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상 (1)
1790년 1월 17일, 프랑스 중남부 오툉 시.
라 페흐 포병연대.
“충성.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대위님?”
“내야 뭐 항상 잘 자제, 니는 잘 잤나?”
“하하, 예 그렇습니다. 무슨 용무 때문에 이렇게 아침 일찍 연대본부로 찾아 오셨습니까?”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장교에게, 데스크에 앉아 있는 부사관이 정중히 물었다.
장교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입을 열었다.
“내도 마지막으로 휴가 갔다 온 지가 이제 1년이 넘었으모, 고향에 얼굴은 한번 비춰봐야 되지 않겠나. 게다가 내는 저번 휴가도 잘린 거 알제?”
“아, 휴가 신청 때문이시군요? 하하! 휴가는 어쩔 수 없죠. 여기 방문사유 자필로 작성해 주시고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주십쇼, 대위님.”
장교가 부사관에게 받은 서류에 몇 가지 항목을 끄적거리는 동안, 부사관은 데스크에서 일어나 연대장실 문을 몇 번 노크한 후, 문을 살짝 열고 몇 번 숙덕였다.
부사관은 문을 살포시 닫고 데스크에 다시 앉으면서 자신을 기다리던 장교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대위님.”
“아 들어가면 되나? 고맙데이.”
“하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원래 제 업무인 걸요.”
부사관은 대위의 말에 웃으면서 답했다.
똑똑똑
이제 장교는 데스크를 지나 연대장실 문을 몇 번 두드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실례합니더, 연대장님. 제 2 포병중대 임시중대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들어가도 되겠습니꺼?”
“괜찮네. 들어오도록.”
나무로 만들어진 방문 때문에 작아진 목소리가 나폴레옹 대위의 귀에 들려왔다.
나폴레옹 대위는 방문을 열고 연대장실로 들어간 뒤 경례를 올리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충성! 대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용무 있어 왔습니더.”
의자에 앉아서 공문인지 뭔지를 뜯어보던 마흔 줄의 연대장은 나폴레옹이 들어오자 서류를 잠시 책상에 올려놓고 일어섰다.
“그래, 그래. 거기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얘기하게나.”
연대장은 나폴레옹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빈 의자에 앉아 나폴레옹을 마주보고 입을 열었다.
“목이나 좀 축이면서 얘기하지. 자네는 뭘로 하겠나, 커피? 홍차?”
“아, 커피로 주시모 감사하겠심니더.”
“아...자네도 커피파인가? 난 홍차가 좋던데...”
“호, 홍차로 주셔도 지는 괜찮심니더!”
“하하, 농일세 농.”
연대장은 나폴레옹의 대답에 씨익 웃더니 테이블에 비치된 종을 딸랑딸랑-울렸다. 그러자 밖에 있던 부사관이 방문을 살며시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연대장님, 용무 있으십니까?”
“하사, 커피랑 홍차 한 잔 씩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부사관이 가져다 준 차를 한 모금 목 뒤로 넘긴 연대장은, 나폴레옹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뭐 때문에 찾아 왔나?”
“아, 그게. 혹시 지가 휴가를 받을 수 있겠심니꺼?”
“···휴가?”
연대장은 나폴레옹이 꺼낸 휴가 한 마디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설마 탈영하려고 그러나?”
“아, 아닙니더!”
“탈영할 거면 그냥 휴가 핑계대지 말고 지금 걸어서 나가주면 좋겠네. 나도 심정 같아서는 더 이상 안 막고 싶으니.”
“아니, 절대로 아닙니더, 연대장님!”
다급하게 손 사레를 치는 나폴레옹의 모습에, 연대장은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가 지금 맡고 있는 중대장이라는 자리도, 그리고 자네 위 대대장까지도 다 임시직인 거 알고 있지 않나. 원래 있던 중대장 대대장이 모두 도망간 덕 말이지.”
“···그렇습니더.”
“1년 만에 찢어진 연대를 겨우 기워 넣었는데 여기서 2계급 특진까지 시켜준 중대장 한 명이 더 탈영하면 정말 나는 화병으로 앓아누울 걸세.”
연대장은 남는 손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건 다 차치하고 얘기하지. 나폴레옹 대위, 무슨 일 때문에 휴가를 신청하려하는가?”
“그게, 고향에 한 번 다녀오고 싶어가, 신청했심더.”
“흠.”
“연대장님도 아시듯, 요새 정국이 좀 불안하지 않습니꺼. 가족들도 잘 있는지 궁금하고 그래가...”
혁명군이라는 자들이 바스티유 요새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봉건 잔재라며 귀족의 땅을 압수한 지도 1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혼란했다.
당장 얼마 전에는 국왕도 바뀌지 않았던가.
“···자네 나이가 몇 살이지?”
연대장은 턱을 짚고 있던 손을 빼고 정자세로 앉으며 말했다.
“예, 스물 한 살입니더.”
답하는 나폴레옹의 손에 땀이 삐질삐질 묻어 나왔다.
“···흠.”
아들 뻘인 나폴레옹의 말에, 연대장은 고개를 숙이고선 테이블을 톡톡 한참을 두드리다가 다시 나폴레옹의 눈을 바라보고 얘기 했다.
“좋네. 딱 한 달 주겠네. 오고가는데 보름, 휴가지에서 보름이면 충분하지지 않나?”
“예! 충분합니더!”
나폴레옹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열심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래, 잘 다녀오고 가는 길 조심하게. 요즘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사고가 많더군. 그 뭐냐, 파리에서도 얼마 전에 빙판에 미끄러져서 신원미상자가 한 명 죽었다고 하니 하는 말일세.”
“예, 연대장님! 참말로 감사합니더!”
***
“호외요! 호외! 다들 잡지 한 부씩 사세요!”
오툉에 사는 열네 살짜리 꼬마, 수아송은 팔에 잡지를 한가득 끼워 넣고서 오늘도 시내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꼬맹아, 나 한 부만 줘봐라.”
“네! 여기요! 10 수 입니다!”
“그거 몇 월 며칠 자니?”
“삼일 전에 파리에서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품이랍니다!”
마차대기소부터 변호사 사무실까지 하루 종일 시내를 종횡무진한 수아송은, 주머니에 두둑해진 은화를 손으로 절그럭절그럭 만지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야 오늘은 수입이 꽤 괜찮은 걸.”
어느덧 수아송의 팔에 남은 잡지는 한 부 뿐이었다.
“맨 날 이렇게 잘 팔렸으면 한 달에 한 번은 고기도 먹겠다.”
잡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파리에서 왕이랑 의원들인지 뭔지 하는 높으신 분들이 박 터지게 싸우고 있다고 했다.
뭐 글도 모르는 자신이 알 바인가.
수아송은 쌀쌀한 날씨에 빨개진 코를 팽-하고 바닥에 풀면서 말했다.
“헹, 차라리 자기들끼리 계속 싸워서 잡지나 많이 팔아먹으면 좋겠네.”
왕인지 의원인지 하는 사람들이 계속 싸우면 사람들이 잡지를 더 많이 사주지 않을까?
수아송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지막 남은 잡지를 팔에서 꺼내 펼쳐보았다.
책상이니 뭐니 가구가 죄 어지럽게 뒤집어진 방에서 거한의 남자가 젊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는 그림이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호오?”
“까, 깜짝이야. 누, 누구세요?”
그런 수아송은, 누군가 뒤에서 말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돌리자, 말에 탄 정복차림의 장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수아송의 손에 들린 잡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민의 벗]이라.”
“···사실래요, 군인 아저씨?”
“하모 좋제, 꼬마친구. 내 하나 줘 바라.”
프랑스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정도로 이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장교에게 수아송은 마지막 잡지를 내밀었다.
“15 수입니다.”
“머라꼬? 15 수? 와, 뭐 이리 비싸노?”
“그러면 다시 주세요.”
“내 안준다고는 안 했다 아이가. 자 받아라. 거스름돈은 제대로 주고.”
장교는 금화 한 닢을 장갑 낀 손으로 툭-하고 수아송에게 던졌다.
수아송은 금화를 받고선 주머니를 열어 은화 다섯 닢을 꺼내 장교에게 건넸다.
장교는 장갑 낀 손으로 받은 은화를 촥-펼치고 입으로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 한 놈, 두시기···.”
“와 진짜 촌놈 같다.”
수아송의 말에, 장교는 동전을 세다 말고 수아송을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머라꼬?”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
“···진짠데.”
꼬마 수아송의 말에도 한참을 째려보던 장교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몰아 길을 나섰다.
***
“거 참 싹수없는 놈이고마. 나 때는 애들이 안 저랬는데 말이제.”
나폴레옹은 다그닥 다그닥거리는 말 위에서 입을 삐쭉 내밀고서는 중얼거렸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집안에서 교육을 대체 어떻게 받는지 저런 싸가지 없는 꼬맹이들이 줄줄이 나온담.
나폴레옹은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허리춤에 말아놓은 잡지를 꺼내 표지를 읽어 내렸다.
“[인민의 벗], 작가는 장 폴 마라. 잡지 이름은 나쁘지 않고마.”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기고서, 나폴레옹은 계속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커다란 삽화가 한 쪽 면을 장식하고 있는 잡지 기사에서, 나폴레옹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내가 요즘 피곤해서 눈이 침침해진기가?”
나폴레옹은 잠시 잡지를 말아 쥐고는 한 쪽 손으로 눈을 비비적댄 뒤, 다시 잡지를 쳐다보았다.
“···잘못 본 게...아닌 기가?.”
대체 이게 왜 진짜지?
거한의 사내가 젊은 남자의 멱살을 잡아 올린 그림 옆에 큰 글자로 적혀져 있는 기사의 제목을, 나폴레옹 대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이 17세 국왕 폐하와 재무총감 기욤 드 툴롱의 혁명적 유대!]
기욤 그 녀석이 재무총감 자리에 올랐다는 거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따로 있었다.
“···오를레앙 대공은 혁명파 쪽 아니었나...?”
대체 왜 오를레앙 대공이 삽화에서 기욤 그 녀석 멱살을 잡는단 말인가.
“···혁명의 얼굴, 기욤 드 툴롱 재무총감 각하가 추진한 일대의 혁명적 사업에 대해 궁금한 루이 17세 국왕 폐하는 재무총감 각하를 찾아가 정중한 말로 해명을 요구하셨다.”
이게 대체 뭔 소리고?
나폴레옹은 덧붙였다.
삽화에서는 루이 17세가 기욤의 멱살을 잡고 있는데 기사는 오히려 정중하게 말을 했다고?
그 순간 나폴레옹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검열?”
나폴레옹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잡지를 눈앞으로 가까이 하고는 계속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지난 12월 31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아주 살짝의 어긋남이었다. 재무총감기욤 드 툴롱 각하 및 우리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국민의회와 국왕 페하 루이 17세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원만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체의 반혁명적 행동을 꾸준히 분쇄해 나갈 것이며···.”
기사를 계속 읽어 내려간 나폴레옹의 손과 목이 점차 긴장으로 뻑적지근해졌다.
***
어두운 실내에서 램프 하나를 켜놓은 채, 여러 명의 사람들은 날선 눈빛으로 탁자 한 가운데 수북하게 자리한 잡지들을 보고 있었다.
“탈영장교들을 끌어들여 언론인들을 테러하겠다고 협박하다니! 이건 언론탄압보다 더합니다!”
갈색머리를 찰랑찰랑 휘날리며, 혁명잡지 [자유 프랑스]의 편집장 카미유 데 물랭은 노기 띤 목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어떻게...어떻게 우릴...아, 아니 시민들을 배신한단 말입니까! 당통!
뭐...뭐라고 얘기 좀 해보세요! 우리 중에 루이 17세 폐하, 아니 오...오를레앙 그 작자를 만난 건 당신이 유일하니까!”
데물랭은 맞은편에 앉은 험악한 얼굴의 조르주 당통 선거위원을 향해 외쳤다.
“···.”
당통은 데물랭의 시선에도 묵묵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결국 데물랭의 옆에 앉아있던 장 폴 마라가 일어서 데물랭을 말렸다.
“데물랭 선생, 당통 위원도 지금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지금 우리끼리 갑론을박을 하자고 모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충격에 휩싸인 파리의 언론인들은, 그 말을 끝으로 그날 밤 내내 서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