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우린 무엇을 위해 싸우나 (2) (113/341)

우린 무엇을 위해 싸우나 (2)

“······.”

“소위님, 이거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육감이 좋지 않아요.”

“······중사가 그렇다면야 신중을 기해야겠군. 분대 당 둘 씩 뽑아서 정찰을 맡긴다. 하베르트 중사가 직접 인솔하도록.”

“예, 소위님.”

부사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프랑스인들이 밭의 구분을 위해 쌓아놓은 야트막한 언덕, 보카쥬의 뒤를 따라 몸을 숨긴 병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프랑스인들 중 대부분은 머스킷을 쓴다지만, 혹시라도 눈 먼 총알에 저격을 맞을라, 하베르트 중사는 허리를 반이나 접은 채, 군모는 왼손으로, 절그럭절그럭하는 소총은 오른손으로 쥐고 서둘러 움직였다.

“하베르트 중사님, 소위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분대 당 둘 씩 차출해서 전방개척에 나선다. 너랑 너, 날 따라 나와라.”

“······젠장, 왜 하필 접니까?”

“중사님, 저는 저번에 배수로도 깠지 말입니다.”

“그러라고 월급 받는 거 아니었나. 둘 다 입 다물고 따라 나온다 실시.”

하베르트 중사가 손가락으로 뽑은 두 병사는 보카쥬에 기대놓았던 소총을 다시 손에 쥐고 구시렁거리며 일어났다.

그렇게 네 개 분대를 더 돌며 열 명의 병사를 더 차출한 하베르트 중사는, 모두를 소대장 앞으로 데려갔다.

“중사, 준비되었으면 레종빌레라는 저 마을 앞까지 개척 시작하게.”

“예, 소위님.”

아직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새벽. 열 댓 명의 인영이 보카쥬 뒤에서 슬그머니 나와, 소총을 꼬나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카쥬 하나를 넘고, 다시 앞에 있는 밭을 넘기를 두어 번, 조그마한 방앗간이 드디어 수색대의 눈동자 안에 들어왔다.

“풍차가 돌아가는 것 보니 방앗간 같군. 여기를 넘으면 레종빌레라는 마을이다. 다들 총기와 수류탄 상태가 괜찮은지 한 번 씩 더 살펴보고 이동한다.”

“““예, 중사님.”””

철커덕 거리는 금속음이 나길 잠시, 수색대는 다시 야음을 틈타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스무 개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향해 번득였다.

그 눈동자들의 주인 중 하나인 하베르트 중사는, 긴장으로 입 안이 쩍쩍 메말라 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급박한 전투라면 그 무엇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련만, 이렇게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상황은 정말 사절이었다.

그래도 그런 긴장감 때문일까, 하베르트 중사가 이끄는 병사들은 아직까지 그 누구 한 명 다치지 않고 방앗간 앞 울타리까지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뭐, 어깨에 별이나 검은 막대기를 가로로 걸쳐놓고 메츠의 임시 사령부에 계신 높으신 분들에게는 비록 지도에서 점 하나가 티끌만큼 전진한 것이겠지만. 하베르트 중사가 거기까지 생각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사님, 방앗간 안으로 들어갑니까?”

“들어가야지. 내가 선두에 선다. 다들 수류탄 꺼내.”

“예, 중사님.”

하베르트 중사와 열 명의 병사들은 허리춤에 메달아 놓았던 수류탄과 발화용 심지를 꺼내, 왼손에 단단히 쥐었다.

10미터.

9미터.

8미터.

고요한 방앗간을 향해 군화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 딛을 때마다 심장이 그 배로 전신을 향해 피를 짜냈다.

그리고 수색대가 7미터에 다다른 순간.

방앗간 창문으로 길쭉하게 나와 있는 여러 개의 막대기가, 때마침 달을 가리던 구름이 사라진 탓에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Scheiße!! 전부 숙여!!”

“예?”

하베르트 중사는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총신이 부러지지 않게 왼쪽으로 몸을 순식간에 눕히며 외쳤다.

타타타탕!!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매캐한 화약내음이 순식간에 방앗간 앞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아악!! 아악!!”

“커...커...”

“끄르륵...”

하베르트의 뒤를 바짝 따르던 병사 하나는 팔에 총을 맞은 듯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중열에 있던 병사는 하필이면 폐를 맞은 듯 숨을 더 이상 내쉬지 못했다. 후열에서 운이 나쁘게도 목을 맞은 병사는 목에 피가 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셋이 쓰러졌다고 해도 아직 수색대는 하베르트 중사까지 여덟.

하베르트 중사는 자신처럼 땅에 엎드려 총알을 피한 병사들에게 외쳤다.

“수류탄 점화!! 안으로 수류탄 다 던져 넣어!!”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발화용 부싯돌이 불을 튀기자, 수류탄의 심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점화완료!! 투척!!”

“투척!!”

여덟 개의 수류탄이 나선 호를 그리며 방앗간의 창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Merde!! Grenade!”

콰쾅!!

방앗간 안에서 프랑스인들이 급하게 외치는 소리도 잠시, 수류탄이 기폭 되는 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땅을 울렸다.

“백병전 준비!!”

“백병전!!”

하베르트 중사와 병사들은 허리춤에서 대검을 꺼내들어 소총 앞에 서둘러 끼워 넣었다.

곧, 방앗간 문이 열리고 프랑스인들은 수류탄 때문에 머리가 웅웅 울리고 비틀거림에도 불구하고 총을 치켜든 채 수색대에게 달려들었다.

“Viva la nation! Viva la peuple!”

“쏴! 프랑스 개구리새끼들 면상을 날려버려!”

프랑스군이 먼저 쐈으니 분명 지금은 장전시간일 터, 지금 같은 근거리라면 백발백중 명중탄을 낼 수 있었다.

타타탕!

“아악!”

“컥!”

“억!”

아까 프로이센군이 쓰러졌듯, 이번에는 프랑스인들이 쓰러졌다.

“돌격! 우리 프로이센 척탄엽병의 힘을 보여줘라!”

“와아아!!”

“이 개구리 새끼들 배를 따주마!”

“Casse-toi connard!!”

"Mourir!"

"Viva la Révolution!"

***

1791년 5월 하순.

프랑스 왕국, 메츠.

프로이센군 임시사령부.

“아군 척탄엽병연대가 베르됭 앞, 레종빌레에서 교전했다는 소식입니다. 피해는 경상자 마흔, 중상자 열. 전사자 열다섯입니다.”

“······소령님, 옮길까요?”

“옮겨야지.”

“예. 알겠습니다.”

사령부에서 가장 짬을 덜 먹은 젊은 소위는, 또다시 분주하게 지도 위의 말판을 이리저리 옮겨댔다.

달카닥.

지도에 있던 프로이센군 말판 앞에, 또다시 프랑스군의 말판이 놓였다.

벌써 몇 번째인지.

베르됭으로 가는 길목마다, 마을마다, 하다못해 조그만 오두막 하나마다 프랑스군이 머스킷과 총검을 들고 튀어나왔다.

프로이센 본대가 군을 움직여 길을 뚫으려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 때마다 낭시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이 메츠 남부에서 산발적인 공세를 펼쳐 들어왔다.

물론 말이 공세지, 그냥 집적거리는 수준이지만. 아예 낭시의 프랑스군을 무시하고 이동한다면 언제든지 뒤통수를 후려 맞을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마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히히 못가!’라고 외치며 늘어지는 것 마냥, 낭시의 프랑스군은 프로이센 장교들의 심기를 계속 건드렸다.

낭시를 치기에는 이미 프랑스군이 낭시 전체를 돈과 자재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투입해 거의 요새화시켜놓은 지 오래였다.

아니. 돈을 쏟아 부은 게 아니라 웬만한 부호의 배를 갈라 그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쓴 듯. 곳곳에 참호, 포좌는 기본이요. 땅을 파서 성형요새에 준하는 수준으로 방어력을 갖춘 도시가 바로 낭시였다.

그 곳에 알보병을 그대로 꼬라박는다면 그게 병신이지 사람이겠나.

똑 똑 똑

싸늘함만이 감도는 프로이센군의 사령부 안, 유일한 소리는 총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탁자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는 소리뿐이었다.

“미치겠군.”

“““······.”””

총사령관의 한 마디에, 프로이센군 장교들은 아무 말 없이 침만을 삼켰다.

“그래, 낭시 지휘관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그 혁명군 앞잡이 놈 말이야.”

“예, 샤를프랑수아 뒤무리에입니다.”

“뒤무리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얼굴이 짜증 때문인지 잠시 움찔했다.

“더 이상 못 봐주겠군. 겨우 5천명에게 우리가 지금 얼마나 붙들려있는 건가.”

“적이 유격전을 펼치며 아군의 발을 묶고 있는 터라...”

“낭시에 있는 놈들에게 시간을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베르됭과 랭스에 집결할 프랑스군의 숫자가 늘어난다. 안 그런가?”

“맞습니다, 사령관 각하.”

“그러면 결론은 났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의자에서 일어나 직접 지휘봉으로 말판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결전지는 정해져 있다. 베르됭이 제일 유력하지만, 적이 시간을 더 벌기 위해 우리를 끌어들인다면 발미라는 저 마을에서 맞붙을 테지.”

라파예트, 영국 해적 놈들 몇 번 잡았다고 기고만장한가보군. 우리 프로이센과 정직하게 붙어서 이길 수 있는 군대는 없을 텐데.

프리드리히 대왕과 함께 중유럽 곳곳에서 대가리를 깨버리고 다닌 백전노장답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평범한 장교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판을 하나하나 옮기고, 빼내고, 다시 또 새로운 말판을 툭툭 지도에 집어넣었다.

“묄렌도르프 장군.”

한참 혼자 지도를 이리저리 만지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판을 계속 옮기면서 부사령관을 불렀다.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3천을 주겠소. 낭시의 적에게서 메츠와 후위를 방어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공작.”

“좋아.”

메츠에 입성한 이후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은 총사령관이 씨익 웃었다.

“전군에 알린다. 배불리 먹이고 군장 챙겨서 급속행군을 준비하도록. 목표는 파리. 목적은 불바다.”

***

프랑스왕국, 랭스.

국민방위대 임시사령부.

“사령관님! 왜 전 안 데려가시는 겁니꺼!”

“보나파르트 대령, 당신은 좋은 장교입니다.”

“그럼 더더욱 저와 제 부대를 데려가셔야지예!”

나폴레옹은 얼굴을 부르르 떨며 라파예트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급자가 이러면 겉으로 화를 내기도 마련이지만, 라파예트 사령관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말할 뿐이었다.

“보나파르트 대령. 전투경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대령은 이미 차기 장군감이에요.”

“그래도...!”

“대령. 대령은 지원병훈련연대의 연대장입니다. 대령의 부대에 있는 병사들은 이제 막 입대한 젊디젊은 병사뿐이지요. 그걸 자각해주십시오, 대령.”

“······.”

나폴레옹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렸을 적, 코르시카 촌놈이라고 불리던 자신에게 드디어 전 프랑스에 이름을 떨칠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 기회를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니.

라파예트는 잠시 나폴레옹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령.”

“······예.”

“보나파르트 대령.”

“예, 사령관님.”

“난 국민을 지키는 국민방위대 사령관입니다. 뭣도 모르는 신병들을 사지로 내밀 수는 없어요.”

“······알겠습니더.”

이해한다. 이해하지만... 그래도 나폴레옹은 가슴 속에 남은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파리와 랭스의 안전을 맡기겠습니다. 보나파르트 대령.”

“예, 사령관님.”

라파예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군모를 머리에 쓴 채, 사령관실을 나왔다.

“보나파르트 대령이 많이 아쉬워합니까, 사령관?”

“어쩔 수 없지요. 신병들을 사지로 내몰 순 없으니. 켈레르만 장군님, 준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사령관.”

켈레르만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아들었다.

“전군, 발미를 향해 행군한다. Viva la nation! Viva la peu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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