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멋진 신세계 (8) (206/341)

멋진 신세계 (8)

루이지애나.

풀어서 말하면 ‘루이의 땅’.

처음으로 이 땅을 탐사한 프랑스인 탐험가, 르네 드 라살이 당시 국왕이었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기리며 그런 이름을 붙인 이 지역은 프랑스인들에게 사뭇 여러 의미로 와 닿는 곳이었다.

“지금 기회의 땅! 미개척지 루이지애나로 떠날 사람을 모집합니다!”

“바닷길이면··· 위험한 거 아뇨?”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의 자랑스러운 제독, 드 에베르빌 장군이 이끄는 해군이 여러분의 안전한 항해를 책임질 테니!”

“해군이? 그렇다면야 안심이구만.”

“세상에,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는 거 좀 보게나!”

“하, 이게 다 내 땅이란 말이지? 세상에 배 곪을 걱정은 할 필요도 없겠어!”

태양왕의 명령 아래 개척을 처음 시작할 시기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안돼! 밭에 물이 찬다!”

“이런 세상에! 우리 집이 바람에 날아가잖아!”

“하, 하느님이 노하셨다! 살려줘!”

“나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래!”

미시시피 강의 범람, 태풍, 그리고 허리케인이라는 자연재앙을 겪은 이후로는 시도 때도 없이 재해만 쏟아지는 병신 같은 땅이었고.

“요새 존 로인가, 요한 로우인가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핫하다며?”

“안 그래도 폐하께서 그 자에게 미시시피 강의 해운에 대한 권리를 주셨다는데?”

“식민지에 대한 권리라고? 이야, 그거 돈 좀 되겠는데.”

“그렇지? 난 안 그래도 몇 주 미리 사놨지 뭔가.”

“하기야 그러고 보니 그 존이라는 양반, 이번에 왕립 은행까지 손을 댄다더라고. 지금 아니면 곧 매물이 없을지 몰라.”

“오! 오! 올라간다! 이대로 달까지 가즈아!”

“집문서! 집문서 어디있어!”

“여보, 집문서는 왜?”

“왜긴! 지금 재산 다 팔고 미시시피 주식에 몰빵해야 한다고! 지금 존이라는 양반이 막! 돈을 삽으로 퍼서 주겠다잖아!”

“루이지애나 코인 가즈아!”

미시시피 해운 회사가 떡상에 떡상을 거듭하며 300 리브르짜리 액면 주식이 주 당 2만 리브르가 되자, 부를 가져다주는 사랑스러운 땅이 되었고.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구걸하던 그 곱사등이 꼽추 아나? 증권거래소에 들르는 사람들이 주식 증서에 서명할 책상이 없는 걸 알고는 자기 등을 책상 대신 빌려주고 돈을 받는다는 말이 있어. 아주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식민지가 가치가 높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 과열될 정도인가?”

“난 이미 다 뺐네. 심장이 아파서 살 수가 있어야지.”

“어, 어, 왜 주식이 떨어지지?”

“호외요! 호외! 미시시피 회사 증권에 대해 평가절하가 시작됐답니다!”

“평가절하? 그게 무슨 뜻인데?!”

“뭐긴. 뭐야. 이제 미시시피 주식은 똥값이랍니다! 똥값! 아무도 액면가로 안사요!”

“···오늘 세느 강 수온은 따듯한가?”

“엿 같은 세상 같으니! 내가 돈 몇 푼 버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냐!”

역사 상 최악의 주식 거품이 빠지며 떡락에 떡락을 거듭하며 한 달 만에 2만 리브르가 100 리브르 주식이 되자, 민생을 파탄 낸 좆같은 땅이 되었다.

평판이 천당과 지옥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넘게 오가는 걸 보면, 신은 루이지애나가 프랑스의 손으로 들어가는 걸 심히 우려하는 듯 싶었다. 아니면 중증 히스테리 정신병 환자거나.

“그런데 그런 곳을 나보고 개척하라고? 으하하하.”

뒤무리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코르크 마개를 뽕-하고 딴 뒤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술맛이 참 좋다. 역시 술은 마음이 씁쓸할 때 잘 넘어가더라.

- 거, 제가 저번에 우연찮게 뒤무리에 장군님의 가산을 확인해볼 일이 있었지요?

- 사실 전 좀 놀랐습니다. 뒤무리에 장군님이 그렇게 재테크 실력이 높으신 줄은 몰랐거든요.

- 어우, 군바리 월급으로 그렇게 많은 재산을 쌓으시다니. 참 대단하시더라구요. 아, 혹시 은퇴하시면 제가 운영하는 투자회사에 한 번 입사 해보시겠습니까?

꼴 받는다. 꼴이 받아서 당장 화병으로 뒤져버릴 거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잇 씻팔! 기욤이 꼴 받게 하잖아!’하면서 판을 엎을 수도 없다. 잘못 들이받았다가 죽은 미라보처럼 30년을 첩보부한테 쫒기며 사는 건 절대 사절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차기 루이지애나 총독은 홀로 술병을 끌어안은 채 슬픔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한 편. 갑판 위에선 건장한 장교 한 명이 저 멀리 가까워져 오는 육지의 모습을 망원경 가득히 담고 있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그의 정복은 다른 장교들의 정복과 다르게 계급장을 제외하면 완전히 싸제 그 자체였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눈에 튀는 걸 좋아하는 기병이라 할지라도, 견장을 제외하고 휘황찬란한 총천연색의 비단으로 만든 군복을 정식 군복 대신 입고 다니는 건, 꽤 과한 축이었다.

그러나 장교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망원경 너머를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저곳이 바로 이 몸을 기다리는 신대륙이구나! 으하하하!”

여관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여관주인으로 사는 삶은 너무나도 지루했다.

안정적이고 정적인 삶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런 삶도 나름 괜찮겠으나, 기왕 180센티가 넘는 강골에 파리 아가씨들한테도 먹히는 곱상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이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쏘다니며 후세가 영원토록 기릴 영웅담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알렉산드로스라던가, 카롤링거라던가, 카이사르··· 아. 카이사르는 제외. 대머리가 되고픈 생각은 없으니. 아무리 빛나는 영웅담의 소유자라도 대머리라면 조금 멋이 떨어지지 않나.

“아메리카여, 어디 한 번 겨뤄보자. 너의 광활함과 내 체력 중에 누가 더 대단한지!”

루이지애나 탐험단 소속의 기병 소령, 조아킴 뮈라의 하얀 이가 대서양의 뜨거운 빛을 받고 반짝였다.

***

대강 21세기 대한민국 양로원에서 부모님이 ‘댁네 아들이 참 효자라면서?’라는 소리를 듣게 만들고 싶다면, 부모님에게 36개월 동안 매달 39900원을 할부로 내고 전동안마의자를 하나 사드리는 것보다 크루즈 여행 30일짜리를 끊어주는 게 낫다는 말이 있었다.

아.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동 안마의자보다 크루즈가 낫다 아니다 하는 게 아니고, 그 세계 여행 크루즈가 30일짜리라는 거다. 절대 비방이나 비교가 아니다.

엔진붕붕 21세기 크루즈가 세계를 도는 속도가 30일이란 말이다. 그러면 범선에 불과한 이 시대의 배는 유럽의 프랑스에서 저어어기 멀리 있는 아메리카 누벨 오를레앙(뉴올리언스)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나.

무려 두 달이다. 두 달.

세상에 두 달 동안 일을 못한다니, 게다가 바다 한 가운데 있으니 서류 같은 걸 보내도 받을 수가 없잖아? 이것 참 큰일인걸.

아이 참. 너무나도 속이 타는 나머지 코냑을 깔 수밖에 없다. 절대 내가 두 달 동안 베르사유의 손길에서 벗어나 합법적으로 놀고먹으려는 차원에서 까는 게 아니다.

“크어어 뻑예에.”

대서양의 따듯한 햇빛, 대서양의 영롱한 푸른색 바다, 거기에 좋은 술까지 합쳐지자 휴양지가 따로 없다. 이게 인생이지.

아, 내가 왜 아메리카로 가고 있냐고? 미지의 땅에서 사업을 펴는 건데 21세기처럼 멀리서 국제전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직접 가서 확인해야지.

미국이 아무리 우호국이라지만 국경을 접하기 시작하면 이상한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거고, 플로리다 접경지대는 아직도 영국 땅이고, 서쪽으로는 스페인 식민지인 텍사스가 있는데 우발적인 상황이야 충분히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이 18세기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대다. 어설픈 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단 말이다.

재무총감으로서 파리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응, 현역 재무총감은 콩도르세야.

애초에 지금의 난 재무총감이 아니라니까? 법적으로 재무총감 임기는 4년이라고, 작년에 때려 쳤으니까 3년 후에 선출해야 법적으로 옳지 않나. 그 전에 자꾸 날 끌고 가려고 하면 재미없다 이 말이야.

그래,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베르사유와 파리에 있는 인간들이 사십, 오십이나 먹고 기껏해야 스물 짜리 민간인을 괴롭히는 게 문제지. 어휴 으른들이 왜 애를 이렇게 못 괴롭혀서 안달일까.

“그, 저... 사장님?”

“왜 그러시죠 르봉 씨?”

이번 개척단에 우리 회사 소속 기술자로 참여한 선임 기술자, 필리프 르봉.

머독과 트레비식 말로는 실력이 꽤 괜찮다고 들었는데, 쫌생이인 라부아지에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번 개척단에 추천해준 인사다. 저번 파리 개발 때 봤던 기억이 나네.

“선장이 이제 슬슬 누벨 오를레앙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래요? 에잉 아쉽네.”

대략 5년 넘게 달리고서 겨우 얻어낸 휴가다운 휴가의 끝이구만. 아쉽지만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이번 일에 기관차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쪽박을 찰지가 달려있고. 산업 혁명을 일으킬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강철을 쭉쭉 뽑아낼 수 있을지도 달려있다.

그 때, 어느 샌가 내 뒤로 저벅저벅 걸어온 한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미합중국과 우리 프랑스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가 달려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총감님?”

“하아. 전 지금 재무총감 아니라니까요.”

“하하하!”

아니. 내 말이 웃겨? 웃지 말라니까? 탈레랑 이 노오옴. 선량한 사람을 무슨 광대 보듯 쳐다보지 말란 말이다아악.

“대체 이 세상 어떤 나라가 민간인이 일하러 가는데 국가 정무를 맡깁니까?”

“하하, 그 민간인이 여타 보통 민간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과 뭐가 다릅니까?”

“이거 재미있으시군요. 총감님이 이렇게 유머가 뛰어난 줄은 몰랐습니다.”

“갸아아악! 구아아악!”

말도 안돼. 이건 위헌이야, 위헌.

내 꿈은 저 거대한 대륙을 마음껏 뛰놀며 달달한 꿀을 빨고 싶은 거지, 촌구석 시골짝 뉴욕과 보스턴에서 풍둔 아가리술을 뽐내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다. 애초에 거기서 입 좀 턴다고 해서 나한테 무슨 콩고물이 떨어지는데? 오랜만에 제퍼슨 그 양반 얼굴 좀 보는 거?

“탈레랑 의원님. 여기서 딱 정합시다. 난 누벨 오를레앙에서 보스턴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저어어언혀 없거든요? 미국일은 제발 탈레랑 씨가 맡아서 하십쇼.”

“으음.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나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나중에 제가 재무총감 자리에 다시 앉으면, 탈레랑 의원의 휴가를 제가 손수 잘라드리겠습니다.”

“하하, 공무에 민간인의 손을 함부로 빌릴 수는 없지요. 미국일은 이 탈레랑에게 맡겨 주십시오.”

역시 사람은 자기 목에 서늘한 칼이 들어와 봐야 정신을 차리는 건가. 그토록 내 심신이 고달프다고 어필을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던 사람이 자기 휴가 자른다고 하니까 아주 우디르급 태세전환을 한다.

“항구요! 항구! 누벨 오를레앙에 도착했습니다!”

아무튼, 이제 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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