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상 (6)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길래 왜 다들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프랑스 왕국 화약국장이자 세금징수관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라부아지에는 법으로 정해진 세금을 거뒀을 뿐인데.
그것도 직업이 세금 징수관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한 것 뿐인데.
차라리 법이 불합리하다고 화를 표출할 거라면 자기 같은 세금 징수관이 아니라 악법을 만든 법관에게 내야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은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라부아지에는 계속 궁시렁궁시렁거렸다.
“아니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기요탱 박사님?”
“차, 참으로 그렇구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묻는 라부아지에에게, 기요탱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쳐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근 두 시간을 넘게 똑같은 소리를 듣다보니 기요탱 박사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기요탱 박사는 라부아지에의 신세한탄으로 가득 찬 마차의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라부아지에 선생. 그것보다 기욤 재무총감이 의뢰하고 싶다는 게 뭐였지요?”
“예? 아, 윤전기라는 물건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윤전기? 듣기만해서는 무슨 물건인지 잘 모르겠군요.”
“뭐, 재무총감이 말하기로는 지금 인쇄판으로 찍는 것보다 훨씬 빠른 인쇄기계라 하덥니다.”
“호, 그렇습니까? 동력은 사람인가요? 아니면···.”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사람이 인쇄판으로 찍는 것보다 빠르다면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박사님.”
“증기기관이라!”
기요탱 박사의 얼굴은 그 한 단어에 발갛게 상기됐다.
아무렴 증기기관이라면 지금 공학도들 사이에서 꾸준히 입방아에 오르는 물건 아닌가.
윤전기라는 처음 듣는 물건. 그것도 수동장치가 아니라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물건이라니!
“정말이지 요즘 세상은 마법을 부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고작 백 년 전이었다면 마녀, 마법사로 잡혀갔을 법한 일이니 말입니다.”
공학도이자 태생적으로 이과인 기요탱 박사는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손마디마디가 긴장으로 뻐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글쎄요, 증기기관이 뭐 대단한 물건이긴 합니다만 마법이랄 것까지야···. 솔직한 얘기로 아직까지는 탄광에서 물만 퍼 나르는 기계지 않습니까?”
라부아지에의 말에 기요탱 박사는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뭐 확실히 라부아지에 선생의 말도 맞지만 영국의 제임스 와트 선생이 만든, 제대로 된 증기기관이라는 게 나온 지 겨우 20년 밖에 안 되지 않았습니까.”
“아 와트 선생을 잊고 있었군요. 확실히 그 사람이 만든 건 꽤 관심이 가덥니다.”
“하하하, 그렇지요? 라부아지에 선생도 역시 과학자입니다 그려.”
기요탱은 사람 좋게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고 손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듯 열광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세요, 선생. 증기기관이 앞으로 더 커지고, 더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너무 기대되지 않습니까. 기요탱은 덧붙였다.
“···거 기요탱 박사 생각대로면 나중에는 말이 끄는 마차 대신 아예 증기마차를 타고 다니겠습니다?”
“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얘기지요! 공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람 좋게 웃는 기요탱 박사의 모습에, 라부아지에 또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는 배에 있는 돛대도 떼어낼 걸 생각하니 아찔하군요.”
“이제야 좀 말이 통하십니다 그려. 하하!”
두 사람이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마차는 파리 시내 깊숙한 곳까지 내달리고 있었다.
곧, 마차 앞 창문 너머로 마부가 말들을 달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창문이 덜 컥하고 열리면서 마부가 얼굴을 내밀었다.
“손님들, 목적지까지 다 도착했수다.”
***
“각하! 각하께서 명하신 대로 기요탱 박사를 데려왔습니다!”
“아, 예. 수고하셨어요. 먼저 사무실로 올라가 계세요.”
내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라부아지에는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사라졌다.
이야 생각보다 더 빨리 왔네. 앞으로는 라부아지에한테 뭐 시킬 때 시간을 좀 더 타이트하게 줘도 되겠는 걸?
“재무총감 각하, 이 공학도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에게, 기요탱 박사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이렇게 빨리 오신 것 보니 베르사유 꼴은 안 봐도 알겠네요.”
나와 악수를 나눈 기요탱은, 내 말에 짐짓 침울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안타까운 일이지요. 뭐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것 어쩌겠습니까. 당면 한 일이나 차례차례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백 번 지당한 말씀이시네요.”
내가 답하자 오십 줄의 기요탱 박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올라가보시지요. 총감 각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요탱 박사를 데리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플로리앙 씨가 책상 위를 미리 치워놓고 특허청에서 받아온 윤전기의 설계도를 올려놓은 상태였다.
“플로리앙 씨, 이쪽은 기요탱 박사님. 기요탱 박사님, 이쪽은 플로리앙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사님. 이삭의 민족 사장 비서 플로리앙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소. 플로리앙 씨. 국민의회 의원이자 공학도 조세프 기요탱이오.”
두 사람이 서로 악수를 하는 사이, 나는 책상에 올려놓은 윤전기 설계도를 이 모저모 살펴보았다.
근데 이거
진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대체 공돌이들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지? 머리의 구조가 나랑은 다른가?
“허, 이거 참 흥미롭군요!?”
한참을 내가 끙끙거리는 동안 내 옆으로 온 기요탱 박사는 설계도를 본 순간 바로 입을 열고 말했다.
“···그래요? 기요탱 박사님이 보시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지금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만 한 번 꼼꼼히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기요탱 박사는 설계도의 이곳저곳을 찬찬히 눈으로 읽어나가더니 마치 장난감을 처음 가지고 노는 아이마냥 웃음을 조금씩 흘렸다.
물론 중간 중간에 내가 알아먹지도 못할 용어를 조금씩 말하는 건 덤이고.
실린더니 뭐니 기관이 이렇다니 저렇다니.
역시 난 이과랑은 안 맞아.
그렇게 한참을 혼자 설계도를 보고 중얼거리던 기요탱 박사는 고개를 들어 구석에 쓸쓸하게 앉아 있는 라부아지에를 보고 입을 열었다.
“라부아지에 선생! 잠깐만 이리 와보시오. 자, 여기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은데···.”
라부아지에는 기요탱 박사의 말에 설계도 앞으로 가, 기요탱 박사가 가리키는 부분을 유심히 보고 말했다.
“아, 이거 실린더를 움직여서 인쇄판을 찍어내는 식이군요.”
“그렇지! 그렇지! 자 그러면 생각을 해봅시다. 여기 이 부분을 아예 들어낸다면···.”
“그러면 열효율이 떨어질 텐데, 차라리 다른 실린더 약실을 추가하고···.”
두 사람은 이제 거의 설계도에 달라붙어서 범인은 이해하지 못할, 이런저런 요상한 용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사장님.”
“네, 플로리앙 씨.”
“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사장님은 어떠신가요.”
“저도 도저히 못 알아듣겠는데요.”
그나저나 라부아지에 저 사람 정말 과학에 한해서는 사람이 확 변하는구나.
방금 전까지 날 향해 손을 싸바싸바 비비던 사람이 맞나?
세금 걷는다고 날 쪼아대던 라부아지에를 기억하면 가슴이 옹졸해지고 답답해 지는데, 이렇게 내 밑에서 굴러대는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이 다 벅차오르고 웅장해진다.
진짜 라부아지에는 전설이다.
““재무총감 각하!””
그때 한참을 서로 중얼대던 기요탱 박사와 라부아지에는, 갑자기 날 바라보고 동시에 말했다.
“에, 예? 아, 두 분 다 갑자기 왜 절 부르시나요.”
“혹시, 지금 큰 도화지 같은 것 있으십니까?”
“도...화지요?”
우리 이삭의 민족은 빵 만들어 팔아먹는 곳이지 미술교실이 아닌데요.
나는 뒤를 돌아 플로리앙 씨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플로리앙 씨. 우리 도화지 같은 거 있습니까?”
“···공문이나 세금계산서는 많지만 그런 건 없죠.”
플로리앙 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답했다.
그런 플로리앙 씨의 모습을 본 기요탱 박사는 이제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쳤다.
“재무총감님! 지금! 지금 이 떠오르는 창의력을 담을 게 필요합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내가 뭐 뿅하고 그걸 만들 수 있으면 마법사지.
“···사장님.”
“네?”
“그... 밑에 조리사 분들이 쓰는 앞치마라도 가져올까요?”
앞치마? 그건 좀...
“아무거나 빨리! 우리는 지금 쓸 게 필요하단 말입니다아악!”
“···앞치마 좀 가져다주세요.”
“예, 사장님.”
***
“···님.”
누..구지..
“총감님.”
“어, 예?”
“하하,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벌써 정오가 넘었습니다.”
“···정오요? 아.”
맞아. 어제 새벽 늦게까지 저 양반들 뒤치다꺼리하다가 의자에서 곯아떨어졌지.
나는 새어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기요탱 박사에게 물었다.
“아니 저 자고나서도 계속 작업하신 건가요?”
“사실은, 방금 막 설계도를 완성했습니다. 하하하!”
“···밤을 꼴딱 새셨다고요?”
21세기에서도 귀성길 4시간 차타고 돌아오면 온 몸이 피곤했는데 하루 종일 마차 타고 온 사람이 밤까지 새서 그걸 다 끝냈다고?
“···대단하시네요.”
“하하하! 뭘 그렇게 띄워주십니까, 라부아지에 선생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라부아지에 이 사람은 어디 간 거지?
내가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자 기요탱 박사는 아-하면서 입을 열었다.
“라부아지에 선생이라면, 방금 설계도를 완성하고 집으로 떠났습니다. 뭔가 해보고 싶은 실험이 생각났다던가 그러면서 말이지요.”
“그, 그렇군요.”
이게... 이 시대의 공돌이? 뭐야 무서워.
내가 아는 21세기의 공대생들은 항상 손에는 박카X를 들고 체크남방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가방 가득히 두꺼운 전공서적을 넣어 다니는 사람들이었단 말이야.
“자, 자. 어서 이 조세프 기요탱이 만든 설계도를 한 번 보시죠. 총감님!”
“아 예, 예.”
아직 잠결에서 깨지 못한 나를 억지로 설계도 앞으로 보낸 기요탱 박사는, 마치 어서 읽어보라는 듯 위풍당당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책상 위에는 앞치마 두 벌에 나눠서 적혀진 뭔가...뭔가 복잡한 기계장치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나 이거 봐도 뭔지 모르는데.
적당히 립 서비스 좀 때려 박아 드려야겠다.
“대, 대단하시군요. 박사님! 여윽시 믿고있었습니다!”
“으하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아이고 그러믄입죠!”
한참을 싱글벙글 웃던 기요탱 박사가, 갑자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총감님. 이런 걸 만들어서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윤전기요?”
“그렇습니다.”
딱히 막 생각을 해놓은 건 아니고, 미리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잡지사 같은 곳에 로열티 받고 팔아먹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의뢰한 건데.
“음, 막 여기에 써야겠다!-하면서 생각을 한 건 아니라...”
“흠 딱히 쓰실 곳이 없으시다면 차라리 총감님께서 직접 잡지사를 하나 차려 보는 건 어떻습니까?”
“잡지사요?”
“요즘 아는 사람들 얘기로는 잡지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하더군요. 안 그래도 총감님은 원래 사업가 아니셨습니까.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 기반도 있으시면서 그걸 놀릴 생각은 아니시겠죠?”
씁. 이거 좀 혹하네. 미디어 회사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으면 좋지 나쁘진 않지.
아 근데 이거 또 사업 확장하면, 플로리앙 씨가 날 때려죽이는 거 아닐까?
아 몰라, 이번에 직원 한 명 더 뽑아줬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생각해보니 되게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잡지사라! 하나 만들어 볼 법하군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잡지?”
“엥, 누구세···. 어?”
저 커다란 코.
잠깐만 지금이 정오가 한참 지났다고 했으니까 대락 오후 1시라고 치면.
“···생쥐스트 씨?”
“기, 기욤 선생님! 저! 저 글 잘 씁니다! 만드신다는 잡지사에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작가 수팅스타입니다.
[혁명도 사업입니다]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덕에 10월 18일 오후 6시에 유료화 될 예정입니다.
1화부터 32화까지가 무료분으로 풀릴 예정이며 유료화 이후 연재 시각은 지금보다 1시간 빠른, 18시가 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