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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그런데 다른 곳은 안전한가? (4) (90/341)

그런데 다른 곳은 안전한가? (4)

1790년 5월 초순.

신성로마제국 쾰른 제후국 본.

이른 아침.

“귀관들, 간밤에 잠은 잘 잤나?”

“““그렇습니다, 연대장 각하!”””

“좋아, 대공 전하께 식사도 대접 받았는데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안 그런가? 1대대는 북쪽을, 2대대는 묀스터 성당을, 3대대는 라인 강을 건너는 다리를 점거한다. 각 대대장은 임무사항 완벽히 숙지할 것. 이상 전달 끝. 질문 있나?”

“““없습니다, 연대장 각하!”””

“좋아, 바로 움직이자고.”

연대장이 대대장들에게.

“지금부터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각 분대를 통솔해 진압을 시도한다. 단, 대공 전하의 명으로 발포는 금지하고, 총검은 각 지휘관의 상황판단 아래 위급상황 시에만 사용을 허가한다. 마지막으로 전 인원 명심하도록,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에 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Jawohl!”””

대대장이 중대장들과 부사관들에게.

“시간이 생명이다! 전 중대원, 완전 무장 상태로 시청 앞 광장을 점거한다. 이동! 이동!”

“““Jawohl!”””

중대장과 부사관이 병사들에게.

군대의 수직적인 명령체계 아래, 본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

“아니, 당신들은 누군데 이러는 겁니까?!”

광장의 한 가운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는, 제 손에 있던 붉은 깃발을 뺏어간 흰 군복을 입은 장교를 향해 쏘아붙였다.

“우리는 이곳 본에 당분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불순한 불순분자를 색출하라는, 카이저께서 보내신 카를 대공 전하의 명에 따를 뿐이다.”

우지끈!

장교가 깃발을 허벅지에 대곤 힘을 줘 부러뜨리자, 나무로 만든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을 뿐이오!”

“시위라! 아주 불순하군! 병사들은 뭐하고 있나?! 당장 저 불순분자들을 광장 밖으로 밀어내도록!”

“Jawohl!”

“이, 이놈들! 이거 놔라!”

“거, 노인네가 참... 얼굴 붉히지 말고 얌전히 갑시다.”

노신사는 건장한 병사들에게 붙들려 질질 끌려 나갔다.

“저놈들이 선생님을 끌어낸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지금 이러는 겁니까!”

“댁들이 중앙군이면 다야?! 다냐고!”

당연하게도 시위대 쪽에서 야유와 돌멩이 따위가 병사들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대위님. 시민들의 저항이 상당한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총으로 밀어버릴까요?”

“대대장님께서 총은 사용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나. 평화적으로 하게, 평화적으로.”

“예, 알겠습니다! 전 중대원, 곤봉 꺼내! 백병전 준비!”

“““백병전 대형으로!”””

“지금부터 광장에서 반동들을 밀어낸다. 실시!”

“““와아아!”””

“악! 아악! 거긴 뼈! 뼈 맞았어!”

“꺄아아악! 수도에서 온 놈들이 본 사람들을 때려죽인다!”

“경찰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제국군이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는데!”

“도, 도망쳐! 라인 강 너머로 피해!”

빡! 빠악!-하는 뼈 깨지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광장 전체가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삐익! 삐이익!

병사들은 이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기 시작했다.

“거기 거동수상자! 당장 집으로 귀가하라! 그러지 않으면 무력으로 돌려보내겠다!”

“이, 이 카이저 따까리 새끼들! 이거나 먹어라 씨발!”

“화, 화염병이다! 산개! 산개!"

“대위님, 총검 사용을 허용해주십시오!”

“저 반동들에게는 총검 사용을 허가한다. 감히 내 병사들한테 손찌검을 해!”

병사들이 가는 곳을 따라,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보기에는 나쁘지 않군. 소령, 지금 올라오는 보고는 어떤가?”

그 모든 광경을 인근 고지를 점거한 채, 망원경으로 보던 라제츠키 준장은 부관을 향해 말했다.

“예. 묀스터 성당 근교에서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준장님.”

“피해는?”

“반동분자들이 원시적인 날붙이나 즉석에서 만든 조악한 화염병 따위를 사용해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 당 서넛 씩 가벼운 부상병이 생기고 있습니다. 향후 골목길까지 아군이 들어갈 걸 생각해 본다면, 피해는 조금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라데츠키는 지휘봉으로 지도에 있는 말뚝들을 라인 강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음, 그래도 계획은 기존과 변함없다. 묀스터 성당에서 동쪽 방면, 라인 강으로 반동분자들을 밀어내도록.”

“예, 준장님!”

“라제츠키 장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오! 당장 우리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멈추시오!”

그 때, 라데츠키와 부관만이 있던 본부막사 안으로 누군가 잔뜩 성난 얼굴로 들어와 말했다.

“아, 이분은 본 시 경찰청장이십니다. 장군님.”

부관은 라데츠키에게 몸을 기울이고는 입을 열었다.

라데츠키는 대강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알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철청장을 보고 말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청장.”

“···뭐요?”

“우리는 몽둥이만을 이용해 평화적으로 진압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크게 만든 건 먼저 화염병을 던져 유혈사태를 벌인 불순분자들이고, 우리 군은 이제야 일부 반동들에게 총검을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불순분자들에게 총을 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제국군이 시민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으련만.

당장 러시아만 해도 농노들이 쟁의를 일으키니 다 쏴죽여버리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라데츠키의 진압군이 보여주는 곤봉 진압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장은 얼굴 가득히 핏대를 세우곤 계속 언성을 높였다.

“그 전에, 평화로웠던 광장에 군대를 끌고 와 혼란을 만든 건 당신들이 맞잖소!”

“제국의 안위를 지키는 군으로서, 불순분자들을 해산시킨 것 뿐입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꽉 막힌 채로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라데츠키는 부관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부관은 라데츠키의 뜻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청장님이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댁까지 안전하게 호송할 수 있도록.”

“예, 소령님!”

막사 밖에서 경계를 하던 병사들이 소령의 말에 뛰어 들어와 경찰청장의 두 팔을 잡고 끌어내기 시작했다.

“장군! 이건 제후국에 대한 명백한 경찰권 침해요! 베스트팔렌 조약 위반이란 말이야! 막시밀리안 선제후 전하와 우리 경찰관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

[본 시의 모든 경찰관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 막시밀리안 -]

반쯤 넘어간 해 때문에 붉게 물들어 있는 쪽지를, 경찰관은 다시 한 번 읽어본 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의 맞은편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일제히 열을 맞춰 다가오고 있었다.

군홧발 소리가 이렇게 기분 나쁜 소리였나?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버지 밑에서 과일가게나 할 걸 그랬어.”

경찰관은 손에 쥔 말고삐를 약하게 흔들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이 그에 응답하듯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경찰관이 앞으로 나와 모자를 벗자, 맞은편 군인들 사이에서도 장교가 나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했다.

장교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절도 있는 자세로 멈추곤, 고개를 들어 말에 탄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비키십시오, 경감님.”

“못 비키오. 그리고 난 경감이 아니라 경정이오, 중위. 귀관은 아무래도 계급장 보는 공부를 더 해야겠구려.”

중위의 눈언저리가 움찔하면서 떨렸다.

“···경찰관나리들이 이렇게 유약하게 굴 때도, 폭도들은 우리 병사들에게 계속 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당장 비키십시오.”

“이보게 중위. 귀관이 지키고자 하는 병사들도, 이 시간에 우리 시민들 머리에 몽둥이찜질을 하고 있소.”

“비키라고.”

“못 비킨다.”

“그렇다면야 뚫고 지나가 주지.”

“어디 한 번 해보게나, 중위.”

중위는 마지막 예로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대열로 돌아가 검을 뽑아들고 외쳤다.

“중대, 착검 후 대기병진으로!”

“““착검! 대기병 대형으로!”””

병사들이 허리춤에서 길쭉한 검을 뽑아 총구 앞에 꽂아 넣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검이 뽑혀 나오는 서슬 퍼런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관은 뒤를 돌아보았다.

수십에 달하는 기마경찰들이 자신의 뒤에 도열해 있었다.

경찰관은 아까 벗어놨던 모자를 다시 쓰곤,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외쳤다.

“귀관들, 우리가 밀려나면 시민들은 맞아 죽는다! 명심하도록!”

“““예! 경정님!”””

라인 강에 황혼이 지고 있었다.

***

“상황은 어떻습니까, 장군?”

“예, 대공 전하. 저항을 계속하던 폭도는 대부분 진압 완료했고, 군과 적대하던 경관들도 구금을 끝냈습니다. 남은 건 막시밀리안 선제후 전하 뿐 입니다.”

“폭도들의 분류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전하. 전하의 명대로 공화주의자와 계몽주의자,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참여한 빈민들을 나눠놨습니다.”

“하하, 흠 잡을 데 하나 없네요. 역시 라데츠키 장군입니다.”

카를 대공은 라데츠키의 어깨를 기쁜 마음으로 토닥여주었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그보다 폭도들의 처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반 시민들과 빈민들은 모두 풀어주시고, 계몽주의자들은 적당히 경고 후 풀어주시죠.”

“공화주의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냐니요, 싹 다 총살하세요.”

카를 대공은 올라온 보고서와 지도를 눈으로 훑으면서 건성건성 말했다.

“다른 봉건 제후들에게 최소한 우리가 제 놈들의 기득권은 확실하게 보전해 줄 거라는 믿음을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예, 전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 그보다 어제 먹었던 돼지족발 맛있지 않았습니까? 나는 오늘도 좀 땡기는데, 장군은 어떠십니까?”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관도 배가 고프군요. 요리사들에게 말해 어제처럼 식사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장군!”

***

“카스파, 요한. 어서 일어나...!”

“···루트비히 형? 갑자기 왜 그래...?”

이제 막 청소년 티가 나올락 말락하는 두 동생은, 자다 깬 덕에 부스스한 눈가를 비비며 일어나 큰 형 루트비히의 실루엣을 보고 말했다.

“설명해 줄 시간 없어, 빨리 짐 싸! 무겁고 값 낮은 물건은 그냥 두고, 비싸거나 정말 소중한 것만 챙겨!”

큰 형 루트비히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으로, 두 동생을 채근했다.

“빨리!”

“어? 어, 알겠어.”

세 형제는 적당한 보따리를 펼쳐, 비싼 장물을 다 싸 넣었다.

“후, 그래도 아버지가 술값으로 다 팔아버리기 전에 건져서 다행이지 원. 너희들 개인 짐은 다 챙겼어?”

“응, 형 말대로 값나가는 것만 챙겼어.”

“근데 아버지는 어떻게 해...?”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해. 아무튼 빨리 나가자. 본이 봉쇄되기 전에 프랑스로 떠야해.”

“프, 프랑스? 갑자기 왠 프랑ㅅ···.”

원체 영문을 모르겠는 형의 말에, 둘째 요한이 말을 꺼낸 순간.

타타탕!

집 바깥에서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방금 그거 총소리야?”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 같다. 어서 나가자. 시간이 없어.”

루트비히는 짐 보따리를 팔 사이에 끼워놓고 집 문을 살며시 열었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빨리 가자.”

루트비히가 먼저 집을 나가고, 그 뒤를 두 동생이 따라 나섰다.

세 사람이 고개를 낮추고 밤을 틈타 두 블록을 넘어 갔을 무렵, 한 블록 너머 길거리에서 누군가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스퍼, 요한. 잠깐만. 이 앞에 뭔가 있다...”

- 성부와 성령과 성자가 임하시어...

- 신부님, 성사는 끝나셨습니까?

- ···그렇소, 대위.

- 좋습니다. 이제 물러나시지요. 저자들은 아주 악질 공화주의자들이라, 해코지 당할지도 모릅니다. 소대, 장전!

- 장전!

루트비히의 귀에, 철로 된 무언가가 원통을 텅텅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기다란 막대기로 원통을 구석구석 쑤시는 그런 소리가.

- 소대, 조준!

- 조준!

- 소대, 발사!

- 발사!

- 혁명 만세! 시민 만ㅅ···!

타타탕!

"헉! 허억! 카, 카스퍼. 요한. 빨리 가자! 빨리!"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그 날로. 파리를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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