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대육군의 일원들 (6) (193/341)

대육군의 일원들 (6)

탄약 92415 발. 포탄 316 발. 헤진 장화 1208 켤레. 군복 1680 벌.

군모(軍帽) 394 개. 우리 폴란드 말박이 친구들의 영원한 사랑, 포니가 67 필.

병사들이 ‘응애 나 애기 병사, 밥 줘 벅벅.’거리며 먹어치운 밀이 43톤.

빵만 먹으면 물리니까 디저트 겸으로 까먹은 귤이 218 상자.

아, 귤만 먹으니까 물리네. 더 달달한 거 없나? 해서 현지인들에게 사먹은 사과가 70 상자.

잘 먹고 다니는 프랑스인들을 보고 배가 고파진 포로들이 ‘우리도 배고파요. 깁 미 빵!’을 시전 하는 바람에 별도로 들어간 밀이 8톤.

뭐? 포로들한테 밥을 왜 주냐고? 그럼 줘야지 안 주냐? 님 혹시··· 평등과 박애를 싫어하는 봉건주의자? 탕플탑 가쉴? 하긴 거기도 슬슬 새 얼굴을 한 명 넣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시프요.

“하지만 그게 다 우리 프랑스인들의 피 같은 세금 아닙니까.”

“별도로 계정원장파고 몰아넣은 다음, 차후에 전쟁 배상금으로 받아내면 되겠지요. 그 차르인지 뭐시긴지 하는 여자도 양심이라는 마음속 삼각형은 있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이 처먹은 내 와인이 23ㅂ···?

“우어어어! 나폴레옹 네 이놈! 당장 나와라! 나와 결투하자!”

“각, 각하! 참으십쇼!”

“뭐해! 다들 달라붙어!”

누군 파견 나온 재무부 공무원들과 해피해피한 야근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군 와인 퍼 먹으면서 ‘여러분, 이 보나파르트만 밀어주시면 이 코르시카를 번영시키겠습니다!’ ‘와아아! 부오나파르테 만세!!’ 헹가래를 받고 다니니. 이 어찌 원수가 아니리오?

그렇게 우리 프랑스가 러시아 봉건주의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찬 대가로, 내가 초열서류지옥에서 일주일을 보낸 11월의 두 번째 주, 토요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집에 가즈아아아!”

“와아아! 집에 가자!”

“크르릉! 월월!”

마침내 내가 퀭해진 얼굴로 그리 말하자 우리 재무부 공무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눈을 뒤집고 게거품을 물었다. 누구는 게가 아니라 개가 된 거 같긴 한데. 뭐, 그럴 수도 있지.

“드디어 집에 간다!”

“보나파르트 사령관님 만세! 만세! 만세!”

우리 방위대 장병들도 딱히 반응이 다르지는 않았다. 군인이라 해도 어쨌거나 모두 임금 노동자이니, 회사원들이 퇴근시간만 기다리듯 외지에서 편한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겠지.

그렇게 배를 타고, 툴롱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측은함이 들 정도로 내게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남자가 있었다.

“재무총감 각하! 소인, 호레이쇼 넬슨! 혹여 각하의 신변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생길까봐 오매불망 마음만 졸였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독의 용맹함에 이 기욤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 수상께 제독을 중히 쓰라고 잘 말해드리리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축축한 런던에서 오늘도 차를 홀짝이고 있을 윌리엄 피트에게.

귀하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선물을 가져다 준 우편배달부 또한 훌륭한 분이더군요. 마침 제 집에 강도가 하나 들었는데, 그 우편배달부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립 서비스 오지게 쳐놨으니. 이제 조금 경고를 해줄 차례.

왜냐고?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도 리뷰가 죄다 별 5개에 호평일색이면 의심이 들기 마련 아닌가.

원래도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리뷰를 볼 때는 별 4개 반짜리 리뷰를 본다.

‘아 이 물건 정말 좋아요. 그런데 이런 점에서는 약간 하자가 있네용 호호.’

그래야 ‘아 이 물건에는 이런 약점이 있구나’하고 합리적이고 또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법이거든. 립서비스만 막 해주면 이 새끼 지금 사기 치나? 봇이나 알바로 리뷰 돌렸나? 하면서 신뢰도가 팍팍 까여나간단 말씀.

[다만 어떤 사람들은 그 배달부를 일컬어 말이 좀··· 많더랍니다. 중히는 쓰되, 가까이 하지는 않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이런, 말이 길어졌군요. 피트 수상께서는 총명하신 분이니 제 뜻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다음에 다우닝가로 차를 마시러 한 번 찾아뵙지요. 기욤 드 툴롱.]

음, 내가 봐도 아주 좋은 리뷰다. 이 정도면 가게 사장님이 서비스로 군만두도 주고, 탕수육 쿠폰도 줘야지.

툴롱에서의 일도 끝마치자, 이제는 정말 파리를 향해 나아갈 일만 남았다.

마르세유를 찍고, 아비뇽을 찍고, 발랑스를 찍은 뒤, 리옹에 다다르면··· 젠장 길 한 번 드럽게 머네.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 똘똘한 라부아지에몽이 제 대학원생··· 아니, 노예 1호로 삼은 듀진구가 자동차를 끌고 와주었다는 거다.

“이야 듀퐁. 신수가 아주 훤하네. 교수님이 잘 해주나봐?”

“너 이 새끼 미쳤··· 큼큼. 혹시 머리에 미열이 있으신가요 각하?”

“궁시렁거리지 말고 멀미약이나 하나 줘 봐.”

“네가 연구비만 안 대줬으면 독을 타는 건데.”

어허. 이 놈. 어디 감히 파견 온 대학원생 주제에 돈 대주는 물주에게 그러느뇨. 어서 운전대를 잡고 이 증기-자동마차를 움직이란 말이다.

이 증기-마차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는 사실 오산이었다.

가뜩이나 어마어마한 수의 포로와 함께 군인들이 행진하는데, 거기에 해괴망측한 기계장치를 타고 다니는 사람까지 합해지자.

파리로 향하는 우리의 대열은 졸지에 어마무시한 수의 군중이 몰려 구경하는 행진이 되고 말았다.

플랜카드만 없지, 이건 완전 서커스인데.

[저희 아비뇽 시는 총감 각하와 방위대 장병 모두를 환영합니다!]

아. 이제 플랜카드까지 있구나.

사업가 다음은 정치인, 그 다음은 서커스 관리인까지 해야 하는 건가-싶은 마음이 구름처럼 뭉실뭉실 솟아오른다.

“각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비뇽의 시장으로서 성심을 다해 각하와 장병을 모시겠습니다!”

음음. 아주 좋아요. 요란하게 서커스도 해줬는데 밥은 잘 줘야지.

“헌데, 각하께서 타고 다니시는 그 기계장치는 대체 무엇입니까?”

“아! 증기-자동마차 아시는구나! 이거 정말 대. 단. 합. 니. 다!”

겸사겸사 만나는 김에 입도 좀 털어주지 뭐.

이게 다 세일즈다 세일즈.

“이게 정말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자, 향후 백년, 아니! 이백년을 선점할 문명의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그, 그렇군요.”

“저··· 각하?”

“지금 쪼오오금 바쁘거든요. 조금만 이따 말씀 하시죠! 그러니까, 시장님! 지금 투자하신다면 이게 떡상, 아니지. 달을 간다니까요?”

“각하. 급한 일입니다.”

아이 참 누구신데 왜 이렇게 겐세이를 넣으세요.

“재무부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받아야지. 시장님, 저녁 만찬 때 뵈러 가겠습니다.”

“예, 예. 각하...”

나는 숙소에서 시장을 돌려보내고, 그 자리에 파리에서 온 재무부 친구를 자리에 앉혔다.

“무슨 일이죠? 러시아쪽 배상금은 파리에서 따로 결산하기로 했는데.”

“스페인 문제입니다.”

“스페인이라니?”

“그것이···.”

···시발.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

생도맹그라는 서인도제도의 섬은 사실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프랑스령 생도맹그와 스페인령 생도맹그.

식민지를 찾아 헤매던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두 나라는 설탕과 커피라는 노다지가 나는 이 땅을 반 갈라먹자고 약속했고. 서로 같은 왕조를 공유하는 이웃국가답게, 여태까지 그 약속은 굳건하게 지켜져 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혁명이란 게 나서 왕이 두 번이나 퇴위 당하질 않나, 그 뒤에는 수년 간 왕좌. 그러니까 왕실의 지존이라는 자리가 공석인 채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는 그런 현실이 매우매우 고까웠고,

동시에 두려웠다.

혹시나 공화정이 나올까봐.

가뜩이나 프랑스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 스페인이, 과연 프랑스에 공화정이 수립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역병이, 슬그머니 스페인의 지식인 사이에는 돌고 있다는 소문이 궁궐에 파다했다.

그런데 문무백관들이, 심지어 고도이 재상까지 스페인이 프랑스를 지금 엄정하게 꾸짖는다면 다시금 이 세상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 속삭이니.

그 답은 명약관화했다.

2주 전.

프랑스령 생도맹그의 동쪽, 스페인령 생도맹그.

“제군들! 우리는 명예롭고 고상한 대스페인 제국의 용사들이다!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피에는 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자, 코르테스와 피사로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위대한 정복자들의 뒤를 따라서.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저 프랑스 깜둥이들을 쳐부수고 그 놈들의 목에 알맞은 재갈을 채워주러 갈 것이다!”

“““와아아아! 깜둥이를 쳐부수자!”””

“가자! 대스페인 제국의 힘을 보여줘라!”

스페인 생도맹그 식민지군은 모두 결의를 다지고, 총을 쥔 채 정글로 나아갔다.

망할 깜둥이들. 노예 놈들이 제 주제를 모르고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주워섬기다니, 백인으로서 가만 둘 수 없는 작태 아닌가.

본 주인인 프랑스가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친절한 옆집 이웃으로서 스페인이 노예들에게 다시 재갈을 채우리라.

그러나.

“으아아아!!”

“깜둥이들이 너무 강력하다아악!”

“살려줘!”

푸른 군복을 입은 흑인들이 정글 곳곳에서 솟아나 사격을 가하고, 검으로 가슴팍을 찌르기 시작하자, 스페인 군은 지리멸렬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 프랑스령 생도맹그의 흑인들은 약 3년 간, 근 만 명의 진압군과 혈투를 벌이던 전쟁기계들이었다. 그것도 군사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하지만 파리와 베르사유에 있는 정부가 식민지와 식민지군을 철군시키고 생도맹그를 본토로 편입한 이후, 이들 흑인들에게는 프랑스의 자유시민이라는 시민권이 지급되었으며, 지도자 투생은 생도맹그 구의 국민의원이 되었다.

그 뜻은, 곧 이 흑인들이 프랑스군의 교리와 커리큘럼을 따라 정규군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침략자들을 몰아내라! 형제들을 구하자!”

“생도맹그 방위대, 1연대 앞으로! 우리가 프랑스 대육군의 일원임을 보여줘라!”

“자유, 평등, 박애 만세! 대육군 만세!”

가뜩이나 식민지 4선 급 부대로는 이들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

북 피레네.

국민방위대 툴루즈 지역사령부.

총칼이 난무하고, 매캐하면서도 동시에 단 화약 냄새가 지척에서 스멀스멀 코를 간질이는 전장.

스페인군은 생도맹그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동시에, 유럽의 접경지대인 피레네로도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히도, 피레네의 툴루즈 사령부에는 프랑스 최고의 방어전 전문가가 부임되어 있었으니.

“씨발. 씨발. 난 더 못해. 전역할 거야!”

“장군님! 적이 몰려옵니다!”

“으아아아!! 3대대 당장 빼서 틀어막아!”

그 이름도 유명한, 혁명의 수호자.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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