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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무대의 첫 장 (5) (42/341)

무대의 첫 장 (5)

엿 같은 개회식과 나의 의도치 않은 불질로 파탄이 나버린 삼부회의의 첫날은 그렇게 개판인 채 끝났다.

재무총감 네케르는 중앙의 연단에서 체념한 얼굴로 수많은 대표자들의 손가락질과 욕을 고스란히 들으며 폐회식을 간단히 한 채 도망치듯 자리를 떠버렸고.

3신분 대표자들은 모두 기립해 1신분과 2신분, 즉 특권신분들이 앉아 있는 좌석을 향해 펜이니 잉크니 구두니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던져댔다.

“이 미친 새끼야! 이 꼴을 어떻게 수습 할 거야!?”

마티유 형은 재무총감의 충격적인 발언에 어이가 나가버린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아저씨 스피커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아 마티유 형이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도 주변이 모두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는 판에 이제는 뭐 상관도 없겠구나.

“···아니 내가 뭐 이렇게 될 줄 알고 말했나...”

“아이고 씨발, 주님!”

마티유 형은 이제 울상을 짓고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게 왜 근데 내 탓이야. 지들이 돈 관리 똑바로 안한 거 아닌가?

아 아니구나. 돈 관리를 똑바로 안한 게 아니라 개좆같이 한 거구나!

“···근데 이 꼴이 난 원인은 저 양반들이 재정을 파탄 낸 탓이지,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마티유 형은 내 말에 벌떡 일어나서 얼굴을 쥐어 싼 채 울부짖었다.

“친한 동생 덕으로 궁전 한 번 구경하러 왔더니 그 동생 덕에 죽게 생겼어!”

“에이 그 걸로 죽이긴 뭘, 쫌생이도 아니고.”

“이 또라이 새끼는 지가 불을 질러 놓고도 이러고 있네! 재무총감이라고! 재무총감! 국왕 폐하 다음 서열! 저 사람이 손 하나 까닥하면 근위대가 널 잡아 족쳐버릴 수도 있다고!”

“하하! 글쎄. 친우 분 말도 어느 정도 맞습니다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 꼴을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겁니다.”

오열하는 마티유 형의 뒤로, 누군가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 3신분을 상징하는 평범한 흑색의 정장, 갈색이 맴도는 머리칼, 170센티가 좀 안 되는 키의 남자는 이제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기욤 군. 거의 5년만이군?”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난 말했다.

“···시에예스 사제님?”

“그래!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마주하는 군. 어떻게, 잘 지냈나?”

시에예스 사제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아!-하는 표정으로 마티유 형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 친우 분, 내가 실례했습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중에 끼어들어 미안합니다.”

마티유 형은 그런 사제님의 손을 마주잡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프랑스 육군 보병 소위 프랑수아 마티유입니다.”

“이거 또 호걸을 만났군요! 샤르트르의 대주교였던 엠마뉘엘 시에예스입니다.”

마티유 형과 악수를 끝낸 시에예스는 살가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그나저나 사제님이 왜 여기 계시지. 사제님은 이쪽 평민자리가 아니라 저쪽 성직자 자리 아니신가?

“대주교 ‘였던’ 이라뇨. 사제님 혹시 사표라도 내셨습니까?”

“음, 뭐 사표라면 사표라고 볼 수 있겠지. 기욤 군. 사실은 때려친 게 맞다네. 워낙에 더러운 꼴을 많이 봤더니 그만 하고 싶어지더군. 또 내가 있을 곳은 저기 화려한 특권 쪽 자리보다는 이곳이 어울리지 않나? 아무튼 여기는 좀 시끄러우니 자리를 좀 옮기는 건 어떤가?”

그 순간 내 위로 구두 한 켤레가 더 하늘을 날아, 반대편에 있는 특권계층 쪽으로 떨어졌다.

“···어서 가시죠.”

나와 마티유 형, 시에예스 주교님은 서둘러 회장을 나가 숙소로 향했다.

***

“내가 기욤 군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걸 생각해도 재무총감 앞에서 바로 직언을 꽂아버리다니, 정말 대단해! 하하하하!”

“윽! 억! 몇 년 만에 만나서는 하시는 게 폭력행사라니,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허, 이제는 나보다 체격도 훨씬 큰 친구가 그런 걸로 엄살떨면 쓰나.”

오랜만에 만난 시에예스는 내 등을 팡팡 두들기며 크게 웃었다.

그 키가 커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피부도 두꺼워진 건 아닌데요. 남의 몸을 너무 막 다루시는 거 아닌가.

그 때, 마티유 형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제님. 아까 말하셨던, ‘여기 있는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시에예스는 그런 마티유 형의 말에 의아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자네, 친구한테는 말 안했나?”

“뭘요?”

“뭐 반란이라던가 민란이라던가 자네가 나한테 해줬던 얘기 있잖나.”

“···뭐 꼭 말할 필요가...있...나요?”

아니 사람이 그런 거 미리 알고 있어서 뭐해. 스트레스만 받아서 머리카락이나 빠지지. 원래 사람은 적당히 모를 건 모르고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사는 거 아니겠나.

...아닌가?

내 말이 끝나자 마티유 형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날 째려보고 있었다.

동시에 온화했던 마티유 형의 얼굴이 씰룩씰룩 거리면서 절간에 있는 사천왕그림보다 무섭게 변하고 있었다.

“이...이 씨이이발 미친 새끼야!”

“켁, 켁! 목 조르지마! 나 죽어! 나 죽는다고!”

“그냥 또라이 새끼인줄 알았는데 역적이었어! 왜!? 나까지 단두대로 보내달라고 하데스가 그러던?”

“아니 형이 무슨 단두대야 단두대는! 내가 형 단두대로 안 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닥쳐!”

***

같은 시각, 베르사유 궁전의 특권계층 숙소는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평소에 깔보던 평민들의 대표들은 국가 재정의 파탄이라는 무거운 실책을, 귀족들에게 전가했다.

사실은 전가도 아니었다. 그게 맞으니까. 귀족과 왕들의 무능이 만들어내고 또 했던 모든 실책이었다. 누구보다 평민들을 정치세력에서 쫓아내고 또 탄압한 결과였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누구보다 고귀했던 푸른 피들은 저잣거리의 거렁뱅이만도 못한 놈들로 전락해 평민들의 욕지거리를 받아내고 말았다.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오늘 일어난 사태에 대해 감히 입을 놀려 이 무거운 고요를 깨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침묵의 자물쇠를 깬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가장 높은 직위의 대주교였다.

단출한 검은 옷을 입은 3신분 대표자들과 너무나 큰 거리를 둔, 휘황찬란한 황금색 실을 수놓은 그의 망토를 펄럭이며, 대주교는 입을 열었다.

“경들은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

“”

대주교는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찡그리며 지팡이를 바닥에 대고 쿵쿵 소리가 나게 찧었다.

“정녕 이 많은 푸른 피 중에 묘안 하나 있는 자가 없는가!?”

그러나 지팡이가 울린 마지막 쿵 소리의 잔향이 사라지자, 다시금 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대주교는 이제는 의자에 목을 완전히 기댄 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나, 뭐라도 말을 좀 해보시게나.”

결국 이 자리에 있는 귀족들 중 제일 어린, 한 사제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오를레앙 대공전하의 말을 따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지 않겠습니까.”

대주교는 한 번 눈을 감고 오랜 시간 동안 뜨지 않다가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말했다.

“그러니까...저 교양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에게 무릎을 꿇어라...이건가?”

“아, 아닙니다! 평민들에게 굴종하는 게 아니라, 대공전하의 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대주교는 그제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리는 대공전하의 명을 따르는 것이지. 다들 이에 이의 있소?”

그의 말에, 방에 있는 모든 푸른 피들이 하나 되어 외쳤다.

“”“없습니다. 대주교 각하!”

“”

“좋아. 그러면 평민들의 말을 일단 들어줍시다. 이만 해산해도 좋소.”

대주교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얼마 후 다시 소집된 삼신분회의장.

자주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황금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주교 각하.”

“그 말 그대로요, 백작. 나를 비롯해 백여 명의 푸른 피와 사제는 평민들의 뜻을 지지하기로 했소.”

대주교는 면도한 탓에 얼마 나지도 않은 콧수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이...! 대주교 각하!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까!? 나는 ㅁ···!”

“명사회지. 잘 알고 있소, 백작.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나는 시대의 흐름도 못 따르는 멍청이들이 달라붙는 건 싫어서 말이오. 볼일 다 끝났으면 이만 가보겠소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주교는 백작에게서 몸을 돌려 발을 내딛었다.

“대주교! 당장 멈추시오! 폐하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습니까!”

“하, 웃기는군. 누구보다 그 폐하의 권위를 실추시킨 명사회가, 폐하 운운하며 방패로 쓰다니 말이야.”

“이..익!”

분노에 이를 갈고 얼굴을 씰룩대는 백작을 뒤로 한 채, 대주교는 자신의 무리와 함께 특권층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평민 쪽으로 걸어 나갔다.

***

“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방금 전 제 1신분인 사제들이 우리 평민과 함께한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진정, 국민의회라는 이름에 한발자국 더 다가간 것입니다.”

연단에 선, 3신분 대표자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뚱뚱하고, 키도 작고, 무엇보다 얼굴은 어렸을 때 황소와 한 번 부딪힌 적 있는 지 의심스럽게 못생기긴 했어도, 그 누구도 저 대표자의 말을 뭉클하게 듣지 않는 이가 없었다.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

때문에 연단에 선 대표자, 미라보 백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에 나는 우리 국민의회가 프랑스 전체 국민의 대표자임을 엄숙히 선서하며 우리 국민의회는 그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절대 해산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합니다!”

“”“국민의회 만세! 국민의회 만세! 국민의회 만세!”

“”

미라보 백작은 이제 두 팔을 넓게 벌려 세차게 휘두르며 말을 더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제적으로 해산된다면! 그 즉시, 우리 프랑스 전 국민들은 납세를 거부하고 의무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왕 또한 우리의 가결 없이는, 개인의 의지로 국정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와아아아!!!”

“”

6월 19일. 삼부회의장에는 만세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

“네케르 재무총감! 지금 장난하는가?! 귀족들을 겨우 잡아놨더니 이제는 뭐?

평민들이 날뛰고 있다고!”

루이 16세는 눈앞의 재무총감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 시간 벌기가 그렇게 아까웠던가?! 아니면 자네도 오를레앙 그 놈과 짜고 치는 건가!”

“···.”

힐난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는 네케르를 보며 국왕은 이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콧김을 내뿜으며 네케르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쏘아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근위대장! 거기 있는가!”

“예! 폐하!”

왕의 말에, 문 밖에 서있던 근위대가 대답했다.

“좋아. 그대들은 내 편이 맞겠지. 당장 회의장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의원인지 뭔지 모를 역도들을 모두 해산시키게!”

“예! 폐하!”

근위대장은 엄숙하게 군례를 올린 뒤, 문을 닫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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