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 (2)
“맛있게 잘먹었습니더.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네예.”
나폴레옹은 식사를 마치고 입을 닦고 난 뒤, 어머니 레티치아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왜인지, 레티치아는 자신의 아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모, 저 진짜로 뻥 뚫려버리는 거 아닌가 싶은데예. 하하하.”
“···나폴레옹, 파올리 그 사람을 참말로 만나야겠나?”
레티치아의 걱정어린 말에, 나폴레옹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답했다.
“···아무래도 만나 봐야하지 않겠습니꺼.”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을 계속 쳐다보며 말했다.
“파올리 그 사람, 아마 나폴레옹 네 아버지 일을 아직도 속에 담아 놨을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는 네가 그 양반 찾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안 든다카이.”
“그러니까 더더욱 가봐야지예.”
“···.”
나폴레옹은 잠시 고개를 숙여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후,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그 코르시카에 있는 사람들 중에, 파올리 선생을 좋게 생각 안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꺼. 당장 나만 해도 파올리 선생,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 드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 해 뭐하겠습니꺼.”
독립영웅 파올리.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예순에 가까운 평생을 바친 투사.
그를 미워하는 코르시카 인은 적어도 나폴레옹이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막말로 파올리 선생이 사슴을 가져다가 말이라 캐도 코르시카 사람 반은 고개를 끄덕일겝니더.”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물론 우리 보나파르트 가문도 코르시카 사람들이 좋아하지마는, 파올리 선생에 비해서는 확실히 차선 아니겠습니꺼.”
이제 나폴레옹은 레티치아를 향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코르시카에 온 것도, 어차피 곧 파올리 선생 귀에는 흘러들어갈 게 분명할 겁니더. 여기서 제가 몸을 사려봤자, 공연히 파올리 선생에게 의심만 살 뿐. 결코 좋게 생각되지는 않겠지예.”
“그래도, 이 어머니는 네가 걱정돼서 도저히 가만 몬 있겠다.”
나폴레옹은 레티치아의 떨리는 목소리에도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셔예. 파올리 선생이 아무리 우리 보나파르트가 밉다 캐도, 프랑스 육군 대위를 정말로 죽일라카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꺼. 고작해야 위협이겠지예.”
결국, 나폴레옹의 설득에. 레티치아는 도저히 못 말리겠다는 듯 말했다.
“···후, 알았데이. 나폴레옹이 네 마음대로 해보라카이.”
“하하. 그라모, 다녀오겠습니더.”
나폴레옹은 넉살좋게 웃으며 식탁 옆으로 치워놓은 자신의 삼각군모를 머리에 쓰고, 집을 나섰다.
***
코르시카, 아작시오 항구 근처.
파올리 선생이 숨어있는 저택 앞에서 경비를 서던 장정은, 저 멀리서 뒷짐을 진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프랑스 군 복장의 장교를 보고 뒷주머니에 넣어둔 단도를 왼손으로 슬며시 감싸 쥐며 입을 열었다.
“잠깐, 거기 있는 군인 양반. 뭔 일로 여까지 오셨습니꺼!?”
그러나 날 선 장정의 말에도, 장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장정이 단도를 주머니에서 빼내려 마음 먹은 순간, 장교는 완벽한 코르시카 사투리와 함께 삼각군모를 벗어 장정에게 인사했다.
“하하, 안녕하세예?”
“···나폴레오네 씨?”
장교는 다시 삼각군모를 머리에 쓰고는 쾌활하게 말했다.
“나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 맞습니더. 이번에 휴가를 받아서, 오랜만에 코르시카에 왔습니더.”
“···그런데 여기는 와 오셨습니꺼.”
“하하. 코르시카 인으로서 파올리 선생님이 오셨다는데, 우예 가만히 있겠습니꺼. 인사라도 드릴라꼬 왔지예.”
씨익 웃으며 말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에, 경비는 잠시 입술을 씹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쪼매만 기다려주시지예.”
“하모 예.”
경비는 뒤로 돌아 저택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 문을 다시 열고 나와 나폴레옹에게 말했다.
“됐어라, 이제 들어오시면 됩니더.”
“하하, 고맙습니더.”
문 앞에 선 나폴레옹은 잠시 몇 번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문을 열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파올리 선생님?”
나폴레옹의 말에, 예순의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파올리데이. 청년은 누꼬?”
나폴레옹은 노인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선생님.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입니더.”
노인은 잠시 나폴레옹을 빤히 쳐다보다가 아-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냈다.
“···부오나파르테? 아! 자네가 말로만 듣던 카를로스 그 친구 아들이고마. 내 만나서 영광이데이.”
자신을 향해 건넨 노인의 손을 마주잡고, 나폴레옹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아입니더. 파올리 선생님을 뵙게 된 제가 더 영광이지예.”
그런 나폴레옹을 보고, 노인은 씨익 웃더니 고개를 돌리고 주변에 있는 장정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게들, 우리 코르시카의 건아가 이래 장성하는 걸 보니, 우리가 독립할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지 않나?”
“하하하! 파올리 선생님 말이 맞심더!”
“하모 예, 당연하지예!”
노인은 다시 나폴레옹을 바라보곤 얘기를 시작했다.
“나폴레오네 군, 혹시 내일 뭐 할 일 있는가? 없으모, 우리 같이 식사라도 하는 거 어떤가?”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인데, 저야 당연히 좋습니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는 나폴레옹의 모습에, 노인은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손잡이 부분을 손으로 탁-치면서 답했다.
“허허, 역시 군문에 든 사람 맹키로 화끈하고마. 좋네, 내일 보는 걸로 하지.”
“예! 그러면 가보겠십니더, 선생님.”
***
- 파올리 선생님. 코르시카를 수탈하던 제노바에게서 벗어났으면 이제 다 된 거 아입니꺼!
- 뭐야? 카를로스, 자네 지금 뭔 말을 하는 건지는 알고 하는 기가!
- 냉정하게 생각하세예! 상륙한 프랑스 군이 10만이라 캅니다! 10만! 코르시카 사람들이 다 죽어버리면, 코르시카에 살기는 누가 살낍니까! 거기에 프랑스 점마들은 제노바처럼 돈도 안 걷어간다 카지 않았습니꺼! 그냥 프랑스 땅인 거만 인정해주면 된다고예!
- 이 배신자새끼가!
파올리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상념에서 깨어나 나폴레옹이 나간 문을 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점마가 카를로스 부오나파르테 그 배신자 놈 아들이라꼬?”
“예, 그렇습니더. 프랑스 본토에서 사관학교까지 댕기고 계급장도 받아먹은 놈이지예.”
파올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 카를로스 금마가 능력은 있었제. 금마 피가 지 애새끼들한테 제대로 가긴 했나보구마.”
그런 파올리의 모습에, 옆에 있던 장정 한 명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어쩌시겠습니꺼. 확, 죽여버릴까예?”
그러나 파올리는 고개를 돌려 방금 말을 꺼낸 장정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라꼬? 금마를 죽여? 자네 미칬나? 카를로스 그 새끼 아들노마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방금 뻔히 봐놓고는 그런 말을 지껄이나? 프랑스 육군 장교 정복이야, 장교 정복!”
“···.”
파올리는 한 쪽 손을 의자 손잡이에 올려놓고는 손잡이를 두들기면서 이어 말했다.
“금마는 지금 우리한테 똑똑히 경고하는 기다. 우리가 뭘 하던 괜찮은데, 부오나파르테 가문는 건들지 말라꼬. 그게 아니면, 저래 군복을 쫙 빼입고 올 이유가 없제.”
“···죄송합니더, 선생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더.”
자신의 미숙함을 사과하는 장정 옆으로, 또 다른 청년 한 명이 나와 파올리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나폴레오네 점마를 우예 하시겠습니꺼.”
파올리는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마주보고 한참을 부딪치다가 주변을 훑어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점마가 휴가를 받아서 내려왔다한 거, 확실하제?”
“예, 선생님. 금마가 지 입으로 똑똑히 말했습니더.”
“그라모 나폴레오네 금마한테 내 친위대 대장을 맡기라카이.”
“···예?”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는 자들을 위해 파울리는 천천히 말했다.
“원래 저런 노마들은 옆에 두고 확실하게 감시하는 게 상책이데이. 그리고 휴가를 받아서 왔다고 했으니, 복귀일자도 무조건 있을 기다.
만약 금마가 고대로 복귀한다면 코르시카를 배반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프레임을 씌워 부오나파르테 가문을 완전히 코르시카에서 쫓아낼 수 있고, 복귀하지 않는다면 프랑스 육군이라는 군적이 말소 되겠제.
그렇다고 내 친위대장이라는 자리를 거부하모, 당장 코르시카 인들이 금마를 보는 눈이 변해버릴 끼다.“
부오나파르테. 어디 한 번 빠져나가 봐라.
***
1790년 2월 19일.
신성로마제국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궁전.
“재무총감 각하, 빈에 도착했습니다.”
호송대장 다부 소령은 말을 타고 다가와 내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소령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콜라 다부 소령은 내 말에 고개를 숙여 답하곤, 다시 말을 몰아 대열 앞으로 이동했다.
옆에 들을 사람이 사라지자, 마티유 형이 한숨을 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내가 베르사유 궁전도 모자라서 오스트리아 땅을, 그것도 궁전 땅을 밟아볼 줄이야.”
“그게 다 잘난 지인을 둬서 누려보는 거 아니겠어?”
마티유 형은 날 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엿 같다는 건데?”
“···큼큼.”
왜 이리 공격적이람. 사람이 궁전 구경 한 번하기도 힘든데 내 덕분에 두 개나 직접 볼 수 있게 된 걸 감사히 여기시라구.
“그...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잖아. 다 경험이다 생각해.”
“···대체 또 어디서 주워들은 좆같은 말이야? 그리고 고생도 고생 나름이지. 잠재적 적국으로 반 쯤 볼모로 잡혀가는 게 겨우 고생이냐?”
“···아프니까...청춘이다?”
“닥쳐, 아프면 환자지 청춘은 무슨.”
흑흑. 우리 상냥한 마티유 형은 어디가고, 이렇게 괴팍한 사람만 남았담.
오를레앙 그 사악한 새끼가 흑마법을 이용해 마티유 형을 공격하는 게 분명해.
똑똑
곧,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루시 형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외쳤다.
“기욤, 마티유! 이제 내려도 되네.”
마차 문을 열고 내린 나는 팔을 뒤로 쭉 뻗으며 말했다.
“와 이게 얼마 만에 밟아보는 땅이야.”
뚝
뚜둑
우드득
···우드득? 뭔가 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 때 우리가 내린 곳을 향해 딱 봐도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왔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각턱의 귀족이 그 중 대표로 나와 내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대프랑스 왕국이자 나바르 왕국의 재무총감 대신 기욤 드 툴롱 각하. 귀하의 신성로마제국 방문을, 본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온 신성로마제국 신민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나 또한 그의 손을 마주잡고 답했다.
“예,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본래라면 환영행사를 거행하여 재무총감 각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려야 하는 법이나, 카이저께서 최근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이렇게 간소히 치르게 된 점. 신성로마제국의 신민으로서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공작님. 그런데...카이저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구요?”
공작은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내 물음에 답했다.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병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총감 각하의 배려, 감사합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침실에서 여독을 푸시고, 카이저를 알현하시는 건 내일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뭐 오늘하나 내일하나 무슨 큰일이라도 있겠어? 조삼모사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공작님도 편안한 밤 되십시오.”
아 오랜만에 씻고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푹 자야겠다.
다음날.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 오빠.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 요제프 2세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