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위정자 (1) (71/341)

위정자 (1)

그래. 좀 야시시한 잡지야 만들 수 있는 거지.

나도 군대에 있을 때 찾아보고 그랬으니까.

근데 그것도 정도껏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장담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보다 이 글이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거다 씨발.

- 사, 사장님! 분명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이...이익! 내가!!! 재미있는 잡지를 쓰랬지 언제 인륜을 저버리는 글을 쓰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사드인지 미사일인지 당신!

- 오, 사장님! 부디 제 영혼이 담긴 펜만은 꺾지 말아주십시오!

- 닥쳐! 사드 당신! 영혼이고 나발이고 앞으로 엿 같은 글 한 번만 더 쓰면 해고야! 해고!

- 그, 그래도 야설을 그만 써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 이런 씹...!

- 제발! 이렇게 간청 드립니다, 사장님!

- 아니 야설을 쓰던 말던 상관 없고! 제발 인륜은 지키고 쓰라고!

이미 일주일 넘은 전 일인데도 다시 생각하니까 머리 골이 쑤시는 것 같네.

내가 만약 그 소책자 안 봤으면 200년 뒤 쯤에 대충 내 얼굴과 노란 글자로 범벅된 썸네일이 유X브에 올라갈 뻔 한 거 아니냐?

‘짜잔 유X브 구독자 분들 안녕하세요! 뿌슝빠슝TV 랍니다. 오늘은 세계 최초의 고어 잡지이자 이상성욕의 시발점이 된 잡지사! 이삭의 민족에 대한 16가지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과연 이따구 잡지를 내는 걸 허가한 사장 기욤 드 툴롱은 대가리에 뭐가 든 인간일까요?’

어우 씨.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훨씬 나을 지도.

“···생각하면 할수록 끔찍하네.”

“왜, 뭐가? 뭐가 끔찍한데?”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냥...형은 몰라도 돼. 때론 모르는 게 약이야.”

나는 마티유 형을 향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뭐야 싱겁게.”

하마터면 200년 뒤 인터넷에 ‘이삭의 민족에 대한 불편하고 신기한 진실’이라고 제목을 박아놓은 영상이 나뒹굴 뻔 했다고,

나X위키 논란 탭에 내 이름이 고스란히 박혀서 조리돌림을 당할 뻔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그 때 마차 창문을 누군가 밖에서 열고 얼굴을 불쑥 내밀고서 입을 열었다.

“아아아아니 우리 친구들! 어떻게 나만 빼놓고 그렇게 재밌게들 얘기를 할 수 있나! 이 몸, 그루시에게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서 말해주게!”

“···그런 게 있어.”

와아아아. 우리의 친구 그루시 등장인 것이에요. 와 너무 기쁘다. 하.하.하.

“이보게, 기욤! 우리 사이에 어찌 이리 차갑게 구는가!? 이 그루시,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라네. 흑흑.”

“···.”

“···.”

나와 마티유 형은 그루시 형의 모습에, 서로 말 없이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야 기욤아, 그루시 형은 대체 왜 명단에 포함시킨 거냐? 너 혹시 과로로 머리가 돌아버렸냐?’

‘난 부른 적 없거든?’

‘그러면 그루시 형이 왜 여기 있는데?’

설명하기도 힘들다 진짜. 본인한테 직접 들으시는 게 낫겠어.

나는 한숨을 쉬고, 마차 창문에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 그루시 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 그루시 형?”

“음? 왜 그러는가 기욤!”

“형이...왜 저랑 오스트리아로 같이 가고 있는 거였죠?”

“왜긴 왜인가? 당연히 친우 된 도리로 함께 해야지! 비록 내가 평소에는 군에 몸이 묶여있기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을 수는 없었지만, 이 몸 그루시가 누군가! 통 크게 휴가를 내고 이번 모험에 같이하게 된 것이지!”

“···미치겠네 진짜로.”

중세기사 마냥 당연한 듯 말하는 그루시 형의 말에, 마티유 형은 허공을 바라보고 조용히 궁시렁댔다.

“하하하! 마티유! 내가 함께하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나도 마티유, 기욤 자네들과 함께해서 기쁘다네!”

마티유 형은 이제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며 말했다.

“···그루시 형? 그...산통을 깨서 미안한데, 우리 지금 모험을 떠나고 그러는 거 아니거든? 우리가 가는 곳은 적국이라고 잠재적 적국! 신성로마제국 몰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은 엄연히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국이야. 어떻게 동맹국의 대신을 해할 수 있겠나?”

“그...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만약이라는 게.”

“기사된 자로서, 오스트리아 인들도 명예라는 걸 안다면 손님을 초청해 상해를 입힐 짓은 하지 않겠지. 하물며 야만적인 타타르 인들도 그 정도 명예는 알지 않나. 그리고 명예를 어겨 받는 저들이 받는 국가적 불이익은 결코 작지는 않을 걸세, 마티유.”

나름 통찰력 있는 생각인데? 그 바보 같던 그루시 형 맞냐?

“그리고 걱정 말게. 이 몸, 명예로운 제 2용기병연대 소령 에마뉘엘 드 그루시가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재무총감은 지켜낼 테니.”

“아 예.”

음 그 그루시 형이 맞네.

“아니 그루시 형, 내 목숨은 뭐 안 지켜주겠다 이거야?”

“마티유 자네는 덩치도 산만한 사람이, 그리 다른 이에게 의지하면 되겠나?”

“아니 기욤 쟤도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크잖아!”

뿌우우우!

“정지! 호송대 정지!”

그 때 우리 행렬의 선두에서 누군가 기병나팔을 뿌-하고 불고는 크게 소리쳤다.

누군가가 탄 말이 지면을 발굽으로 다그닥 다그닥 때리는 소리가 내 마차 쪽으로 가까워졌다.

“재무총감 각하. 이곳 스트라스부르 경계를 넘으면 이제 프랑스령을 넘어 신성로마제국입니다.”

영관급 장교의 정복을 입은 젊은 소령이 마차 창문 안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내게 경례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씁.”

젠장, 오를레앙 그 새끼 때문인지 영 꺼림칙하단 말이지.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내 속내를 읽었는지 소령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재무총감 각하. 호송대장인 소관 루이 니콜라 다부 소령이 총감 각하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나는 마차 밖으로 손을 내밀고 소령의 말에 답했다.

“그래요, 다부 소령님. 소령님만 굳게 믿겠습니다.”

소령 또한 내 손을 마주잡고 결연하게 말했다.

“예! 각하.”

***

이탈리아,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피티 궁전.

“···레오폴트 대공 전하, 카이저께서 빈에서 기다리십니다. 정녕 찾아뵙지 않으시렵니까...?”

“일 없소.”

간절하게 매달리는 주재피렌체 신성로마제국 공사에게, 레오폴트 대공은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하, 하지만 카이저께서 위독하십니다! 친동생이신 대공 전하를 애타게 찾고 계신단 말입니다!”

다시 한 번, 공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일. 없다고 했소.”

그러나 이번에도, 눈앞의 대공은 공사의 격양된 목소리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차갑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결국 공사는 레오폴트 대공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레오폴트 대공은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를 향해 다가갔다.

피렌체의 동맥, 아르노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활기찬 도시. 피렌체의 정경이 레오폴트 대공의 눈동자에 가득히 담겼다.

레오폴트는 숨을 가득 들이마시었다가 내뱉으며 작게 읊조렸다.

“···형님이 위독하시다-라.”

카이저 요제프 2세.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보헤미아의 왕이자 레오폴트 대공의 친형.

슬하에 자식이 없는 카이저가 오늘 내일하고 있다는 소리는, 곧 레오폴트 자신에게 카이저라는 자리가 넘어온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형님이 지금 날 찾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자신이 빈에 발을 밟는 순간, 형은 레오폴트를 제국섭정으로 임명하고 국정을 수행하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럴 순 없지.”

레오폴트는 작게 읊조렸다.

형, 요제프는 실패했다.

그것도 완벽할 정도로.

귀족과 성직자, 평민. 그 누구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허수아비 카이저.

여기서부터 딱 글러먹었다는 게 보이지 않나.

“굳이 지금 가서 형님의 망가진 이미지를 내가 안고 갈 이유는 없지. 어차피 기다리면 내게 들어올 자리 아닌가.”

만약 레오폴트가 형에게 제국섭정 자리를 받게 된다면, 레오폴트 또한 제 2의 허수아비 요제프가 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제국의 실세들에게 어필해야한다.

자신은, 레오폴트는 몽상가인 형과는 다르다고.

그러니 형의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해야 한다.

형을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제국의 실세들은 레오폴트를 지지해줄 테니까.

레오폴트는 저 멀리 눈에서 보이지 않는 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제프 형님에게는...죄송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산 사람은 또 살아갈 방법을 잘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형님처럼 허수아비가 되긴 싫습니다. 레오폴트는 덧붙였다.

“요제프 형님. 부디 현세와는 달리 천국에서는 편히 제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레오폴트는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성자와 성령과 성부의 이름으로, 부디 형님이 그곳에서 영면하시길.

아멘.

***

프랑스 왕국 코르시카, 아작시오 항.

“···머고?”

나폴레옹은 주위를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아작시오 분위기가...대체 왜 이러제?”

고향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운이, 코르시카 전체를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폴레옹은 소쿠리에 생선을 담아서 가지고 가는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물었다.

“거 아지매요! 잠깐 내 좀 봅시다.”

“누, 누구...어? 나폴레오네 도련님 아닝교? 아니 언제 오셨어예?”

“하하, 내 방금 왔심더. 그...코르시카에 뭔 일 있었습니꺼?”

“···잠깐 일로 와 보래요.”

나폴레옹의 질문에, 중년 여성은 주위를 잠시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나폴레옹의 손을 잡고 인적 없는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변에 프랑스 사람 없지예?”

주위를 계속해서 살피며 묻는 아주머니에게, 나폴레옹은 아주머니가 왜 그렇게 경계하는 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뭐 뒷골목 아입니까. 올 사람도 없지예.”

중년 여성은 그래도 안심되지 않는다는 듯 입을 손으로 살며시 가리고 나폴레옹에게 말했다.

“···파울리 선생님이 코르시카로 돌아오셨어예.”

“···예? 파, 파울리 선생님이예?”

나폴레옹의 두 눈이 순식간에 크게 변했다.

프랑스의 통치에 맞서던 코르시카의 독립 영웅, 파스콸레 파올리가 코르시카로 돌아왔다.

놀라서 입을 아- 벌리고 있는 나폴레옹에게, 중년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모 이 아지매가 도련님한테 거짓말 하겠능교? 얼마 전에 저어기 영국 배타고 몰래 들어오셨다, 이 말 이지예.”

이제야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전체에 감돌고 있는 이 긴장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가, 이래 분위기가 살얼음판 맹키로 쌩쌩하고마... 아! 아지매,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는 거지예?”

“하모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지예.”

“그렇고마. 아지매 참말로 고맙심더.”

“아무튼 섬에 있는 프랑스 아들한테 파울리 선생님이 계신 거,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더. 나폴레오네 도련님, 알겠지예?”

중년 여성은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다.

“아 말해 뭐하겠십니꺼. 알려줘서 고마웠어예.”

나폴레옹은 다시 골목을 빠져 나와 고향집, 메종 보나파르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