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3)
“이건 우리 대사관에서 기자 분들게 드리는 보도지침입니다.”
“보도...지침이요?”
“불어에서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을 조금 더 ‘쉽게’해드리기 위해 몇 가지 단어를 손수 번역했습니다.”
“그렇, 군요.”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기자들의 손에 손수 종이를 하나씩 끼워주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런 종이쪼가리에 신경을 쓸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탈레랑이라는 프랑스 외교관의 폭탄 선언과 보도지침이라는 종이를 나누어준 이후로 1분. 1분 후, 주미 프랑스 대사관 앞은 가히 전쟁통이 되고 말았다.
- 전직 재무총감이 미국에 온다.
평소와 달리 이른 새벽에 일어난 탓에 하품을 하던 기자들은 제 뺨을 강제로 때려 잠을 깨운 뒤, 취재용 수첩에 서둘러 펜을 휘둘렀고.
몇몇은 내용을 아예 까먹지 않겠다는 듯 입으로 줄줄 외며, 대로에 나가 마차들을 잡기 시작했다. 사람도 잘 안 다니는 새벽 4시부터 운행하는 마차가 별로 없었기에, 그들은 소수를 빼놓고는 운 좋게 마차를 잡아타고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니, 이젠 정말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인(人)의 파도를 타고 거리로 쏟아진 수십 명은 각자 지갑을 허공에 높이 들고 마차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부! 마부!! 빨리 여기 손님 받으쇼!!”
“아니! 내가 따블로 줄 테니까 저 인간 대신 날 태워!”
“마부 양반! 지금 따블로 되겠어? 난 따따블 주지! ···좋아, 어서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신문사로 갑시다!”
어마어마한 특종.
오늘은 굳이 신문팔이 소년들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찍어내서 가판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팔릴 텐데 뭘.
그러니 이젠 시간 싸움이다. 누가 더 빨리 이 활활 타오르는 폭탄을 ‘기사’라는 대포에 넣어 ‘민중’이라는 불구덩이에 쏘느냐에 따라 ‘독자’라는 파이를 갈라먹을 비율이 정해지겠지.
“게다가 혹시 몰라? 앞으로 우리 독자들께서 보고 싶은 신문이 바뀌실지?”
“손님, 도착했습니다.”
“여기. 잔돈은 안 줘도 되오. 거슬러 받을 시간도 없으니, 그냥 마부 양반이 가지쇼.”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기자는 서둘러 마차에서 뛰어내린 후, 신문사 건물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오십 대 부장님은 자신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시간이 촉박한 걸 깨닫고는 말단 경리까지 불러 모아 인쇄기 손잡이를 잡게 만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 왜?”
“이··· 재무총감이라는 직책,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을 하죠? 일반인들은 프랑스어를 못 읽잖습니까.”
“으음. 영국은 재무총감을 뭐라고 쓰지?”
“거긴 재무총감이라는 직책이 없는데요. 재무장관은(Chancellor of the Exchequer) 있지만.”
“통역에 관한 보도지침이라고 대사관에서 준 게 있는데, 그걸 한 번 보는 건 어떻습니까?”
“어디보자. ···Contrôleur général des finances-를 President of executive-로 번역하라고 하네.”
“뭐, 재무총감도 어떻게 보면 행정부 수반이고, 딱히 어감이 이상하지도 않은데 그대로 쓰죠?”
“오케이. 이대로 바로 찍어내자고.”
그렇게 1794년 8월 중순, 미국 전역에는 ‘프랑스의 전(前) 프레지던트’가 미국에 방문하기로 했다는 신문기사가 깔리게 되었다.
***
옛날 옛적에 작은 기욤이 살았어요. 작은 기욤은 여유롭고 인간적인 삶과 휴식을 매우 사랑했답니다. 기욤은 선글라스를 끼고 루이지애나의 따스한 해변에 누워 웃고 떠들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쌍검 바리안 같은 한 외교관이 나타나 기욤의 작은 휴식시간을 뺏어가 버렸어요! 기욤은 너무 슬펐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답니다.
다음 날, 작은 기욤은 바다를 넘고, 강을 넘어서, 대사관에 올라, 그 외교관의 배때지에 칼빵을 놓으려했어요.
-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 각하, 참으십쇼!
- 제발 한 번만 찌르게 해줘!
- 죄송합니다, 총감님. 하지만 분란을 일으킨 사람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법. 이 탈레랑은 겸허히 책임을 지고, 당분간 루이지애나로 돌아가···.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 아니. 말을 안 해도 밉겠구나.
“시발. 인생 참 좆같네.”
절로 육두문자와 장탄식이 입 밖으로 나온다. 뭐랄까, 페어플레이 정신과 공직자 윤리를 땅에 처박은 나쁜 놈한테 인페스티드 테란으로 관광을 당하는 느낌이랄까.
아니다. 정작 폭탄을 터트린 자기는 자폭도 안하고 나만 폭사시켰으니 인페스티드 테란은 아니구나. 그러면··· 그래, 약삭빠르니 사미르 듀란이라고 하자. 탈레랑, 이 듀란 같은 놈.
“총감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떡하긴요. 그··· 연방당인지 뭔지 하는 새끼들이 은혜도 모르고 날뛴다면서요.”
나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주미 프랑스 대사, 주네에게 말했다.
“어딜 시발 좆같은 놈들이 우리 병사들이 흘린 피 웅덩이 위에서 그런 말을 지껄여?”
“···계획이 있으십니까?”
“계획이랄 거 있나요. 듀란, 아니. 탈레랑이 이미 판은 다 깔아놓고 간 거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며칠 전 나온 신문 1면을 톡톡 건드렸다.
“<전 프레지던트, 기욤! 미합중국 전격 방문! 조지와 기욤, 두 프레지던트의 만남이 성사되나?>, 대관절 제 직책이 언제부터 프-레지던트였답니까? 프으으레지던트?”
머리 슉슉 돌아가기로는 내 뺨치는 탈레랑 이 인간이 그냥 아무생각 없이 기자라는 하이에나들에게 이걸 던져준 게 아니다.
“뭐어어, 그 덕분에 연방당 그 놈들의 입이 닫히지 않았습니까. 하, 하, 하하...”
주네 대사의 말대로, 연방당은 프레지던트 기-욤이 방문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처음에 ‘국가차원의 사과’니 뭐니 운운했는데, 정말 전직 국가수반이 찾아오니 자기들 말이 받아들여진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서 더 프랑스를 헐뜯으면 연방당은 당연히 일반인들 입장에선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도 떼쓰는 애새끼들처럼 보일 거다.
거기에다가 민주공화당은, 그래. 제퍼슨 씨가 이끄는 그 민주공화당은 이제 비를 쫄딱 맞던 측은한 강아지에서 ‘거 봐라, 프랑스는 이렇게 전직 프레지던트까지 파견할 정도로 우리 미국을 존중해주지 않느냐. 느그들이 그렇게 물고 빠는 영국이랑 엄청 다르다, 그치?’-라는 태도로 돌변해 연방당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겨우 내가 이 필라델피아에 발을 디뎠다는 걸로 이렇게 여론이 반전될 수 있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식민지에서 전쟁 끝에 독립한 나라가 겨우 10년 만에 자기들의 옛 주인을 상대로 알랑방귀를 뀌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축구나 야구에서 한일전만 나오면 이를 북북 갈던 한국인의 기억이 생생한 나로서는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시프요.
아무튼 우리 똑똑한 사미르 탈레랑이 괜히 꼬장꼬장하게 난리를 피운 게 아니란 말이지.
탈레랑의 꼬장 한 번으로 우리 프랑스는 같이 피를 흘린 ‘혈맹’주제에 자꾸 적국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미국이 언짢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범한 결례에 기꺼이 사과를 하는 대인배가 되었고.
탈레랑 자신은 프랑스인의 희생을 무시한 동맹국의 처사에 눈물을 흘린,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의인이.
나는 전직 행정부 수반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친히 직접 나서서 미국에 방문한 첫 번째 외국 정상이 되었다.
이게 미국인들에게는 좀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은데, 식민지 시절에 벤자민 프랭클린이 직접 대륙회의를 이끌고 자치권의 확대를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국왕과 수상이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매몰차게 내쳤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미국인들은 그때 일이 나름 속에 쌓인 듯 싶었다.
물론 내 방문 때문에 민주공화당을 공격하기 좋은 몽둥이가 사라진 연방당 입장에서 군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듣기로는 민주공화당의 누가 연방당에게 ‘죽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묘에 가서 그렇게 말해보시지!’라고 일갈했다더라.
누군진 모르겠지만 거 말 참 잘하시네. 민주공화당에 플러스 10점 드리겠어요.
여하튼 그런 연방당은 타국 외교관의 조롱에 맞서 미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려 한 자들에서, 대인배 뒤통수를 후드려 까려 한 나쁜 놈들이지만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이 되었으며.
민주공화당은 비록 친불주의자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프랑스인들과 접촉하지 않는 애국자 집단이 되었다.
탈레랑의 쥐불놀이 한 번에 뒤집힌 이 상황 실화냐? 가슴이 절로 웅장해진다... 당신 같은 사람을 외무부장관으로 짱박아 놓고 죽을 때까지 풀어주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는 걸? 암 그래야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
“총감님, 아직 답을 안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제 어쩌시렵니까?”
“···저보고 미국인들이 프레지던트라면서요?”
“그렇, 지요?”
“그러면 프레지던트가 돼줘야죠.”
“예?”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우리 프랑스 군들이 묻힌 묘가 어디 있습니까?”
가불기 걸린 사람 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건 없지.
***
미합중국, 버지니아.
21세기, 대한민국은 나름 잘나가는 나라였다. 이 지구에 나라만 수백 개인데 그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면 잘나간다는 취급을 받을만하지 않은가.
아무튼 세상에서 열 번째로 잘나가는 나라인 대한민국은, 그 위상에 걸맞게 1년에도 외국에서 국빈들이 찾아왔었고, 대부분의 의전 코스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UN군들의 위령비를 다 함께 방문하는 게 끼어 있었다.
물론 외교관도 아닌 일반인인 내가 높으신 분들의 심모원려까지 헤아리지는 못하더라도, 다 함께 전쟁터에서 등을 맞대고 피를 흘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최전방 소초에서 집에도 못 가고 2년 동안 고생만 하다보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동기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해지지 않았는가. 하물며 전쟁터에서 서로 뒤통수가 안 맞게 봐주던 사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지.
“함께하는 첫 공식 일정이 안식에 든 참전용사들 방문이라니. 한 때 그들과 같은 전장에 서있던 군인으로서 마음이 심란하군요. ···모두가 함께 싸웠는데 보잘 것 없는 노인인 나는 살아있고, 젊은 청년들은 저기 묻혀있으니 가슴이 아립니다.”
“···다들 이 미합중국이 이렇게 번듯한 나라로 성장한 걸 보면 그 분들도 편히 눈을 감을 겁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프레지던트 기욤. 아메리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프레지던트 워싱턴.”
190센티가 넘는 거한, 미국의 국부이자 지금 컬럼비아에 지어지고 있는 미래의 수도에 이름이 붙는 영광을 누릴 위인과 머나먼 대서양을 건너 동맹국 수장으로 만나게 된 나는 서로 두 손을 마주잡고 나란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