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 (2)
한 나라의 재무총감이 되고 나서 좋은 거라면, 들어오는 정보의 질이 남달라졌다는 것이다.
- 르브렁 장관님. 혹시 영국에 신문이나 잡지 있습니까?
- 예. <타임즈(The Times)>라고, 런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문이 하나 있습니다. 총감 각하.
- 타, 타임즈요? ···그러면 혹시 이번에 프랑스로 온다는 영국 사절단에, 그 신문사 쪽 사람을 한 명 더해서 와달라고 요청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 뭐... 딱히 큰일은 아닙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 같은 사업하는 사람끼리 이래 저래 나눠보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 알겠습니다, 총감 각하. 영국 대사관에 문의하도록 하지요.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직 18세기인 덕에 타국에 조그마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는 거?
- 총감 각하. 이거 좀 껄끄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 예? 무슨 일인데요?
- <타임즈> 신문사의 사장 말입니다. 존 월터라는 자인데, 지금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 ···예? 설마 누굴 찔렀다던가, 그런...?
- 그런 건 아니고. 요크 공작, 프레드릭 왕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2년 형을 받았답니다.
- 명예훼손이요? 아니, 미치겠네. 누구는 야설을 쓰다 신성모독죄를 받질 않나. 언론인들은 죄다 나사가 하나씩은 빠져있는 것 같네.
- 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요청을 철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영국 정부에 사면령을 부탁해볼까요. 누구에게 해를 가한 흉악범은 아니어서 사면을 부탁하면 해줄 것 같긴 합니다만.
- ···그래도 됩니까?
- 뭐, 안될 것 없지요.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총감 각하! 각하 덕에 제가 이렇게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일어서서 이러지 마시고, 앉아서 얘기하시죠. 어차피 시간은 많지 않습니까.”
“예, 각하!”
오십 대 아저씨가 내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이 상황이 바로 그 결과물.
월터 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급스러운 의자에 턱-하고 앉았다. 물론 나 또한 맞은 편 의자에 앉았고.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 프랑스 대사관에서 나온 직원에게, 기욤 재무총감 각하께서 절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차디찬 감옥 바닥에 앉아,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하늘에 계신 신께 감사드렸는지!”
1785년, 런던의 작은 인쇄소를 인수한 후. <타임즈>를 창간한 사업가이자 신문기자이자 언론인은 감정이 북받치는 지 눈을 글썽이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록 저는 프랑스인, 월터 씨는 영국인이지만 어떻게 보면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언론인 아닙니까. 업계종사자끼리 상부상조하는 거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이건 제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포도주입니다. 보르도 산이나 프로방스 산처럼 최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입맛에는 잘 맞더군요. 한 잔 마셔보시지요.”
“예, 각하.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나와 월터 씨는 잔을 기울여 포도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각하. 각하께서 감옥에 있는 절 사면해주시기까지 하면서 이 사람을 만나보고자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아, 그거 말입니다. 우리 이삭의 민족 잡지사와 월터 씨의 <타임즈> 신문사 상호 간에 제안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나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21세기 미국의 저명한 신문사, 미디어 그룹으로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와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이 있다면, 영국에는 <타임즈>와 <가디언(The Guardian)>을 꼽을 수 있겠지.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협력관계를 착실히 다져놓는다면 수백 년 뒤까지 쓸 만한 좋은 커넥션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제안하시려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역시 사업 얘기가 나오니 눈빛이 딱 바뀌는 게, 제대로 고른 것 같네.
“우리 합자회사 하나 세우지 않으시렵니까?”
“합자...회사 말씀이십니까?”
“예.”
“···제 <타임즈>와 이삭의 민족의 <포브스>와 <막심>은 신문사 아닙니까, 무역회사도 아닌데 합자를 하다니요.”
“흐음. 담배 한 번 피우면서 얘기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상관없습니다. 각하.”
“배려 감사합니다.”
나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영국 수상이신 윌리엄 피트 수상께서, 우리 <포브스>와 <막심>의 영문판에 대해 싹 금수조치를 때리셨더군요. 덕분에 우리 잡지사에서 손해를 꽤나 봤습니다. 도버 해협을 건너던 배들에 실렸던 2주치 잡지가 싹 불쏘시개가 됐으니 말입니다.”
젠장, 그게 다 얼마짜리인데. 적어도 수백 리브르는 될 걸. 생각할수록 뼈아프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월터 씨에게 합자회사 안을 제안해드리는 겁니다. 우리 프랑스는 이제 검열을 상당히 완화하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할 테지만, 영국은 뭐...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검열을 강화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라도 있을 위험부담을, 영국인과 프랑스인 간에 합자회사를 통해 구렁이가 담 넘듯이 넘어가시겠다는 말이시군요. 실로 묘안이십니다.”
월터 씨는 진지한 눈빛과 함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욤 총감 각하와 이삭의 민족이 얻을 이익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타임즈>가 얻을 혜택은 무엇이지요?”
“간단합니다. 월터 씨는 이제 합작회사를 경유하여, 미국에 <타임즈>를 팔아치울 수 있다는 것.”
“···허, 구미가 당기는군요. 각하.”
내 말에 월터 씨의 눈동자에 총기가 번쩍이며 감돌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 사이의 관계? 말해 뭐해? 최악 중 최악이다. 아직 서로 총칼을 맞대고 싸운 독립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안 지났으니 당연하지.
민간 사이의 무역은 다시 시작하긴 했어도. 두 나라는 아직까지 캐나다 식민지를 두고 국경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이이자, 서로 간의 금수조치 선언은 일상인 사이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 모두 영어를 쓰는 나라 아닌가. 말이 안 통하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이기 마련이지.
다만, 영국인이 찍은 신문을 어떤 미국인이 보려하겠나. 뭐? 영국 라이미(Limey)새끼들이 찍은 신문? 네놈들 차랑 같이 보스턴 항구 밑바닥에 처박아주마! - 라고 하면서 바다에 떨어뜨릴 거다.
그런데 프랑스는? 미국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호의적 감정은 날이 가면 갈수록 우상향을 찍고 있다.
독립전쟁 때, 군대를 파병해서 도와준 것도 있고. 또 미국의 독립허가도 베르사유에서 잉크를 찍어주었으니 당연한 결과지.
“프랑스 회사 이름으로 신문을 팔면 잘 팔리면 잘 팔렸지,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월터 씨. 아닌가요?”
“동의합니다, 각하. 우리 <타임즈>는 합자회사 설립에 성실히 협력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월터 사장님.”
“하하,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각하!”
나와 월터 씨는 손을 마주잡고 함께 웃었다.
***
1791년 2월 20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 10번지.
런던다운 우중충한 비구름 아래, 차가운 겨울비가 쏟아지는 날.
윌리엄 피트 수상은 응접실에 앉아 주재프랑스 특명전권대사가 보낸 편지를 쭉 읽어내려 가고 있었다.
“‘아울러 프랑스의 현 정부는 우리 영국과의 대화와 타협에 상당히 호의적이며, 이는 인도와 뱅골에서 우리 영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됩니다. - 서덜랜드 공작, 레비슨 고워. -’ 나쁘지 않은 결과군. 안 그런가,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 아니겠나."
“하여간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싱겁다니까.”
“뭐, 언제는 안 그랬다고.”
토리당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친우, 윌리엄 피트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걸로 프랑스 건은 마무리 지을 수 있겠어. 자네도 나도 이제는 저 지긋지긋한 유럽지도 좀 안 볼 수 있겠군. 아무리 봐도 미적으로는 아시아-인도 쪽 지도가 더 보기 편하단 말이야.”
“인도 쪽 지도에는 영국 땅 밖에 안보이니 당연히 보기 편하겠지, 안 그런가. 피트?”
“뭐, 그만큼 자네와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아니겠나.”
“다른 건 몰라도, 열심히 일하긴 했지.”
10년 지기 친구답게, 두 사람은 웃으면서 찻잔을 기울였다.
“하, 차는 역시 중국산이 최고 같지 않나? 젠장, 이 차 때문에 항상 무역에서 적자를 보니 원. 악마도 이런 악마가 따로 없어.”
“하하, 맞는 말이긴 하지.”
“차라리 중국에 전쟁을 걸어서 무역권을 뺏어버려야 하나?”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군, 자네. 영국인 1700만 명으로 중국인 4억을 이기려면 한 명당 몇을 상대해야 하는 건지는 알고 있나? 난 친구로 윌리엄 피트를 뒀지, 레오니다스 왕을 둔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농담이야, 농담. 1년 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다보니 농담에도 그렇게 발끈하게 되는 건가, 윌버포스?”
피트는 오랜만에 느긋한 오후를 즐기며 친우의 말에 웃으며 답할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응접실로 들어와 피트와 윌버포스에게 말했다.
“저기, 수상 각하? 외교부에서 급한 연락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외교부에서? 외교부에서 갑자기 왜?”
“일단 먼저 서둘러 가는 게 어떤가, 피트. 어차피 하원의원이 외교부에서 할 일은 딱히 없으니, 나는 산책 좀 하다 뒤따라가겠네.”
“그렇다면, 먼저 실례하도록 하지.”
피트는 옷걸이에서 외투와 모자를 서둘러 입고는 문을 열고 수상 관저를 나섰다.
차가운 빗방울이 모자와 외투에 툭툭 하며 떨어지길 잠시, 피트 수상은 검게 칠한 세련된 마차에 올랐다.
“마부, 어서 출발하지. 외교부로.”
“예, 수상 각하. 이랴!”
마부의 힘찬 채찍질과 함께 출발한 마차는 웨스트민스터를 지나, 영국 외교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피트는 모자를 다시 쓰곤, 비 사이를 빠르게 뛰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인데 절 이렇게 찾으셨습니까?”
“피트 수상! 이제라도 오셨으니 다행이군요! 옷 털 시간도 부족합니다, 어서 이리로.”
외교부 장관은 옷에서 빗방울을 털어내던 피트를 데리고 외교부 깊숙이 자리한 응접실을 향해 발을 옮겼다.
“무슨 일입니까, 장관?”
응접실로 들어온 피트는 외교부 장관을 쳐다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가 보낸 외교문서입니다.”
외교부 장관은 별 말 없이 피트에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넸다.
“···공식적? 아니면 비공식적?”
“둘 다입니다.”
“골치 아픈 내용이겠군요.”
피트는 미간을 찡그리고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