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3)
토마토가 무엇인가.
흔히들 생각하는 유럽식 식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 중 하나 아닌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스페인의 라쟈냐,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라따뚜이,
영국은 뭐... 잘 모르겠고.
아니 애초에 영국에 음식이 있긴 한가? 장어로 만든 젤리가 음식은 아니잖아.
아무튼 그 많은 음식들이 다 토마토를 기본으로 만든 음식들인데, 토마토가 유독성 식물일리가 있겠나.
거기에 만에 하나 토마토가 독이 있었으면 21세기에 살던 사람 90퍼센트는 죽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플로리앙 씨에게 말했다.
“토마토가 유독성이라는 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내용인데요.”
“그거 벨라도나랑 사촌지간 아닙니까? 열매 맺은 모습이 똑 닮았는데.”
“생긴 게 똑 닮았다고 사촌지간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말이랑 망아지도 그러지 않습니까.”
“아니, 걔넨 동물이잖아요.”
“뭐, 식물은 안 그런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씁.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일 수도...
아니, 내가 플로리앙 씨한테 설득되면 안 되는데.
“···일단은 알겠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옙.”
플로리앙 씨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계속 이어나갔다.
흠.
토마토에 독이라.
내가 살던 시대와 지금 사이에 있는 약 200년 정도의 시간 동안, 토마토라는 작물에 뭔가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던 건가?
하긴 21세기에 살 때, 사람들이 먹는 것 중 대부분은 약 100년 사이에 종자개량을 거쳤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나는 모자와 지갑을 집어 들고 사무실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된 마차에 올랐다.
“어서옵쇼, 손님! 어디로 태워다 드릴까요?”
앞니 하나가 빠진 마부가 이가 다 보이도록 헤실거리며 물었다.
“파리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이 어디죠?”
내 질문에, 마부는 손으로 턱을 벅벅 긁더니 입을 열었다.
“음... 팔레 루아얄 옆 ‘라 그랑드 타베르네 드 롱드(La Grande Taverne de Londres)’가 제일 큰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그러면 그쪽으로 갑시다.”
“예이, 그리로 바로 모시겠습니다요. 아 혹시 가는 동안 잡지 한 부 안 보시렵니까? 마침 오늘 자 포브스가 들어왔는데, 이게 요새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잘 나간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마부가 잡지를 건네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내 눈으로 다 확인하고 낸 거라서요.
“이야 이런 꿀땅에다가 이 정도 건물이면 얼마 정도 하지?”
한참을 달려 도착한 레스토랑은, 파리 한 복판에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사 분. 레스토랑, 라 그랑드 타베르네 드 롱드입니다. 혹시 저희 레스토랑 방문은 처음이신지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웨이터 한 명이 나와 내 모자와 겉옷을 받아들곤 내게 물었다.
“아, 예 그렇긴 한데. 식사를 ㅎ···.”
“저희 레스토랑이 처음이시라면 오늘 나온 특선을 추천드립니다, 손님. 송아지 갈비를 버터와 함께 구운 요리랍니다.”
“···송아지 갈비요?”
“네, 그렇습니다.”
되묻는 내 말에, 웨이터는 고개를 숙이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고기...
그것도 소고기 갈비...? 아 이건 못 참지.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끄덕이며 웨이터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포도주는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낸 상등품이지요.”
“···예, 그걸로...”
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시장조사 아닐까?
와! 직접 시장조사를 발로 뛰면서 하는 사장이라니, 이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내가 스스로 애써 날 정당화 하는 동안,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내 앞에 놓였다.
***
맛있다.
미미(美味)!
흑흑 매일 간편식사로 때우다가 이런 걸 먹으니까 위장이 기뻐 날뛰는 것 같애!
내가 냅킨으로 입을 닦고 있자, 예의 웨이터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손님?”
“···너무 들어서 문제인걸요. 주방장님께 맛있게 잘 ㅁ···.”
아니 아니지, 잠깐만. 내가 여기 밥 먹으려고 온 게 아니잖아.
“···웨이터 님, 혹시 주방장님이나 주인 분을 만나 볼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손님.”
웨이터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대신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주신다면 따로 약속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나중에 ㅈ···.”
싱긋 웃으며 내 명함을 받아든 웨이터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왜 그러십니까?”
“성, 성함이 기욤 드 투, 툴롱 맞으십니까?”
“···아.”
“바로 주방장님을 불러오겠습니다, 각하!”
“꼭 그럴 필요는···.”
웨이터는 내 마지막 말은 듣지도 않은 채, 그대로 주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곧, 삼십대 중후반쯤의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라 그랑드 타베르네 드 롱드의 주방장 겸 주인, 보빌리에입니다, 각하! 무슨 일로 절 찾으셨는지요.”
그... 주방장님 숨 좀 쉬면서 얘기하시지 참.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방장님.”
“설, 설마 루이 17세 국왕 폐하를 모신 적 있다고 저희 식당을 폐쇄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예?”
날 뭘로 보시는 거지. 내가 그렇게 편협하고 추잡한 짓을 할 것 같나?
“이 레스토랑은 제 모든 것입니다! 제발 그것만은!”
“···그런 게 아니고. 토마토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만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을 듯, 애절하게 말하는 주방장님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주방장님은 내 손이 닿자, 화들짝 놀랐지만. 내 질문을 듣자마자 그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토마토요? 아니, 토마토에 독이 왜 있습니까?”
“그렇죠? 독 없죠?”
역시 이곳은 토마토에 독이 든 지구-5832 가 아니라 내가 살던 지구-1 이구나.
“당연하지요. 주재프랑스 미국대사라는 분께 토마토로 만든 요리를 대접해드린 적도 있는 걸요.”
“제퍼슨 대사님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혹시 토마토로 소스 같은 거 만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건... 혹시 ‘케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재무총감 각하?”
“네! 네, 케첩! 케첩이 있습니까?”
오오! 케첩! 케첩을 아시다니!
그러나 들뜬 내 마음과는 달리, 주방장 보빌리에 씨의 얼굴은 아까와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썩어 들어갔다.
“···프랑스 요리 하는 곳에 케첩 같은 걸 놔둘 리가요. 영국 놈들도 아니고 그런 짓을 어떻게 합니까?”
“예?”
“케첩은 영국식 버섯 소스이지 않습니까. 버섯에 멸치를 같이 넣어 먹다니, 으윽... 영국 놈들은 섬에서 사는 탓인지 죄다 입맛이 맛이 가버렸다니까.”
“···멸치에 버섯을 넣어 만들어요?”
“예 그렇습니다만... 알고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뭔...케첩에 멸치랑 버섯이 들어가? 토마토에 소금 설탕 팍팍 쳐서 만드는 거 아닌가?
아 설마, 아직 토마토케첩이라는 게 안 만들어진 시대인가?
그렇다면 만드는 순간 오X기, 하X즈 다 싸먹을 만한 시장을 내가 확보하는 거잖아.
아 이거 돈 냄새가 어마무시하게 나는데?
나는 주방장을 쳐다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보빌리에 씨. 혹시 저랑 토마토로 소스 하나 만들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겸사겸사 그쪽한테 뽀찌도 좀 떼줄게.
***
프랑스 파리.
튈르리 궁전.
국왕 루이 16세, 아니 대공 루이 오귀스트는 와인 잔을 기울여 포도주를 한모금 삼키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내가 재무총감에게 말했다네! ‘그렇다면, 짐의 왕관은 언제 가져갈 겐가, 총감!’.”
“호오,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 앞에서는 이삭의 민족 잡지사 편집장, 생쥐스트가 손에 백지를 들고 루이 오귀스트의 말을 따라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왕으로 있으면서 참... 실정을 많이 저질렀네. 내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죄스러울 정도야.”
“···.”
“걱정 말게, 생쥐스트 군. 내 이제는 모두 훌훌 털고,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 생각이니. 총감이 그러더군, 시민이 되라고.”
“···역시, 사장님다우신 말이네요!”
생쥐스트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래 기욤... 참 대단한 친구지! 솔직한 얘기로 그 친구가 차라리 프랑스의 왕이었다면 바스티유에서 시민들이 죽을 일도 없었지 않았을까 싶네...”
“···.”
“난 왕이 되기엔 모자른 사람이었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소유하고자 하니, 세상이 이리 황량해 진 것 아니겠나. 대학자 플라톤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이에게는 맞는 분수가 있는 거 아닌가 싶네. 어찌 보면 군림이라는 단어도 참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네.”
루이 오귀스트의 마지막 말에, 그의 말을 계속 경청하고 있던 생쥐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쥐스트 군, 왜 그러나?”
“때에 맞춰 자리에서 기꺼이 물러나는 것도, 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공 전하의 대국적인 마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의 혁명은 더욱 피가 낭자한 일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애초에 군림한다는 단어 자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말 아닐까요. 필연적으로 남을 탄압해야 그 위에 설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또 가슴이 한결 편해지는 군. 재무총감이 참 좋은 사람을 붙여준 것 같아.”
루이 오귀스트는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활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전 폐ㅎ, 아니 대공 전하를 만나 뵙기 전까지 대공 전하에 대해 참 안 좋은 생각이 많았습니다.”
“허허, 무리도 아니지.”
“그런데 만나 뵈니, 대공 전하도 저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는 군요. 사장님도 이런 그림을 원하신 건지...”
“하하, 그런가? 그러면 적어도 자네는 내 목을 탐내지는 않겠구만!”
“아니, 제가 무슨 살의의 대천사로 보이시는 겁니까. 대공 전하?”
“농일세 농! 하하!”
새로 사귄 친구가, 참 마음에 드는 두 사람이었다.
***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마을.
“자네 요즘 새로 일거리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허, 그건 또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아, 우리 마을에서 아주 모범청년인 노엘 자네 얘기인데, 누가 모르겠나?”
“음...”
노엘은 어르신의 말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혹시 돈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지, 토목과에서 근무하는 걸로도 먹고 살긴 충분하지 않나.”
“돈... 보다는 뭔가 사회에 공헌할 게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러면 차라리 파리로 올라가보는 거 어떻겠나?”
“···파리요?”
“그래. 자네는 글도 알고 있으니까 파리에서 그런 자리를 찾아보면 되지 않겠나.”
“파리라고 해도, 공무원은 시험을 봐야하지 않습니까.”
“흠...그런가?”
“그렇죠?”
“아! 그러고 보니 그 재무총감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새로 사람을 뽑는다던데 거기 지원해보는 건 어떤가? 자네 평소에 재무총감 그 양반 관련해서 관심 엄청 많았잖나!”
“기욤 드 툴롱이 사람을 뽑는다구요?”
“여기 요 잡지에 써있던데?”
[각종 사무보조, 회계, 계산에 능한. 우리와 가족이 될 사람을 뽑습니다! -이삭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