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빛나거나 미치거나 (8) (104/341)

빛나거나 미치거나 (8)

1790년 8월 30일.

프랑스 왕국, 파리 외곽 12구.

생모르 데 포세.

“제군들! 파리가 보인다! 다들 목에 꽃목걸이 하나씩 받아 걸 준비는 됐나!”

“그렇습니다, 뮈라 중위님!”

“좋아! 그래야 내 중대원답지! 모두 오늘 밤까지 콧대 높은 파리 아가씨들 한 명씩은 무조건 꼬시도록! 만약 못 꼬시고 병신새끼마냥 숙영지로 털레털레 돌아오는 놈은 내가 직접 그 놈을 발가벗겨서 내 말 뒤에 묶은 뒤에, 파리 시내를 친히 관광시켜주겠다!”

“““예! 뮈라 중위님!”””

어젯밤과 오늘 새벽, 야영지에서 광나게 옷을 손질하고 각을 잡으며 군화를 닦은 병사들은, 중대장의 말에 실실 웃으며 외쳤다.

“허허, 장병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사령관.”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웃는 걸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네요. 켈레르만 장군님.”

“그러면 오늘은 병사들 외출제한을 해제할까요?”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목숨을 걸고 사지를 들어갔다 나온 친구들 아닙니까.”

“허허, 알겠습니다. 사령관.”

“그나저나... 환영인파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군요.”

라파예트는 모자를 벗고는, 하늘에 높이 들어 흔들었다.

“라! 라! 라파예트! 기! 기! 기욤 드 툴롱!”

“시민의 방패, 국민방위대 만세!”

“혁명 만세!!”

“반란군과 오를레앙을 단두대로!”

수많은 시민들이 밖으로 나와 삼색기를 흔들며, 눈에 보이는 모든 군인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꺄아악! 사랑해요!”

“읍읍으브븝! 파리의 여인들이여! 이 조아킴 뮈라의 입술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네! 으하하하하!!”

“꽃 한 송이 더 목에 거세요!”

“아니, 전 이미 세 개나 걸었는데요?”

“아이고, 그러면 한 송이 더 걸어도 되겠네!”

“상, 상병님. 저 꽃 때문에 앞이 안보이지 말입니다...”

국민방위대원들의 목에 꽃이 산더미처럼 걸리고, 곳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적의 공격에 방위대원 중 입술을 강제로 빼앗기는 자들도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8월 30일. 화창하고 더운 여름날, 온 파리가 웃음으로 가득 찼다.

***

라파예트 사령관은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환영행사가 여러모로 성대하군요. 총감.”

“하하, 제가 힘 좀 썼죠. 왜,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럴 리가요. 영예를 기껍게 여기지 않는 군인이 세상에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총감.”

“선물 받는 사람이 좋다고 얘기해주시니 이거 참, 제가 드리는 보람이 있네요.”

그래, 이 환영행사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을 썼는데. <포브스>랑 <막심>에 동시에 행사광고도 넣고, 발로도 꽤 뛰면서 모금까지 했단 말이다.

물론 진짜 뛴 건 내가 아니라 플로리앙 씨와 페시옹 씨긴 한데. 뭐, 내가 하자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내 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분.

“그런데 말입니다, 총감.”

“예. 라파예트 사령관님.”

“그... 뒤무리에 저자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겁니까?”

“아. 저 인간이요?”

나는 라파예트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러분! 임이 무엇입니까! 임은 바로, 우리 혁명파가 이끄는 자유롭고 평등한 낙원인 것입니다, 여러부우우운!”

“······그런데, 뒤무리에 장군. 당신은 왕당파 아니었습니까?”

“왕당파라니! 그 무슨! 이 인간, 뒤무리에!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를 선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왜 오를레앙 그 놈의 근위대장을 맡은 거죠?”

몇몇 시민들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무리에를 의심섞인 눈으로 쳐다보자, 뒤무리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왜냐니! 이 인간 뒤무리에! 너무나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생각이란 무엇이냐! 바로 우리 프랑스 시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가! 이 뒤무리에가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헤매던 것이었습니다!”

“흐으음...”

“그래서 이 뒤무리에는 결심했습니다. 적지에 들어가, 직접 적의 심장을 도려내자고! 시민 분들의 안전을 지키면서 오를레앙과 그 반혁명분자들을 색출할 수 있는 수단은 그 뿐이었으니! 아아- 그 간악하고 사악한 오를레앙의 곁에서, 얼마나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가!”

프랑스 천진반은 사방팔방으로 번쩍이는 태양기공포를 정수리로 쏴대며 양팔을 붕붕 휘둘렀다.

이야. 저러려고 승전행사 참석한다고 그런 거였어? 정치력을 감지하는 스카우터나 센서 같은 게 있으면 몇 점이 나올지 한 번 보고 싶네.

“뒤무리에 장군이 유능한 사람이긴 한거죠? 사령관님?”

“······분명히 병참부 차장 시절에 만났을 때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병참부 차장 시절이면 얼마 전 말하시는 거죠?”

“한... 10년은 넘었을 겁니다. 총감.”

대체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유능했던 군인이 저런 아가리 파이터가 된 거람.

어휴 역시 정치는 무서워. 착한 기욤은 그런 거 안 해서 정말 다행이야!

***

같은 시각.

베르사유 궁전, 국민의회.

“······하아. 총원 721명 중, 찬성 341표, 반대 323표, 기권 57표로. 어느 쪽도 과반을 넘지 못해 재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는 투표함을 닫으며, 한숨소리와 함께 입을 열고 말했다.

의회장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에이 씨... 때려쳐!! 벌써 몇 번째야 이게!!”

“오늘까지 합하면 거의 삼일 째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다들 알고는 있는 거지요?”

“···젠장할, 애초에 오를레앙 그 놈 목을 치면 전쟁이요! 전쟁! 당신들 다 죽고 싶어서 그래?!”

“전쟁 때문에 죽으니 마니,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기욤 총감과 라파예트 사령관 아니었으면 지금쯤 이미 다 죽었을 거라는 거 모르오?”

시끄러운 의회의 한편에서, 시에예스는 말없이 파이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쓰으읍. 후우. 미라보 의원님. 지금 이게 몇 번째 투표지요? 전 열 번째 이후로 세질 않아서.”

“열다섯 번째요. 시에예스 의원.”

땅딸막한 미라보는 시에예스의 옆에 턱-하고 앉으며 말했다.

“열다섯 번이라... 힘들군요.”

“다들 힘들만도 하지.”

“미라보 의원님.”

“왜 그러시오. 시에예스 의원.”

“미라보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오를레앙의 목을 치는 거 말이오? 아니면 다른 걸 말하는 거요.”

“당연히 오를레앙 건이지요.”

“···글쎄. 난 아직도 잘 모르겠소. 그러는 시에예스 의원도 잘 모르겠으니 내게 묻는 것 아니오?”

“하하, 이거 들켰군요.”

“시에예스 의원, 혹시 기권표를 던지지 않았소?”

“이거 들켰군요. 미라보 의원도 기권표를 던지셨습니까?”

미라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란 게 어렵군요. 정말 어려워요.”

“그래도 감수해야지 어쩔 수 없지 않소.”

“최대한 오를레앙 건을 연착륙시켜 볼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다면 로베스피에르 의원과 얘기를 해야 어떻게든지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을 거요.”

급진파 로베스피에르와 대화라.

잠깐만. 로베스피에르와 대화가 되며 동시에 머리도 상당히 냉철하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지 않나.

“기욤 그 친구를 불러서 말해 볼까요, 미라보 의원?”

“기욤 총감이라... 총감이 파리로 떠난 거. 더 이상 정치랑은 엮이기 싫다는 뜻 아니었소? 게다가 로베스피에르 의원을 만난다고 해도 일이 어떻게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잖소.”

그때, 저 멀리서 ‘그러면 이제... 열여섯 번째 투표를 실시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투표를 열여섯 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으음. 알겠소. 일리 있는 것 같으니 내 로베스피에르 의원에게 한 번 말해보리다.”

“그러면 전 파리로 가서 기욤, 그 친구와 말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수고하시오.”

시에예스는 파이프를 다시 품 안에 넣고는, 의회를 나섰다.

***

까가가각! 까가각!

촛불 하나만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컴컴한 돌무더기 안에, 누군가 돌멩이로 벽을 긁어내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곳은 파리 3구, 탕플 수도원의 탕플 탑.

까가가각!

다시 한 번 돌로 돌을 긁어내는 귀 아픈 소리가 탑 안에 울려퍼졌다.

‘프랑스 시민의 안전을 해하려 한 죄’로 수감된 죄수는, 계속 돌로 벽을 긁어내 원을 하나 더 만들어내고는 낮게 읊조렸다.

“······벌써. 여기 들어온 지도 보름이 지났는가.”

전직 국왕, 현직 죄수 루이필리프 드 오를레앙 2세는, 힘없이 차가운 돌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계속 돌을 벽에 긁어나갔다.

"흐..흐흐흫..."

홀로 15일 째 독방에 수감된 죄수 오를레앙은, 점차 정신이 이상해져만 가고 있었다.

"뒤무리에, 말해 봐라. 대체 왜 날 배신한 거지? 내가 너에게 무엇을 못 주었느냐. 내가 너에게 권세도 주었고!! 그 잘난 계급도 주었고!! 명예도 주지 않았느냔 말이야!!"

잘 쳐주면 사람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돌 벽에 억지로 돌을 찍어 그린 원에 대고, 오를레앙은 소리쳤다.

“어이!! 죄수주제에 너무 시끄럽다! 조용히 해!”

“네 이놈! 어디 지금 지엄한 프랑스의 국왕 앞에서 그런 망발을 지껄이느냐!”

“···허, 미친놈. 독방에 있더니 아주 돌아버렸구만. 밥이나 먹어라, 배식이다.”

탑문을 지키던 부사관은 혀를 절레절레 흔들며 식사를 방 안으로 넣고는,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름 전직 왕인 자신을 위해 갓 구운 빵과 빵가루를 묻혀 튀긴 커틀릿, 그리고 포도주까지 준비된 식사를 보자, 오를레앙의 목 뒤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몇 초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부사관이 사라지고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 걸 알게 되자, 오를레앙은 식사에 다가가 빵과 물을 허겁지겁 삼키기 시작했다.

“······내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내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나가 네놈들을 단죄하고 말겠다. 기욤 드 툴롱, 라파예트 질베르 뒤 모티에! 그리고 미라보! 네놈들 모두 산채로 포를 떠주마.”

오를레앙은 식사를 먹으면서도 분노에 차 중얼거렸다.

“아르투아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군대를 몰고 도착하면, 모두 내 발밑에 다시 조아리게 될 것이야. 그래. 알자스-로렌을 떼어주고 프로이센에게는 네덜란드 쪽 플랑드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준다면! 다시 재기할 수 있어.”

아르투아 백작.

그래, 비록 낭시에서 오를레앙의 가장 강력한 카드가 무력화되었어도, 아직 아르투아 백작이 이끄는 1만의 군대가, 오를레앙의 품에는 남아있었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모두들 헛된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오를레앙 또한 헛된 희망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아르투아가, 프로방스가 날 구하러 올 거다. 날 구하러...”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오를레앙은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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