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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화 이웃집 (2) (209/341)

이웃집 (2)

“차, 차관님!! 금괴라니요! 나랏일을 의논 하는 자리에서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하는 연방당 의원과 달리, 탈레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평하게 말했다.

“농이라니? 나는 지금 진담이오.”

“······그게 무슨.”

“우리 대프랑스의 외교관이 필라델피아라는 시골 촌동네까지 친히 행차했으면, 응당 그에 걸 맞는 대접이 필요한 거 아니겠소?”

“뭐야? 촌동네!! 이보세요! 탈레랑 차관!! 지금 우리 미합중국을 모욕하는 겁니까!”

“촌구석을 보고 촌구석이라고 했을 뿐인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군. 아, 혹시 견문이 좁아서 그러시는 건가? 이런, 내가 실수했군. 사과의 의미로 여러분의 견문을 넓혀주겠소. 내가 친히 유럽의 보석이나 다름없는 파리에 초대해드릴 테니 노여움을 푸시구려.”

쾅-!

의원이 얼마나 힘을 줘서 내려쳤는지, 나무탁자가 부르르 떨렸다.

“서로··· 조금의 감정 소요가 있었던 거 같으니, 오늘 모임은 여기서 끝냅시다. 차관.”

“이런. 다음에 볼 때는 두둑한 봉투와 함께 만나 뵈었으면 좋겠소.”

“···미친놈.”

상대방이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 태연하게 찻잔을 기울이는 탈레랑의 모습에, 연방당 의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밖으로 나갔다.

당연하게도, 다음날이 되자.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2층짜리 미합중국 국회의사당은 어마어마한 소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건 우리 미합중국에 대한 프랑스의 괄시와 비아냥이 도를 넘었다는 증거입니다!”

“어이 제퍼슨!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보시지! 왜? 이제 이름도 토마스가 아니라 토마로 바꿨나?”

“제퍼슨뿐 만이 아니요! 민주공화당 당신들! 그 잘난 프랑스가 우리를 무슨 식민지 다루듯 다루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요?”

“당장 프랑스가 국가적 차원에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연방당은 프랑스산 무역물품에 대해 특별 관세를 신설하겠소!”

“왜냐니! 우리가 사는 프랑스산 설탕이 포탄이 되어 돌아올 거란 말이외다!”

딱 3시간.

믿음직한 동맹국 프랑스가 사악하고, 추악하고, 역겹고, 눈 뜨고 볼 수 없고, 용납될 수 없고, 평화의 위협자이자 양심 없는 무법자, 그리고 세계질서의 파괴자 및 신의의 배반자, 신뢰의 파기자이며 가증스럽고,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무뢰한이자 더러운 위선자와 주권의 침해자, 악의에 가득찬 성격파탄자 또한 탐욕스러운 사기꾼 및 인면수심의 철면피의 나라가 되기까지에는 딱 3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쩌랴. 그토록 대가리 깨져도 프랑스를 외치던 민주공화당의 입장에서는 프랑스가 미국을 문명국이 아니라 무슨 토인국 취급한 것에 입이 있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미친 프랑스인, 합중국을 욕보이다!]

[이것이 동맹국의 태도? 연방당 애덤스 부통령, 프랑스 전격 비난!]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점유,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언론 또한 오랜만의 기삿거리에 펜대를 쉬지 않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황색언론이니 정론지니 할 것 없이 모두가 프랑스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바빴다.

그러니 주미 프랑스대사인 주네의 속은 타들어가다 못해 시시각각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조지 워싱턴의 무관심 하에 연방당이 조금씩 조금씩 정계를 갉아먹고 있었는데 이런 핵폭탄을 얻어맞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탈레랑 차관! 안 그래도 어려운 일을 이렇게 배배 꼬아버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그러나 탈레랑은 ‘헤헤 죄송!’이라고 표면적으로라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싱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반응이 뜨끈뜨끈한 거 보니, 이제 최종단계군요.”

“최종단계라니? 그게 말씀이십니까?!”

“내일 아침 일찍 신문기자들을 모아주십시오. 기사를 쓰자마자 당일에 찍어내려면 최소 새벽 4시 즈음 보면 되겠군요.”

주네 대사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둘러 이 인간의 턱을 돌려놓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 현실에 손을 가만히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탈레랑 차관 머릿속에 든 게 꼭 성공했으면 좋겠군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 둘 다 모가지가 분명할 테니.”

“걱정도 팔자십니다.”

···달라지지 않더라도 한 대 칠 걸 그랬나?

***

1794년 7월 말.

필라델피아, 주미 프랑스 대사관.

“흐아아암. 약속 시간 얼마나 남았냐?”

“지금이 3시 50분이니까, 10분 남았네.”

“쯧, 어디 시골 촌구석 신문사 기자까지 다 모인 거 같은데 그냥 빨리 시작이나 해주지.”

이른 아침. 아직 해가 동쪽에서 뜨기도 전, 세상이 짙은 남색으로 잠겨있는 지금. 프랑스 대사관의 앞은 수많은 기자들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그렇게 약속한 새벽 4시가 오자.

“저기! 저기 탈레랑이다! 탈레랑이 나온다!”

“차관님! 한 말씀 해주시죠! 정말 의원들에게 뇌물을 달라고 요구하신 게 맞습니까?!”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입니다! 프랑스는 정말 미불동맹의 파기를 원하는 건가요!?”

“정숙. 정숙해주십시오. 모두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탈레랑은 손을 들어 기자들을 정숙케 하곤 입을 열었다.

“우선 본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는, 미합중국의 400만 민중들에게 일체의 악감정이나 삿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질문 있습니다. 연방당 의원들의 말로는 차관님이 대놓고 우리 미합중국을 모욕했다던데, 방금 하셨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까?”

“아니면 차관님은 지금 연방당 의원과 애덤스 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연방당과 애덤스 부통령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예?”

이게 무슨 개소린가.

방금 전에는 미합중국에 일체의 악감정이나 삿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미국인 기자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탈레랑은 계속해서 이어 말하자 모두들 잽싸게 내용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저는 공무원입니다. 인민들의 부름을 받아 이성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공화당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전 미국인 여러분들을 어디까지나 친구로 여기고 싶지, 나쁜 이웃으로 여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차관님?”

“제 행보를 누군가는 단순한 협력으로 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들의 주권이 침해당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혁명 정부는 자유주의를 사랑합니다. 삼권분립을 지향하고 인민의 주권을 존중합니다. 그런 정부의 요인으로서 함부로 귀국에 파란을 일으킬 마음은 조금도 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 그렇군요.”

그래. 괜히 정치부가 신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게 아니지. 미국인들은 프랑스인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연방당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카드를 치고, 담소를 나누었지요. 친영주의자니 친불주의자니 하는 세간의 평가는 제외하고, 제가 만난 분들은 모두 신사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뇌물을 요구하신 겁니까?”

“바로 그들이 신사였기 때문입니다.”

“···예?”

“기자 여러분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프랑스와 귀국 미합중국 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그야 당연히··· 동맹관계입니다.”

“동맹이라! 옳은 말씀입니다.”

탈레랑은 짐짓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10여 년 전,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 프랑스인 청년들과 애국심 투철한 미합중국의 청년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이 아메리카 대륙을 폭정과 폭압으로부터 지켜냈습니다.

바다에서는 세인트루시아와 체서피크, 육지에서는 보스턴과 찰스턴,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 곳 필라델피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청년이 이 미합중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장으로 향했고, 수많은 청년이 이 아메리카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파리에서 온 누군가가, 컬럼비아에서 온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영면에 드는 모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숭고한 죽음을 양분 삼아 프랑스와 미합중국 두 나라는 역사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상업에서도 친구였고, 친구이며, 친구일 것이고, 군사에서도 친구였고, 친구이며, 친구일 것입니다. 우리 프랑스인들은 결코 피를 같이 흘린 동지를 버리지 않을 테니.”

그러나 여러분은, 미국인들은 우리 프랑스처럼 생각하지 않나 보더군요.

탈레랑은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요. 저는 연방당 의원들에게 대놓고 미합중국에 대해 모욕적인 언행과 부정한 재물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기자 여러분께 묻지요. 기자 여러분들께서는 이 땅에 사는 미국인이실 테니, 저보다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잘 아실 거 아닙니까.

미국의 의회는 지금 우리 프랑스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같이 피를 흘린 동료에게 지금 무슨 대접을 하냐는 말입니다!”

“그, 그건...”

기자들은 입에 침을 바를지언정, 프랑스인의 질문에 차마 더 말하지 못했다.

상황이야 잘 알고 있었다. 영국과 물꼬를 트려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연방당이 지금 부통령을 해먹고 의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거.

그러나 그걸 지금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무게가 달랐다.

“우리 프랑스가 언제 여러분에게 참전의 대가를 달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같이 손을 잡고 저 영국 런던 버킹엄 궁에 깃발을 꽂자고 했습니까? 우리 프랑스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으며,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그것이 정의니까! 우리 프랑스의 청년들이 이 땅에 기꺼이 묻힌 이유가 바로 그 정의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왜 그런 사실을 알고서도 우리 프랑스를 배신하려고 하십니까?”

“···배신이라니, 그 단어 선택은 상당히 분노하신 것처럼 들립니다만.”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렇게 프랑스의 수많은 청년들이 이 아메리카 땅에 미국인들을 구한답시고 묻혔는데, 프랑스의 공무를 보는 자로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프랑스인은 이제 손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우리 프랑스의 국민방위대 사령관인 라파예트 장군은 다리에 총상까지 입으면서 귀국을 도왔는데, 귀국은 동맹의 도리를 다하기는커녕 동맹을 저울추에 달고 저울질을 한다면 과연 누가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질렀습니다! 한 사람의 프랑스인이자, 공무원으로서 섭섭함과 분노를 담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습니다!”

기자들은 그 말에 모두들 입술을 말았다. 프랑스인 입장에서는 이해되는 일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봇짐을 내놓으란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제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그런 염치없는 짓을 한 것, 모든 미국인 여러분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프랑스인은 고개를 까닥-하고 숙이며 기자들에게 말했다.

“따라서 저, 탈레랑은 미국과 친교를 다진다는 본래의 목적에 알맞지 않은 일을 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여 루이지애나 총독부에 절 대신할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연방당 측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말하기 전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프랑스 청년들의 묘비 앞에서 저울질을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크흠.”

“하지만 귀국에 대해 심각한 결례를 저지른 것도 마찬가지. 우리 프랑스가 현재 파견할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을 보내달라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전직 재무총감이라고 하면 아시겠지요.”

기자들의 입이 동시에 덜컥-하고 열렸다.

“차, 차관님! 질문 하나만 더 받아주십쇼!!”

“그 말씀은 기욤 총감이 방문한다는 겁니까?!”

“더 이상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서 날 홍보용 입간판으로 쓰시겠다?”

“하하하, 그런 셈이지요.”

“각하! 참으십쇼! 뭐해! 다 달려들어!”

“으아아 탈레랑! 탈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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