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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주춧돌 (1) (91/341)

주춧돌 (1)

“끄어어억! 이게 뭐, 뭡니까 대체!”

플로리앙 씨는 경기를 일으키며 목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명 맛있어야 하는데... 으겍! 우엑! 엣퉤퉤! 크아아악! 갸아아악!”

나는 단전에 기를 모아 입에 넣었던, 케첩을 찍은 감자튀김을 겨우 토해낼 수 있었다.

휴우 미리 육십갑자에 달하는 공력과 혈을 열어두길 다행이야,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걸릴 뻔 했어.

아니 씨발, 이게 대체 뭐지?

토마토에 설탕 소금 팍팍 처넣으면 케첩 아닌가?

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일주일 굶은 사람한테 갖다 줘도 뺨 싸대기를 뒤돌려차기로 맞을 것 같은, 이런 끔찍한 맛이라니.

세상에 난 토마토에서 역겨움이라는 맛이 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 걸?

보빌리에 주방장이 보내준 토마토 케첩 MK.1, 영국이 넣은 멸치와 버섯을 빼고 토마토를 넣어 새로 만든 케첩은 그야말로 쓰레기를 넘어 핵폐기물에 가까운 맛이 나고 있었다.

잠깐만, 그런데 이거 그나마 영국식 케첩에서 나아진 거 아니었나?

영국인 너네... 대체 뭘 처먹고 사는 거야?

아니 애초에 이따구 음식을 먹는 게 사람이 맞나? 사실 영국인들은 인두겁을 쓴 악마들 아닐까.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해주듯. 나와 함께 케첩 찍은 감자튀김을 입에 넣은 플로리앙 씨는, 얼굴을 기괴하게 뒤틀더니 감자튀김을 토해냈다.

“끄르르륵 퉷! 아니, 사장님. 케첩이고 나발이고, 이거 애초에 먹을 수 있긴 한 겁니까? 혹시 저로 실험하고 그러는 건 아니시죠?”

“···이걸로 실험하는 거면 플로리앙 씨한테만 먹였지, 저도 같이 먹었겠어요?”

“···하기야 그것도 그렇군요. 으윽, 아직도 혀에 그 엿 같은 맛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이걸로 토마토 케첩 MK.1은, 나와 플로리앙 씨의 악평 아래 장렬하게 전사한 거나 다름없게 됐네.

부디 내세에는 좋은 곳ㅇ···.

아니, 내 혀가 파업하고 있어서 명복은 못 빌어주겠다.

만에 하나 그랬다간 내 혀가 삐져서 가출할 것만 같아.

“후우... 그래서 플로리앙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거.”

나는 미리 내려놓은 커피로 애써 입을 씻고는, 케첩 통을 가리키며 플로리앙 씨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도 됩니까?”

나와 똑같이 커피로 혀를 헹구던 플로리앙 씨는 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우리 사이에 뭐 사실대로 안 말하는 것도 있었나요?”

“그럼 뭐 사양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냥 좆같은데요? 이거 먹으라고 만든 게 맞긴 합니까?”

“거, 말이 너무 험하시지 않나...”

“그러면 사장님이 한 숟가락 더 먹어보시든가요.”

“아뇨. 좆같은 게 맞네요. 딱 알맞은 평가 같습니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우리 이삭의 민족 부사장이 하는 말인데, 당연히 맞지.

결코 내가 한 번 더 먹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란 말이다.

플로리앙 씨는 혀를 내두르며 끔찍하다는 듯 다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애초에 혓바닥에 석탄 바른 거나 다름없는 영국 놈들이 만든 소스를 왜 우리 프랑스인들이 만드는 겁니까?”

왜긴. 감자튀김에 케첩은 진리 아니겠나.

진짜로 21세기 케첩 한 입 딱 물어보시면 그런 말 안 나오는데.

“아 이게 진짜로 되긴 되는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네요.”

내 말에, 플로리앙 씨는 자신에게 쓰레기를 먹인 나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사장님께서 하시는 일의 반 이상이 이상한 행동이시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어느 정도 납득은 됐었거든요?”

“···그런데요?”

“이번 건 그래도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쓰레기를 당최 어떻게 팔아먹습니까? 팔아먹으면 바로 고객님들이 총 들고 들이닥칠 것 같은데요.”

“음.”

“아무래도... 이 소스는 그냥 엎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허어. 이렇게 약한 말을 해서야, 우리 이삭의 민족 부사장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뒷짐을 지고 말했다.

“플로리앙 씨, 혹시 오늘 자 포브스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플로리앙 씨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얄궂게도, 제가 좋아하는 글귀가 마침 오늘 자 ‘오늘의 글귀란’에 써져 있더라구요.”

“아니, 그 글귀란은 사장님이 쓰시는 거잖습니까.”

“‘존버는 승리한다.’ 이 얼마나 값진 글귀입니까?”

“···예? 대체 무슨...”

“존나게 버티면 승리합니다. 플로리앙 씨.”

“사장님 정말 미치셨습니까?”

왜 또 절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는지?

아니 케첩에 감자튀김 조합이라면, 정말 버티면 승리한다니까요?

야구 한일전 약속의 8회, 내가 안 산 주식 급 과학 그 자체란 말입니다.

덜커덕!

그때, 누군가 사무실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페시옹 씨? 왜 그러십···. 오...”

“사장님, 신성로마제국에서 사장님을 보러 오셨답니다.”

페시옹 씨의 뒤로, 검갈색 머리를 한 낯익은 얼굴의 청년이 짐가방을 손에 쥔 채. 주춤주춤 방 안으로 들어왔다.

“초, 총감 각하. 절 기억하십니까?”

“아유 기억하다마다요. 하하, 어서 앉으시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를 가져다가 청년 앞에 놓아주었다.

우리 월척이 찾아오셨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

“···재무총감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딱히 화려하거나 그러지는 않는구나.”

아니. 오히려 생캉탱에서 일하던 시청보다 수수한 편 같은데.

이제 막 파리로 상경한 촌뜨기 노엘은, 사무실 곳곳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덜커덕!

노엘이 앉아서 기다리는 사무실 안으로, 아까 자신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던 사무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노엘의 맞은편에 턱-하고 앉았다.

사무원은 싱긋 웃으며 노엘에게 손을 건넸다.

“아까는 사장님께 찾아오신 손님 때문에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반갑습니다, 성함이...?”

“아, 네. 생캉탱에서 온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라고 합니다.”

바뵈프도 사무원의 손을 마주잡고 답했다.

“전 알렉상드르 페시옹이라고 합니다. 이삭의 민족에서 재고처리를 맡고 있죠. 초면이니 바뵈프 씨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피부색이...?

그런 바뵈프의 눈빛을 알아챈 듯, 페시옹이라 말한 사무원은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제가 확실히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긴 하죠? 하하, 아무래도 흑백혼혈이라...”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고...”

페시옹의 말을 들은 바뵈프는 손을 내저었다.

이 무슨 실례인지.

바뵈프는 차라리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나중에 뒤에서 숙덕이시는 분들보다는, 저는 오히려 노엘 씨 같이 솔직한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좋더라구요.”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다니까요. 자, 여기 이력서입니다. 순서대로 빈칸을 채워주시고 제게 다시 건네주시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페시옹 사무원은, 바뵈프에게 곳곳이 빈칸으로 뚫려 있는 용지를 하나 건넸다.

성명, 나이, 경력사항 등등.

바뵈프는 빈칸은 하나하나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안은 한참동안 바뵈프가 움직이는 펜이, 종이에 맞닿아 사각거리는 소리만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페시옹 씨는 어쩌다가 여기서 근무하게 되셨는지...?”

그 침묵을 깬 건,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한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던 바뵈프였다.

“아, 저 말입니까? 음... 바뵈프 씨. 혹시 ‘흑인의 친구’라는 클럽을 아십니까?”

“···글쎄요. 전 처음 들어봅니다만.”

“하하, 그럴 만도 하지요. 콩도르세 후작님을 비롯해 여러 계몽주의자들이 모인 사적 모임인데, 작게는 저 같은 흑인들의 일자리를 찾아주시고. 크게는 권리신장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이랍니다. 그분들 덕에 이렇게 일할 수 있었답니다.”

물론 일거리가 좀 많긴 하지만요. 페시옹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런 실수를 했는데도, 페시옹 사무원은 별로 괘념치 않아하는 듯 했다.

페시옹 사무원의 얼굴을 본 바뵈프는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력서의 빈칸이 모두 채워져 있었다.

“다 썼는데, 이대로 드리면 됩니까?”

“예, 감사합니다. 어디보자 딱히 결격사유는 없으시고... 오? 시청 토목과에서 근무하신 경력이 있으시군요?! 제가 보기에 이건 확실히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은데요.”

“그, 그럼 합격입니까?”

“하하. 전 사원일 뿐이고 결정은 부사장님이나 사장님께서 직접 하시는 거라서요. 딱 잘라서 말씀드릴 수는 없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덜커덕!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처음 보는 젊은 사내가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페시옹 사무원에게 말했다.

“페시옹 씨, 지금 바쁘신가요?”

“아니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장님?”

“그래요? 뭐 좀 물어보게요. 지금 페시옹씨가 하는 일거리가 다 합쳐서 얼마나 되죠?”

“예? 어 뭐... 간편식당 재고처리도 해야 하고, 당월 손익보고서도 만들어야하고... 꽤 많은데. 왜 그러십니까?”

“쓰으읍. 되게 많네요. ···그런데 페시옹 씨? 저 분은 누구신지...?”

사장이라 불린 남자는 바뵈프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페시옹 사무원에게 물었다.

“아 이분은 우리 회사에 이번에 지원하신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씨입니다.”

“오, 그래요?”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바뵈프를 쳐다보았다.

“바뵈프 씨? 이쪽은 우리 기욤 드 툴롱 사장님이십니다.”

“안, 안녕하십니까! 기욤 사장님!”

저 사람이 기욤 드 툴롱!

바뵈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며 크게 말했다.

“에이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됩니다, 바뵈프 씨. 저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시는데.”

“그, 그래도.”

“그것보다 바뵈프 씨. 혹시 음악 좋아하십니까?”

“음...악이요? 예, 뭐. 좋아합니다만.”

갑자기 왠 음악?

바뵈프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사장의 질문에 답했다.

“그으으래요오? 그러면 맘 놓고 맡겨볼 수 있겠네! 바뵈프 씨,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예? 아, 아직 제 이력서도 안 읽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아 이력서요? 페시옹 씨?”

“예, 사장님.”

“페시옹 씨가 봤을 때, 바뵈프 씨의 이력서에서 뭔가 결격사항이 있었나요?”

“아니요. 제가 보기엔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됐네, 뭐. 바뵈프 씨? 이삭의 민족에 합류한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귀가하시고,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예? 이게 끝입니까...?”

“네, 뭐 딱히 거리낄게 있나요? 설마 소싯적 야설을 써서 잡혀갔다거나 그런...?”

“아, 아닙니다!”

“하하, 그런 게 아니면 됐어요.”

사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더니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사장님?”

“음? 왜 그러십니까, 바뵈프 씨?”

“혹시 제가 받게 될 업무가 무엇인지...?”

“아, 뭐 굳이 얘기해 드리자면... 연예기획사라는 건데. 대강 악단 비스무리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

바뵈프는 난생 처음 듣는 이상한 단어에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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