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도시, 파리 (4)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이삭의 민족 <포브스>에서 나온 생쥐스트 편집장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편집장님! <포브스>같은 귀한 곳에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직접 와주시다니!! 정말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한답시고 한껏 치장한 듯, 하얀 가발과 정장을 말끔히 다려 입은 극장 르 퓌블리크의 지배인은 생쥐스트에게 고개를 숙였다.
“밖이 찬데, 거기서 그러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밑에 있는 급사 녀석들에게 미리 자리를 덥혀 놓으라고 일러놨습니다요.”
“아, 예...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생쥐스트는 자신에게 하하호호 사람 좋게 웃는 지배인의 안내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왕립 극장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즐비한 팔레 르와얄 부촌 근처 극장만큼은 안 되는 중소 극장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극장의 최고급인 지배인이라고 지배인 실은 어느 정도 그 이름에 맞게 꾸며놓은 듯 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급사들이 내온 차와 커피로 잠시 목을 축인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포브스>가 우리같이 조그마한 극장에 취재를 요청하시다니! 지배인으로서 정말 놀랐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렇다마다요! 안 그래도 요즘 손님들이 죄 다른 극장으로 몰려가서 고심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포브스>처럼 유명한 곳에서 우리 극장 이름이 나오면 그래도 사람들이 좀 찾지 않겠습니까!”
지배인은 손을 싸바싸바 비비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래서 그 취재는 우리 극장의 어떤 주제로 하시렵니까?”
“자크 르네 에베르라고, 지배인님은 아십니까?”
“에, 에베르?”
방금 전까지 환히 웃던 지배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똥 씹은 것 마냥 굳었다.
“그 미친놈 이름은 왜 말씀하십니까? 우리 극장하고 그 놈은 아아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일,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 진정? 편집장님! 에베르 그 미친놈이 우리 극장과 제 인생에 끼친 손해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알면 그런 말 못하실 겁니다! 그 놈 때문에 우리 극장이 한동안 문 닫을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이제 지배인은 화를 못 참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팔을 붕붕 휘두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극장 지배인이라 연극배우마냥 표현이 과격한 건가 아니면 사람이 저렇게 화를 못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건가?’
생쥐스트는 허공을 난무하다가 이따금씩 제 근처로 오는 지배인의 손을 피해 몸을 멀리 옮기며 생각했다.
“그... 대체 에베르라는 사람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난리십니까?”
“그 놈 아아아주 싹수가 노란 놈입니다! 배 곪는다고 극장 앞에서 서성이길래 측은해서 급사로 넣어줬건만,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생쥐스트는 가만히 수첩과 펜을 꺼내 분노에 찬 지배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
1792년 5월 3일.
차가웠던 겨울을 지나 새싹들이 잎을 틔우기 시작하고, 곧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는 5월 초.
파리는 말 그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인민의 벗> 취재. 왕당파와 프로이센군을 물리친 애국자, 프랑수아 마티유 국민방위대 소령, 테러에 휘말려 중태!!]
[13구 총격사고, 실상은 국민의원을 향한 암살 사건이었다!? <애국자 프랑스> 취재]
[경찰장관, 테러범 자크 르네 에베르 검거 성공]
초탄은 <포브스>가 아니라 다른 잡지들과 신문들이 쏘아 올렸다.
아,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참 맛깔나단 말이야. 역시 우리 경쟁사들답다고 해야 하나.
“여러분! 프랑스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운 군인보고 ‘인민의 적’이라니 이게 말이나 된답니까? 그러는 제 놈은 인민의 적이 전쟁터에서 싸울 때 뜨뜻한 파리에 앉아서 대체 뭘 한 거랍니까?”
“옳소! 옳소! 적과 싸우는 군대가 인민의 적이면, 군에 총기를 납품하는 나는 인민의 역적이냐!?”
“에라이 이 씨발놈들! 파리는 어떻게 된 게 하루라도 바람 잘 일이 없나?”
“암살에 테러에 잘들 한다! 권력에 미친놈 같으니.”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오스만을 박살낸 러시아군이 프랑스 쪽으로 서진한다는 소식이 파다한데 도심 한 가운데서 테러모의가 일어나고 있었다니.
그것도 파리를 수호한 현역 육군 소령한테 테러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바스티유 요새 함락부터 혁명 이후, 근 3년 간 신문에서 피가 흐르는 소식을 질리도록 들은 파리 시민들은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우리 <포브스>의 경쟁사들이 터트린 소식에 대중들은 분노하고, 또 어이없어하고,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경쟁사 신문기자라는 작자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단 말이야.
우리 <포브스>는 내가 좋은 소스를 물어다가 넣어줘서 정보력이 압도적인 거고, 다른 신문이나 잡지 기자들은 정보력이 낮다는 걸 감안하면.
어떻게 엠바고가 풀린 지 겨우 며칠 만에 마티유 형이 앵발리드 병원에 누워있는 것부터 암살사건의 진상까지 싹 파헤칠 수가 있는 건지.
나로서는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경쟁사가 초탄을 제대로 쏘아 올려 대중의 관심을 제대로 끌어주었으니, 다음은 우리 <포브스>의 차례.
에베르가 테러 주동자로 낙인이 찍히고 온 매체가 달려들어 에베르를 ‘천하의 개새끼’, ‘극렬 반동분자’, ‘과격파 또라이’라는 몽둥이로 흠씬 패도 아직까지 일부 과격한 노동자들은 에베르를 추종하고 있었다.
“공화국 만세! 에베르 만세!”
“부르주아를 처단하라! 공화국 만세!”
“우우우! 부패 언론은 에베르 선생에 대한 선동을 중단하라!”
저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싹 다 때려 부수고 부르주아 배때지를 열어 포식하자!-라는 말이 얼마나 탐스럽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을 봐주면 그게 무법천지 매드맥스지, 현실인가?
“생쥐스트 편집장님. 며칠 전 따놓은 인터뷰부터 싹 특종 1면에 실어서 뿌리세요.”
“예, 사장님.”
이삭의 민족 잡지사에 있는 윤전기가 우르릉-소리와 함께 세차게 톱니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대변자!! 자크 르네 에베르!! 사실은 삽 한 번 손으로 쥐어 본 적 없다? <포브스> 생쥐스트 편집장 밀착취재!]
[극장 레 퓌블리크 지배인. ‘자크 르네 에베르는 극장의 골칫거리였다. 항상 극장에 오시는 손님들의 지갑을 털질 않나, 이상한 원고를 가져와서 연극으로 공연해달라고 하질 않나. 아주 개···(검열됨)가 따로 없었을 정도!]
[밤에는 손님의 주머니를 터는 좀도둑꾼, 낮에는 노동자들을 선동해 암살을 꾀하는 테러리스트!! 에베르의 두 얼굴은 도대체 언제부터??]
[모기 에베르! 처음에는 미용사 연인의 피, 그 다음에는 손님들의 피, 마지막은 노동자의 피를 빨아 생활하다!!]
“에, 에베르 선생님이 그럴 리가 없어!”
“이 병신아, 경찰에서도 그러고 <인민의 벗>도 그러고 <포브스>까지 그러는데 아직도 그 도둑놈을 믿냐? 퉤! 삽으로 땅도 안 까본 새끼가 노동자 운운은 무슨!”
“아주 개새끼가 따로 없구만!”
“그 새끼가 우리 배에 모기 입을 꽂기 전에 그 놈을 쳐 죽여야 돼요!”
그렇게 노동자니 뭐니 운운하던 자가, 실상은 남들의 배에 빨대를 빨아 생활하던 추악한 놈이었다니!
처음에는 나보고 거짓 언론이니 선동이니를 부르짖던 노동자들도, 하나하나 증거가 다 까발려지면 질수록 기세를 잃어버렸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어차피 정답은 정해져 있는데.
어때요 여러분? 그렇게 여러분 옆에서 여러분을 부추기던 그 사람은 사실 손에 땀 한 방울 안 묻혀 본 범죄자새끼였답니다?
그 범죄자 놈을 두둔하면 여태껏 피땀 흘려 공장 기계 돌리던 선량한 여러분은 병신이 된답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채찍으로 등짝만을 후려칠 수도 없는 일, 나와 재무부는 서둘러 근로노동법이라 불리는 노동자를 위한 일련의 법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인민의 벗>, 기욤 재무총감 단독 취재!]
왜, <포브스>가 아니라서 놀랐나?
나도 <포브스> 몰아주는 건 한계가 있단 말이지. 그거 독과점이에요! 독과점!
이럴 때는 적당히 여러 언론에 얼굴도 좀 비쳐줘야 ‘유착’이니 ‘독재’라니 그런 위험천만한 단어로부터 안전할 거 아니야.
“안녕하십니까, 각하. 편집장 장 폴 마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때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참 흉흉한 세상이지요. 하지만 국민의 신임과 의회의 신임을 받아 이 재무총감 자리에 오른 사람이 밖이 조금 위험하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각하, 정말이지 훌륭하십니다!”
“그것보다, 편집장께서는 이번 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셔서 절 찾아오신 거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각하.”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축인 뒤에 말했다.
“에베르 그 작자는 분명히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이자 선량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 마시는 모기이지만... 과거 먼 동방의 한 성인은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무슨 말인가요?”
“어떤 사람이던 세 명이 지나가면 그 중 하나에게는 꼭 배울 것이 있다.”
“오호...”
“에베르는 평생 감방에서 썩을 못된 놈이지만, 그 자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준 것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이지요.”
<인민의 벗>의 편집장, 장 폴 마라는 내 입이 움직일 때마다 수첩에 빠른 속도로 글을 적어나갔다.
“사실 우리 재무부에서도 노동자들의 문제는 이미 한 번 걸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편집장님, 빵 1파운드가 몇 수인지 아십니까?”
“대략... 8수에서 10수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이 하루에 버는 돈으로는 하루에 빵 1파운드를 사고 나면 거의 남지도 않아요. 거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뭐냐. 빅맥지수였나? 21세기에는 그것도 있지 않나.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해서 빅맥을 하나 사먹을 수 있느냐.
“우리 재무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명백히 전시입니다. 러시아군이 언제 우리 땅으로 쳐들어올지 모르고, 이번 테러사건과 같이 공공의 안전이 아직도 위협받는 지금.”
잠깐 뜸 한 번 들이고.
“저와 재무부는 잠시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이 정책을 전후로 미뤄두기로 했었습니다. 편집장님도 알다시피, 정책이란 건 발표되는 순간 찬반으로 나뉘어 사회적으로 달변들이 오고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흉흉한 지금, 누가 봐도 상당히 격한 논쟁이 펼쳐질 정책을 발표한다면...”
“위험하지요. 각하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집장님도 알다시피 우리 이삭의 민족 사에 재직하는 분들은 상하고하를 막론하고 시중에서 일반 노동자들이 받는 돈의 배 이상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연 노동자들의 처우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 절대 아니지요.”
“저는 정말 참담한 심정입니다 편집장님.”
“이해합니다, 각하.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약속드리겠습니다, 전후에, 사회가 평온하게 유지되면 그 어떤 노동자도 눈물 흘리지 않을 그런 세상을 만들겠노라.”
장 폴 마라는 그저 묵묵하게 눈물을 흘리며 내 말을 적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