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빛나거나 미치거나 (10) (106/341)

빛나거나 미치거나 (10)

1790년 10월 23일.

프랑스 왕국, 중남부 오툉 시.

“호외요, 호외!! 호외요오오오!!”

오툉의 열네 살짜리 신문팔이소년 수아송은, 오늘 아침 ‘이삭의 민족’ 잡지사 오툉 지부로부터 떼어온 잡지 수십 부를 겨드랑이와 양팔에 끼곤, 시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고.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길래, 세상이 떠나갈 것 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느냐, 이놈아.”

“손님! 혹시 잡지 좋아하십니까? 딱 봐도 관상이 ‘나 꽤나 배웠소.’에 고급스러운 티가 팍팍 나시는데!”

자작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은 늙수그레한 노신사가 수아송에게 묻자, 수아송은 몇 년간 이 바닥에서 허투루 구른 게 아니라는 듯, 조그마한 입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내뱉었다.

“흠흠. 네가 보기에도 내가 좀... 그러냐? 허허, 이 녀석 꽤 보는 눈이 있구나. 기분이다, 내 한 부 사주마.”

빙고. 역시 오늘도 다년간의 신문팔이로 단련된 수아송의 말빨은 틀리지 않았다.

“혹시 잡지 종류는 무엇이 있느냐?”

“예, 여기 막 떼어온 따끈따끈한 <포브스>, <막심>, <늙은이 뒤셴>까지 다 있습니다! 원하시는 걸로다가 바로 드리죠!”

수아송은 손으로 잡지들을 촤르륵 펼쳐 내보이며 노신사에게 말했다.

“흐음. 그러면 <포브스> 한 부 주려무나.”

“<늙은이 뒤셴>은 안 보시나요?”

“뭐... 그것도 재미는 있다만, 나오는 내용이 너무 과격하고 신랄해서 내 취향은 아니더구나. 걸핏하면 욕설에, 어휴. 딱 <포브스>정도가 재미있게 읽기 좋아.”

“혹시 <포브스> 사시는 김에, <막심>은 어떠신... 악!”

“예끼, 이놈! 네가 보기에는 내가 그런 음탕한 걸 볼 나이로 보이느냐? 고얀 녀석이로고.”

노신사는 눈앞에 있는 꼬마의 정수리를 지팡이로 딱-소리가 나게 때리고는 혀를 끌끌 찼다.

“아무튼 잘 읽으마. 이건 잡지 값하구, 방금 딱밤 때린 값 더한 거라고 생각하려무나.”

“네, 네! 안녕히 가십쇼, 손님!!”

이상하다. 분명 옆 동네에서 같이 신문 파는 친구가 말해주기론, 누가 봐도 안 좋아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막심>을 많이 산다고 하던데.

“쳇. 그래도 지금처럼 조그마한 혹이랑 은화 한 닢이면 열 번도 바꾸겠다. 오늘은 좀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데?”

수아송은 손에 남은 은화 몇 닢을, 허리춤의 돈 주머니에 고이 넣은 후, 다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호외요! 호외!! 오를레앙의 재판 날짜가 잡혔답니다!! 호외요!!”

***

1790년 12월 13일.

프랑스 왕국, 파리.

전(前) 고등법원. 현 혁명법원.

“““우우우!!”””

“““국민을 담구려한 오를레앙 놈에게 재판이 웬 말이냐!!”””

“““죽!! 여!! 라!! 죽!! 여!! 라!!”””

“자, 그러면 지금부터 피고. 루이필리프 드 오를레앙 2세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배심원들께서는 잠시 정숙해주십시오.”

땅. 땅. 땅.

고등법원 판사들이 입던 벨벳 법복 대신, 국민의회 의원들이 즐겨 입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판사는 법봉으로 나무판을 세 번 내리쳤다.

“검사 측,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 의원.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판사 님.”

로베스피에르 의원은 두꺼운 종이뭉치 더미가 담긴 수레를, 법정 한 복판으로 가지고 나와 하나 씩 읽어 내려갔다.

“우리 검사 측이 기소한 첫 번째 죄목입니다. 국민의 지지와 의회의 지지로 국왕이 된 피고는, 그 모든 지지를 저버리고 같은 프랑스 동포를 총칼로 말미암아 해하려한 대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에 우리 검사 측은···.”

“···헛소리 그만 하고, 어서 판결이나 내리시지.”

“피고. 정숙하세요. 아직 검사 측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숙? 정숙은 무슨.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군.”

헝클어진 머리와 날 선 눈빛 때문에 마치 광인이 된 형상으로 피고석에 앉아있던, 190센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말했다.

“이거 모두 보여주기식. 요식행위 아닌가? 이딴 알량한 소꿉놀이 말고, 어서 내 목을 자를 단두대나 가져오시게.”

“···피고, 정숙하세요.”

“흥, 피고는 무슨. 변호사도 없는데 애초에 이게 재판이긴 한 건가? 답해보시오, 재판장. 대답해보란 말이야!”

“피고!! 당장 자리에 앉으시오!!”

광인은 이제 벌떡 일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 광인을 멈춘 것은, 한 남자의 말이었다.

“어이. 오를레앙 ‘씨’? 사람들이 불편해 하잖습니까. 자리에 앉으시죠.”

“···기욤, 네 놈이구나. 하기야 이런 고약한 짓을 벌인 거라면 네 놈같이 불경한 생각을 가진 놈밖에 더 있겠느냐?!”

불경하다니, 거 말이 좀 심하시네.

“어이 미친놈씨. 아까부터 자꾸 변호사, 변호사 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프랑스 인을 모두 적으로 돌려놓고서 프랑스 인이 자신을 변호해주길 원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정 변호사가 가지고 싶으시면 독일인이나 영국인을 데려오시는 게 나을 거요. 그보다 살인미수범이 피해자보고 왜 자기 변호 안 해주냐고 말하다니. 이거 되게 코메디구만. 고맙습니다, 오를레앙. 당신 덕에 다음 주 <포브스> 기사는 두둑하게 건졌네요. 사람들이 참 많이 웃겠습니다.”

“이..이...!!”

어머머 무서벼라... 사람 얼굴이 저렇게나 벌게질 수 있는 거였나? 이제 보니 오를레앙 씨는 백인이 아니라 홍인이셨군.

“거, 만에 하나 일이 틀어졌으면 당신은 우리 혁명파를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총살 했을 게 뻔한데, 요식행위라도 법정에 세워주는 걸 감사히 여기쇼. 안 그렇습니까, 뒤무리에 장군님?”

“그럼 당연하지요!! 총감 각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감히 프랑스 인민을 해하려 든 죄인이, 어디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한단 말입니까! 이, 뒤무리에! 총감 각하와 재판장께 간곡히 요청합니다! 피고의 입에 재갈을 물려 더 이상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귀 건강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 불한당 역적새끼들이!!”

어휴 뜨끈뜨끈하셔라.

“거기, 서기하시는 분? 지금 이거 다 적고 있죠? 나중에 필사본 저한테 좀 넘겨주세요.”

“예? 아 예! 총감 각하.”

“자, 우리 피고 분도 조용해지셨으니. 다시 재판 재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재판장님.”

“···감사합니다, 총감 각하. 그러면 다음으로···.”

***

1791년 1월 22일.

프랑스왕국, 파리.

샹 드 마르스 광장.

“쓰으읍, 후우.”

“평소랑 달리 담배까지 피시고, 미리 약주까지 하시다니. 왜요, 긴장되십니까?”

“···긴장? 글쎄, 내 일평생 이 일을 하면서 긴장을 안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올해로 쉰 두 살의 중년 남성. 샤를앙리 상송 드 롱발은, 파이프를 톡톡 털어내 불을 끄고 답했다.

“그렇다기엔 평소와 꽤 많이 다르신데요. 상송 선생님.”

“이거 들켰군. 젊은 친구가 아주 감이 좋아.”

“······왕 목을 치는 것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허허. 그것보다는 자르는 게 처음 잘라보는 거니...”

젊은 경비병의 말을, 상송은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몇 시나 됐는가.”

“이제... 곧 정오입니다.”

“그래, 가 보자고. 사람들이 달려드는 거, 잘 막아주게나.”

“하하. 한두 번 해보나요.”

상송은 건물에서 나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는 광장 한 복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혁명 만세!! 시민 만세!!”””

“““Viva la France!! Viva la France!!”””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의 소리에 이미 익숙해진 상송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천천히 처형대로 이어진 나무 발판을 하나씩 하나씩 밟아 올라갔다.

“으흐..흐흐흐...”

탕플 탑에서부터 검은 천을 머리에 쓴 채로 끌려온 죄인은 이따금씩 실소를 터트릴 뿐. 머리를 상송의 손이 이끄는 대로, 단두대 안으로 순순히 집어넣었다.

“안녕하시오. 나는 샤를앙리 상송 드 롱발이라 하오. 귀하의 목을 가져가겠소이다.”

“아, 상송! 자네의 이름은 내 익히 들어 알고 있네. 프랑스 제일의 처형인이라지? 흐흐흐.”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 있소이까?”

“혹시 여기 기욤 그 놈이 있나?”

“···귀하의 옆에 서 계시오.”

“그래?! 그거 참 다행이군! 나는 정적을 죽여 놓고도 그 피를 보기 싫어 도망가는 겁쟁이에게 죽기는 싫거든!”

“아, 거 말 더럽게 기네.”

“총감 각하, 얘기하실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아뇨. 그냥 시끄러워서 한 마디 했습니다.”

상송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끼를 들었다.

“불행히도 총감 각하께서는 귀하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것 같소.”

“흐흐. 총감! 내 목을 가져가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아나? 이 프랑스 전 국토가 불에 탈 거다!! 독일인들이 파리를 짓밟고, 베르사유를 태울 것이야! 니 놈의 그 잘난 고향, 툴롱도 영국 놈들의 깃발 아래 활활 타겠지!! 으흐흐흐. 그래! 내 목을 가져가라! 후세에 나는 측은한 국왕이 될 테고, 네 놈은 이 프랑스를 불태운 장본인이 될 테니.”

“예예, 알겠습니다요. 그... 상송 경? 빨리 잘라주시겠습니까?”

“예. 총감 각하.”

상송은 단두대의 줄을 향해, 도끼를 힘껏 휘둘렀다.

덜커덕!

단두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뭐, 뭐야?”

오를레앙은 검은 두건이 벗겨지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죽었다면 천국이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내가 아직도 마르스 광장에 있는 거지?

그런 오를레앙의 눈앞에, 나무로 된 머리통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뭐라 뭐라 지껄이는 저주스런 남자가 보였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오를레앙이 죽었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난 아직 살아있다 이놈!”

“시민 여러분, 이해합니다. 살아 꿈틀 거리는 이 남자가 있는데, 왜 오를레앙이 죽었느냐! 제가 그 대답을 지금부터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독한 형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형이요? 으음. 글쎄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대답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을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가장 독한 형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뭐라는 거야.

“저 멀리 러시아를 넘어 동방에는, 팽형이라는 매우 끔찍한 형벌이 있습니다. 사람을 삶아 죽이는 형벌이죠. 아, 말만 들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동방인들도 똑같이 생각했나봅니다. 나중에는 삶는 게 아니라, 대충 따듯한 물에 몸만 담궜다 나오는 식으로 죄인을 처리했거든요. 아, 그러면 그게 왜 형벌이냐구요? 그 사람은 이제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팽형을 당한 죄인은, 그 누구와도 대화해서 안 되고, 필담조차 나누는 걸 금지합니다. 즉, 살아있되. 죽은 것이죠. 생각해보시지요. 나는 뻔히 살아 움직이는데, 그 누구도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세상을!”

“죽여라...”

“우리 국민의회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를레앙을 죽이되, 죽이지 말자고 결의했습니다. 자, 여기 오를레앙의 머리입니다. 시민여러분. 오를레앙은, 이 시간 부로 더 이상 살아있지 않습니다.”

“죽이란 말이야!! 죽이라고!! 기욤 네 이놈!! 하느님께서 가만 보고 있으실 것 같으냐!!”

“““와아아!! 기욤! 기욤! 기욤!”””

“자, 이제 경비병들은 저 ‘시체’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설마 시체와 말을 하는 강령술사나 마법사가 있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각하!”””

“죽여라! 제발 죽이란 말이야!!”

날 죽여 달란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