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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이상한 세상 (8) (69/341)

이상한 세상 (8)

탕탕탕!

나폴레옹은 말에서 내린 후, 저택 대문에 달린 문고리를 세차게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나폴레옹의 귀에 들려왔다.

“누구십ㄴ···. 아, 기욤 도련님 친우 분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알랭 씨. 안녕하시지예. 제가 고향 가는 길에 하루만 신세 좀 질 수 있나 해서 왔심더.”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저택 안쪽에 마구간이 있으니 고삐를 제게 주시면 거기에 메어 놓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더.”

알랭의 안내를 따라 나폴레옹은 말고삐를 넘기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전통적인 바로크 양식 기반에 로코코 양식을 덧대 증축한 툴롱 가의 3층 저택은, 비록 시골에 자리하고 있지만 결코 파리의 저택들에게 밀리지 않을 멋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자랑스러운 막내아들 친구 아닌가! 어서 들어오게.”

“가주님! 오랜만에 뵙심더. 잘지내셨심꺼?”

“하하! 그래 잘 지내고말고! 자네 이름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었지? 겨우 1년 좀 넘게 지났을 뿐인데, 전보다 아주 훤칠해졌구만!”

게헨느의 영주이자 현 프랑스의 재무총감을 아들로 둔 샤를 드 툴롱은, 환하게 웃으며 나폴레옹의 손을 마주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왔나?”

“아 지가 휴가를 받아가 집에 가는 길인데, 툴롱 가기 전 하루만 묵을 수 있을까 해서 왔심더.”

“하하! 내 자랑스러운 아들 친구인데 당연히 되고말고! 어서 들어오게.”

“참말로 감사합니더! 그라모 실례 무릅쓰고 하루만 묵고 가겠심더, 가주님”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나폴레옹을, 샤를은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아 혹시 자네 저녁은 먹었나? 아직 안 먹었다면 같이 들도록 하지. 지금 한참 식사 준비할 때라 한 명분 더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 편히 말하게.”

“식사까지 대접 받으모, 참말로 민폐 끼치는 것 같은데예...”

“아니 프랑스의 자랑, 툴롱 가의 자랑 기욤의 친우에게 뭐가 아깝겠나! 편하게 드시게, 하하하!”

“그럼 민폐 무릅쓰고 한 번 더 부탁드리겠심더.”

“음! 보나파르트 군, 결정이 아주 사나이답게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여어억시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더니 기욤 그 아이 친구다워!”

샤를은 나폴레옹의 어깨를 격려하듯 톡톡 두들기곤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면 난 서재에 잠시 볼 일이 있어 가보겠네. 식당은 1층 응접실 옆에 있고, 식사시간은 한 시간 뒤이니 늦지 않게 오시게나. 쉴 침실은 2층에 있는 빈 방 중 아무 곳이나 골라 보나파르트 군이 사용하면 될 걸세.”

“예, 알겠심더. 편히 쉬십시오, 가주님.”

나폴레옹은 샤를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상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랑 비교하모, 원래 저렇게 활발하신 분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나폴레옹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난간에 손을 올리자, 누군가 정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폴레옹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폴레옹 님, 가주님은 만나보셨습니까?”

“알랭 씨 덕분에 인사 잘 나눴심더. 그런데 제가 생각하던 가주님하고는 쪼매사람이 달라진 거 같은데. 혹시 뭔 일 있었심꺼?”

나폴레옹의 물음에, 알랭은 아-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 가주님이 좀 기분이 좋아보시죠?”

“예, 무슨 생일선물 받은 사람 맹키로 기분이 좋아 보이시더라고예.”

“하하. 사실은 가주님께서 곧, 툴롱 항만장으로 복귀하시게 됐거든요.”

“하, 항만장이라고예?”

“예. 본래 사촌들과의 정치싸움 때문에 빼앗겼던 자리를 다시 찾아오신 거라 감회가 남다르신가봅니다.”

나폴레옹은 그제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고마...알랭 씨 덕분에 이제 좀 알겠심더.”

“아닙니다. 고용인으로서 해야 할 일인 걸요. 그럼 식사시간까지 편히 쉬시길.”

알랭이 그렇게 말하고 1층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자 나폴레옹 또한 2층으로 올라가 제일 첫 번째 보이는 침실에 짐을 풀고 몸을 뉘었다.

***

“하하! 내 기분이 좀 좋아 보이긴 하나 보군! 그래, 알랭이 해준 말이 맞네.

내 손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을 다시 되찾은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식사를 마친 후, 샤를은 와인을 한 모금 삼키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런데 그...사촌이라는 사람들은 항만장이란 자리를 뭐 저항도 없이 넘겨준 겁니꺼?”

“디디에 그놈, 아 그 엿 같은 사촌 놈 이름이 디디에일세. 그 멍청이가 하도 사고를 어찌나 많이 치고 다녔는지, 손도 몇 번 안 썼는데 군소상인들이 죄내 쪽에 붙더군. 심지어는 해군 대령도 한 명 찾아와 나보고 어서 항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었네.”

“이야 역시 기욤 금마가 잘난 건 가주님이 잘나서 그런 거였네예?!”

“···음, 그렇지.”

그러나 나폴레옹의 말에, 샤를은 아까와는 달리 말을 아끼며 나폴레옹의 반대 편에 앉은 두 사람을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예, 예? 아 네! 보나파르트 씨 말이 맞습...니다! 기욤 그 녀석이 잘나서...”

“하하...기욤이가 괜히 우리 툴롱 가의 일원인 게 아니죠...!”

샤를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살포시 식탁에 올려놓고는 나폴레옹을 보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보나파르트 군? 계급이 지금...뭐라고 했었지?”

“아 포병 대위입니더.”

“그래? 소싯적 나도 군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아쉽군 그래.

혹시 식사 다 마쳤으면 내 서재로 가서 자네 군생활 얘기 좀 해줄 수 있겠나?

남의 경험담으로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네.”

“말 몇 마디야 당연히 해드릴 수 있지예.”

나폴레옹의 답에 샤를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시종을 부르는 종을 울리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따라오게나. 너희들도 이제 일어나서 제 할 일 하러 가거라.”

““예, 아버지.””

***

“허, 참 골 때리는 녀석이군. 그 그루시라는 친구 개인적으로 한 번 보고 싶구만.”

샤를은 비어있는 와인 잔에 다시 포도주를 따르며 나폴레옹에게 말했다.

“그루시 형이예? 머리가 하모 보통 돌아버린 게 아니라, 힘드실 겁니더.”

“하하!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더 만나보고 싶어지잖나!”

“아 그게 그렇게 됩니꺼?”

“그렇지! 하하하!”

한참을 웃어넘긴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잠시 침묵했다.

그런 적막을 먼저 깬 건 나폴레옹의 목소리였다.

“···근데 무슨 일로 이래, 절 서재로까지 부르신 겁니꺼?”

“···음 그래. 자네도 영 실없는 친구는 아니군.”

샤를은 나폴레옹의 진지한 목소리에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2층 첫 번째 침실에 짐을 풀었다고 들었네.”

“예, 맞심더.”

“그 방은...기욤 그 아이의 생모 되던 사람이 쓰던 방이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

“···예? 저, 저는 하나도 몰랐심니더! 바로 짐 빼겠심니더!”

눈동자를 크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폴레옹에게 샤를은 고개를 절레절레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뺄 필요 없네. 어차피 이제 아무도 안 쓰는 방인데 뭘. 굳이 사람도 아닌 방 한 칸에 쓸데없이 의미 부여할 필요가 있겠나. 허허.”

“그, 그럼 왜 그걸?”

“음...”

나폴레옹의 눈을 한참 응시하던 샤를은, 와인을 한 모금 목으로 넘긴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기욤 그 아이가 사생아...인건 알고 있나?”

“···예?”

“그래 어디 말하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기욤 그 아이는 사생아일세.”

난생 처음 듣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에도, 샤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 사생아는 집안에서 별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자라는 법일세. 왜냐하면 그 편이 사생아에게도, 집안에게도 좋은 법이니까.

사생아는 장성해도 사생아라는 딱지를 결코 뗄 수 없기 마련이니, 나중에라도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것 보다야 처음부터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게 이 세계의 이상한 미덕 아니겠나.”

그러나. 샤를은 손에 쥐고 있던 와인 잔을 서재 탁자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기욤의 생모는 기욤을 낳다가 이 세상을 떴네. 그래서인지...나는 그 아이에게 측은한 마음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 그래서 그 아이에게 모질 게 굴지 못했네. 피에르, 조르주 그 두 녀석과 똑같이 입히고,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대해주었지.”

나폴레옹을 바라보고 얘기하던 샤를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별빛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그 아이의 잠재성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더군. 나는, 아니 여태껏 우리 가문에서 배출한 그 누구도 그 아이만큼 해낼 수는 없을 걸세.

아마 앞으로도 나올 확률은 희박하겠지.”

“···.”

“그래서 나는 걱정이 되네. 물론 지금 기욤 그 아이는 재무총감이라는 이 나라의 대들보일세. 그런데 이 세상은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온갖 걸로 그 아이를 음해하고 요리해 바닥끝까지 떨어뜨리겠지.”

그게 이 인간세상이라는 곳 아닌가. 샤를은 착잡하다는 듯 덧붙였다.

은하수를 바라보던 샤를은, 은하수에서 눈을 떼고 다시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쳇말로 딱 까놓고 얘기하겠네. 피에르, 조르주 저 두 아이가 기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글쎄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같은 가족끼리도 가끔 가다 독살이니, 암살이니 하는 무서운 세상 아닌가. 하물며 저 두 아이에게 기욤이라는 존재는 위협이면 위협이지 결코 달가운 존재는 아닐 걸세.

기욤 그 아이가 만약 이카루스처럼 창공을 날다가 추락하면, 카리브리스처럼 득달 같이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버리겠지.”

섬뜩한 샤를의 말에, 나폴레옹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답했다.

“···그건 저 같은 외부인이 들을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더.”

마치 자신을 놔달라는 듯 한 나폴레옹의 목소리에도, 샤를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아니. 자네가 외부인이기에 얘기하는 거네.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직 부모라는 말이 있지 않나? 만약 내가 명을 달리하면 기욤 그 아이의 편에는 누가 서 있겠나.”

“···차라리 가주님께서 직접 피에르...와 조르주 그 두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게, 더 낫지 않겠심꺼.”

샤를은 나폴레옹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난 기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피에르와 조르주 그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네. 내가 그 아이들에게 자네에게 말한 대로 말한다면 그 아이들이 입을 상처는 얼마나 크겠나. 누군가 날 본다면 우유부단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없네.”

“···저는 기욤 금마랑 그냥 친한 사이일 뿐입니더.”

“그래. 친한 친우지.”

샤를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폴레옹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말했다.

“보나파르트 군. 부디 끝까지 기욤 그 아이의 친우로 남아주게. 내 이리 부탁함세.”

측은해 보이는 샤를의 모습에, 나폴레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잡았던 나폴레옹의 두 손을 놔주고는 밤하늘이 스치우는 창가 앞으로 다가가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참 이상한 세상이야. 성경에 적힌 반대로만 가는 듯 싶으니 말이네.”

“···그러게 말입니더.”

샤를은 나폴레옹의 말에 뒤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하하. 그래, 이 아저씨 푸념 때문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만. 어서 자러가게. 내일 툴롱까지 가서 배까지 타려면 또 한참을 달려가야 하지 않겠나.”

창문에 비친 밤하늘이 너무나도 밝아, 나폴레옹은 그렇게 말하는 샤를의 얼굴이 역광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은 샤를이 웃고 있다는 걸 왠지 모르게,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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