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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멋진 신세계 (1) (199/341)

멋진 신세계 (1)

내 말을 들은 탈레랑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굳이?”

“네?”

“굳이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대서양을 건너 거기까지 나르는 것만 해도 상당한 힘이 들어갈 텐데요.”

“으음.”

“차라리 외교전에서 판돈으로 쓰는 게 어떻습니까? 어쨌거나 해외식민지이고,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땅이니 미국을 동맹으로 끌어드리는 패로 쓰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판매로 현찰을 땡겨올 수도 있겠지요.”

“그으을쎄요오오.”

하지만 탈레랑 씨. 이 아메리카 코인은 백퍼센트 떡상을 한단 말입니다. 아니, 떡상이 뭐야. 화성을 넘어 목성까지도 갈 텐데.

내가 만일 사람들한테 ‘미국은 200년 뒤에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고, 영국과 프랑스는 그 따까리 1호와 2호에 불과하다!’라고 노스트라다무스마냥 예언을 날린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내가 아무리 ‘아악, 놔라 이놈들! 어서 전 재산을 털어 아메리카 코인을 타야한단 말이다! 화성 갈끄니까!’라며 염병을 떨더라도 결국엔 ‘참 좋은 친구였는데, 안됐어. 쯧쯧.’ 소리와 함께 정신병원에 수감되겠지.

아무튼 그런 건 제쳐두고 우리가 할양받기로 합의한 땅은 북위 49도 이남. 대영제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그러니까 캐나다 바로 밑까지다.

북위 49도.

초등학교 저학년 필수 이수코스인 <독도는 우리땅>에 따르면 뱃길 따라 이백리, 새들의 고향 독도가 동경 127도 북위 37도 였으니, 북위 49도 이남이면 그 땅이 얼마나 넓은 지 짐작도 채 가지 않는다.

우리 프랑스 외교부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당연히 구체적으로 실측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 실측? 우리도 한 적 없어서 모르는데?

- 아니.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자료 내놓으란 말입니다.

- 진짜 우린 몰루? 300년 전에 먹은 멕시코 땅도 실측 다 못했는데, 겨우 20년 전에 먹은 곳을 어떻게 실측함?

- 거짓말하지 말라니까? 자기네 땅 실측도 안 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냐?

- 여기 있네.

- 아잇 씻팔 니네 장난해? 한 번 뒤져볼래?

- 히에에엑! 우린 진짜 몰라! 모른다니까! 우릴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던 외교부도, 멱살까지 잡힌 스페인이 끝까지 아니라고, 우린 정말 모른다고 울먹거리며 말하자, 끝내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다들 일주일 간 집 갈 생각은 꿈에도 마시오.

- 씨이이이바아아알.

- 콜록콜록! 이게 무슨 먼지야!

- 7년 전쟁 전에 쓰던 자료였으니 먼지가 많을 만도 하지. 거의 30년 전 아뇨?

- 옛 누벨 프랑스였던 루이지애나에 대한 서류는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거의 전무하군요.

- 그래? 그러면 일주일이 아니라 이주일 간 집은 못 가겠구만.

일단 그 밑에 일단 사람이 가서 깃발 꽂아본 땅들은 아칸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칸소.

아칸사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해서 불어로 읽어봤더니 아칸소.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강 일대도 각각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 주.

칸소 강의 이름을 따 정한 칸소라는 지역을 영문으로 읽으면 캔자스. 과연 거기에 지금 엘리스와 마법 토깽이가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캔자스가 맞다.

가슴이 절로 웅장해진다. 이게 우리 땅이라니. 먹다가 토하지는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뒤무리에는 전설이다. 그러니 위대한 전설이 가서 저 땅을 꿀땅으로 개간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들이 원하는 일이겠지. 암, 그렇고말고.

지금의 미국은 솔직한 얘기로 아일랜드만도 못한 찌끄레기 나라에 불과하지만 훗날 저 거대한 북아메리카를 소화하는데 성공한 2022년의 미국은 혼자 전 세상과 전쟁을 벌여 승리할 수 있는 괴물 국가 아닌가.

그러니 그 땅을 지금 우리가 조금이나마 소화시킨다면, 탈레랑이 예언한 대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고도 남을 거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무서운 망태할아버지 외교부로부터 응애응애 우는 신생아 누벨 프랑스를 지켜내기 위한 계책을 짜내는 중입니다.”

“오호라. 총감님은 아메리카를 상당히 고평가하시나봅니다?”

“적어도 1회용 판돈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나는 커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 유럽 땅에도 알자스-로렌이라던지, 아니면 저어어기 영국 리버풀이라던지 하는 쓸 만한 광산지대가 있는데 저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에 그런 곳 하나 없겠습니까?”

“드넓은 대서양을 건너 막대한 양의 노력을 쏟을 만큼 값어치가 있는 광산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어... 굳이 광산이 아니더라도 쓸모가 요모조모 있지 않을까...”

“만약 없으면?”

“탈레랑 의원님. 저랑 싸우러 오셨습니까?”

“싸우다니요. 어디까지나 투자 대비 효용이 나오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발. 투자 대비 효용이라니. 생각만 같아서는 ‘제가 사실 미래를 봤는데, 저기서 막, 막, 우주왕복선이 뽑혀 나오고, 항공모함이라는 게 쑥쑥 나온다니까요?’라고 말하고 싶다.

“다 차치하고, 그러면 이거 물어보겠습니다. 러시아인들한테 먹일 밥, 외교부에서 낼 겁니까? 보나마나 우리 재무부한테 짬 때릴 거잖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막 토지를 받은 농민들한테서 토지 공출이라도 하시겠습니까?”

“허, 대화를 그쪽으로 가져가시겠다니. 한 방 먹었군요.”

아, 그래서 그쪽이 내실 거냐고.

“뭐, 좋습니다. 외교부 쪽에서는 더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만?”

“러시아인들의 통제에 관해서는 어쩌시렵니까?”

“그거야...”

이제부터 차차 생각해봐야지.

뭐, 하나 생각해놓은 게 있긴 하다만.

***

꼴깍 꼴깍.

“크어어어.”

“···아주 맛있게 드시네?”

“그럼. 당연하지. 남의 돈으로 마시는 건데.”

“알면 그 대가리 좀 굴려서 뭐라도 뱉어내보라고.”

내가 그냥 먹고 마시고 또 먹고 마시라고 아까운 사비를 턴 줄 알아? 하다못해 대학교 조별과제에서 치킨과 피자를 쏘면 영웅대접이라도 받지. 나폴레옹, 그루시, 마티유, 그리고 그 외 동기 놈들은 몇 시간동안 먹기만 한다. 어우 골 땡겨.

“그런데 말이지.”

“오. 마티유 형. 드디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거야?”

“이거 한 병만 더 주면 안ㄷ···, 악! 아악! 알겠다고!”

“죽어! 그냥 죽어!”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은 개뿔. 동기라는 게 죄다 안타까운 동기의 사연에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생각하기는커녕, 동기 지갑에 빨대 꽂을 생각뿐이라니. 끔찍하다.

내가 속으로 내 처지를 한탄하고 있을 무렵, 그루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지. 그 사람들도 어디까지나 땅 파먹던 농민들이잖나.”

“뭐, 그렇지.”

“우리 혁명군의 고상한 이상을 가르쳐준다면 그 자들도 눈이 트이지 않겠나?”

“기각.”

“왜, 왜 그런가?”

“현실성 없어. 다음.”

말도 잘 안 통하는 건 기본이요, 아무리 책 펴놓고 강론을 한다 해도 들어먹을지 안 들어먹을지 어떻게 아나. 학창시절에 뒷자리에서 지우개에 샤프심 박으며 놀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거다.

시무룩해진 그루시를 쳐내고 나는 마티유를 지목하며 말했다.

“결혼식까지 2주 남은 우리 예비 신랑이 한 번 말해봐.”

“어... 뭐랄까. 말 말고 뭔가 물질적인 걸로 회유를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오, 역시 사람은 패야 말을 듣는 건가?”

“너도 한 번 맞아볼래?”

그건 사양. 다음으로 우리 보나파르트 씨.

“물질적인 게,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직빵이긴 하지. 그런데···.”

“그런데?”

“아예 금은을 주고 꼬드길 것도 아니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거 알지?”

“음.”

“사람 중에는 눈앞의 보화(寶貨)보다는 정신적인 무언가를 더 높게 치는 치도 있잖냐.”

“역시 생 루이 훈장 2회 수훈자답게 아주 좋은 말씀이셔.”

나폴레옹은 포도주를 한 모금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뭔데.”

“그냥 네 머릿속에 뭔가 들어있으면 그대로 질러 봐라.”

“흐음.”

“너 또 속에 뭔가 요상한 생각이 들어있긴 한데, 그게 긴가 민가 싶어서 우리한테 확인 받으려는 거 아니야? 남의 입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게 튀어나오면 그래도 ‘아 내 생각이 괜찮은 거구나.’싶으니까.”

으음. 나폴레옹. 이래서 당신처럼 눈치 빠른 사람은 싫어요.

나는 검지로 탁자를 톡톡 치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

“보통 사람 다루는 일에서는 네 생각이 옳더라.”

“···좋아, 술값은 내가 다 낼 테니까 알아서들 마시고 들어가쇼.”

“넌 어디 가는데.”

“생각대로 질러보러.”

***

“사장님,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제 슬슬 투자 회수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내 피 같은 돈이 어떻게 됐나 한 번 보러왔죠.”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들어가시지요. 리처드가 작업 중입니다.”

나는 머독 씨의 안내를 받아 쇠 깎는 냄새가 가득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리처드, 사장님이 오셨네!”

-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공장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런 소리가 나더니, 검댕이가 얼굴 여기저기 묻어있는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어서오십시오. 사장님!”

“트레비식 씨.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증기기관차는 잘 작동합니까?”

“하하, 아직 몇 군데 모자란 곳은 있지만 이제 많이 완성했습니다. 이제 한 반년 정도만 더 주신다면 무결점으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반년이라. 지금 가동은 불가능합니까?”

“가동은 할 수 있습니다만...”

트레비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실린더의 내구성이 떨어져서 원하셨던 대로 장거리 주행은 불가능합니다.”

“얼마정도 갈 수 있죠?”

“실린더에 고압을 넣는다면 30분 내외. 저압을 넣는다면 2시간 정도 운행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실가동은 해보셨나요?”

“공장 내에서라면 해봤지만, 바깥에서는 아직...”

“잘됐네요. 근시일 내에 실가동 계획 한 번 짜봅시다.”

“예? 갑자기요?”

“보여줄 사람들이 있어서요. 약 1km 정도로 짧게 철도 깔고 한 번 테스트해봅시다.”

““예, 사장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머독과 트레비식 두 사람에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

프랑스, 파리 교외.

임시 포로수용소, 르무흐.

“자, 잘 들어라! 이제부터 여러분을 새로운 곳으로 이동시킬 예정이니, 모두들 군장을 싸고 행군 준비를 한다. 알겠나?”

“이봐, 저 프랑스인이 뭐라는 거야?”

“짐 싸라는 거 같은데.”

“그래? 뭐, 하라는 대로 해야지. 이봐, 드미트리. 일어나라.”

“에, 예?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수용소를 옮긴다나봐.”

드미트리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서둘러 군장을 쌌다.

포로 신세에 말이라도 잘 안 들으면 언제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여태까지 러시아군이 잡은 튀르크인 포로 수만 명 중 성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드미트리가 알기론 아무리 많아 봤자 세 자리 수를 넘어가지 않을 거다.

물론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언제 프랑스인들이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행군 시작!”

“이번엔 얼마나 갈런지.”

코르시카에서 이곳 르무흐까지 장장 한 달여 동안 행군한 러시아군이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먼 곳까지 갈까.

드미트리는 그저 아침으로 프랑스인들이 준 빵을 씹어 삼키며 군홧발을 옮길 뿐이었다.

그 때.

“괴, 괴물이다!”

“마법사다아아!!”

“···이게 뭔 소리야?”

앞에서 각양각색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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