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들리에 클럽 (2)
1790년 5월 초순.
프랑스 파리, 튈르리 궁전.
방금 전까지 내 손을 마주잡고 하하호호 웃던 시민 루이 오귀스트 씨는 날 미친놈 보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긴 나도 내가 미친놈 같은데 뭐.
“···지금 짐, 아니 나보고 뭐라고 하는 게요. 재무총감?”
“그러니까 말이죠. 루이 오귀스트 대공은 호오오옥시 복위 같은 거 할 생각 있으신...지?”
“···그렇게 다들 날 들들 볶아대더니, 이제 와서 나보고 다시 왕좌에 앉을 생각 있느냐고 물어보는 겐가?”
“오...를레앙이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더라구요. 하..하하...”
루이 오귀스트 이 양반은 그래도 프랑스군 소속 부대를 움직인 건데, 오를레앙 이 새끼는 진짜배기 외국군을 불렀단 말이지.
아니 세상에 지 나라에 용병도 아니고 외국 정규군을 불러서 자국 동네를 공격하는 사람이 고종 말고 또 있을 줄 내가 어떻게 알겠나.
루이 오귀스트는 어딘가 어색하게 웃는 내게, 뚱한 얼굴을 한 채로 말했다.
“오를레앙 그 놈이 싫으면 그 놈도 마저 내쫓은 뒤에, 바다 건너 미국처럼 자네들끼리 공화정이라도 선언하지 그런가?”
공화정이라니요. 물론 전 공화정과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봉건제보다 더 친숙하고 좋습니다만 옆 나라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걸요?
바로 군대를 끌고 와서 수레바퀴보다 큰 혁명가는 모두 죽이려 들지 않을까.
“···국왕 자리에서 내려오시니까 뭔가 좀 달라지신 기분이네요.”
“그래? 어느 점이 그렇소?”
“좀 더 꼬장꼬장해지신 기분?”
루이는 턱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허, 고약한 사람 같으니. 재무총감 자네가 날 꼬장꼬장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두 손을 활짝 펴, 루이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하여간 그 꽉 막히고 겉과 속이 다른 오스트리아 촌구석을 다녀오고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재무총감 자네 밖에 없을 걸세.”
루이 오귀스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는 직설적이어서 좋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내가 그런 점이 싫었으면 자네를 튈르리에 들이지도 않았지. 하하!”
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게 웃었다.
“아무튼 복위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음.”
내 질문에, 루이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짧게 신음을 흘렸다.
“혁명군 쪽에서 조그마하게 흘러나온 얘기지, 막 진지한 질문은 아니니 편하게 답하셔도 됩니다.”
루이는 손바닥을 펴, 양 손가락 끝을 서로 마주보게 잠시 톡톡 부딪히더니 내 눈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솔직한 얘기로 복위라는 얘기에 마음이 잠시나마 홀리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이네, 재무총감.”
루이는 어딘가 편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는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의 생활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그저, 가족들과 평온하게 책도 읽고, 산책도 가고. 멍청한 예법을 따를 필요도, 왕의 위엄이라는 걸 갖출 필요도 없으니 테니스도 좀 치고 말일세.”
그러고 보니 내 몸에 근육이 좀 붙은 것 같지 않나? 요새 승마도 테니스도 열심히 하는데 말일세. 루이는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큼큼. 그런가? 그건 차치하고서, 요즘은 또 우리 아들에게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는 상황이네. 아이가 몸이 많이 허약해서 말이야.”
루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재무총감. 자네의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하겠네. 복위다 뭐다 해서 또 복잡한 일에 휘말리면 귀찮아질 게 뻔하고, 당연히 가족들에게 쏟을 시간도 부족하지 않겠나. 뭐 오를레앙 그 놈이 급사하거나 하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네.”
“···알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루이 오귀스트 대공.”
가족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사람을 뭐 강제로 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루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하, 자네가 그리 기껍게 이해해주니 고맙구만. 아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차나 한잔 하고 가지 않겠나? 이번에 네덜란드 쪽에서 좋은 찻잎이 들어와서 말일세.”
“뭐, 나쁘지 않죠.”
“그래, 그래. 잘 생각했네!”
루이는 탁자 위에 놓인 종을 울려 시종을 부른 후 날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재무총감 자네, 요즘 잡지사를 하나 차릴 준비 중이라지?”
어 그거 영업기밀인데.
“···그걸 루이 오귀스트 대공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루이는 시종이 가져온 차를 받아 입에 가져다 대려다가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찻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허, 파리 한복판에서 매일 이상한 사람들이 가게를 들락날락 거리며 거대한 기계를 뚝딱거리면 만들고 있으면 소문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지 않겠나. 게다가 도나시앵 드 사드 후작, 그 미치광이를 재무총감이 채용했다면서?”
“아, 도나시앵 사드. 그 사람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다마다! 그 자를 신성모독죄로 바스티유에 넣은 게 바로 본인인데.”
“···예?”
뭔가 들어서는 안 될 걸 들은 듯 한 기분.
“아무튼 간에, 자네 잡지사를 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혹시 글쟁이 한명을 내게 붙여줄 수 있는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글쟁이요?”
갑자기 좀 생뚱맞으시네.
루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재무총감이 기억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번에 내가 말한 책 있지 않나.”
“아 그 무소유인가 뭔가 하는 그거 말입니까?”
“그렇네. 원래 같으면 나 혼자 쓰려했는데, 아이가 아프니 시간이 영 마땅치 않아서 말이야. 차라리 대필을 한 명 구해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네.”
대필이라.
“···작가 두 명이 있기는 합니다만. 혹시 ㅅ···.”
“사드는 빼고 부탁하네, 재무총감.”
씁. 아까워라, 들켰네.
“그러면 생쥐스트라는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생쥐스트라! 이름이 멋진 친구로군. 혹시 전에 뭐하던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는가?”
“법대 출신에 검사 서기보 하던 사람입니다.”
“괜찮은 사람이군. 내 나중에 꼭 사례하겠네, 총감!”
루이 오귀스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
이삭의 민족 잡지사 사무실.
“도나시앵 선생님, 이게 말이 됩니까?!”
이삭의 민족 잡지사 편집장 생쥐스트는, 포도주와 와인 잔이 놓인 탁자에서 술안주로 미리 잘라놓은 치즈 한 덩이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분통한 말투로 말했다.
생쥐스트의 맞은편에 앉은 사드 또한 잔에 마지막 남은 와인을 목 뒤로 모두 삼킨 후 침울하게 말했다.
“어쩌겠소...사장님께서 정하신 바이니 우리는 따라야지.”
“아아! 어떻게 우릴 이리 탄압하시는지!”
마치 셰익스피어의 삼대 비극에 나오는 멕베스마냥, 생쥐스트는 온 몸을 뒤틀며 탄식을 내뿜었다.
“···날 것 그대로의 폭력과 인간 본연의 가학적 본성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인 것을...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오.”
그에 질세라, 사드 또한 거의 나라를 잃은 듯 침울한 얼굴로 답했다.
“선생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파리에서 유행 중인 물건 탑 5 를 알아보자!’라니, 이런 걸 어떻게 쓰라고 하신답니까...? 이건 문학을 좇는 글쟁이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생쥐스트 편집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오. 사장님께서 나에겐 무슨 주제를 주셨는지 아시오?”
“···아니 대체 무슨 주제인데 그러십니까?”
“‘실생활에 유용한 간단한 팁 10가지.’라니! 이 어찌나 통탄스러운 일인가!”
“세, 세상에 무슨!”
사드의 말에 생쥐스트의 입이 떡하니 벌어져 닫힐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지금 파리에서 유행 중인 물건 탑 5’
‘실생활에 유용한 간단한 팁 10가지’
‘이삭의 민족이 만든 멀미약의 또 다른 효능 3가지?!’
‘이것만 안다면 수확량이 10% 증가!? 지금까지의 농사는 잊어라! 프랑스의 화약국장 라부아지에가 새로운 과학적 농사법 vol.1을 공짜로 알려드립니다!' 등등.
‘아아 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란 말인가!’
생쥐스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장 기욤 드 툴롱은. 대체 잡지와 문학, 그리고 작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상한 잡지 주제만을 툭툭 던져대고는 생쥐스트와 사드가 가진 창작의 자유를 짓밟고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사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막심(Maxime)이라는 잡지는 지켜냈잖소. 그걸로 위안을 삼읍시다.”
“도나시앵 선생님!”
사드의 말에, 생쥐스트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 사장 기욤 드 툴롱이 모든 펜을 꺾으려 든 것은 아니었다.
사장 기욤이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가던 날, 도나시앵 사드와 생쥐스트 둘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겨우 얻어낸 잡지, 막심이.
그들에게는 아직 남아있었다.
물론 살인, 약탈, 방화 등의 묘사를 금지한 사장님 때문에 어느 정도 표현의 완화는 있었지만 그래도 생쥐스트와 사드의 왕성한 창작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막심이.
그들에게는 아직 남아있었다.
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쥐스트는 눈물을 탁자 위에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도나시앵 선생님,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생쥐스트 선생! 내 나이 쉰에 이렇게 마음 맞는 친우를 만나다니, 주님의 인도에 감사할 뿐이구려!”
생쥐스트가 주는 포도주를 잔에 받고난 후, 사드와 생쥐스트는 서로 손을 맞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 때, 생쥐스트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억, 억!”
“하하, 나 또한 생쥐스트 선생처럼 말이 메여 나오질 않소!”
“억, 어억!”
“···생쥐스트 선생, 대체 왜 그러시오...?”
세차게 흔들리는 생쥐스트의 눈동자를 따라, 사드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백주대낮에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여도 된다고 한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두 분?”
팔짱을 낀 채, 사드와 생쥐스트를 죽일 듯 쳐다보는 사장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드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술은 마셨지만, 사장님 욕은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부디 믿어주십시오!”
“아니 생쥐스트 씨, 지금 그게 문제인 게 아니잖아요.”
“그, 그러면 대체 왜 절 루이 오귀스트 그 자에게 보내시려는 겁니까! 남의 손을 빌려 절 죽이려 하시는 거지요!?”
생쥐스트 씨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그냥 대필 작가로 생쥐스트 씨가 뽑힌 것뿐입니다.”
“제가 왕실에 악담을 늘어놓아서 전과자가 됐던 거 아시지 않습니까! 분명 절 반으로 갈라 박제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아니 여기가 무슨 지옥도 아니고 사람이 그럽니까? 그리고 왕이 하루에만 듣는 욕이 몇 마디인데 생쥐스트 씨를 어떻게 알아요. 무슨 연예인 병이라도 걸리셨습니까?”
“여, 연예인 병이요?”
“마치 내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막 알아볼 것 같은 느낌말입니다.”
“···.”
이거 표정을 보니까 해본 적 있었구만?
하긴 TV도 없는 세상에 연예인이라고 하면 글쟁이 밖에 더 있겠어.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나 오세요. 제가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그리고 사드 씨.”
“예, 예! 사장님!”
사드는 움찔하더니 날 쳐다보고 말했다.
“예술의 혼이고 나발이고 기사나 빨리 쓰세요. 아시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사드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책상에 앉아 깃펜을 빠른 속도로 놀리기 시작했다.
이삭의 민족에서의 평범한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