탄 매장량이 약··· 잠깐만. 내가 숫자를 잘못 읽은 건가?”
나는 눈을 몇 차례 꿈뻑꿈뻑이고 손으로도 몇 차례 비빈 후에 다시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3천만 톤?”
뭐야, 이거. 무서워. 왜 단위가 천만이냐고. 백만이 아니라.
“석탄 뿐 만이 아닙니다! 그 밑까지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영국령 캐나다와의 접경지대에서 철광석 광맥을 찾아냈으며, 아직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음. 그러나 단순히 눈으로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매장량은 천만 톤을 가볍게 넘는 것으로 추정됨.”
“대박입니다, 대박! 심지어 질산칼륨 광산까지도 아칸소에서 발견됐단 말입니다!”
거, 아저씨 내가 말했잖아. 이건 무조건 떡상한다니까?
평소 그렇게 무뚝뚝했던 얼굴은 어디가고, 탈레랑의 얼굴은 눈에 띄게 상기된 상태였다.
“총감님! 지금 딴 생각할 시간이 있으십니까?! 이건 우리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란 말입니다!”
이야, 이렇게 흥분된 채로 일주일간 배타고 필라델피아까지 왔다는 거지? 이 인간 이러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안 그래도 배가 통통하게 나온 사람이라 보통 사람하고는 다르단 말이지.
“헤이 헤이 무슈 플리즈 컴 다운.”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당장 본국에서 사람을 백만, 아니 이백만은 데려다가 이 아메리카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탈레랑은 이제 거의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두 팔을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음.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분명히 ‘흥, 탈레랑은 아메리카 같은 거 필요 없어. 탈레랑은 그런 촌구석보다 멋진 유럽이 좋아.’라고 말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홰까닥 바뀌니까 좀 신기하긴 하네.
나는 눈 앞에서 시뻘갱이가 된 탈레랑의 말은 대강 귀로 흘러 넘기면서 턱을 쓸어내렸다. 어차피 사람 뽑아다가 루이지애나에 심어 넣자는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데 더 들을 가치는 없지. 차라리 더 생산적으로 머리를 굴려보는 게 나을 거다.
어디보자. 석탄 3천만 톤에 철광석 1천만 톤이라니. 슥 눈대중으로 훑어보기만 했는데 말이 그렇게 나온다면 실제로 파다보면 더 나온다는 거 아닌가? 이 무슨 홀리몰리 과카몰리 로보카 폴리인지...
나는 고개를 슥 돌려 내가 탄 배의 선장에게 지도를 부탁했고, 우리 착한 선장님께서는 자기가 호다닥 아메리카 지도를 내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선장이 준 1780년대에 제작된 지도, 그리고 내가 보낸 탐사대가 그려온 지도를 더하니 대강 어디가 어디고 이즈음에는 뭐가 있을지 추측이 된다.
영국령 캐나다와의 접경지대, 이거 그러니까 오대호 말하는 거지. 디트로이트하고 포드 사가 태동한 그 오대호. 내가 아무리 빡대가리지만 포드처럼 전설적인 기업은 안다.
철광석이 오대호 근처에 매장되어 있다고 하니, 대강 루이지애나의 누벨 오를레앙까지 직선거리로 1850km다. 으음. 서울에서 부산이 대충 400km아니었나?
좆 됐군.
“아니 뭐 시발 세상 일 중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냐?”
와! 1850km를 걸어서 배에 실은 다음에 프랑스까지 간다면 운임만 대다가 파산하겠는 걸? 캬아 미쳤따리 미쳤따.
석탄 3천만 톤에 철광석 1천만 톤에서 황홀해졌던 기분이 순식간에 비참해졌다. 나 이러다간 조울증이 오지 않을까. 빠른 시일 내에 파리 앵발리드 병원에 정신과를 개설하라고 뽀찌를 좀 넣어줘야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부여잡고 지도 곳곳을 다시 훑고 나니, 그나마 괜찮은 방법 몇 개가 튀어나오긴 한다.
육로는 제외. 당장 내가 만든 기관차를 실을 철도조차 개발하지 못했는데 육상으로 어떻게 그 무거운 철광석을 옮겨? 마차에 실었다가는 말들이 아마 다 과로로 죽어버릴 걸.
그렇다면 수로.
일단 루이지애나부터 저어어기 오대호지역까지 강이 연결되어 있다. 뭐, 이게 20년 전 지도니 강이 메워졌을지, 아니면 뚫려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있긴 하다.
오대호에서 채굴한 철을 배에 실어 누벨 오를레앙까지, 또 누벨 오를레앙에서 원양항해가 가능한 배를 통해 파 드 칼레까지.
아니면 아예 오대호에 제철소를 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제철소가 필요한 막대한 양의 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철광석을 그냥 보내는 것보단 가공이 끝난 가공품을 보내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겠지.
화물선에 똑같이 300톤을 실을 수 있을 때, 가공되지 않은 철광석 300톤보다 정제된 철괴 300톤을 보내는 게 더 나으니까.
나는 가만히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머리를 쓰려면 니코틴이 필요해.
오대호에 제철소를 세우고 철도가 완공되기 전까지 수운을 쓴다. 말은 쉽다 말은.
가장 껄끄러운 건 그 수운 중 일부가··· 미국을 지난다는 거지.
뭐 어쩌랴. 또 한 번 입을 털어봐야지.
“선장님. 필라델피아로 배 좀 돌립시다.”
“예? 아, 예!”
***
“아니, 프랑스로 돌아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일이 그렇게 됐네요.”
나는 제퍼슨 씨가 직접 달여 준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일리노이 주를 지나는 강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지날 수 있는 통행권을 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퍼슨 장관님.”
“으음.”
제퍼슨 씨는 짧게 신음소리를 내더니 우리가 마주보고 앉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혹여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시려는 겝니까?”
“군사적인 목적이라니요?”
그건 생각지도 못한 건데.
“오대호는 영국령 캐나다와의 접경지대지요. 영국인들이 요새를 세운 것처럼, 프랑스도 요새를 세우고 무력을 행사하려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 제가 그런 돈도 안 되는 짓을 왜 합니까?”
나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전 앞으로 오대호 일대를 개발할 마음이지, 괜스레 총이나 대포 쏴 갈기려고 그런 짓 하는 게 아닙니다.”
“군사적 목적은 아니시라는 말씀이군요.”
“경제적인 목적이죠. 정 마음에 걸리시면 아예 군인들은 수운을 이용할 수 없다는 각서라도 쓰겠습니다.”
“음.”
제퍼슨 씨는 턱을 쓸어내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 미국도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만.”
“뭐지요?”
“본래 스페인은 미국인들이 미시시피 강의 하류에서 통상을 하는 것에 관해 너그럽게 양보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루이지애나의 주인이 프랑스가 되었으니, 우리 미국인들 중에선 혹여라도 프랑스가 미시시피 하류를 하루아침에 통제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벨 오를레앙 항구 좀 같이 쓰자 이거구만?
뭐 항구가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북적이면 좋지.
“그러니 서로 수운에 관해서는 양국 국민들이 군사적 목적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야 찬성입니다. 장관님.”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탈레랑 차관님.”
“예, 총감님.”
“여기 이 양국의 군인들은 수운을 쓸 수 없다는 조항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회사에 소속된 사설경비대는 수운을 쓸 수 있나요?”
“외교적으로 문제되는 건 없지요.”
“크헤헤헤. 그렇죠?”
그로부터 얼마 후, 파리에 있는 이삭의 민족 보안경비대는 우디노 부장 아래에 있던 척탄병 출신 예비역들을 더 고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