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멋진 신세계 (7) (205/341)

멋진 신세계 (7)

1794년 1월 초.

자유주의와 낭만주의가 판치는 18세기 프랑스에 던져진 <포브스>의 구인문은 마치 화약으로 가득 찬 탄약고 한 가운데에 불붙은 성냥을 던져넣는 것과 같았다.

“위험한 여정!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위협! 안전한 귀환을 장담할 수 없음! 성공시 영광과 명예! 가즈아아아!!”

“엄마, 내가 가서 산더미만큼 돈 벌어올게!”

“으아아! 날 당장 배에 태워줘! 태우란 말이야!!”

당연하게도 따끈따끈한 <포브스> 12월 마지막 주 호가 시중에 풀린 이후, 이삭의 민족은 연일 발 디딜 틈 없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

“넵!”

“몇 살이시죠?”

“올해로 열 일고···. 아니 스물입니다!”

“스물처럼 안 보이는데.”

“아니요! 스물 맞습니다! 저 아주 건강합니다!”

“쓰으읍... 알겠습니다. 성함이?”

“그게 뭐냐면···.”

20세 이상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속이는 일은 빈번히 일어났지만, 이삭의 민족 사무원들이 보통 사람들인가? 수 년 간 파리 시민에게 들들 볶인 우리의 사무원들은 무척이나 능숙한 솜씨로 그 부적격자들을 정리해버렸다.

“이거 의심되는 사람들 목록인데 파트리크 경정한테 보내.”

“넵.”

그렇게 파리 경찰청에서 신분이 확인되면.

“너 이 놈! 가라는 학교는 안 가고 뭐? 아아아메리카아아? 너 오늘 좀 맞자! 맞아!”

“악! 잘못! 잘못했어요!”

여하튼, 이삭의 민족은 오늘도 순항 중이었다.

***

“어디보자. 수염 정리는 깔끔하고 눈꼽도 뗐고···.”

새해, 그것도 아침 댓바람부터 화장실 거울에 제 몸을 요리조리 비추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던 샤르보노는, 마지막으로 팔을 들어 코를 겨드랑이에 가져다댔다.

킁킁.

···제기랄.

“이봐! 당장 욕조에 물 덥혀놔! 비누도 준비하고!”

“네, 사장님.”

VIP. 아니, VVIP와의 첫 만남부터 겨드랑이에서 암내를 풍길 수는 없다. 하늘이 내려준 이런 귀한 자리에서 VVIP에게 성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망정 자기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팔푼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병신 같은 이유로 파토를 낼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고용인들이 물을 보글보글 끓여 온수를 만들어 낼 동안, 샤르보노는 자기 앞으로 배달된 한 편의 편지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투생 샤르보노에게.

전임 재무총감께서 요즈음 아메리카 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아메리카 통을 찾으신다고 무역국에 직접 문의까지 넣으셨으니 알아서 잘 해보도록.]

이삭의 민족을 소유한 거대 자본가, 기욤 드 툴롱이 ‘직접’ 아메리카 통을 찾는다.

그 돈 귀신 기욤이 아메리카에 손을 대려고 한다니! 더 읽어볼 것도 없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병신이라도 그 기욤의 손이 뻗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금의 상황을 꿰뚫어보리라.

이건 노다지다. 가뜩이나 자기 식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데려가주는 이삭의 민족 아닌가.

샤르보노 자신이 협력관계만 구축하는데 성공한다면, 망해도 최소 사금(砂金)은 캐먹고 살 수 있을 거고, 흥하면 그게 어디까지 흥할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어쩌면 혁명이 일어나고 집을 버려둔 채 도망가신 귀족나리들의 호화스런 저택을 살 수 있을 지도.

“크헤헤헤. 그래, 내가 지금까지 무역국 공무원 나리들한테 사 준 점심만 몇 끼인데 슬슬 입에 떡고물 좀 넣어주셔야지.”

감히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높으신 분이 우연히도 꼬붕 하나를 구하는데, 우연히도 마침 샤르보노가 그 자격에 딱 알맞은 거 아닌가.

사실 말이 떡고물이지, 이 정도면 부정 축에도 끼울 수 없었다. 무역국 공무원들 입이 샤르보노가 사 준 고기기름으로 번들거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자격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암. 아메리카 통을 찾는다면 나처럼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사람을 써야 이치에 맞지.”

뜨끈한 물에 몸을 덥히고 비누로 몸을 박박 문질러 냄새 하나 남기지 않은 끝에, 샤르보노는 지팡이를 손으로 휘휘 돌리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

“반갑습니다. 이삭의 민족 사장을 맡고 있는 기욤 드 툴롱이라고 합니다.”

“하이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모피를 떼다 파는 소상공인 투생 샤르보노라고 합니다!”

자신을 투생 샤르보노라고 말한 남성은 목각인형마냥 허리를 꺾어대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연성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인사성이 좋은 건지. 대체 허리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내가 알던 투생이라는 이름을 쓰던 사람은 곧 죽어도 안 꺾일 대나무 같은 위인이었는데, 이 하얀 투생은 굉장히 잘 꺾일 갈대 같은 인물처럼 느껴졌다. 잘 먹은 탓에 얼굴이 번들번들해서 그런가.

아마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걸 보면, 나와의 만남이 얼마나 자신의 사업과 커리어에 중요한지 대강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역시 아메리카 쪽 전문가라더니 그 잠재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 하다.

“앉으시죠. 사업 얘기를 하려면 꽤나 긴 시간이 될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일어서서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자리에 앉은 뒤, 나는 사환을 불러 여느 손님과 같이 커피와 쿠키를 내오라고 요청했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나와 샤르보노가 앉은 탁자 위에는 다과상 하나가 차려졌다.

나는 쿠키를 하나 베어 물고 입을 열었다.

“무역국 친구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아메리카 태생이시라구요.”

“예, 그렇습니다. 과거 퀘백이 아직 프랑스령일 때 캐나다에서 태어났지요.”

“태어나실 때는 프랑스 국적이셨겠군요. ···그렇다면 지금 국적은 어디십니까?”

“그, 그게 캐나다이긴 합니다만···.”

샤르보노는 뭔가 일이 꼬인다고 생각한 듯, 손을 싹싹 비비며 이어 말했다.

“제 피는 어디까지나 프랑스이니 명목 상 국적은 캐나다라도, 제가 생각하는 조국의 모습은 당여여연히 우리 프랑스입니다!”

“결국 서류상으로는 캐나다인이라는 거지요?”

“그렇, 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샤르보노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음.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라.

솔직한 얘기로, 국적 가지고 차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당장 요 앞 공터에서 스패너 가지고 열심히 나사 돌리는 친구 중 영국인이 둘이나 있는데, 내가 국적 가지고 사람 차별했으면 증기기관차고 나발이고 개발도 못했을 걸.

하지만 우려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독과 트레비식은 완전 공돌이 그 자체라 자기들이 스스로 원해서 갈려나가도 행복하게 비명을 질렀지만, 이 샤르보노라는 작자는 어디까지나 사업가다. 몸속에 뱀을 기르고 살지 모르는 사업가.

게다가 21세기에도 그 산업스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나. 심지어는 국가 중요산업시설인 원전에 중국인이 지원원서를 써서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었으니 국적이 다르다는 걸 아예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샤르보노 사장님.”

“예, 예. 각하!”

“솔직한 얘기로 사장님도 지금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우려스러우시죠?”

“···예.”

“그러면 절 한 번 설득시켜 보시겠습니까?”

“설득이요?”

“제가 왜 투생 샤르보노라는 캐나다 사람을 이번 대형 프로젝트의 중심축으로 써야하는지.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요컨대, 자기 PR이다. 내가 당신을 왜 위험을 감수하고 당신을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보라는 거다.

샤르보노는 생각 때문인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각하, 일단 이 샤르보노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언어를 꿰고 있습니다.”

“언어라?”

“보스턴과 래브라도에서 쓰는 영어,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 누에바 에스파냐의 스페인어는 기본이고, 체르치 어, 이로쿼이 어 등 인디언들 말도 몇 가지 할 줄 압니다.”

“오호.”

언어는 확실히 플러스 요소지 결코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다. PR의 시작이 꽤나 좋은데.

“그리고 지난 10여 년 간 인디언들의 모피를 사오면서 인디언들과 상당한 신뢰관계를 형성했고 그걸 운송하는 자그마한 유통망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 이곳저곳을 쏘다닌 탓에 지리에도 꽤 일가견이 있지요!”

이야, 이건 꽤 큰데.

이 사람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면 언어는 물론이고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첫 인상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사람 하나하나 아득바득 긁어모으는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관계가 경색되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나.

“좋습니다.”

“그러면 함께하게 해주시는 건가요!?”

“아니요. 아직 한 가지를 못 들었잖습니까. 샤르보노 사장님께서는 이번 프로젝트로 뭘 가져가기를 원하십니까?”

“뭘 가져가다니요, 하하하... 전 그저 각하께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그냥 지금 터놓고 얘기하시죠. 나중에 몰래 빼먹다가 걸리면 안 봐드립니다.”

무역국 친구들이 내가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말을 건네자마자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인간을 추천해준 거면 말 다했지.

딱 봐도 우리 공무원 친구들 입에 술과 고기를 퍼 넣어준 게 분명하다. 세상을 꽤 영악하게 살아오신 거 같은데, 내친 김에 탁 터놓고 말해보시지?

내가 이래 보여도 방첩국 참모도 구워삶고 베르사유 의회에서 의원들이랑 노가리도 깐 사람입니다. 고런 얕은 수는 다 눈에 보인다. 이거에요.

샤르보노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더니 말했다.

“개척한 지역에 제 명의의 제혁소를 설립할 수 있게 융자를 내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야, 융자라?”

나는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어차피 융자는 상공회의소에서 내 주는 거 아닙니까. 저한테 매달리셔도 뭐 없을 텐데요.”

“각하 명의로 제게 사채를 발행해주시면 되지요.”

“저한테 빌리시겠다?”

햐. 이 인간, 머리 꽤 잘 돌아가네?

“제가 왜 사채를 기꺼이 드릴 거라고 생각하시죠?”

“각하께선 아메리카 대륙의 잠재성을 크게 보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흠.”

“이제 신대륙에도 사람이 살게 되고 무역량이 증가할 텐데, 제혁소를 설립해 가죽을 현지에서 가공해서 판다면 당연히 상선 임대료도 적게 내고 순익도 증가하겠지요.”

“자본금이 없으신가봅니다.”

“캐나다에는 아직 제대로 된 은행이 없고, 프랑스 상공회의소는 외국인에게 대출을 잘 안 해주니 말입니다.”

아, 이런 대화 너무 좋다. 서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건으로 윈윈하자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시중 금리보다 이자율을 조금 낮게 드리지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제부터 사장님이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원하시는대로.”

“하하! 감사합니다 사장님!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그로부터 4개월 후. 1794년 5월.

프랑스 북부, 르 아브르 항에서 스무 척이 넘는 배가 루이지애나를 향해 돛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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