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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이상한 세상 (7) (68/341)

이상한 세상 (7)

“기요탱 박사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어서 가서 몸 좀 뉘이시지요.”

“하하, 아닙니다. 재무총감님. 이 중늙은이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그려. 기계에 관해 구체적인 얘기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기요탱 박사님을 돌려보내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서 이력서 사본 하나를 뽑아 생쥐스트 씨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일단 여기에 성함하고 나이, 기타 이력사항과 특이사항 등 적어서 돌려주세요. 펜은 옆에 있는 책상에 있는 거 아무거나 뽑아서 쓰시면 됩니다.”

“···그 선생님? 이력 사항이라면?”

“별건 아니고 어디서 어떤 일을 했다, 무슨 직무에 자신이 있다. 이런 정도만 써주시면 됩니다.”

“그, 그렇군요.”

생쥐스트 씨는 내가 건넨 빈 이력서를 받아 잠시 살펴보더니 서둘러 빈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야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에 수능 끝나고 옆집 동생 과외 해주던 거 생각나네. 숙제 내주면 한 번도 제대로 해온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한참을 끄적거리던 생쥐스트 씨는 펜을 놓고 내게 빼곡하게 채워진 이력서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기욤 선생님.”

“아 네, 감사합니다. 생쥐스트 씨.”

자 어디보자.

[성명 : 루이 앙투안 레옹 플로렐 생쥐스트.]

[나이 : 1767년 출생, 23세.]

[이력사항 1 : 랭스 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졸업]

오올 법대생?

[이력사항 2 : 수아송 시 고등법원 검사서기보]

어라 그냥 법대생이 아닌가?

[특이사항 : 외설 음란물제작 및 유포죄, 신성모독죄 사범]

“···?”

잠깐만 내가 뭘 본 거지.

“이건 대체 왜 써넣으신 겁니까...?”

“···제가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일단 써놔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이력서 마지막 특이사항 칸에 적힌 내용과 생쥐스트 씨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생쥐스트 씨는 그런 내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며 손 사레를 쳤다.

“그, 그... 제가 다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

“···일단 뭔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하나 썼는데 말입니다...”

“그런데요?”

“구, 국왕 모독과 가톨릭교회 모독으로 고발당해서...”

···이야 이거 골 때리네.

“아니 대체 무슨 내용을 썼길래 그쪽에서 치를 떨고 고소를 합니까?”

“사제들과 왕족들은 매일 밤 밀회를 가진다...뭐 이런 식으로...”

쓰읍. 아닌데. 겨우 그 정도 가지고 고소미까지는 못 먹을 텐데.

“···그래요. 신성모독죄는 그렇다고 치고, 음란물 제작 및 유포죄. 이건 대체 뭡니까?”

“···그, 그건 말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돈이 좀 쪼들리다보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야설을 좀...써서 팔았습니다.”

“···어디에요?”

“그냥, 이곳저곳에...”

미치겠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일이 없는 걸까.

“그러면, 지금 범죄자 신분이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혁명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다 사면 받은 내용이라 지금은 깨끗합니다! 정말입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쇼, 생쥐스트 씨.”

“네, 네!”

나는 사무실에 생쥐스트 씨를 잠시 앉혀놓고는 1층 조리실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조리실 문을 열자, 후끈한 기운과 함께 플로리앙 씨가 담요를 두르고 의자에 기댄 채,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플로리앙 씨. 일어나 보세요. 플로리앙 씨.”

“으으. 사, 사장님? 어우 지금 몇 시 입니까? 깜빡 잠이 들었네요.”

깜빡 잠이 든 사람치고는 담요까지 덮고 있던데.

“오후 1시요.”

플로리앙 씨는 담요를 옆으로 치우고는 기지개를 쭉하고 폈다.

“플로리앙 씨, 잠깐 경찰청에 가서 이 사람 인적사항 좀 조사하고 와 주세요.”

“일어나자마자 일을 시키시다니 정말 악덕사장이 다 되셨군요, 사장님.”

옛날의 사장님은 이러지 않았는데. 플로리앙 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어허, 월급도 많이 주잖아요. 궁시렁거리지 마시고 어서 갔다 오세요.”

“예. 사장님. 분부대로 합지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플로리앙 씨는 내가 내민 생쥐스트 씨의 이력서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갔다.

***

[루이 앙투안 레옹 플로렐 생쥐스트. 외설적인 불온서적 {바티칸의 오르간}을 집필해 유포했으나 현재 사면된 상태. 행방이 묘연함.]

“···파리 경찰청 경감 파트리크 공증.”

“어쩌시렵니까, 사장님?”

“그러게요. 이거 좀 애매하네.”

범...죄를 저지르긴 했는데 딱히 큰 범죄도 아니네.

야설 좀 써서 팔아먹은 게 죄기는 죄지만 뭐 큰 중범죄도 아니지 않나.

“생쥐스트 씨가 쓴 [바티칸의 오르간] 일부분도 구해왔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윤전기 발명가 찾을 때도 그렇고 그런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해오는 겁니까?”

“하하, 파리 밑바닥에서 노동자로 살다보면 이런 저런 암흑의 루트가 항상 보이기 마련이죠.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예, 한 번 봐서 나쁠 건 없죠.”

플로리앙 씨는 내게 조악하게 만들어진 책 한권을 넘겨줬다.

나는 대강 책의 중간쯤을 펴서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대주교가 선명하게 백작부인의 몸을 핥고 있었다.]

이건 뭔 씹...

생쥐스트 이 인간. 나한테는 ‘간단하게 밀회를 즐겼다’ 정도까지 썼다 그러지 않았나? 이건 그 수준이 아닌데?

“어떻습니까, 사장님?”

“좆같네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면서 말했다.

“예? 그 정도입니까?”

“하...직접 한 번 보세요.”

“어디···. 아니 이게 뭐야 씨발?”

내가 건네 준 책을 읽어 내려간 플로리앙 씨도 얼굴을 찌푸리더니 걸쭉한 욕을 내뱉었다.

“신성모독죄 당할만한 것 같은데요, 사장님?”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장님.”

“음. 글쎄요.”

“생쥐스트 저 사람 당연히 내쳐야 되는 거 아닙니까? 머리에 총 맞은 게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잡지사를 만들려면 글 쓰는 작가도 필요하단 말이지.

“제가 잡...지사를 좀 만들어 볼까 해서요.”

“···제가 잘못들은 거 맞죠, 사장님?”

플로리앙 씨, 왜 그렇게 절 죽일 듯 쳐다보시죠.

“아니! 맨 날 사업 확장이니 다각화니 하면서 일거리 툭툭 던져대고! 정작 사람은 이제야 겨우 한 명 충원해주시면서, 이제는 또 잡지사니 뭐니 만드시겠다고요?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 그래도 나름 괜찮은 돈벌이가 되지 않을까요?”

“사장님, 지금 제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몇 개인 줄은 아십니까!?”

“그으을쎄요오?”

“이삭의 민족 회계처리, 세금납부, 멀미약 유통 및 판매영업, 미국 상선회사랑 입씨름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을 더 주시겠다구요?”

“어...”

확실히...일이 좀 많긴 하네. 지금 월급으로 70 리브르 받고 계시던가?

“그, 월급을 좀 올려드릴까요?”

“제가! 지금! 월급 좀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겁니까! 아니요! 월급보다 일거리를 줄여달란 말입니다, 사장님!!”

“부사장 자리에 월급 140 리브르는 어떻습니까.”

“어?”

플로리앙 씨의 눈동자가 세차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추가로 직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드리죠. 단, 직원 한명을 충원할 때마다 월급에서 20 리브르 씩 깎겠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될수록 플로리앙씨 월급에 추가금을 지급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21세기 산 인센티브 조건 맛 좀 보시죠, 플로리앙 씨.

마 이거 디진다 아이가! 츄라이! 츄라이!

***

플로리앙은 말하고 싶었다.

- 사장님, 제가 그깟 돈 몇 푼에 왈가왈부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절 겨우 돈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140 리브르가 얼마나 큰 돈인가! 일반 노동자들의 다섯 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그 돈에 지금까지 모아 놓은 적금을 더하면 지금 살고 있는 허름한 집에서 나와 드디어 조그마하지만 저택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로리앙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월급 말고 사장이 말한 인센티브라는 게 얼마나 달콤하고 또 위험한 것인지.

그걸 모른 채 플로리앙은 결국, 그 악마의 손을 잡고야 말았다.

***

“저, 정말입니까! 기, 기욤 선생님? 절, 절 뽑아 주신다구요!?”

“네, 생쥐스트 씨. 앞으로 잘 해봅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 사장님!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생쥐스트 씨는 내 손을 잡고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다만 조건이 좀 있습니다. 생쥐스트 씨.”

“네! 어떤 건가요, 사장님!”

“앞으로 교황이나 왕이나 아무튼 특정 인물들을 가지고 대놓고 글을 쓰는 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하, 하지만.”

아잇 씻팔 그러다가 사업허가 날아간다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넵, 알겠습니다!”

“대신 전 생쥐스트 씨가 어떤 내용을 쓰던 적극적으로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해도 무시하고 싶으시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야설은...쓰셔도 되긴 하는데, 따로 성인용 잡지를 파서 쓰십쇼. 제발.”

창작자에게 가장 독이 되는 건 창조성을 침해하는 일이니까.

당장 한국의 역사만 봐도 서슬 퍼런 검열이 판칠 때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K-팝이니 K-머시기니 하면서 문화강국이 되지 않았나.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생쥐스트 씨 외에도 작가를 많이 고용할 겁니다. 그 때 생쥐스트 씨가 저 대신 면접관 역할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전 꽤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올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그렇군요.”

생쥐스트 씨에게 할 말을 끝낸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플로리앙 씨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플로리앙 씨.”

“큼큼. 그...사장님?”

뭡니까 무언가 말해달라는 그 얼굴은.

아.

“···플로리앙 부사장님”

“네! 사장님!”

“구인글 하나 써서 뿌려주세요. 이삭의 민족에서 전업 작가를 구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이 플로리앙 ‘부사장’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

1790년 1월 22일.

“아!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 헌데 내 삶은 어찌 이리도 불행한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지 어언 오 개월.

도나시앵 드 사드 후작은 갈 곳 없이 파리 거리를 서성이며 쓸쓸하게 읊조렸다.

- 야설이나 쓰는 남편은 필요 없어욧!

- 이게...우리 아버지가 쓴 글? 윽! 더러워!

- 아니 어떻게 바람을 펴도 처제랑 바람을 피워!? 사위, 아니 이 인간 말종아! 썩 감방으로 꺼져!

“아아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늘아 부디 답해주오!”

사드 후작은 하늘 높이 솟은 태양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 그러나 태양은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고고하게 빛날 뿐이었다.

사드는 이제는 아예 길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빌고 또 빌기 시작했다.

“엄마, 저 아저씨 이상해.”

“떽! 저런 사람 보는 거 아니야. 지지야 지지!”

“오! 주여! 정녕 이 사드를 버리시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제발 계시를 내려 주소서!”

그 때, 사드 후작의 옆으로 마차 한 대가 종이를 이곳저곳에 뿌려대며 길을 달려 나갔다.

종이 한 장은, 봄의 벚꽃마냥 펄럭펄럭 하늘을 가르다가 사드 후작의 앞에 살포시 떨어졌다.

사드 후작은 자신의 앞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고 그 내용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이삭의 민족 잡지사에서 일할 작가님을 구합니다.]

“아아! 주여! 아직 절 버리지 않으셨군요! 야훼시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작가의말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후작

새디스트, 마조히스트라는 개념을 처음 고안해낸 에로티시즘의 선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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