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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2) (83/341)

여러분 파리는 안전합니다! (2)

“이제 5월도 거의 다 가고 6월이 슬슬 찾아올 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 슬슬 후덥지근 해지는구만.”

모두가 아직 꿈에서 헤매이는 새벽 5시의 파리 한편에서, 마부 토마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목적지는 여느 때와 같이 파리 동부 마차대기소, 토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말 두 필과 그의 마차가 고이 보관돼 있는 곳을 향해, 오늘도 파리의 소시민은 두 다리를 앞으로 내딛었다.

“···뭐여. 다들 왜 밖에 서있대?”

토마의 눈에, 오늘의 마차 대기소는 뭔가 달라보였다.

평소 같으면 사무실에 처박혀서 돈 꾸러미나 절그럭 거리며 놀 조합장이, 밖으로 나와 마차와 마부들을 세워놓고 재잘대고 있었다.

“조합장 양반, 이건 또 뭐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다들 부른 거니까 좀 기다려 보슈.”

토마의 뒤로 몇몇 마부가 이어 도착하자, 조합장이 한 번 눈으로 마부들을 슥-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다들 모였구만. 그래, 모두 우리 조합하고 친한 이삭의 민족 알지?”

“알다마다. 우리한테 멀미약 가져다주는 친구들 아뇨?”

한 마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합장은 마차 한 대에 실려 있는 화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건 우리 조합하고 협력관계에 있는 이삭의 민족에서 이번에 새로 발간한 잡지들인데, 앞으로는 여기 있는 마부들 모두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손님들한테 한 부씩 팔면 꽤나 짭짤하게 벌 거요.”

“잡지? 혹시 [인민의 벗] 같은 거요?”

“뭐, 그 양반들 말로는 다른 잡지들하고 다르게 정치 같은 거 안 다룬다는데, 그런 건 아닐 거요.”

마차 대기소에서 일하는 사람 몇이 나와 화물을 끌러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검은색 표지의 [포브스], 붉은색 표지의 [막심].

"···종류가 두 갠데? 뭐가 다른 거요? 난 글자 같은 거 몰라서...“

“아 그거 설명을 안했네, 검정색 표지는 아무한테나 팔아먹어도 되는데. 그 뻘겋게 생긴 표지는 성인잡지라고 성인한테만 팔아먹으라고 그러더구만.”

“성인잡지?”

“뭐 야시시한 게 나온다고 하데.”

“거... 그러면 이거 한 부 당 얼마에 팔면 됩니까, 조합장 양반.”

마부 한 명이 손에 든 잡지를 펄럭이며 조합장에게 말했다.

“거기서는 대강 3 수 정도에 팔아먹으라던데 뭐 좀 더 비싸게 받아먹어도 되지 않겠어? 5 수 밑으로만 받아먹으쇼. 자, 다들 받았으면 싸게싸게 움직이라고! 오늘도 돈 많이 벌어야 자식새끼들 입에 빵 쪼가리 하나 더 넣을 수 있지 않겠어?”

“하하, 뭐 맞는 말이긴 하네!”

“자 모두 많이들 팔고 이제 일하러 좀 꺼지라고.”

평소와 같은 조합장의 불호령에 마부들은 킬킬 웃으며 제 각기 자신의 마차에 올라 고삐를 휘둘렀다.

***

“어이 마부! 나 좀 탑시다!”

“어서 옵쇼! 어디로 모실까요?”

토마는 마차에 오르는 승객을 향해 모자를 벗어보이곤 말했다.

“퐁텐블로로 갑시다. 아 그리고 멀미약 하나 주시오. 그거 한 번 쓰니까 이제 그거 없인 도저히 마차를 못 타겠더군.”

“예이, 그쪽으로 모시지요!”

토마는 마부석 아래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 멀미약을 꺼내며 말했다.

그런 토마의 눈에, 멀미약 상자 옆에 자리한 아침에 받아 든 잡지 묶음이 걸렸다.

“아. 손님 혹시 글 읽으실 줄 아십니까?”

“글? 글이야 읽을 줄 안다만... 왜 그러시오?”

“이번에 새로 나온 잡지들인데, 심심풀이 겸 한 번 사서 보시지 않겠습니까?”

토마의 말에, 승객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잡지는 무슨, 됐소. 난 이제 정치에는 신물이 나서. 매일 들려오는 내용이 죄다 베르사유 의회에서 쌈박질을 했니, 뭐니 뿐이니 원. 에이 씨, 보통 진절머리가 나야 말이지.”

“뭐 저도 높으신 양반들 생태는 잘 모릅디다만, 우리 조합장 양반이 하는 말로는 이거 여타 잡지와는 다르다고 하던데, 한 번 읽어나 보시지 그럽니까?”

“···그렇게나 말한다면야... 한 번 속는 셈 치지. 그러면 나 한 부 주시구려.”

“검정색하고 붉은색 두 개인데 뭐 보시렵니까?”

“잡지 하나 보기 참 힘들구만, 검은색으로 주시오. ···[포브스]? 무슨 영국 놈이 만들었나, 잡지 이름이 왜이래?”

승객은 토마가 준 잡지 제목을 보곤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프랑스가 ‘이것’을 하자, 합스부르크와 타타르가 쩔쩔 매는 이유? 이게 무슨...”

너무나도 강렬한 첫 번째 기사의 제목에, 승객은 점차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

“···님, 손님!”

“어?! 어! 왜 그러시오?”

승객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읽던 잡지를 내려놓았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못 들으십니까? 목적지 퐁텐블로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거의 3시간 넘게 달려왔는데 벌써라니요?”

토마의 말에, 승객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출발 시간으로부터 3시간이 지난 시각이 맞았다.

승객은 다시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손에 든 잡지를 펄럭이며 말했다.

“아, 아니오. 이 잡지 얼마에 팝니까?”

“삼... 큼큼. 아니 한 부에 5 수요.”

뭐 회중시계도 가지고 다니는 거 보니 꽤나 사는 사람 같은데 2 수 정도야 더 받아도 되지 않겠나.

토마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여, 여기 마차 삯이랑 다 합친 돈이요.”

“고맙수다. 그럼 안녕히 가십ㅅ... 뭔 눈을 떼질 않네.”

마차에서 내려서도 계속 잡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길을 걸어가는 승객을 보고, 토마는 누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궁시렁 댔다.

***

1790년 6월 초순.

파리, 이삭의 민족 잡지사.

“나! 나 한 부 주시오!”

“아니 씨발, 합스부르크 다음에 타타르가 프랑스를 겁내고 쩔쩔매는 이유에서 기사를 끊으면 뭐하자는 거야! 당장 다음 편 내놓으라고! 으아아아아!!!”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물건 TOP 5’ 에 대체 왜 우리 가게 물건은 안 들어갔단 말입니까!? 당신네들 서로 짜고 쳤지!”

“잠, 잠깐 모두들 진정하시고... 재고는 넉넉하게 있으니 줄을 서서 차례차례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전 판매담당이지, 편집부가 아닙니다! 저에게 이러셔도 어떻게 못해드려요!”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물건 TOP 5’ 는 도나시앵 사드 작가의 공평한 심사와 파리 시민들의 일부를 조사해 얻어낸 공정한 결과입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이삭의 민족 잡지사 판매부는 몰려드는 어마어마한 사람을 겨우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음 화를 당장 내놓으라며 직원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그만큼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 아니겠나.

아무튼 출간한 지 겨우 일주일 만에, 잡지 [포브스]는 파리의 모든 곳을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도.

“자네 어제 자 [포브스] 봤는가?”

“아 보다마다요! ‘우리 프랑스의 자랑! 양파 요리를 합스부르크 놈들과 타타르 야만인들이 탐내는 이유’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거 보고 오늘 저녁은 양파 수프로 정했네, 요새 나오는 잡지에서 매일 서로 물어뜯는 거만 보다가 [포브스]를 보니까 오랜만에 웃음이 나오더구만! 난 앞으로 [포브스] 정기구독도 신청하려고 하네.”

“아 그러고 보니까, 정기구독인가 뭔가 하면 매일 집 앞에 잡지를 배달해 준다면서요? 저도 할까 말까 고민 중이긴 한데...”

“자네도 하게! 정기구독하면 한 달에 세 편은 공짜로 배달해 준다더군. 세 편이면 거의 6~7 수나 아끼는 거 아닌가! 어디 땅 파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꿩 먹고 알 먹고?’ 그건 무슨 뜻입니까?”

“에헤이 이 친구. 오늘 자 [포브스]는 아직 안 봤구만? 동양의 속담이라고 하더군! 어떤가, 좀 유식해 보이지 않나?”

동네 아줌마들끼리 모이는 곳에서도.

“어머머,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래요?”

“저번 주 수요일 [포브스]에서 나왔던 ‘이 달의 요리법’대로 해본 건데, 어떤가요?”

“어떠냐뇨! 너무 맛있는데요? 저 한테도 방법 좀 알려주세요, 부인!”

“자, 일단 잡생선을 모두 모아서···.”

온통 [포브스]에서 나온 얘기로 파리가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포브스]에 가려져서 그렇지, [막심]도 나름 상당한 판매량을 보이며 선전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야야 너 그거 진짜로 가져왔어?”

“물론이지! 기숙사 사감한테 안 걸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어디, 어디 나도 볼래!”

“‘디외도네는, 오랜만에 돌아온 외젠을 향해 싱긋 웃었다.’ 와 이거 진짜네?”

“야 내가 누구냐? 당연히 이번에 새로 나온 [막심] 신판이다 이거야!”

“아니 이걸 어떻게 구한 거야? 어른 아니면 못 사잖아.”

“당연히 형 방에 숨겨져 있던 걸 몰래 훔쳐왔지!”

1년간의 혼란에 지친 프랑스인들에게, [포브스]는 곧 퍽퍽한 일상 속 찾아오는 단비가 되었다.

***

“왜 됩니까?”

“엥, 뭐가요?”

“기존 잡지들과는 아예 다른, 새로운 시도 아닙니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음.”

왜라니, 미래에서 잡지가 그랬으니까요?

라고 하면 날 미친놈 쳐다보듯 보겠지.

나는 완벽하게 이성적인 얼굴로 자리에 앉아 플로리앙 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플로리앙 씨, 파리 사람으로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누굴 죽이니, 살리니, 국왕이 바뀌질 않나 바스티유 요새를 시민들이 함락시켜버리지 않나. 지난 1년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이 세상에 나쁜 소식만 듣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 틈을 잘 파고들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뭐 자뻑일 수도 있지만, 나름 제가 또 사람들 숨통 좀 트여주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 먹고 살만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꽤나 변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악담을 퍼붓는 건 딱 두 명 밖에 없다.

혼란을 통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사람 아니면 빨갱이.

참고로 나는 굉장한 자본주의자고 이타심이 강한 사람 아니겠나.

윽! 빨갱이라니! 그런 건 싫어요!

“뭔가 굉장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그렇죠?”

“예, 뭐... 그렇다고 치죠.”

이거 참 너무하시네.

“···감자 농장은 어떻게 확보하셨습니까?”

나는 침울함을 빠르게 잊기 위해 플로리앙 씨에게 주제를 바꿔 말했다.

“말씀하신대로 감자 농장을 하나 인수하긴 했습니다만, 이걸로 뭘 하시려구요?”

“튀긴 다음에 이삭의 민족 간편식사에 더해서 팔아먹으려고요.”

“하... 또 일입니까?”

“먹어보시면 그런 말 안 나올걸요? 아 그리고 거기에 토마토로 소스도 하나 만들어야 하니까 토마토도 한 번 알아봐주세요.”

감자튀김에 케첩은 진리 아니겠나.

아직 콜라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토마토? 아니 사장님, 그거 유독식물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예?”

토마토가 유독식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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