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코르시카 (6) (183/341)

코르시카 (6)

한참동안 지도에 지휘봉을 대고 장광설을 늘어놓은 나폴레옹은 자신이 불러 모은 고급장교들의 면면을 하나씩 눈으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귀관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사령관의 말에 모두는 잠시 턱을 괴거나, 눈을 바닥이나 천장에 고정한 채 ‘으음’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놓았다.

“어떠한 의견이라도 상관없다. 날 것 그대로라도 상관없으니 가감 없이 꺼내놓도록.”

내 이름을 걸고 쩨쩨하게 마음에 담아놓거나 보복 같은 건 하지 않겠다.

어깨에 영롱하기 그지없는 금색별을 달고 있는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자, 장교들도 하나 둘 바닥과 천장에 고정해놨던 눈동자를 움직여 나폴레옹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장교가 손을 들어 입을 열었으니, 나폴레옹의 말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렸다.

“그러니까··· 사령관님의 추측에 따르면. - 러시아 제국군은 사격실력도 형편없으며 훈련도마저 저열한 B급 군대에 불과하다. - 라는 겁니까?”

“그렇지.”

“그거 딱 2년 전 아미앵에서 왕당파 나리들 대가리에 박혀있던 생각 아닙니까?”

현 국민방위대 보병연대장이자, 이미 나폴레옹의 밑에서 얼치기 지원병연대를 맡고 아미앵에서도 싸워 본 앙드레 마세나 대령은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그러나 마세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폴레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금마들이랑 다르게 나는 지금 완벽한 이유를 들고 있지 않나.”

“대체 어디에 완벽한 이유가 있으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첫째. 그렇게 공격에 자신이 있으면 왜 자기들 좌익과 중열에 골치 아프게 물웅덩이를 배치해 자기들의 움직임을 제한한단 말인가?

둘째. 사격전이 총검돌격보다 당연히 아군의 피해가 적을 텐데, 왜 총검돌격을 하지? 사기가 꺾인 적을 마무리하거나 적의 항전의지를 꺾어 패퇴시키기에는 적합할지라도 전투 시작부터 총검돌격을 하는 건 이치에 어긋나지 않나?

셋째. 왜 포를 부대 규모보다 적은 10문 남짓만 챙겨왔는가? 보병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포탄에 맞으면 수십 명이 한꺼번에 곤죽이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나폴레옹은 손가락을 하나씩 올리며 말했다.

입 밖으로 한 마디가 나오고, 손가락이 한 마디씩 올라갈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교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났다.

마세나 대령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나폴레옹도 이해하고 있었다.

적을 얕보고 덤비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 이미 고사(古事)에도 얼마나 많은 장군들이 자만심으로 전쟁을 말아먹었나.

하지만 지금.

나폴레옹은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추측이 진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님. 그렇다면 병사들에게 공격을 바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공격을 왜 하나?”

“······예?”

당연히 공격 명령을 내릴 거라 생각한 장교는 나폴레옹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러시아군이 병신인 이유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으니, 당연히 총공격을 해서 그 열등한 적을 박살낼 차례 아닌가?

“귀관.”

“예. 사령관님.”

“왜 우리가 가진 게 더 많은데 적에게 꼬라박아줘야 하지?”

“······예?”

“생각해보게. 우리가 먹는 밥, 화약, 탄약 다 어디서 오나?”

“어... 본토에서 옵니다.”

“그래. 저어어기 툴롱에서 배를 타고 여기까지 실어오지. 그러면 이제 질문을 바꿔보겠네.

적은? 러시아군은 어디서 밥을 구하고 화약을 구하고 탄약을 구하지?”

“어, 어...”

섣불리 답하지 못하는 장교에게 격려 삼아 어깨를 툭툭 쳐준 나폴레옹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밥은 아마도 주민들에게서 약탈하겠고, 화약과 탄약은 흑해함대가 실어다 줄 텐데, 지금 바다에는 우리 쪽 군함이 떠다닐 테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쪽은 탄약이 모자라겠군. 거기에 만약 영국인들이 러시아 함대를 박살내준다면 금상첨화고.”

“···약탈이라, 날짜가 지날수록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겠군요.”

“악마처럼 다 털어가는 러시아군, 자기들 밥은 자기들이 가져와서 해먹는 프랑스군. 둘 중 시간이 갈수록 어느 쪽이 주민들 입장에서 좋게 보일지는 명백하지.”

원정군과 수비군의 차이점.

수비군은 제 집에서 편하게 전쟁을 하지만 원정군은 이역만리까지 보급을 해야 한다. 아니면 적을 초장에 개박살을 내고 적의 보급품을 수거하든가.

전쟁의 신, 프리드리히 대왕조차 보급에는 얄짤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욕이 나오는 건 원정군이니 적들을 모두 단기결전으로 꺾어버린 거 아닌가.

사실... 이렇게 말하는 프랑스군의 교리도 원래 탄약과 화약을 제외하고는 ‘현지징발’이었다. 빵도 좀 징발하고 소도 좀 징발하고, 마차도 좀 징발하고...

기욤 그 녀석이 하도 ‘뭐? 현지징발은 무슨! 그게 약탈이지 뭐야!’ 쌩난리를 쳐서 길게 보급선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뀐 거지.

뭐, 그렇게 말하면서 군인들에게 짬을 때린다면 또 몰라.

딴지를 건 사람이 직접 밤잠을 세워가며 숫자들과 씨름한 끝에 파리에서 툴롱, 툴롱에서 코르시카까지 장장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에 보급선을 잇는데 성공했으니, 굳이 가타부타 따질 것도 없었다.

어차피 물자 받아서 싸우는 입장에서는 주민들에게 욕도 안 먹게 되었으니 이보다 메르시 보꾸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쩌시렵니까?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킬 때까지 기다릴까요?”

“아니. 가지고 온 곡사포를 전부 동원해서 적의 축선 서쪽 1.5킬로미터 지점 능선에 포대를 꾸리도록. 평사포만 평지에 할당한다.

마지막으로 평사포에는 항상 포도탄을 넣어놓고 철탄은 모두 곡사포 포대에 몰아주게.”

적들의 축선은 산 옆에 자리한 평야를 따라 길게 늘어진 형태. 산 능선에 곡사포 포대를 임시로 만들고 화력을 꽂아 넣으면 몸이 달겠지.

기병으로 산을 오를 순 없을 테니 포대를 제압한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병력을 본대에서 뗀 그 시간에 포격으로 약해진 우익을 뚫고 나가면 적에게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다.

뭐, 물론 포대를 공짜로 내주지는 않을 거다. 한 오천 명쯤 던져준다면 마지못해 빠져주겠지만 그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

나폴레옹은 ‘히히 나는 바보야!’를 외치며 적의 방어선에 대가리를 들이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세나 대령.”

“예, 사령관님.”

“아까 내 추측이 확실한지 모르겠다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내일 정오에 2개 대대를 내줄 테니 가볍게 적의 우익에서 싸워보게. 단, 백병전은 금지. 철저하게 거리를 주지 않는 사격전으로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아무리 추측이 진실이라고, 옳다고 생각해도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직접 증거를 봐야하는 법.

그리고 단순한 추측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확신이 되는 순간. 나폴레옹의 예리한 창끝이 수보로프의 가슴을 찌르리라.

방어선을 만들었다고? 글쎄, 그 방어선이 러시아군의 무덤이 되지는 않을까.

결국 러시아군은 살고 싶으면 이를 빠득빠득 갈며 애써 만든 축선에서 기어 나와 프랑스군과 한탕 치고 받아야 한다.

“제군들. 비범한 작전이란, 적에게 불가피한 선택만을 강요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상 전달 끝.

장교들이 돌아간 이후, 공관병 페탱은 슬며시 나폴레옹의 옆으로 와 입을 열었다.

“그··· 장군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제. 뭔데?”

“그··· 코르시카는 장군님의 고향 아닙니까? 장군님 말씀대로라면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패악을 부릴 텐데...”

나폴레옹은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말했다.

“······날 태워죽이겠다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우리 가족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른 사람들인데 뭐.”

‘그리고 러시아 놈들이 패악질을 부릴수록 이 코르시카에서 내 영향력도 커진다.’

나폴레옹은 마지막 문장은 밖으로 내놓지 않고 도로 속으로 삼켰다.

순진한 공관병 페탱은 ‘죄, 죄송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라며 죄스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지만 나폴레옹은 저 멀리 막사 너머 어드메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장, 준장을 갓 달았을 때는 그렇게 예쁜 세상이었건만. 사람 마음이 참으로 교활한 터라, 어느 새인가 더 높을 곳을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장, 중장, 대장. 그리고 국민방위대 총사령관까지.

거기까지 가려면, 자신을 밀어주는 확고한 세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당장 기욤 그 녀석이 있고 그 녀석 성정에 나폴레옹 같은 보석이 시골에 처박혀서 꿀을 빠는 그런 모습을 가만두지는 않을 테지만,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 아닌가.

수십 만 코르시카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건 국민방위대 총사령관을 위한 첫 번째 계단이었다.

······오늘따라 저 멀리 밤하늘에 북극성이 더 빛나는 듯 했다.

***

1793년 8월 말.

코르시카 동쪽 평원.

“1 대대 앞으로! 300미터 거리에서 대형유지!”

“마세나 대령님. 적이 다가옵니다.”

“알고 있어. 란 대위, 2 대대를 맡아 우측을 방어하게. 후퇴하기 쉽게 횡대로는 서지 말고.”

“예, 대령님.”

2 대대장 장 란 대위에게 명령을 내린 앙드레 마세나는 말에 탄 채 망원경으로 시시각각 자기의 부대를 향해 걸어오는 녹색 군복의 물결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엽병은 아니고, 척탄병도 아니고, 그냥 보병이군. 부관! 적 포대는 침묵하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이상하긴 하군. 왜 적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왔는데 쏘지를 않는 거지?”

“어젯밤에 사령관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인 거 아닐까요?”

“음...”

부관의 말에 마세나는 말끝을 흐렸다.

나폴레옹 사령관이 특별한 사람은 맞다. 아미앵에서 그 전장을 한 눈에 파악하고 순식간에 명령을 내리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

다만 자신의 특별함을 과신하고 남들을 사지로 내모는 순간, 그 자는 보통사람만도 못한 개돼지로 전락하는 거다.

마세나는 자신의 상관이 그런 폐급이 되지는 않았으면 싶었다.

“부관. 1대대에게 교범보다 먼 200미터 거리에서 사격 개시하라고 전해주게. 겁만 줘 봐.”

“예. 대령님.”

말을 탄 부관이 1대대로 달려가 명령을 전해주자, 1대대는 순차사격 자세를 취했다.

1열이 앉고, 2열은 서고. 3열은 사격준비.

“발사!”

탕! 탕! 탕!

총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뒤덮자, 최전방에서 달려오던 녹색 군복 몇 개가 픽픽 쓰러졌다.

탕! 탕! 탕!

탕! 탕! 탕!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프랑스군이 두 번의 사격을 할 동안 러시아군은 그저 묵묵히 병사들을 전방으로, 더 전방으로 밀어 넣었다.

“대령님! 적 보병, 150미터 거리입니다!”

“······대열 바꿔서 한 번 더 사격 실시.”

“하지만 더 접근시킨다면 백병전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만···.”

“아니. 지금 사령관님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야한다.”

다시 부관이 1대대에게 달려 나가고, 1대대는 장전이 끝난 후열과 전열의 대열을 바꿔 또 한 번 사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더 많은 녹색 군복이 바닥에 쓰러졌건만, 러시아군은 응사가 아니라 더 가까이 묵묵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120미터!”

“한 번만 더.”

“80미터!”

탕! 타탕! 타타탕!

프랑스군이 총 5번의 사격을 가한 동안, 횡대로 묵묵히 걸어온 러시아군은 모두가 한꺼번에 총을 들어 프랑스군 전열에 사격을 가했다.

“““우라!!!””“

“어, 어! 적이 돌격해온다!”

빈총이 된 머스킷을 단단히 손에 쥔 러시아군은 그대로 프랑스군 전열로 달려들었다.

“백, 백병전 진으로!”

“아니. 퇴각한다. 종대 유지하며 빼내. 부관! 뭐하나! 2대대에게 엄호하라고 전해!”

“예, 예!”

탕! 타탕! 탕!

부관이 명령을 전달하기도 전에, 장 란 대위가 이끄는 우익의 2대대는 차분하게, 달려드는 적의 좌측에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쾅! 쾅! 쾅!

전세가 그런 꼴이 되어서야 러시아군의 포대가 프랑스군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보나파르트가 맞았어. 보나파르트가! 놈들은 사격전을 꺼린다! 1대대, 2대대 모두 빼내! 깃발 올려서 아군 곡사포 포대에 지원사격 요청하고!”

앙드레 마세나의 깃발이 올라가기도 전에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의 곡사포 포대 또한 불을 뿜으며, 첫 날의 탐색전은 막을 내렸다.

“뭔가 이상하군.”

“무슨 말이십니까, 수보로프?”

“느낌이 이상해.”

“고작해야 스물 넷짜리 애송이 아닙니까.”

“음.”

쿠투조프의 말에, 탐색전을 지켜보던 수보로프는 망원경을 내리고 짧은 신음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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