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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5) (86/341)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5)

“···증기로 힘을 얻어 바퀴를 굴리는 차량이라...”

“어떻습니까, 두 분 생각은.”

“비록 제 짧은 식견이지만 일단 시도 자체는 흠 잡을 곳이 없어 보입니다. 사장님.”

트레비식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전의 어설픈 프랑스어와 달리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트레비식 씨. 머독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머독 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마저 물었다.

머독 씨는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후우,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사장님?”

“물론입니다. 머독 씨.”

“감사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손가락 두 개를 펴고서 말하는 머독 씨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 제임스 와트 사 수석 엔지니어, 윌리엄 머독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의 만료시일은 1799년입니다. 물론 해당 특허가 영국이 아닌 타국, 프랑스에서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와트 사에 소속된 저로서는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비록 외국의 특허지만 만약 기욤 사장님께서 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기꺼이 협력하겠습니다.”

“···특허사용료, 그러니까 로열티를 받아 가시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와 트레비식 씨가 프랑스에 보내진 것도 와트 사장님께서 라부아지에 박사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이미 윤전기의 개발로 그 빚은 상당히 탕감된 걸로 생각됩니다만.”

“음.”

머독 씨가 내뱉은 마지막 말에, 나는 낮게 신음소리를 흘리며 의자에 기댔다.

확실히 머독 씨의 주장은 어디 흠 잡을 곳이 없다.

회사의 일원이면 소속된 곳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한거지.

문제는 지금 이 세상이, 전쟁은 몰라도 상공업에 대한 국제법도 없는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라는 거다.

21세기에도 외국에 기업이 나가기만하면 어떤 놈들이 그 기업의 상표를 미리 등록했다가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팥빙수 기업부터, IT기업까지 죄다 1년에 한 번씩은 그런 일이 신문에 떴는데 지금은 오죽할까?

‘타국인이 가진 특허? 응 그런 거 몰라. 너네 나라에서만 통하는 걸 왜 우리나라에 가져다 댄담? 꼬우면 여기도 특허를 등록하시던가!’

이런 마인드를 가진 곳이 대다수다 보니, 기술자고 예술가고 과학자고 죄 다 후원자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그렇다는 말은 내가 제임스 와트 사의 증기기관 특허를 멋대로 써도 아무도 말 못한다는 거고, 머독 씨는 이 부분을 굉장히 잘 파고들었다.

음. 10점 만점에 100점이요.

만약 내 부하직원이었다면 상여금으로 금화 한 닢 바로 던져줬다.

“···두 가지 측면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다른 한 가지 측면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나는 다시 한 번 머독 씨에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기술자, 윌리엄 머독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머독 씨는 잠시 숨을 들이마시었다가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한 얘기로, 기술자로서 피가 끓다 못해 흥분되는군요! 증기기관으로 만든 차량,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을 태우는 차량이라니!”

여태까지 세일즈맨의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던 머독 씨의 눈동자가, 불이 붙은 듯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공돌이들은 죄다 이런가?

라부아지에도, 기요탱 박사님도, 몽골피에 형제도 내가 윤전기라는 걸 소개했을 때 저렇게 눈이 돌아가서는 스스로 갈려나가던데.

“생각해보십시오, 사장님! 증기기관이 힘차게 넓은 프랑스 평야를 가로지르는 그 모습을! 정말 흥분되지 않습니까?!”

“···굉장히 들떠 보이시네요.”

어찌나 빠르게 말하는 지, 머독 씨의 코가 슉슉-소리를 내면서 공기를 빠르게 들락날락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들뜨다마다요! 겨우 백 년 전만 해도 우리 기술자들은 고작해야 물푸레나 손으로 하루 종일 만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의 코앞으로 다가온 미래는 곧, 증기의 시대이겠지요.

증기로 된 차량이 온 세상을 누비고, 사람들은 기계로 인해 편한 삶을 살게 될 겁니다! 혹시 압니까? 나중에는 스페인에서 저기 저 얼어붙은 러시아까지 한 달 만에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그런 증기의 시대로 들어가는 역사의 첫 장에 제 이름을 적을 수 있다는 영예로운 기회를 거부할 기술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음.

요컨대, 하고자 하는 의지는 흐르다 못해 넘칠 정도지만 회사 일이 문제라는 거구만.

RPG게임에서도 새로 보스가 나오면 온 서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누가 먼저 깨나로 밤을 새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데 게임이 아니라 역사책에 자기 이름 석 자, 아니 다섯 자 박아 넣을 기회라니, 엔돌핀이 빰뿌르빰 뿜어져 나오고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나는 한 번 숨을 내쉰 뒤, 침착한 말투로 머독 씨에게 말했다.

“후, 아까 말씀하신 로열티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상세한 건 본국에 있는 회사와 연락을 해봐야 알겠지만, 대당 약 3퍼센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3퍼센트라, 나쁘지 않네요. 상당히 현실적이군요.”

“어차피 개발을 안 하면 받지도 못할 돈 아닙니까.”

통상적인 로열티가 약 5퍼센트인 걸 생각해보면 보기엔 굉장히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개발에 들어가는 돈의 대부분은 내가 부담할 거란 말이지. 그런 거까지 생각해보면 뭐, 딱 평균이네.

아 아니구나, 개발에 들어가는 인력은 또 제임스 와트 사에서 대주니까 그걸 감안해보면 평균보다 조금 더 이득일지도?

물론 누군가 본다면, 미래가 불확실한 물건에 돈을 태우는 걸로 보이겠지만 증기기관차라는 게 세상에 태어났고, 그걸로 철도가 깔리고 역이 생기고, 또 세상이 순식간에 발전했다는 걸 아는 나에게는 돈 몇 푼으로 노다지를 캐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로열티는 특허의 소멸 시 지급의무가 사라지는 것 맞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특허가 만료됐는데 로열티를 받아갈 정도로 저희가 날강도는 아닙니다.”

머독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습니다. 우리 이삭의 민족은 귀사에게 증기기관차 대당 3퍼센트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대신 윌리엄 머독 씨와 리처드 트레비식 씨의 도움을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와 머독 씨는 서로 웃는 낯으로 손을 마주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

“···여기가 파리? 무슨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노엘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생캉탱에서는 본 적 없는 규모의 사람들, 마차 등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파리의 모습은 시골 촌놈으로부터 하여금 입을 떡-벌리게 만들고 있었다.

“하하, 이 양반 아주 그냥 촌놈이시구만? 파리는 자그마치 70만이 삽디다, 70만!”

그런 노엘의 목소리에, 마차 앞 마부석에 탄 마부는 말고삐를 다시 한 번 세차게 휘두르며 재밌다는 듯 껄껄 웃어댔다.

“칠, 칠십만??”

“하하, 그렇다니까!”

세상에 칠십 만이라니! 생캉탱도 프랑스에서 나름 큰 도시 아니었나?

그런 생캉탱의 다섯 배를 넘는 크기라니.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도시의 크기에, 노엘은 경탄할 뿐이었다.

그런 노엘의 눈에, 도로 옆에서 보도를 곡괭이로 까고, 엎고, 무언가를 뚝딱거리며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부, 저기 저 사람들은 뭐하는 겁니까?”

“아 그거 말이오? 이번에 재무총감이 상하수도를 새로 깐다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지 뭐요. 덕분에 요새 사람들 주머니가 좀 넉넉해졌답디다. 물론 우리 마부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손님이 늘지는 않으니 원.”

“···그렇군요.”

감질 난다는 듯 말하는 마부의 답변에 노엘은 작게 맞장구를 쳐줬다.

“아 혹시 잡지 좋아하슈? 말하는 본새 보니까 글 꽤나 읽을 줄 아는 양반 같은데.”

“잡지야 좋죠.”

“그렇지? 내가 딱 보니까 알겠더라고! 자, 포브스랑 막심 둘 중에 뭐로 하실라우?”

어딘가 천박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소시민 같다고 할 수 있는 말투로, 마부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노엘을 보며 말했다.

“포브스로 주십시오.”

“자, 여기! 내가 평소에는 5 수 받는데, 댁은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이니까 딱 3 수만 받겠슈.”

노엘은 피식 웃으면서 마부가 건넨 잡지를 받고, 그 손에 3 수 짜리 동전을 건네주었다.

“···요즘 파리는 꽤나 살만한데, 지방은 어떻습디까?”

그 후로 한참을 길을 따라 가던 마부는, 막상 뒷자리에 탄 노엘이 잡지를 읽으며 조용해지자 적적해진 듯 말했다.

“···지방이요? 글쎄요.”

“여기 파리야, 라파예트 장군도 있고. 재무총감도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그런지, 점점 옛날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서 그럽디다. 아 옛날이라는 게, 사람들 굶어죽던 때라는 게 아니라 평화로워졌다. 뭐 그런 의미니 오해하지마슈.”

“지방은... 흠, 악덕 영주나 사제야 작년 이맘때쯤 몰매를 맞고 다 저세상 갔고. 지금은 토목과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땅을 나눠주고 있지요.”

노엘은 얼마 전 까지 그 중 한 명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던 자신이 기억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노엘의 다음으로 또 다시 한참을 떠들던 마부는, 노엘이 말한 목적지 앞에 마차를 세우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다 왔습디다. 손님. 내릴 때 조심하고, 나중에도 이용해주슈.”

노엘은 마차 뒷문을 열고 나가 짐칸에 몸을 뉘고 있는, 자신이 고향에서 가져온 짐 보따리를 들쳐 매곤 눈앞에 자리한 목재 간판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이삭의 민족, 본점]

노엘은 시선을 내려, 방금 마부에게서 산 잡지의 뒷면에 쓰여 있는 글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각종 사무보조, 회계, 세무에 능한 우리 이삭의 민족과 가족이 될 사람을 찾습니다. -이삭의 민족-]

“막상... 오긴 왔는데, 막막하네.”

혹시 이미 뽑을 사람을 다 뽑았다고 매몰차게 내쫓으면 어떻게 하지?

노엘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불안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긴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엘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때.

노엘은 자신과 똑같이 문고리를 열려 손을 가져다 댄 누군가와 손이 맞닿고 말았다.

자신보다 대여섯 살, 아니 열 살은 어려보이는 검갈색 머리를 한 청년이 자신과 같이 손을 가져다 댄 것이었다.

검은 머리를 한 청년은, 노엘을 향해 무언가 말했다.

“E, Entschuldigung!"

“···독일어?”

독일인이 왜 프랑스, 그것도 파리에 있는 거지?

멍하니 독일인 청년을 응시하고 있는 노엘과 달리, 독일인은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서둘러 문을 열고 이삭의 민족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노엘 또한 퍼뜩 정신을 차리곤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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