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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전쟁 속의 경제인 (3) (124/341)

전쟁 속의 경제인 (3)

1791년 9월 20일.

헤센 방백국, 프랑크푸르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는 침대에서 일어난 지 어언 세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까지도 세면대에서 제 얼굴을 연신 들어다보기 바빴다.

혹시라도 턱에 미처 면도하지 못한 털이 있을까?

몇 번이고 씻었다지만 혹시 몸에서 냄새라도 날까?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제거하고자, 마이어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제길, 말은 자신 있게 했다만... 후우.”

마이어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도 그럴게 상대방이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나. 듣기로는 두 왕을 갈아치우고 다음 왕인 왕세자까지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하는 권신(權臣)이라던데.

그래, 혁명정부 재무부 총감 겸 이삭의 민족 사장, 기욤 드 툴롱 말이다.

헤센 방백작의 금고지기 겸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난 마이어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로, 이 드넓은 세상에 잘난 사람은 꽤나 많다는 것.

젊은 나이에 정치인? 안 될 것 뭐 있나? 당연히 될 수 있다!

당장 윌리엄 피트 그 자만 해도 스물넷에 영국 수상과 토리당 당수를 꿰차지 않았는가.

젊은 나이에 사업가? 이것도 안 될 게 뭐 있나? 당연히 될 수 있다!

제임스 와트의 동업자인 매튜 볼턴(Matthew Boulton)도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을 만들고 영국 제일의 잡화상이 되지 않았는가.

두 번째로 깨달은 건, 정치인이나 사업가나 죄다 제 속에 마녀의 새카만 고양이 한 마리씩은 키운다는 것.

영국의 수상은 거대한 동맹국들을 위해서 작은 동맹국 폴란드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걸 방조하고 있고.

매튜 볼턴은 돈이 복사가 되게 만들어주는 인간 파운드 복사기 제임스 와트가 러시아 제국의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하게 갖은 술수를 써 영국에 남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치인과 사업가, 그 둘을 모두 섭렵하는 사람이라... 그게 과연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맞나? 사람이라는 범주에 ‘기욤 드 툴롱’을 넣어도 될까?

마이어는 기욤 드 툴롱, 그 프랑스인 젊은이의 속에 새카만 고양이가 과연 몇 마리나 들어있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면대에서 입을 헹구고, 마이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예아네테, 살로몬, 나단! 아빠 나간다!”

“““네에!”””

마이어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치마를 손으로 잡고 온 장녀 예아네테였다. 그러고 보니 기욤 그 자도 예아네테와 동갑내기라고 했던가.

“아버지, 지금 나가세요?”

“그래. 어머니와 동생들 간수 잘하고. 특히 나 없을 때 살로몬하고 나단 그 녀석들 놀러나가지 말고 회계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닦달 좀 해주거라.”

“얼마나 걸리시나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대강 일주일 정도.”

“알겠어요. 집은 제게 맡겨두시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냐.”

마이어는 자신을 향해 꼬박 고개를 숙이는 딸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문을 열고 저택을 나섰다.

“로스차일드 경, 바로 출발하면 될까요?”

“그렇게 해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마이어와 마부가 마차에 오르고, 곧 덜커덩 소리와 함께 말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이어는 창가에 몸을 기대,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눈으로 쫓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돈을 꽤나 쏟았을 법한 저택들이 즐비한 프랑크푸르트 시청 근교가 높은 가을 하늘과 더불어 마이어의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융성한 신성로마제국의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답다고 해야 하나, 대다수의 저택은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의 제국 명문가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고급 저택들 가운데, 유일하게 소박함을 제 매력으로 내세우는 한 채의 저택이 있었으니, 바로 헤센 방백국의 오랜 금고지기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 소유의 저택이었다.

돈을 발라 번쩍거리는 졸부의 저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아껴서 방백국 봉신으로서의 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딱 보기 좋게 소박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저택은, 유대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 가톨릭 일색인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코 과시하지 않되,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에 묻어가는 것이 바로 유대인, 로스차일드의 생존방법이었다.

***

신성로마제국, 트리어.

“우쭈쭈. 우쭈쭈. 일루 와봐 일루!”

“에헤이, 총감님!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조금 더 상냥하게!”

“상, 상냥하게? 전 충분히 상냥한 거 같은데요?”

“좀 더 진심을 담아서!”

아니, 이 이상 더 어떻게 진심을 담아서 해? TV동물농장도 날 보면 쌍따봉을 치켜 올려주겠다.

나는 다시 한 번 쪼그려 앉은 뒤, 조그마한 과자를 손으로 내밀었다.

“우, 우쭈쭈. 고양아 이리 와봐! 여기 까까있다, 까까!”

“하아악!”

“으헤에엑!!”

몸길이 삼십 센티에 달하는 포식자의 노호와도 같은 울부짖음에, 나는 그만 손에 든 과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씨... 귀여운 거 빼면 고양이란 생물은 죄다 성격에 장애가 있는 건가. 왜 재무부 공무원들하고는 잘 놀다가 나만 오면 하악질이야 하악질은.

“큽. 크흡...”

“어허. 다들 웃지 마세요. 총감님께서 부끄러워하시지 않습니까!”

“······.”

젠장할, 나름 재무총감인데 이러다간 내 드높고도 근엄한 이미지가 땅에 처박히겠어. 내가 어? 왕년에는 의회에서 왕이랑 막고라도 뜨고 그랬다고! 어?! 알아!?

“흠흠. 저는 먼저 들어가서 미리 내일 치까지 해놓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절대 재무부 사람들이 날 놀린 거 때문에 삐져서 그런 게 아니다. 해야 할 걸 미리미리 해 놓으려하는 거지. 이래봬도 내가 초등학교 때 구몬 숙제 한 번도 안 밀려본 사람이다, 이 말이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무실로 향했다.

“총감님, 벌써 휴식 끝나셨습니까?”

“예, 뭐 고양이들이 전 거들떠도 안 보더라구요. 그런데 쟤는 뭡니까...?”

“아, 쟤요? 밖에서 보면 불운의 징조라지만 집 안에 들이면 길조라고 하지 않습니까. 잠깐 들여보내줬습니다.”

“예에...”

얼마나 될까. 삼십 센티? 사십 센티?

내 소중하고 안락한 사무실 한복판에 검은 맹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 우쭈쭈. 까까 먹을래?”

“······.”

이런 이 자식도 날 싫어하는 건가.

나는 결국 손에 남은 과자를 사무실 구석으로 던졌다.

“자, 저기 맛있는 거 있어. 어서 먹으러 가주면 안될까?”

맹수는 내 갸륵한 정성에 감동받았는지, 몸을 돌려 내가 던진 과자를 향해 네 발을 옮겼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잉크병을 열어 깃펜의 촉을 다시 잉크병에 담갔다.

깃펜이 잉크를 머금는 이 몇 분간의 시간,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료하다.

내가 원래 이 시대 사람이면 이게 나쁜 지도 모르고 그냥 쓰겠는데, 이미 현대에서 제트스트림를 써 본 나로서는 정말 욕이 나올 지경이다.

볼펜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거람. 나오기만 해봐라, 바로 만든 회사 풀매수에 들어가야지. 아, 아직 1700년대니까 대충 나 죽고 한 오십년쯤은 지나야 나오려나?

잠깐만. 그러면 난 죽을 때까지 이 쓰레기를 써야하는 거야? 으윽. 너무, 너무 괴로워. 제발 모나미라도 좋으니 하늘에서 하나만 떨어져주면 안 될까.

“냐옹.”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 야, 너 왜 다시 돌아왔냐?”

검은 고양이는 폴짝 뛰어 내 무릎에 올라오더니 그대로 제 몸을 내 무릎 위로 뉘었다.

“이야, 집에 들어온 검은 고양이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던데. 총감님 횡재하셨는걸요?”

“횡재는 무슨... 무겁기만 한데요.”

“이 참에 한 마리 키워보시지요. 벌써 스물이나 먹으셨는데 아직까지 장가도 못 가셔서 적적하시지 않습니까.”

“······조언인지 언어폭행인지.”

열여덟이면 장가가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내 연애사업에 왜 이리 관심들이 많으신지. 내가 안 가고 싶어서 안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기회가!

한참 속으로 신세한탄을 계속하던 그 때, 한 사환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각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말입니까? 누구인데요?”

“헤센 방백작이 보낸 사절이랍니다.”

“헤센? 아, 프랑크푸르트 말이군요.”

집 앞으로 옆 나라 군대 수만 명이 지나다니면 확실히 불안할 만도 하지. 예의 상 잠깐 얼굴만 보고 돌려보내면 될 문제구만.

“사절이라는 분, 지금 응접실에 있습니까?”

“아니요,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각하. 여기로 올려 보낼까요?”

“먼 길 온 사람한테 그럴 수는 없죠. 제가 직접 내려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내 무릎에 앉은 녀석을 들어 땅에 내려놓은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자꾸 따라오냐, 너?

“하하, 총감님. 그 녀석 총감님이 맘에 드나 본데요?”

“에휴. 네 맘대로 해라.”

***

“처음 뵙겠습니다, 재무총감 각하. 그보다 이렇게 기다려주시다니, 정말 황공할 따름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먼 길 오신 분인데, 이건 예의지요.”

젊은 프랑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이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이어 또한 프랑스인이 내민 손을 그대로 맞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소문으로는 교활하고 표독스러운 자처럼 들리더니, 막상 만나보니 꽤나 의외였다. 그냥 동네에 한두 명씩 있는 명석하고 젠틀한,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젊은이 아닌가.

젊은이는 악수가 끝나고 자리에 앉더니 마이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커피가 꽤나 맛있답니다. 아, 미처 물어보지를 못했군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라고 합니다. 헤센 방백국의 금고지기이자 금융···.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잠시... 죄송합니다. 정말 실례지만 성이 로스...차일드 맞습니까?”

마이어는 속으로 긴장을 삼키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예에... 그러시군요?”

젊은이의 미간이 삽시간에 찌푸려졌다.

설마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대인 가문이어서 그런가? 마이어 자신이 유대인이라 불쾌한 건가? 가톨릭 일색의 프랑스인이긴 하지만, 독실하다는 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이어는 속으로 다시 한 번 애간장을 태우며, 젊은 프랑스 행정부 대표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쳐다보았다.

- 당신, 유대인입니까? 하, 예수님을 죽인 민족따위와 할 말은 없습니다.

- 유우우우대인? 유대인 주제에 지금 가톨릭교도 앞에 당당히 가슴팍을 내미는 거요? 뭐지? 죽여달라는 건가?

제발 그 둘만 아니어라. 제발, 제발.

그러나 그 마이어의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건지, 왠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젊은이의 무릎에 떡하니 제 몸을 눕혔다.

젠장. 불길함의 상징 검은 고양이라니 장난하는 건가? 이게 야훼의 뜻인가? 제발 몸 성히 집에 돌아갔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이어의 귓바퀴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저와 일 하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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