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우린 무엇을 위해 싸우나 (4) (115/341)

우린 무엇을 위해 싸우나 (4)

이제 슬슬 무더운 태양빛이 땅을 데우기 시작하는 6월 중순.

프랑스왕국 보병 소령 프랑수아 마티유는 속에 열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요!”

“왜애애애!!”

“왜?! 왜애애?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미친 여자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다른 곳도 아니고 무슨 전쟁터를 따라오겠다고 그래요!”

“마티유, 나 이래보여도 바스티유 요새를 함락시킨 여자거든요!”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그리고 바스티유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혼났으면서, 아주 당당하네요!”

“흥! 몰라, 난 무조건 마티유 당신이랑 같이 갈 거예요. 그리고 적이 우리 땅에 쳐들어왔는데 두 손 놓고 지켜볼 프랑스인이 있겠어요?”

“······아, 정말 돌아버리겠네.”

마티유는 빙빙 도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전쟁의 ‘ㅈ’만 꺼내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리를 덜덜 떨 텐데, 테르바뉴 이 여자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어디서 머스킷 소총 한 정을 구해서 어깨에 메고는 한사코 마티유와 함께 가겠다고 난리였다.

아. 아니다. 이 여자는 원래도 이랬지. 자그마치 연인 몰래 바스티유 요새를 함락시킨 여자 아니었나.

“마티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곧 아미앵으로 출발이니 어서 채비하게.”

“아, 그루시 혀···. 아니 그루시 중령님.”

“에이. 여기 우리 말고 군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딱딱하게 말고, 평소처럼 부르게나. 그런데 이 숙녀 분은?”

그루시는 기병모를 살짝 들어 올리고, 테르바뉴를 향해 고개를 까닥여 인사했다.

“이쪽은 내 약혼녀, 안 조세프 테르바뉴 씨. 테르바뉴 씨, 이쪽은 내 사관학교 선배 에마뉘엘 드 그루시 중령.”

“반갑습니다, 그루시 중령님! 테르바뉴입니다.”

“아, 마티유 저 친구가 교제한다던 숙녀분이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었군요. 반갑습니다, 테르바뉴 씨. 프랑스왕국 기병 중령 그루시입니다.”

두 사람은 마티유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마티유, 왜 그렇게 죽상인가?”

“내 약혼녀가 보통 고집이 아니라.”

“······고집?”

“중령님! 들어보세요, 정상적인 프랑스인이라면 당연히 지금 전장에 나가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게 맞죠?!”

“······그렇지요?”

영문도 모른 채 그루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르바뉴의 콧대가 기다렸다는 듯 솟아올랐다.

“거 봐요, 마티유! 난 지극히 정상인 프랑스인이라니까요? 어서 날 전장에 데리고 나가 줘요!”

“······미치겠네.”

“하하, 마티유 자네가 고생이 많군. 숙녀 분, 잠시 소관과 이야기 나누지 않으시렵니까?”

그루시는 큼큼 두어 번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군인의 입장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테르바뉴 씨. 부디 제안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민간인이 전장에 있으면 있을수록, 군인은 지켜야할 게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전장에 있으면 더더욱.”

“······.”

“테르바뉴 씨의 마음은 가상하지만 우리는 전장에 나갈 군인들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돌발 상황이 발생할 여지를 주셔서는 안 됩니다. 부디 파리에 남아 마티유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중령님.”

그루시는 흐뭇하게 웃으며 마티유를 바라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내 되실 분이 아주 헌신적이군, 마티유?”

“큼큼.”

“마티유, 내 넉넉히 20분 주겠네. 숙녀 분과 불장난 한 번 할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뭐, 뭐? 이 미친 양반아!”

“어디 보병이 기병의 기동력을 넘보려 드나? 그보다 벌써 10초 지났다네, 마티유!”

비열하게 정의의 주먹을 피한 그루시는 휘파람을 부르며 병사들 쪽으로 황급히 달려 나갔다.

***

1791년 6월 중순.

프랑스왕국 베르사유.

국민의회.

“릴의 국민방위대가 전해준 소식입니다! 아르투아가 이끄는 왕당파군 1만이 국경을 넘어 릴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칼레의 해군육전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파리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급보입니다! 릴 함락! 피난민들이 아미앵과 생캉탱으로 밀려들고 있답니다!”

적이 파리를 향해 다가온다.

“라파예트 사령관은! 라파예트 사령관을 다시 파리로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파예트 사령관과 켈레르만 장군은 발미에서 프로이센군과 교전 중입니다! 다른 방안을 찾아보세요!”

“수도권에 남아있는 국민방위대가 얼마나 되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령이 이끄는 병력 4천이 랭스에 주둔 중입니다.”

“젠장, 턱도 없구만.”

불안을 잊으려 하는 탓일까, 이렇다 할 생산성조차 없는 이야기를 의원들은 계속 주워섬겼다.

그러던 때. 그 자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의원 여러분.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입니다. 우리 혁명정부의 운명이 경각에 달한 지금, 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령이 충분한 병력과 물자를 가지고 적과 맞설 수 있게, 의회에서 전폭적인 지원법안을 통과시키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총감! 적은 1만 정예군입니다! 징집령을 내린다고 해도 죄 신병들일 텐데, 보나파르트 대령이 신병들로 적에게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나폴레옹이잖습니까. 당연하고말고요.”

아 내가 손에 쥔 패가 SSSSR급 사기 카드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이자 육군 판 이순신 장군인데 왜 쫄아.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이 행정부 대표로 긴급징집 및 징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소이다. 어서 빨리 표결에 들어가야 하오!”

“의원 721명 중 찬성 721명, 만장일치로 10만 징집령 법안과 기타 법안들이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국민의회의 법봉이 나무판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자. 법 제정은 끝났고, 이제 이빨 좀 털어볼 시간이구만.

“혁명정부와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의 이름으로 전국에 있는 대장간 및 제철용 화로를 가지고 있는 모든 기관은 전시 동안 긴급 징발됩니다. 대장장이와 장인들도 모두 징집대상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파리에 인접한 적을 격파한 후, 모든 징발령과 징집령은 소멸합니다. 전시에 국가에 의해 소실한 재산 또한 후에 무조건 전액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총을 만드는 건 좋은데, 재료값은 어떻게 합니까. 총감님!”

“국채를 드리죠.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꾸실 수 있는 채권입니다. 다만 만기 시까지 기다리면 원금의 3퍼센트를 얹어 드리겠습니다.”

“오오...”

“전국에 있는 수도원, 특히 의료시설을 겸한 수도원의 수도사 및 수녀들께 알립니다. 혁명정부 국민의회 의원 엠마뉘엘 시에예스 샤르트르 대주교가 알립니다. 전 프랑스의 아들들이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부디 잠시라도 국민방위대에 합류하여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해주십시오. 성자와 성부, 성령의 이름으로 신께서 프랑스를 보우하시길 아멘.”

나를 시작으로 시에예스 사제님,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발로 뛰기 시작했다.

“국민의회 의원, 탈레랑입니다. 전국 마부조합에게 알립니다. 마부들은 전국에서 모병된 병사들을 파리로 신속히 실어다 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현재 정부의 모든 역량이 전쟁에 집중하고 있기에, 모든 삯은 후에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프랑스의 여인들이여, 전장으로 나간 우리의 남편, 아들, 부모, 형제를 위해 모금합시다! 그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한 숙영을 할 수 있게 다들 조금씩 돈을 모아주세요! 저, 테르바뉴부터 나서겠습니다!”

“국민방위대 임시수도방어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령입니더. 오늘부터 전국에 있는 국민방위대 모병소에서 모병을 시작할 예정입니더. 병사들은 소지품을 지급받고 파리를 향해 준비된 마차를 타고 서둘러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더.”

프랑스 동남부 프로방스부터.

“모병에 지원하러 왔습니다.”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앙드레 마세나. 나이는 서른 셋.”

“혹시 군 경력이 있으십니까?”

“보병 준위로 제대했습니다.”

“오! 그러시군요! 마세나 씨는 오늘부터 지원보병대 대대장이십니다. 옆 모병소에서 계급장과 명령문을 받고 파리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프랑스의 심장 파리.

“에두아르 모르티에, 릴에서 왔습니다. 당장 날 군에 넣어주세요! 왕당파 놈들이 내 고향을 짓밟고 있단 말입니다!”

“진, 진정하시고... 혹시 군 경력이 있으십니까?”

“군 경력은 없지만 읽고 쓸 줄은 압니다.”

“그렇다면 소위 계급을 드리겠습니다. 간단한 신상명세와 설문 후 집결지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앙투안 드제 중령, 대령으로 승진 및 귀하를 지원병연대 연대장으로 임명합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상사, 니콜라 장드듀 술트를 신설 지원보병대 중위로 임관한다. 병사들을 훌륭히 이끌도록.”

“예! 명령 받들겠습니다!”

프랑스 남부 제르 주, 레크튀르까지.

“이름?”

“장 란.”

“직업은?”

“염색공입니다.”

“글 읽고 쓰는 법은 아시오?”

“어느 정도는 압니다.”

“옆 모병소에서 군복과 소지품을 받아가시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지원병대대 소위니 몸가짐을 바르게 하시오.”

“알겠습니다.”

파리를 지키고자, 혁명을 지키고자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

프랑스왕국 솜 주.

아미앵 근교.

국민방위대 임시수도방어사령부.

“왼발! 왼발!”

“““헉, 허억!”””

“3대대 거의 다 왔다!”

“더, 더는 못 뛰어...”

“다리가 이상해... 내 다리! 내 다리!”

“우웩! 우웨엑!!”

또 다시 한 무더기의 병사들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 3지원보병대대는 1시간 35분.”

“2보병대대보다 살짝 빠른데?”

“그래도 기껏해야 10분 차이 아이가.”

찰칵.

나폴레옹은 회중시계로 시간을 잰 뒤, 수첩에 각 대대 당 행군 시간을 정확하게 적어 내려갔다.

“쯧, 개판이고마. 겨우 10km 구보에 1시간 반 넘게 쓰고.”

“뭐 어쩔 수 있나.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 군인의 ㄱ자도 모르던 사람들인데.”

땅 파먹던 사람들, 물건 떼다 팔던 사람들한테 갑자기 총 하나 들려줬다고 UDT마냥 특수부대가 될 수는 없지 않나.

“쓰읍... 그건 맞제. 그런데 기욤이, 니는 와 여기 있노?”

“나? 그으을쎄?”

뭐... 위인 나폴레옹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한 번 보고 싶기도 하고, 또 내뱉은 말도 있다 보니까?

나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사람들한테 ‘여러분의 옆에서 행군하겠습니다!’라고 폼나게 말했는데 파리에 처박혀 있으면 보기 안 좋잖아. 안 그래?”

“하여간 미친노마가 맞다 니는.”

“형도 그루시 형이 혼자 참모를 맡는 것 보단 내가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아?”

“흠흠...”

“침묵은 긍정의 의미라던데... 혹시 그루시 형이 못 미덥다거나 그런...?”

“큼큼큼! 아 날씨가 되게 차다, 안 그러니 기욤아?”

이상하다? 왜 이 양반 입에서 갑자기 표준어가 나오지?

“자, 시시껄렁한 얘기는 여까지 하고! 니도 알다시피, 이제 승패는 딱 하나에 달려 있데이. 아니냐, 기욤아?”

“형이 직접 훈련시킨 4천명?”

“그러제. 금마들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전황이 바뀔 기다.”

확실히 병력들의 합류로 나폴레옹 형이 지휘하는 부대는 이제 1만 5천명의 대군으로 개편되었다. 다만 그 병사들 중 대부분이, SCV한테 곡괭이 대신 소총을 들려준 수준이라는 게 문제지만.

“······계획이라도 있어?”

나폴레옹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망치와 모루를 바꿔 봐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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