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바스티유 요새 (2) (46/341)

바스티유 요새 (2)

“···그게 사실입니까, 소위님?”

파리의 3신분 선거 위원, 장 바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렇습니다. 국왕이 삼부회의장에 근위대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저와 친한 장교들의 말에 따르면 일부 외국인 용병대가 주둔지를 떴다고 하더군요.”

눈앞의 소위는 그런 바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위의 말을 들은 바이는 넋 나간 얼굴을 연신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기욤 의원의 친우라 하셨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소위님.”

“아닙니다. 이 나라의 군인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소위는 그 말을 끝으로, 선거 위원회 건물을 떠났다.

갑자기 들려온 폭탄선언에, 방금 전까지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선거 위원회 건물은 고요해졌다.

“저 소위의 말이 맞다면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선생님. 국민의회가 만약 국왕에 의해 진압되었다면 다음은 파리로 군대가 들이닥칠 게 뻔합니다!”

3신분 선거 위원, 작은 키와 험악한 얼굴의 조르주 당통은 아직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바이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서, 당통 위원은 우리가 지금 자경대라도 조직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안 그래도 파리 시 전체에서 분위기가 날로 험악해져 가고 있는데, 그런 말이라도 민중들에게 나돌게 된다면 바로 곳곳에서 유혈 사태가 터질 거요. 그리고 그거야말로 저 왕과 귀족들이 우리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겠지, 그때야 말로 우리는 폭도가 되는 거요!”

바이의 말에 당통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왜 그러면 안 됩니까?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폭도가 돼 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당통의 말에 바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통을 바라보았다.

“···뭐요? 당통 위원, 지금 뭐라고 했소?”

“바이 선생님. 지금 상황파악이 잘 안되시는 것 같은데, 저자들은 이미 우리를 폭도로 보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하는 거요! 우리는 정당한 프랑스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격노한 바이의 말을 잘라버리며, 당통은 말했다.

“왕이 군대를 보냈다, 그런데 그게 우리 프랑스인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아니라 외국인 용병대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습니까?”

“···.”

“왕은, 우리 모두를 쏴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와 말이 통하면 병사들이 말을 안 들을까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을 시켜서 말입니다.”

당통은 그 말을 끝내고,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국민들을 외국인을 시켜 쏴 죽이는 왕이라니! 그래, 우리가 정말 반란이라도 꾀했다면 모르겠는데. 이 돼지만도 못한 놈이 우리가 말 몇 마디 했다고 백성의 배에 총검을 박아 넣으려 해!”

바이는, 그런 당통의 모습으로 섬뜩해진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당통 위원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바이의 파리해진 눈을 보며, 당통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제 놈들이 우릴 아무 이유 없이 폭도로 본다면, 우리가 그런 이유를 하나 만들어주어야겠지요. 마르스 광장에 연단하나만 만들어 주십시오.”

***

“비서님, 어떡하죠? 그, 저 사람들 정말 쫓아내야하나요?”

“조리장님 잠시만요. 저도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이삭의 민족 사장비서, 플로리앙은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벌써 사장님이 3신분 대표자라는 자리로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해 자리를 비운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 어... 플로리앙 씨. 전권을 줄 테니까. 저 좀 갔다 올게요?

- 아니. 저만 두고 또 놀러 가시는 거 아닙니까!?

- 아아아니 놀러가다니요. 저도 안가고 싶거든요? 가서 목이 잘ㄹ...아닙니다.

그 때문에 본래 두 사람이 처리해야할 일을 혼자 처리하느라 플로리앙의 눈밑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다크서클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만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진짜...”

플로리앙은 이삭의 민족 창 밖에 옹기종기 서있는 거지꼴의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원래 빈민 몇이 장사를 시작할 때 냄새에 홀려 서 있던 자리는, 이제 빈민 수십 명이 서있는 자리로 바뀐 지 오래였다.

팔고 남은 자투리를 나눠주는 것도 사람이 서넛일 때는 가능하지,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저대로 내버려두면 날로 험악해지는 파리 분위기 속에 약탈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파리에 있는 빈민들 중 기욤이 만든 간편식사를 안 먹어 본 사람은 없다지만 상황이 극에 달하면 눈이 돌아가는 게 사람 아닌가.

‘사장님이라면, 그 정신 좀 이상한 사장님이라면 이 상황에 뭘 어떻게 했을까.’

플로리앙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마리 조리장님. 우리 창고에 남은 곡물이 얼마나 있죠?”

플로리앙의 말에, 마리는 눈을 얇게 뜨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우리가 앞으로 쓸 여유분을 넉넉하게 제하면 100에서 200톤 정도 남아있을 거여요.”

“후···. 좋아요. 그거 다 풀읍시다.”

“···예? 그러면 우리가 만든 거 다 팔아도 본전이나 겨우 칠 텐데요?”

“조리장님. 사장님이 돈에 그렇게 환장하는 사람이었나요?”

“어, 돈을 좋아...하시긴 하죠?”

“아니, 아니. 사장님이 막 돈 한 푼 더 벌어들이려고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사람들한테 줬으면 줬지.”

“그건 그렇지요?”

“사장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

“···아마 비서님 말대로 하시지 않았을까요? ‘조리장님, 100인분만 더 만들 죠!’ 이러시면서.”

“그래요. 우리도 사장님처럼 100인분만 더 만들죠. 다른 지점에도 연락해서 100인분 씩 더 만들어서 빈민들한테 나눠주라고 해주세요. 우리 지점에서만 만들어서 매일 나눠줘도 천 명 씩은 배 안 곪을 수 있지 않습니까.”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배 곪지 마시고, 언제든지 와서 받아가세요.”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간편식사를 나눠주고, 플로리앙은 가게에서 나와 문을 걸어 잠궜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온지도 이제 몇 년이 지났는지...”

석양에 비치는 이삭의 민족 1호점의 간판을 보고 플로리앙은 새삼스레 감정적인 기분이 들어 말했다.

이제 5년이 넘어가는 탓에 군데군데 벌레가 먹고 칠이 벗겨진 일부분은 조금 썩어들어 간 간판이, 오늘따라 남다르게 보이는 플로리앙이었다.

“조만간 한 번 수리를 맡기든가 아니면 새로 만들어서 달아야겠는걸.”

어쩐지 흐뭇한 기분이 들어 미소를 짓는 플로리앙의 뒤로, 건물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언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삭의 민족 1호점에서 북쪽으로 두 블록을 가면 나오는 마르스 광장.

후에 에펠탑이 세워지고 그 맞은편에는 기욤과 평등클럽원들이 다닌 파리군사학교가 있는 그 광장에서.

작은 키와 험상 굳은 얼굴의 사내가 수백 명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하고 있었다.

“파리 시민 여러분! 침통한 마음으로 오늘 도착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국왕은 지금 우리를 총칼로 진압하려 외국인들을 고용해 파리로 오고 있습니다!”

문장 하나에 분노.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너무나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 버는 것의 9할을 세금으로 뺏어 가는데 대체 어떻게 살 수 있느냐!’

이 외에 우리가 어떤 말을 했습니까!“

문장 둘에 슬픔.

“그런 우리에게, 백성을 통치하라고 하늘이 힘을 줬다는 그 왕이! 백성의 부드러운 배에 총검을 박아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주께서 군홧발로 백성을 밟으라고 힘을 주신 겁니까!”

문장 셋에 호소.

“아니요! 난 신부가 아니지만 말하겠습니다! 아니요! 나는 이제 말하겠습니다. 우리를 폭도로 보는 자에게 말하겠습니다!

이봐, 루이! 그리고 그 졸개 놈들아. 우리가 폭도로 보이나!? 좋다. 네 놈이 우릴 폭도로 본다면, 폭도가 되어주마! 나와 함께 합시다 여러분!”

문장 넷에 설득.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적을 쳐부수려면 하나에도 용기, 둘에도 용기라는 걸.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뿐입니다!”

문장 다섯에 격려.

마르스 광장의 군중은 열광했다.

***

왕이 외국인 용병대를 이용해 파리를 진압하려했다고? 이야 구라도 참 예술로 치시네. 그런 왕이 어디 있어?

어? 그러고 보니까 한국사 배울 때 조선에 한 명 있었던 거 같은데.

그 뭐시냐 고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니요. 그냥 뭐 이런저런 생각이요.”

“그래? 오늘 제대로 불질하려고 생각 중 인줄 알았네만.”

“뭐, 그것도 맞긴 한데 아무튼 별 생각 아닙니다.”

“···뭐라고?”

시에예스 사제님은 날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 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원하시는 것처럼 불 질러 드린다니까.

원래는 더 뭐 안하려고 했는데, 외국군을 불러서 자국민을 때려잡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내 안의 작은 한국인이 PTSD를 일으키고 말았단 말이지.

“다음 순서로는 이제...파리 시 14구 국민의원인 기욤 드 툴롱 의원이 발언하겠습니다.”

어이없어하는 사제님의 얼굴을 뒤로, 사회자의 말에 나는 일어서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 여러분. 기욤 드 툴롱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왕이 외국인 용병대를 끌어들여 파리 근교에 주둔시켰다는 소식은, 파리의 3신분 선거위원회의 빠른 연락으로 파리 시소속의 의원 몇몇에게 알려졌다. 개중 하나가 나고 말이지.

“왕이, 파리 근교에 용병대를 집결시켰다는 소식입니다.”

내 말 한마디에, 의회의 모든 의원들의 입이 떡하니 열렸다.

“오늘 아침, 파리 시민들과 제 친우들이 전해준 내용입니다.”

“잠깐, 기욤 의원. 친우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요?”

“아 군사학교 동기들입니다. 동기들이 말하길, 오늘 아침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왕실기병연대가 파리 근교에 도착했다더군요.”

이제 청중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자칫 잘못하면 자다가 목이 떨어질 위기였으니까.

“저, 기욤 드 툴롱이 파리 시민을 대표해. 이 자리에 없으신 분께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사회자님?”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기욤 의원.”

“감사합니다. 파리 시민을 대표해 말하겠습니다.”

나는 한번 목을 푼 뒤, 아무도 앉지 않은 최고 귀빈석을 보고 말했다.

“루이, 당신이 사람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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