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전쟁 속의 경제인 (2) (123/341)

전쟁 속의 경제인 (2)

“3소대는 얼마나 받아가야 하나?”

“총원 마흔 둘이니 한 상자 받아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마티유 소령님.”

“알겠네, 저 짐마차에서 한 상자 꺼내가게나.”

“예!”

4군 참모장교 프랑수아 마티유 소령이 분주히 보급품 재고 수량에 이런 저런 글자를 써넣는 동안, 부사관과 병사들은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로 파리에서 온 나무상자를 서둘러 들쳐 멨다.

[이삭의 민족 군납담배 / 1000개입]

“중사님!! 어서, 어서! 열어주십쇼!”

“그아아아앗! 당장 담배를 내놓으시란 말입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병사들은 이제 눈이 돌아가, 니코틴의 부재 때문에 부들거리는 손으로 부사관의 팔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알겠으니까 좀 기다려봐! 으차!!”

달카닥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상자가 열리고, 아름다우며 고혹적인 자태의 하얀 막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소리를 나지막이 내질렀다.

비록 평범한 사람들이 피우는 순한 파이프 담배가 아닌, 썩은 치즈와 염장고기를 먹는 뱃사람들이나 피울 법한 막담배였으나. 수 주 간의 강제 금연으로 눈이 돌아가 버린 건장한 사내들에게 그런 잡스러운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오...!!”

“중, 중사님! 혹시 독이 들어있을지 모르니 제가 먼저 피워보겠습니다!”

“무슨 소리! 상관이 되어서 병사들을 위험에 내몰 수는 없지! 내가 먼저 피워보겠다.”

“젠장할...”

칙칙-!

성냥을 잡은 검지손가락으로 따스한 기운을 전해주던 노오란 불꽃이, 하얗고 기다란 막대 끝으로 제 몸을 옮겨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게 한숨, 크게 들숨.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던 온몸이 점차 나른하게 변해갔다.

“중사님, 어떻습니까?”

“뭘 물어봐? 딱 봐도 얼굴이 뿅 가버렸는데.”

중사는 이제 꼬투리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지그시 밟아 꺼트렸다.

“세상에, 군용품 중에 유일하게 제 값하는 게 있긴 했구만.”

“피, 피울 만합니까?”

“피울 만하냐고? 제군들이 직접 피워보게.”

중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상자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 실로 달콤한 맛이었다.

***

프랑스 왕국, 파리.

생 탕투안 구.

손으로 종이를 피고, 잘 빻은 담뱃잎을 손으로 들이붓고, 손으로 원통처럼 마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제조과정.

그러나 거기서 ‘손으로’라는 말을 뺀다면 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치익-! 치익-!

또다시 훈김이 허공으로 내뿜어지자, 증기기관은 기다렸다는 듯 제 속에 있는 톱니바퀴를 굴려서 잘 말린 담뱃잎을 수북하게 종이 속으로 들이 부었다.

라부아지에는 뒷짐을 진 채, 마치 갓난아기 걸음마를 보는 것 마냥 흐뭇해진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는 기계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갖 실험기구가 산처럼 높게 쌓여있던 2층 실험실은 이미 담배생산 시설로 꽉 찬지 오래였지만, 라부아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증기기관에 푹 빠져,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 실험기구들을 치우고 온갖 증기기관 모형을 가져다 놓은 게 바로 라부아지에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증기기관.

이제는 그 단어만 생각해도 가슴이 쿵쿵 뛴다.

하느님께서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셨던가. 그 말이 꼭 들어맞는 듯 했다.

처음에는 기욤 그 자가 자신의 목에 목줄을 건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목줄이 아니라 지적호기심을 충족하고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리처드 트레비식과 윌리엄 머독, 이게 다 그 영국에서 온 귀인들 덕이었다.

- 윤전기 건은 끝났는데, 선생님들은 왜 귀국하지 않으십니까?

- 아, 기욤 사장님께 못 들으셨나보군요. 저희는 와트 사와 이삭의 민족 사 간의 협력을 통해 ‘증기로 가는 이동수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 증기로 가는... 이동수단?

-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백 명을 태우고 증기로 가는 이동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장님께서는 ‘증기기관차’라고 부르던데...

세상에... ‘수백 명을 태우고 증기로 가는 이동수단’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말보다 빠르고, 구름의 속도마저 쫓을 수 있는 이동수단!

라부아지에는 그 말을 들은 첫 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워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라부아지에는 이제껏 증기기관을 못 다룬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 마냥, 하루 종일 특허청과 실험실을 왔다갔다하며 증기기관에 대한 모든 걸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들어온 담배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기욤의 지시가 더해지자, 라부아지에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미쳐 날뛸 수 있었다.

뉴커먼 선생의 증기기관부터 시작해서 요즘 영국인들이 쓴다는 방적기 연구까지, 라부아지에는 이삭의 민족에서 받는 모든 연구비와 월급을 다 이 증기기관을 만들기 위해 때려 박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담배생산 기계.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기계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아마 혁명으로 인해 근 2년 간 제대로 된 창조와 발견을 못 한 탓일까? 목마른 사람이 물 한 방울을 맛보고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라부아지에는 더 큰 욕심이 들었다.

단순히 더 알고 싶다는 지적호기심일지, 앞으로 다가올 증기의 시대에 ‘라부아지에’라는 이름을 남기고 싶은 공명심일지는 몰라도 라부아지에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그... 라부아지에 선생님? 만나기로 약속했던 분이 오셨습니다.”

“오! 듀퐁! 좋은 소식 고맙구나! 어서 내려가야지!”

“예, 선생님.”

라부아지에는 제자, 듀퐁의 부름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자, 현관에 서있는 중년 남성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 라부아지에 선생님이십니까?”

“반갑습니다, 선생! 라부아지에라고 합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라부아지에는 남자의 손을 맞잡고 세차게 흔들며 얘기했다.

“화약국장께서 이 미천한 사람을 찾아주시다니, 저야 말로 감사하지요.”

“그 무슨! 증기자동차를 발명한 니콜라 퀴뇨 선생이 왜 미천한 사람입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할 얘기가 아주 많습니다! 하하!”

라부아지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퀴뇨라는 남자를 응접실을 향해 데려갔다.

영국인들이 증기기관차라는 이동수단을 만들어 역사에 남겠다면, 우리 프랑스인들은 증기자동차라는 이동수단을 만들어 역사에 남고 말겠다.

***

신성로마제국.

쾰른 선제후국, 본.

“라파예트의 3군이 본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뒤무리에의 2군은 쾰른을 향해 우회 중이라는 정찰 보고입니다. 게다가 2군이 다른 군보다 치고 들어오는 기세가 더 매섭습니다, 공작 각하.”

귓가에는 불운한 소리만이 들려온다.

“음... 뤼헬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4군이 에른스트 폰 뤼헬 장군께서 이끌던 용병 연대을 누르고 뉘르부르크를 점거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거 야단났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잠시 홀로 시간을 보내도 되겠나?”

“““예, 공작 각하.”””

총사령관의 명에, 프로이센군의 사령부는 삽시간에 텅텅 비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텅 빈 사령부에서 홀로, 지리멸렬하게 퇴각하는 아군의 형세를 다시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뉘르부르크에 놔둔 미끼부대는 보나파르트의 4군에 의해 격멸, 쾰른에 펼친 묄렌도르프 장군도 수세.

프랑스군은 맹렬하게 본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아직까지는 프로이센의 땅에서 싸우는 게 아니니 더 퇴각을 허용해도 되었고,

두 번째로 브라운슈바이크는 패퇴하고 있었지만 프로이센은 아직 국가적인 비상사태는 아니었다. 상비군을 모두 한데 끌어 모으면 프랑스의 공격이야 막아볼 수 있으니.

다만 프랑스와 함께 공멸할 뿐. 프랑스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브라운슈바이크는 눈을 본에서 프로이센의 땅, 클레베를 향해 옮겼다.

클레베까지는 약 이주일의 거리. 지연전을 펼치며 시간을 끌어본다면 이주 반. 그 이주 반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할까.

어차피 러시아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나. 프로이센은 출병했고, 프랑스군에게 손해를 끼쳤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강화협상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울었다.

만약 클레베를 할양해준다면 프랑스도 만족하지 않을까.

작은 도시 클레베를 주고, 잃은 영토인 클레베 대신 폴란드의 서부를 한 움큼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프랑스도 뇌라는 게 있다면 더 이상의 피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사령부 밖을 향해 외쳤다.

“폐하께 전령을 보내게. 강화 협상을 준비하시라고.”

***

신성로마제국.

헤센 방백국, 프랑크푸르트.

“프랑스군이 곧 우리 방백국 근교를 지날 터인데, 혹여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소이까?”

헤센 방백작 빌헬름 1세는 근엄한 어투로 궁전에 모인 백관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프랑스 인들은 프로이센 인들을 쫓는 것이지, 우리 신성로마제국에는 별다른 위협을 가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마 별 일 없을 듯 싶습니다. 백작 각하.”

한 문관이 나서 얘기했지만, 빌헬름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프로이센을 뒤쫓는 프랑스군의 기세가 대단하지 않다던가.

카이저라면 봉변을 당할 일을 극복하는 게 덕목이겠지만, 어쩌다가 봉변을 당할 건덕지는 최대한 줄이는 게 바로 제후가 가질 최고의 덕목 중 하나였다.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프랑스군의 확답을 받는 것이 낫지 않겠소? 만에 하나 우리 헤센 방백국의 국민들이 이름 모를 불한당들에게 곤욕을 당할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는 게 좋을 터이니.”

“그렇다면 지금 트리어에 있는 기욤 드 툴롱 프랑스 왕국 재무총감에게 사절을 보내 확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사료됩니다, 각하.”

빌헬름 1세는 의자의 팔걸이를 탁-치면서 말했다.

“그것 참 묘안이구료. 그러면 누구를 사절로 보내야 할지...”

제 2의 리슐리외라는 기욤 그 자를 상대하려면 믿을만한 사람, 그리고 배짱이 큰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빌헬름 1세의 미간이 고민으로 찌푸려졌다.

그 때 한 사람이 빌헬름 1세의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각하, 제가 가겠습니다.”

“오, 마이어 암셀 경!”

마흔 일곱의 금융가이자 헤센 방백국의 오랜 봉신, 마이어 암셀이었다.

빌헬름 1세는 그제서야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라면 내 충분히 믿고 맡길 만하지! 내 선물을 내줄 터이니, 기욤 드 툴롱 그 자에게 안전에 대한 확답을 가져오길 바라오.”

“예! 이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백작 각하의 뜻을 이루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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