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보석 (2)
“돈도 벌면서 동인도회사에 목줄까지 채울 수 있는 일이라, 한 번 상세히 듣고 싶군요. 기욤 총감님.”
웰즐리 경은 흥미가 돋은 얼굴로 날 향해 몸을 기울였다.
나 또한 웰즐리 경에게 몸을 기울여 입을 열었다.
아마 누군가 본다면 우리 두 사람이 영락없이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보이리라.
“우선 확실히 말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지요?”
“영국 행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인도회사를 웰즐리 경처럼 목줄을 채워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까?”
일단 이번 일을 벌이기 전에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행정부가 만약 동인도회사의 현재 행보에 만족하고 있다면 까딱 잘못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과실은 따먹지도 못할 테니.
“적어도 재무부는 확실하게 저와 뜻을 같이합니다. 동인도회사 그 치들에게 한두 번 시달린 게 아니니. 해군성은··· 글쎄요. 장담해드릴 수가 없군요.”
웰즐리 경은 쉽지 않다는 것처럼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해군성이 어떻길래 그러십니까?”
“후우, 제 생각으로 해군성은 아마 동인도회사 편을 들어줄 겁니다. 동인도회사 덕에 함대를 쭉쭉 늘리고 제독 자리도 팍팍 늘렸으니 그걸 생각하면 확실히 친 동인도회사라고 할 수 있지요.”
동인도회사의 위치는 인도 뱅골, 그런 동인도회사를 지켜야 하기에 영국 해군은 기존에 장악하고 있던 북해는 물론, 대서양을 넘어 인도양과 오세아니아, 태평양에까지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투사하고 있었다.
확실히 자기 밥그릇을 늘리는데 도움을 준 작자들에게 이빨을 들이밀지는 않을 테니 해군성은 동인도회사의 편을 노골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넌지시 들어줄 건덕지가 충분하군.
“입법부는 어떻습니까?”
“반반입니다. 동인도회사에 지분이 있는 작자들과 없는 자들로 나뉘니.”
“그러면 행정부에서는 재무부와 해군성 중 누구 입김이 더 거셉니까.”
“똑같이 반반입니다.”
“그래도 반은 웰즐리 경의 편이군요.”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속이 쓰리군요.”
“그래도 승률이 반은 있다는 거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지요.”
내 말에 쓴웃음을 짓던 웰즐리 경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시고자 그런 걸 여쭤보시는지요?”
“웰즐리 경께서는 혹시 ‘관계회사’란 걸 알고 계시는지요?”
“관계회사라, 글쎄요. 당장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만.”
웰즐리 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지분의 20퍼센트 이상을 보유한 타사에 한해, 본 회사의 의결에 참석할 권리와 재무제표 열람권 등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흠. 그렇군요. 그런데 그··· 관계회사라는 건 왜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혹여나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천천히 얘기했다.
“잘만 써먹으면 동인도회사에 목줄을 제대로 걸어볼 수 있는 제도라서 말입니다.”
“···호?”
방금 전까지 웰즐리 경의 얼굴에 비치던 과로로 시름하는 샐러리맨이 사라지고 재무부와 행정부, 웨스터민스터 서민원에서 몇 년을 굴러먹던 정치인의 얼굴이 서서히 떠올랐다.
아, 역시 몇 번을 만나 봐도 정치인이란 작자들은 무서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베르사유에서 왕한테 두 번이나 들이받고 로베스피에르까지 구워삶은 희대의 의인(義人). 기욤 드 툴롱 아니겠나.
나는 머리를 몇 번 돌려 몸을 풀고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웰즐리 경, 동인도 회사가 혹시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시중에 풀린 것만 해도 약 백만 파운드 가량 될 테지요.”
“아주 좋군요. 동인도 회사 채권과 주식을 싹 다 사들입시다.”
나는 계속 이어 말했다.
“그리고 웰즐리 경 이름으로 세무회계법인을 하나 만드시지요. 만약 이름을 내세우고 싶지 않으시다면 해당 법인의 지분만을 보유하시고 바지사장으로 회계사를 고용해서 만드시면 될 겁니다. 금융이 발달한 영국이니 그 정도는 쉽겠지요.”
“그러면 용역 형식으로 해당 세무회계법인에 돈을 융통해주고.”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해야 하나, 웰즐리 경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는 동시에 고개를 만족스레 끄덕이며 말했다.
캬 역시 총명하셔. 괜히 토리당 내에서 밀어주는 게 아니구만.
“세무회계법인은 그 돈으로 동인도 회사 채권과 주식을 조금씩, 들키지 않게 삽니다. 그렇게 해서 20퍼센트를 채우면 해당 법인은 동인도회사의 관계회사가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국가가 아니라 회사차원에서 동인도회사 놈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되겠군요!”
“어떻게, 별로십니까?”
“아니요! 좋다마다요! 동인도회사 그 놈들이 평소에 우리 재무부 친구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기들은 국가 부처가 아니라 회사니, 굳이 행정명령을 따라야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놈들 외통수를 칠 기회인데 별로일 리가 있겠습니까!”
웰즐리 경은 이제는 아예 숨길 생각도 없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며 크게 말하다가, 아차하는 얼굴과 함께 내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총감께서는 무슨 이득이 있으시지요? 저, 웰즐리야 이번 기회에 동인도회사 놈들 목줄을 채울 수 있지만 총감께서는 가져가는 게 없으시지 않습니까.”
“해당 법인의 자본금의 일부와 지분을 제가 부담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아, 그렇게 해 달라?”
웰즐리 경은 이제야 일이 어떻게 되가는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인도회사 감시가 가능한 법인에 내 돈이 들어가면 나 또한 자연스레 지분을 가지게 되고, 이 새끼들이 나한테 바가지를 씌우는지 아니면 적정가에 팔고 있는지를 낱낱이 살필 수 있을 거다.
바가지를 씌운다? 바로 법인에서 불공정 거래로 감사를 때리면 되는 거니, 감히 나와 이삭의 민족에 보스턴에서 하던 거처럼 쓰레기 짓은 못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초석이라던가 화약이라던가 하는 군사적인 기밀까지 내가 파헤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상업 활동만 알 수 있는 거니 영국 정부로서도 경계할 건덕지는 없다.
요컨대, 나는 원자재가 제값에 들어오는지 알고 컴플레인을 걸 수 있고, 영국 정부는 속만 썩이던 동인도회사에게 목줄을 채우고 이리저리 감 놔라 배 놔라를 할 수 있게 된다.
입법부에 있을 동인도회사 주주들이야 뭐, 웰즐리 경과 토리당이 어떻게 잘 알아서 해야겠지만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얼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나.
“좋습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합자회사 형식으로 설립하면 되겠군요.”
“역시 보통 머리가 아니십니다.”
“하하, 기욤 총감님의 설명 덕이지요.”
나와 웰즐리 경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잘해봅시다, 웰즐리 경.”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기욤 총감님.”
“음후하하하!”
“하하하!”
***
등장인물 모두가 하하호호 웃으며 ‘우리는 모두 친구’를 시전 하는 텔레토비 세상과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는 소위 ‘라이벌’이라는 경쟁상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촉나라와 위나라.
포켓몬과 디지몬.
메시와 호날두.
축구와 야구.
마지막으로 영국과 프랑스까지.
지금 내가 아무리 영국의 국빈으로 초청받아 이 칙칙하기 그지없는 런던 땅에서 안전히 먹고 자고 한다 해도, 엄연히 영국은 우리 프랑스의 제 1가상적국이고, 우리 프랑스 또한 영국에게는 제 1가상적국이다.
그래, 전쟁이 나면 ‘아, 얘랑 싸울 걸 대비해야겠구나!’하고 대비하는 적국이 바로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며, 이미 근 백년 간 수십 번의 무력충돌로 실전에서도 맞붙었으니 더 말해 뭐하겠나.
지금 이 시간에도 프랑스 베르사유에 있는 국민방위대 방첩본부와 영국 런던 해군성 방첩부에서는 서로의 부드러운 아랫배에 꽂아 넣을 스파이를 고르고 있으리라.
아마 단순한 주식을 넘어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긴다에 거실 분!’, ‘우리나라 경제가 나락가면 갈수록 돈을 버는 채권입니다 여러분!’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며 돈을 굴리는 금융가들이라면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정직하고 번듯한 사업가, 기욤 드 툴롱으로서 이런 분위기는 정말 싫다. 더도 덜도 말고, 말 그대로 질색이야. 난 안전하게 달달한 꿀을 빨고 싶지, 굳이 피가 튀는 수라도에 기어들어가고 싶지는 않거든.
전쟁이 나면 소비자들이 군대에 끌려가고 경제가 나락을 칠 텐데 군수업체 말고 그 어떤 사업가들이 좋아라할까.
아, 전쟁 특수를 누리면 되지 않느냐고?
참고로 저번 프로이센과의 전쟁 때 국민방위대에게 쥐어 줬던 머스킷들은 동네 대장장이 아저씨들이 열심히 땜질하고 두들겨 납품한 총들이었다.
아직 전쟁 특수를 누리기에는 제대로 된 공장을 만들 기술도, 기계도 없는 시대고 정부 또한 군수경제라는 걸 원활하게 돌리기 시작한 건 교통과 통신이 지금보다 수배는 진보하고, 시민들의 의식까지 높아진 세계대전기 즈음 되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전쟁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서로 경제 블록을 공유하는 게 가장 검증된 억제법이다.
아, 경제 블록이라고 해서 같은 화폐를 쓰거나 하는 건 아니고, 프랑스와 영국 두 국가에 모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기만 하면 된다.
영국 포츠머스에 살며 포목을 취급하는 에드워드 씨가 프랑스 칼레에서 장사를 하고, 프랑스 툴루즈에 사는 피에르 씨가 추수한 밀을 영국에 내다 파는, 그런 모습이면 족하다.
전쟁 위기가 다가오면 그 사람들은 내가 손을 놓고 있더라도 알아서 각국 정부에게 압력을 행사해줄 튼튼한 방어막이 되어 줄 터.
생각해보자, 21세기 현대 대한민국에서 북녘에 있는 괴뢰돼지를 숭배하는 자들이 하루 온종일 우리 면전에 대고 ‘남조선 자본주의돼지들에게 불벼락을 내려주겠다!’라던가, ‘남조선 괴뢰도당을 총폭탄 정신으로 격멸하라!’는 소리가 매일같이 울려 퍼져도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소리가 입에 발린 거짓말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알기에.
너무나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뒤얽히고 섞여버린 나머지, 전쟁이란 단어는 최소한 말이 통하는 선진국 사이에서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그렇게 이어지길 원한다.
만약 영국에 갑자기 반불정치인이 나와서 전쟁을 선언한다 해도, 그 정도로 깊게 연관이 되어버린다면 바로 사람들이 던진 짱돌에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갈 걸.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경제력이 높은 국가와 낮은 국가가 무역을 하면 결국 낮은 국가로 부가 흘러들어오거든.
프랑스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고.
겸사겸사 영국 재무부도 좋아할 걸. 자기들이 느끼기에는 호경기일 테니.
“로스차일드 씨에게 지금 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와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예, 각하.”
동인도회사를 쥐고 흔드는 거대 재벌, 베어링 가문의 눈을 피하려면 역시 돈 다루는 데 도가 튼 유대인이 필요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