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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이상한 세상 (2) (63/341)

이상한 세상 (2)

다음날 밤.

“···어제는 실례했습니다. 당통 위원.”

“괜찮습니다, 데물랭 선생.”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데물랭에게, 당통은 손을 저으며 답했다.

[자유 프랑스]의 편집장 카미유 데물랭.

[인민의 벗]의 창간자 장 폴 마라.

세간에서 미치광이 빨갱이라 불리는 자크 르네 에베르까지.

어젯밤 모였던 언론인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당통은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팔을 올리며 낮게 읊조렸다.

“···동지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베르사유로 가서 의원들을 만나볼 예정입니다.”

“···지금 진심입니까, 당통 위원?”

당통의 말에, 그의 가장 친한 벗인 마라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오를레앙이 변절했다면, 베르사유로 찾아온 당통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오를레앙 그 작자가 정말로 변절자라면,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데물랭 또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직. 미치광이 에베르만이 아무 말 없이 당통을 지긋이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나 당통은 손을 저으며 다시 한 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지들도 알고 있잖습니까, 지금은 내가 직접 가보는 것 외에 따로 방법은 없다는 걸.”

당통의 말에, 마라와 데물랭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잠시 숙연해졌던 분위기는 에베르가 씨익 웃으며 내뱉은 말에 씻겨 내려가고 말았다.

“하하, 당통 위원이 그러신다면야 내가 권총 한 자루 정도는 구해다 드리리다.”

장 폴 마라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눈빛으로 에베르를 쏘아보았다.

“···에베르 당신 미쳤습니까?”

“내가 왜? 나보다는 장 폴 마라, 당신이 미친 거 아뇨? 그렇게 대가리만 바닥에 처박고 질질 짜기보다, 오를레앙 그 돼지새끼 배에 총알구멍 내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말이야.”

“뭐요! 지금 말 다했습니까?!”

“오를레앙 그 놈한테는 찍 소리도 못내는 사람이, 나한테는 버럭버럭 화도 참 잘 내는군.”

“그만!!!”

당통은 두 사람을 째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둘이 지금 싸우려고 모인 게 아니잖습니까! 내 말이 틀리오!?”

“···거 미안하게 됐소, 동지.”

“···미안합니다, 당통 위원.”

당통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일전에 나와 안면이 있는 장교가 지금 재무총감을 보좌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하면 재무총감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첫 번째 목표이고...”

“그럼, 두 번째 목표는 뭡니까.”

데물랭의 물음에 당통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국왕을 직접 대면하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

“···.”

“···정말 권총 안 가져갈 거요?”

적만한 분위기 속, 에베르의 마지막 말에 당통과 다른 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

베르사유 궁전, 재무총감 사무실.

당통은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대위님 오랜만입니다. 저와 지난번에 만났을 적에는 소위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아, 그 때 파리 선거위원회에서 뵀던 분이시군요. 무슨 일로 베르사유까지 오셨습니까?”

지난 해 7월, 파리 시민들을 왕의 마수에서 구해낸 마티유 대위는 그런 당통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 각하를 뵙고자 왔습니다만...가능할런지요.”

“그 새ㄲ···, 아니 기욤 재무총감을 만나보고 싶으시다구요. 음...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마티유 대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에 자리한 재무총감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흡! 읏차!”

180cm 중반이 넘어가는 마티유는 문을 손으로 잡더니 이상한 소리와 함께 문을 들어올렸다. 재무총감실의 문짝은 애초부터 자기에게는 경첩이라는 게 없었다는 듯 마티유의 팔이 가는대로 그 몸을 뉘었다.

“···대체 문은 왜 부서져있는 겁니까?”

“그...게 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하...”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는 당통에게 마티유는 이리저리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떠듬떠듬 답했다.

아무렴, 국왕이라는 작자가 머리끝까지 열 받은 나머지, 문을 발로 까서 부쉈다고 어떻게 말하겠나.

“···안 고치십니까?”

“그....수제품이니 뭐니 해서 장인이 직접 부품을 만들어 가져와야한다 더라구요. 임시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마티유 대위는 방 안으로 들어가 커피 잔을 손에 꼬나 쥔 채 얼굴을 책상에 박고 곯아떨어진 청년의 어깨를 툭툭 흔들었다.

“야야, 아..아니지. 재무총감...님. 빨리 일어나...요.”

한 서너 번 어깨를 흔들자, 시체같이 고개를 처박고 있던 청년의 몸이 움찔하더니 서서히 좀비처럼 일어났다.

“ㅇ....왜....누구야...?”

“파리에서 손님이 왔어...요.”

“손, 손님...”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청년은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다가 잠을 쫓으려 눈을 몇 번 꿈뻑꿈뻑이면서 크게 하품을 하더니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 씨발새끼가 서류만 안 헤집어놨어도 야근은 안하는 건데 진짜.”

“야야! 손님 있다고!...요.”

“아...”

청년은 문 너머에 서있는 당통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이틀 동안 잠을 못자가지고 말이 좀 험하게 나왔네요...”

“아, 아닙니다. 총감 각하!”

그런 청년의 모습을 본 당통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재무총감만은 말로 허세부리는 놈들과 다르다.’

시민들을 위해 이틀 동안 철야까지 하는 재무총감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당통은 속으로 이런 사람이 총감이라는 자리에 있는 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어우 머리가 빙빙 돈다 진짜.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겨우 잡고 앞에 자리한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한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성함이....?”

“반갑습니다, 재무총감 각하. 파리 시 선거위원 조르주 당통입니다.”

“조, 조르주요?”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고향집에 있는 그 망나니새끼랑 이름이 같으시담.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 당통 씨의 모습에, 나는 손을 저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시길래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그것이...”

당통 씨는 입술을 몇 번 깨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파리 언론인들이 탄압을 받고 있는 사실을 재무총감께서 알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예?”

뭔 소리야 이건 또.

“제가 알기로는 우리 의회에서 언론 관련한 법은 통과시킨 적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명색이 혁명정부고 국민의회인데 언론을 풀어줬으면 풀어줬지 그걸 왜 막겠나.

“···역시 그렇습니까?”

당통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내 눈으로도 확연히 보였다.

“언론인들이 탄압을 받는다니요, 더 설명해주시지요. 당통 씨.”

내 말에 당통은 품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다 누구입니까?”

봉투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필서명이 적혀있었다.

[자유 프랑스] 카미유 데물랭.

[인민의 벗] 장 폴 마라 등.

이거 죄 친혁명 잡지들이네?

“모두 출판에 관해 구두로 협박을 당한 언론인들입니다.”

“구두로 협박을 당했다라...누구에게 말입니까.”

“···탈영 장교들에게 당했습니다.”

“하...”

나는 푸석푸석해진 머리를 손으로 긁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이거 골 때리네.

탈영한 장교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명령을 내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딱 한 명뿐이지 않나.

그 뭐냐 내 방문을 쪼인트로 까 부순 그 분 말이다.

“···이거 저말고 누구한테 알려주신 적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은 우리 언론인들과 총감님 뿐 입니다.”

나는 두 손을 모아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후...오를레앙 이 새끼. 왕의 손과 발을 잘라놨더니 예전에 사용하던 커넥션을 이용해?

이런 새끼가 왕권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네.”

“예?”

“아닙니다. 후...”

장부 상 1천에 달하는 탈영 장교를 오를레앙은 지금도 계속해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쩐지 헌병대로 잡으려고 해도 온데 간데 없더라니.

1천에 달하는 홍위병이라. 이거 내전 각이 제대로 섰네?

겨우 봉합해놓은 내정인데 자칫 잘못하면 겜 터지겠어.

“···일단은 절 믿고 파리로 돌아가 계세요, 당통 씨. 오늘 제가 국왕과 직접 만나 한 번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재무총감 각하. 다만...오늘 저도 국왕을 알현할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탄압당하는 언론인과 탄압을 명한 왕을 붙여놓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무슨일이 터질 줄 알고?

당통 씨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으로 간청했다.

“···그렇다면 먼발치에서라도 국왕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당통 씨.”

***

주인이 바뀐 베르사유 궁전, 전쟁의 방.

“이것 참. 우리 사이에 조오오오금 오해가 있었던 듯 싶소, 재무총감.”

“나랏일이라는 게 원래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왕 폐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나와 루이 17세, 아니 오를레앙은 서로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한참을 웃어넘겼다.

“그럼 신은 이만, 맡아 처리해야 할 ‘실무’가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폐하.”

[실권도 없는 종이호랑이가 됐으면 종이호랑이답게 짜져 있으시지?]

“음,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수고하시오, 총감. 아, 그런데 요새 파리가 좀 시끌시끌한 것 같지 않은가? 프랑스의 왕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짐이 호락호락하게 당할 듯 싶더냐? 이 더러운 버러지야.]

“이런! 파리가 시끌벅적하다니요. 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만.”

[역시 너였냐?]

“허허, 세상이 급변하니 사람이 조금 뒤쳐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정보가 느리구나, 애송아?]

“···하하하!”

“···하하하!”

그래. 절대 양보하지 않으시겠다, 이건가?

능구렁이 같은 새끼.

***

“···뒤무리에 장군.”

“예, 폐하.”

재무총감이 물러가고, 루이 17세는 근위대장 뒤무리에를 전쟁의 방으로 불러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근위대의 개편은 확실하게 다 진행되었겠지?”

“물론입니다. 부근위대장 앙투안 드제 소령을 따르는 혁명분자는 모두 근위대에서 축출했고, 모두 폐하를 진실로 따르는 자들로만 꾸렸습니다.”

“그래, 매우 좋군. 아 그렇지, 아르투아 그 백치 놈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 주게나.”

“아르투아 백작 말씀이십니까?”

“맞네, 영국으로 도망간 그 병신 말일세.”

루이 17세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샤를 필리프 아르투아 백작.

루이 16세, 아니 루이 오귀스트의 동생.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자 부리나케 영국으로 도망가서 연일 혁명파를 씹어대는, 대세도 읽을 줄 모르는 멍청이.

“뒷일은 생각안하고 저지르는 멍청한 놈이지만 오히려 그 덕에 순진한 탈영병들이 많이 따르니 원. 그래도 그 놈과 연락은 주고받아야 탈영병들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탈영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루이 17세를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않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혁명 만세!-를 외치던 사람이 갑자기 모습을 바꾸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그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쪽은 어떻게, 얘기가 잘 되가는가?”

“황제인 요제프 2세 말씀이십니까?”

“하, 그 양반은 살날도 얼마 안남은 반병신 아닌가. 그 자 말고 레오폴드 말하는 거네. 그 자가 다음 신성로마제국 황제 아니겠나.”

“신이 생각이 짧았나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내가 일전에 얘기한 대로 레오폴드 그 자에게 잘 전달하게나.”

말을 끝낸 루이 17세는 손을 휘휘 저어 뒤무리에를 내보냈다.

“좋다, 기욤.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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