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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4) (85/341)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4)

“···귀관의 말은 잘 알겠네, 할 일이 있다면 이제 나가봐도 좋네.”

“예, 장군님.”

황금색 견장을 찬 상관의 말이 떨어지자, 콧수염을 기른 근위병은 머리 옆으로 경례를 올려붙이곤 절도 있는 자세로 근위대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엿 같구만.”

근위대장 뒤무리에는, 병사가 나간 뒤로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병사를 제외한 장교 급 군인의 생태는 둘로 나누어진다.

찬란히 빛나는 별을 단 장군과 그런 별이 되지 못하고 떨어진 자.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의전.

의전의 차이는 얼마나 큰지, 군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조차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정말로 별을 단 군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는 의전이 아니라 바로 정치력이다.

단순히 대세를 읽고 우세한 쪽에 편승하는 것부터.

자신에게 내려온 줄이 햇님과 달님이 내려준 황금 동앗줄인지, 아니면 썩어 문드러진 동앗줄인지.

이게 먹어도 되는 물건 인건지, 아니면 결연한 자세로 거부하고 자신의 깨끗함을 보여줘야 하는지.

누가 주는 술은 마시고, 누가 주는 술은 받는 시늉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장군과 그렇지 않은 자, 두 생태의 가장 큰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프랑스 왕국 육군 준장 샤를 프랑수아 드 뒤무리에는, 자기를 장군이라는 자리에 올려놓게 만들어준 자신의 ‘정치력’ 센서가 무섭게 요동치고 있는 걸 느꼈다.

- 장군님,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이 국왕 폐하의 저택인 팔레 르와얄 앞에서 유유히 식사를 마치곤 돌아갔다는 보고입니다.

병사가 전해준 소식에, 뒤무리에의 머릿속이 서늘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눈앞이 아찔하고 숨이 턱 막혀왔다.

“···젠장할, 젠장할,”

프랑스인답게 탁자 한편에 가지런히 놓아둔 포도주와 잔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다 놓은 뒤무리에는, 포도주를 와인 잔에 가득히 따르고선 한 번에 목 뒤로 훌렁 넘겨버렸다.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묵직하게 짓눌러, 숨을 막는 무언가를 씻어내고자 하려는 것처럼.

한 잔, 두 잔, 세 잔.

도수가 낮은 포도주라고 해도 잔 가득히 세 잔을 연달아 마시자 얼굴이 훅-하고서 달아오르는 듯 했다.

“후우··· 해군 나부랭이들도 아니고 술이 들어가야 가슴이 좀 진정되다니, 나도 소싯적과 달리 많이 늙어버렸구만. 젊었을 적 대담함은 다 어디에 팔아먹은 건지.”

뒤무리에는 숨을 후-하며 내쉬면서 말했다.

자신이 누구인가.

소싯적 프리드리히의 프로이센이라는 전쟁광들과 일합을 주고받았고, 까마득히 높은 별들이 노니는 군수참모사령부에서 별들의 꼬장과 온갖 수발을 다 들고 살아남은.

거기에 비밀리에 선선대 국왕의 신임을 받아 부임한 해외방첩기구에서도 살아남아, 지금도 자신의 견장에서 찬란히 빛나는 별을 달게 된 샤를 프랑수아 드 뒤무리에 아닌가.

“재무총감이 팔레 르와얄 앞에 다녀갔다... 젠장, 차라리 대놓고 협박이라도 하면 뻗대기라도 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 압박을 하다니, 우리 왕당파의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인가?”

뒤무리에는 다시 한 번 낮게 읊조렸다.

팔레 르와얄이 어디인가.

현 국왕 루이 17세, 오를레앙이 불과 몇 달 전까지 살던 곳이다.

거기에 계몽주의자들이 오를레앙에게 실망한 후 떠나간 이후로는, 지금 오를레앙을 지지하는 왕당파들의 거점이 된 곳 아닌가.

정치적으로 적이라 할 수 있는 자의 앞마당이 되는 그런 곳 앞을, 홀로 유유히 왔다 갔다고?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니면 그런 생각도 없는 멍청한 놈인건지...”

뒤무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아차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재무총감이 멍청한 놈?

헛소리도 그런 헛소리가 있을 리가.

이제는 대공으로 내려간 선대 왕 루이 16세를, 불과 18살의 나이로 의회에서 대차게 멕여버리고선 자리에서 갈아 치워버린 재무총감 아닌가.

현재에는 의회를 제 뜻대로 움직여 재무총감이라는 업무도 베르사유가 아니라 파리로 옮겨 처리하고 있지 않나.

그 뿐만 아니라, 단순히 쥐어짜기긴 하지만 파산 직전인 프랑스를 정상궤도로 올려놓고 있는 자다.

그런 자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팔레 르와얄 앞을 산책하고 갔다고?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신문팔이 꼬마에게 물어도 코웃음을 칠만한 말 아닌가.

그래, 이건 경고다. 경고.

당신들 앞마당까지 자신이 훤히 보고 있으니 허튼 짓하지 말라는 경고!

잠깐, 사실 기욤 그 자가 파리로 옮겨 간 이유도, 파리에 있는 왕당파들을 쥐고 흔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단이 아닐까?

그렇다면 피곤에 찌든 것 같은 그 얼굴도, 사실은 모두 정치적 계산이 더해진 연출인가?

저게 이제 갓 19살이 된 자의 식견이 맞나? 대체 어디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거지?

무섭다.

너무나도 무섭다.

불과 몇 초전 포도주로 입술을 축였던 것 같은데, 뒤무리에는 벌써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듯 했다.

그런 뒤무리에의 머릿속을 한 가지, 무언가가 번뜻 꿰뚫고 지나갔다.

“···설마, 우리의 반란계획을 눈치 채고 움직인 건가?”

뒤무리에의 손이 창백하게 변하곤 저려오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의사표명은 무슨 뜻일까.

“···재무총감은 사람의 목숨을 굉장히 중히 여기는 자다.”

뒤무리에는 낮게 읊조렸다.

그 무지한 평민들에게 제 피 같은 돈을 각출해 곡식을 뿌리고 빵을 뿌려대질 않나, 의회에서 슬픈 세상이니 뭐니 하면서 연설을 하던 걸 생각하면 쉽사리 유추할 수 있다.

지금 정부 지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내용 중 상하수도 정비니 구휼미니 하는 것도 다 그런 재무총감의 입김이 닿은 탓일 테다.

그렇게 사람 목숨을 중히 여기는 재무총감이 반란 모의를 알고서 이런 의사를 표시했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일 없이 둥글게 둥글게 넘어가자 이런 내용이겠지.

과연 재무총감이 반란계획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건가.

“···그걸 알 때까지 계획은 보류해야겠어.”

뒤무리에는 이제 다 빠지고 없는 황량한 정수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똑똑똑

마지막 남은 옆머리를 소중히 쓰다듬던 뒤무리에의 귀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 국왕 폐하께서 부르셨습니다.”

“···지금 바로 가도록하지.”

뒤무리에는 삼각군모를 머리에 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장군, 와줘서 고맙네.”

베르사유의 전쟁의 방, 한 가운데서 국왕 루이 17세는 자신의 부름에 달려온 뒤무리에를 뺀 나머지를 바깥으로 모두 내보낸 뒤 말했다.

“하명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폐하.”

뒤무리에는 왕의 말에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왕의 말에, 뒤무리에는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거사날짜를 정했네.”

“···거사날짜라 하오면.”

“아르투아 백작에게서 연락이 왔네. 다음달 17일. 그 날에 낭시와 자레브에서 우리 군대 2만 명이 준동할 걸세.”

루이 17세의 담담한 목소리가 뒤무리에의 귓가에 들려왔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날짜를 뒤로 물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군. 나도 너무나도 시급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네.”

왕은, 뒤무리에의 목소리에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무언가 연유라도 있으십니까?”

“사제 놈들이 하나 둘 발을 빼고 있어. 교황인 비오 그 놈이 미적지근하게 굴고, 시에예스와 탈레랑 그 두 놈의 세치 혀에 하나 둘 우리 쪽에서 슬금슬금 발을 빼고 있단 말이야! 이 이상 저 의원 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우린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주저앉을 걸세!”

참으로 참람하다는 얼굴로 읊조리는 루이 17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장군은 그렇게 알고, 부디 힘써주길 바라네.”

“···황송할 따름입니다, 폐하.”

뒤무리에는 국왕에게 예의바르게 머리를 숙이고는, 전쟁의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뒤무리에의 심장은 흥분으로 터질 듯 뛰고 있었다.

이제는 ‘생존’에 관한 그의 육감이 미칠 듯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별이고 뭐고 상관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뒤무리에의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2만이라, 그래! 2만이면 한 번 일을 저지르기엔 충분할 지도 모르지.

성공은 모르겠지만.

국민 방위대는 몇 만인가? 대체 몇 개 연대가 재무총감의 손에 들어있나?

베르사유를 포위하고 있는 부대만 해도 두 개 연대다.

참고로 그 지휘관은 국민 방위대 사령관 라파예트고.

낭시로부터 파리가 직선거리로 약 340km니 이제 겨우 한 개 연대로 확충한 근위대가 최소 두 배 규모의 군대, 그것도 전쟁영웅의 지휘아래에 있는 군대에게 2주일 정도 버티면 되겠구만.

아 물론 낭시에서 출발한 왕당파 군이 랭스와 트루아에서 출발한 국민 방위대를 모두 박살낸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

···젠장, 이건 견적이 안 나온다.

샤를마뉴 대왕도 이런 상황에는 백기를 들지 않을까?

뒤무리에는 근위대장실로 돌아오기 전, 화끈해진 얼굴로 자신의 부관을 찾아가 말했다.

“부관, 저번에 내게 알려준 공화파 불량단체에 대한 정보 있지 않나? 그곳에 대한 자료를 가져오게.”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부관은 얼굴이 불긋불긋해진 뒤무리에의 말에, 서류 한 덩이를 찾아 건넸다.

뒤무리에는 서류를 받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이름이, 코르들리에. 별명은 자코뱅이라.“

“장군!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소란인가.”

뒤무리에는 노크도 잊은 채, 문을 벌컥 열고 찾아온 부관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합, 합스부르크가...!”

부관이 전하는 소식에, 뒤무리에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

왜 이리 귀가 가렵지.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그, 사장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귀가 좀 간지러워서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는 머독 씨와 트레비식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우리 영국 일부 지역에서 비슷한 걸 실험삼아 움직이고 있긴 합니다만. 아니 그보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건 알아 오신 겁니까? 그건 우리 영국인들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요.”

“어찌저찌 하다보니 귓동냥으로 알게 되더라구요.”

신기하다는 얼굴로 내게 묻는 머독 씨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제가 미래에서 왔는데 말이에요. 해리포터 같은 곳에서 보니까, 대충 한 몇 십 년 뒤에 증기기관차가 뿜뿜 매연을 내뿜으며 세상 온갖 곳을 지나다니더라구요. -라고 할 수는 없잖아.

“기술적으로 가능함. 좋은 이론입니다!”

트레비식 씨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아직 미숙한 프랑스어로 내게 떠듬떠듬 말했다.

“···저 영어 어느 정도는 할 줄 아니까 영어가 편하시면 그쪽으로 말하셔도 됩니다. 트레비식 씨.”

“아, 그...그렇습니까?”

와! 20년이 지나도 대강 내용이 기억나는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이라, 정말 대단해!

뭐, 사실은 프랑스어나 영어나 다 어순 같은 게 비슷비슷하니까 단어만 외워도 쉽사리 말할 수 있는 게 크지만.

나는 내 앞의 두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곤,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두 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증기기관으로 수백 명의 사람과 화물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차량. 만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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