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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라인 강을 향해 (1) (118/341)

라인 강을 향해 (1)

“““프랑스 국민 만세! 혁명 만세! 보나파르트 대령님 만세! 국민방위대 만세!”””

아르투아가 이끌던 왕당파가 개같이 멸망해버리고, 우리 국민방위대는 다들 손에 내가 푼 와인을 든 채로 모두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루시 형,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왔어? 이리 와서 한 잔해!”

“고맙네, 기욤.”

용맹하게 적의 엉덩이를 들이박아 깨부순 우리 에마뉘엘 드 그루시 씨가 사령부로 들어오자, 나는 와인을 가득 따른 잔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그러나 그루시는 내가 준 와인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모두들 웃고 떠드는 사령부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왜 그래? 왜 그렇게 죽상이야?”

그루시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재무총감 각하.”

“참나. 각하는 무슨... 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이 사람이 왜 이런담?

“각하, 아르투아 백작 말입니다.”

“아, 놓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람 일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도 있는데 뭐.”

“소관이 죽였습니다.”

“······에?”

이건 또 뭔...

“······농담이라기에는 당황스러운데?”

“군법에 의해 처벌하시겠다면 말없이 받겠습니다, 재무총감 각하.”

“······.”

저 눈. 평소의 그루시가 아니라, 가끔 나오는 진지한 그루시다.

나는 말없이 파이프를 꼬나물고 주머니의 성냥갑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언제 다 떨어졌는지, 성냥갑은 텅텅 비어 먼지조차 찾아 볼 수 없는 빈 곽이 되어있었다.

젠장,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나는 빈 성냥갑을 손으로 구겨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루시 ㅎ···, 아니. 에마뉘엘 드 그루시 중령. 잠시 얘기 좀 하죠. 따라오세요.”

“예, 각하.”

나는 사령부를 나와, 내 뒤를 따르는 그루시를 데리고 내 짐을 쌓아 둔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숨기시지 그랬습니까, 중령.”

“명예로운 군인으로서 상관에게 진실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각하.”

“하여간...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마차 문을 열고 그루시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다들 술 퍼마시고 반 쯤 축제를 즐기느라 바쁘니까 이렇게 외진 곳까지 들으러 오는 사람은 없을 테지.

겸사겸사 성냥도 좀 찾아보고. 아 여기 있네.

“일단 이유나 들어봅시다. 왜 아르투아를 포로로 잡지 않고 사살하신 겁니까.”

“프랑스의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프랑스의 안녕이라...”

나는 성냥갑에서 성냥 한 개비를 빼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면에서?”

“아르투아를 포로로 잡는다면, 필시 오를레앙 때와 같이 혼란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오를레앙 그 놈 때를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21세기였으면 왕이고 뭐고 바로 국가내란죄로 무기징역을 때렸을 텐데, 이 엿 같은 봉건제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괜히 마르크스하고 레닌이 새빨개진 게 아니란 말이지.

- 감히 왕 대가리를 잘라? 와 일마 이거 개또라이네?

- 감히 왕을 가둬? 와 일마 이거 도라이네?

아르투아 또한 그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밟았지 결코 쉽게 쉽게는 가지 않을 거다. 프랑스는 지금 온 유럽의 어그로를 어마어마하게 끌고 있으니 말이야.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아르투아가 비명횡사한 건 프랑스에 안정을 가져다 줬으면 줬지. 결코 실이 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아르투아의 시신은 어디 있습니까, 그루시 중령?”

“릴로 가는 길가 풀숲에 숨겨두었습니다. 각하.”

그러면 뭐, 답 나왔네.

아르투아 본인에게도 이게 더 나을 거다. 추악하게 부하들을 버려놓고 도망가다 죽은 것 보다는 장렬하고 명예롭게 전사한 게 나을 테니.

나는 파이프를 기울여 손가락으로 파이프를 톡톡 두드렸다. 다 탄 담뱃잎이 파스스-하며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아마 다들 거나하게 취해서 곧 잠이 들 텐데, 그 때 믿을만한 병사들을 뽑아서 시신을 전장에 옮겨다 놓으세요.”

“전장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루시 중령. 아르투아 백작은 치열한 전투 중에 운이 나쁘게도 눈 먼 총에 맞아 사망한 거고, 전장이 워낙 난리다 보니 우린 미처 그 시신을 찾지 못하다가 다음 날 찾게 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각하.”

***

프랑스왕국, 파리.

샹 드 마르스 광장.

“적들이 벌써 릴을 지났다고 그러지 않았나?”

“재무총감님이 이끄는 군대랑 그 왕당파 놈들이랑 아미앵 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데요!”

“발미에서 라파예트 장군님의 아군이 크게 당했다던데... 파리가 안전하긴 한 건가?”

국민의회의 정기 보고 때문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대변인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감에 못 이겨 여러 이야기를 미리 주워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웃끼리 이런 말이라도 안하면 도저히 이 싱숭생숭한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리라.

연일 마차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후줄근한 복장에 총만 든 채 전장으로 향하고, 대장간이란 대장간은 모두 징발되어 하루 종일 소총과 대포를 만들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던 수녀님들과 신부님들도, 전장으로 향해 병자와 부상병들을 간호하기 바빴으며, 시민들이 뽑고 선출한 위정자들이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했다.

항상 광장 연단에서 재미있는 말을 해주던 재무총감이 그 예이리라. 젊고 훤칠한 재무총감은 자기의 말마따나 아미앵으로 향해 적과 싸우고 있었다.

머리가 긴 여자들이 그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용으로 팔고 그 돈을 국민방위대에 기부하는 광경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

파리 시민들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실로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만큼 정부의 발표 하나 하나에 목을 맸다.

“흠. 흠흠. 아아, 주목해주십시오. 파리 시민 여러분 주목해주십시오.”

대변인의 한마디 한마디에,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국민방위대의 용맹한 활약에 아미앵과 파리를 위협하던 적장 아르투아 백작 전사! 왕당파군 완전 소멸! 대승입니다! 대승! 재무총감과 보나파르트 대령이 해냈습니다! 파리는 안전합니다, 여러분!”

다리의 긴장이 풀려 주저앉는 사람이 여럿, 기뻐서 방방 뛰는 사람이 여럿, 제각기 받아들이는 자세는 달랐지만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던 승전보였다.

대변인은 계속 이어나갔다.

“저들은 돈을 위해, 봉급을 위해 싸우지만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웁니다! 사람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가 가진 대의는 옳고, 적은 패배할 것이며,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프랑스 국민 만세! 혁명 만세! 국민방위대 만세! 민주주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시민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외쳤다.

근 1년 만에, 다시 한 번 샹 드 마르스 광장은 시민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

프랑스왕국, 마른 주.

발미.

프로이센군 사령부.

이상하다.

분명 지금쯤이면 파발이던 전령이던, 아니면 모종의 방법이던 간에 소식이 전해져야 정상 아닌가.

“······아르투아 그 자에게서는 아직 소식이 없나?”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님.”

“쯧. 하여간 제 자리 간수도 못하고 외국으로 도망친 놈 아니랄까봐. 약속을 지키지도 않는군.”

프로이센군 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부관의 대답에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발미를 지키던 라파예트의 프랑스군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프로이센군은 서로 상당한 타격을 주고받았다.

프랑스군은 1개 보병연대가 완전히 소멸했으며, 프로이센군은 가장 최정예인 브라운슈바이크 척탄엽병연대의 반 이상이 사상자였다.

믿음직한 방패가 깨져버린 프랑스군은 예비대를 투입해 시간을 벌고는 랭스로 가는 길목인 샬롱안-샹파뉴로 후퇴했고, 가장 날카로웠던 창의 날이 망가져버린 프로이센군은 추가적인 공세를 펼칠 역량을 다시 갖추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전투에 참가한 수 개 연대가 모두 사상자를 냈으니, 발미 전투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투가 되어버렸다.

아니, 정 승자를 정해야겠다고 말하면 시간을 끈 프랑스군의 전략적 승리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아르투아가 원 계획대로 텅 빈 릴과 아미앵을 함락시키고 파리 가까이 군을 움직였다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르투아가 가로막혔다면?

프로이센군의 앞에는 발미에서 팔 한 짝을 잃었지만 아직 건재한 라파예트의 프랑스군이, 뒤에는 뒤무리에라는 자가 지휘하는 낭시의 프랑스군이.

거기에 프랑스 전국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의용병들까지.

당장 애써 공략한 발미를 버리고 메츠로 퇴각하지 않으면 사방으로 몰아치는 프랑스군이 베르됭을 프로이센군의 관으로 삼아 못질을 할 판이었다.

“······부관, 정찰대를 편성해서 다시 한 번 정보를 수집해보게. 아르투아에 관한 어떤 것이라도 좋아.”

“예, 공작님.”

공작의 명령아래 프로이센군은 정찰대를 편성해 민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중사님, 이거 안 열리는데요?”

“그냥 발로 까서 부숴버리게. 어차피 우리 땅도 아니고 우리 독일인도 아니지 않나.”

“옙.”

우지끈!

나무로 만든 문이 우악스러운 군홧발에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검은 옷을 입은 독일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꺄아악!!”

“어이, 혹시 독일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소?”

“De... quoi parles-tu?”

"제기랄. 뭐라고 하는 거야? 이보게 한스. 통역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종군작가 양반 좀 데려와 보게."

“아, 그 샌님 말씀이십니까?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날 찾으셨습니까?”

“괴테 선생. 프랑스어 할 줄 아시오?”

“알다마다요.”

“이 민간인들 통역 좀 해주시오.”

“뭐라고 해드리면 됩니까?”

“아르투아 백작이나 왕당파군에 대해 뭐 들어본 것 있는지 물어봐주시오.”

“······얼마 전 정부에서 말하길 아미앵에서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령이 이끄는 국민방위대가 왕당파군을 물리쳤답니다.”

“젠장할. 아무래도 몇 군데 더 돌아봐야겠군. 괴테 선생, 함께 좀 가주시오.”

“알겠습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나,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아르투아의 군세는 아미앵에서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젊은 대령에게 패했고 아르투아 백작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

정찰대가 수집한 정보가 하나하나 모여 올라간 보고서를 읽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욤 그 자는 알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자는 처음 들어보는데. 라파예트만한 나이인가?”

“그것이... 올해 스물 두 살이랍니다.”

“스물 둘? 허, 내 딸 카롤리네보다 어린놈이라고?”

보고서를 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이!! 이 아르투아 병신새끼가! 겨우 스물 두 살짜리 애송이한테 개박살이 났단 말이야!! 지금 장난하나!”

프로이센군의 총사령관은 희번덕거리며 보고서를 저 멀리 집어 던졌다.

“전군, 지금 당장 행군 준비한다. 메츠를 넘어 프로이센으로 퇴각해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포위되어 죽을 뿐. 모든 대계가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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