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대한파 (3) (35/341)

대한파 (3)

“자, 툴롱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나리들! 헤헤, 좋은 여행 되십쇼!”

마부는 내가 금화 두 닢을 건네자, 입꼬리가 귀에 걸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며칠을 마차 안에 쪼그려 있던 탓에 몸 곳곳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것만 빼면, 처음 게헨느에서 파리로 갔을 때 보다 훨씬 나아진 여행이었다.

멀미약은 신이고, 난 무적이다!

우리 킹갓제네럴마제스틱 듀퐁이 만들어준 신비의 영약 덕에, 난 내 연약한 반고리관을 여행과 등가교환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 우와. 이게 항구구나! 이게 바다고!”

그리고 그 듀퐁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내 휴가 계획을 알고 나서는 자기도 멀미약을 만들어줬으니 마땅히 쉴 자격이 있다며 따라온 그였다.

마르세유나 니스 같은 거대 항구도시에 비하면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중소도시툴롱이었으나, 항구의 크기만은 그에 꿀리지 않는 툴롱이었다. 한 번도 파리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샌님인 듀퐁에게는 매우 신기한 게 당연하지.

하, 역시 파리 토박이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맨날 파리에 박혀서 삭막한 도시 모습만 보지 말고 이렇게 견문을 넓혀야지.

“···그래도 평소보다 꽤 멋있긴 하네.”

항구에는 백여 명은 너끈히 태울 만큼 상당한 크기의 범선이 수 척 정도 정박해 각종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것보다 작은 배들은 3월로 달력이 넘어갔지만 아직 거친 겨울날씨 덕에 높은 파도가 계속되자, 기왕 이렇게 된 참에 아예 마스트에 달린 돛을 떼어내수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툴롱의 건선거와 항구에는 수십 척의 배가 나란히 정박해 상당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술집과 여관, 항구 근처의 가게는 뱃사람들로 가득 차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흠···이라모, 쪼오매 힘들 수도 있고마.”

나폴레옹은 그런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엉? 왜?”

“파도가 높아가, 작은 배는 안 나갈 끼고, 아마 쫌 큰 배에 돈을 더 주고 데리다 달라꼬 해야 될 판이다.”

우리의 휴가지이자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은 툴롱에서 약 하루 정도 배를 타고 갈 거리에 있었다.

때문에 이런 높은 파도를 헤치고 하루 이상 나아갈 배라면 응당 무역선이라던가, 아니면 군함뿐이었고, 당연히 무역선은 자신들의 항해경로에 포함되지 않은 곳을 거쳐 가려면 많은 추가금을 내야했다.

휴가 한번 가기 참 어렵네 진짜.

“그라모, 내는 함 배를 찾아 볼 라니까, 니는 오늘 하루 묵을 곳 괜찮은 곳으로 하나 찾아놔 바라.”

나폴레옹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항구 쪽에 무리지어 있는 승조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나폴레옹이 배를 찾는 동안, 나는 듀퐁과 함께 근처 여관 중 제일 깨끗한 곳을 수소문하여 체크인을 했다.

1층은 다른 여관들처럼 선술집과 식당을 겸하고 있었으나, 건물의 층간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침실이 식당의 소음에 영향을 덜 받는 곳이었다.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식당으로 내려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듀퐁은 항구 구경을 하러, 난 나폴레옹 형과는 별도로 배를 찾으러 식당에 있는 선원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코르시카? 아, 그 섬동네 말입죠? 으음...우리는 남아메리카 쪽으로 가서리... 못 태워다드리겠네요.”

“우리 배는 쬐깐해서 이런 날씨에는 못나갑니다요.”

“인당 50 리브르, 그거 밑으론 안 갑디다.”

거 배 한척 타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무슨 수가 없을까?

난 지친 나머지 식당 테이블에 있는 의자에 대충 앉아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때 한 무리의 해군 정복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와 테이블에 앉은 뒤, 웨이트리스에게 주문을 넣고 제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

“항만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소령님.”

앳된 얼굴의 소위가 제일 선임으로 보이는 쉰 정도의 중년 소령에게 물었다.

“하, 다른 건 몰라도 이 곳 민간 항만장의 배때지에 욕심이 그득그득하다는 건 잘 알겠더군. 포도주 오크통 하나에 1천 리브르라니, 아무리 자기들이 물류를 잡고 있다지만 너무 바가지 장사 아닌가? 정부에서 나온 돈으로는 한 통싣기도 벅찬 꼴이네.”

“북쪽 브레스트까지 항해하려면 스페인을 돌아서 꽤 멀리 가야하는데 포도주없이는 선원들도 그렇고 부사관들도 힘들어 할 겁니다.”

“나도 그걸 아니 하는 말일세. 뱃사람들이 술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젠장, 차라리 마르세유나 니스에 기항하는 편이 훨씬 나았겠어. 군항이라길래왔는데 이게 무슨 꼴인지 원.”

프랑스왕국 해군 소령, 루이 드 라투슈 트레빌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미국독립전쟁 중 그 이름 높은 영국의 ‘왕립 해군’과도 일합을 주고받은 명장인 그는, 적인 영국이 아니라 자국의 시민들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었다.

말은 여물을 먹고 움직이고, 스위스인은 돈을 먹고 움직이며, 미국인은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움직이듯, 뱃사람은 국적불문하고 술을 넣어주어야 움직인다.

그런데 이곳 툴롱의 항만장이라는 양반은 국왕 폐하의 충성스런 해군을 꿔다 놓은 돈자루로 보는지 아예 술값으로 뽕을 뽑으려하고 있었다.

그것도 시가의 두 배, 세 배면 그나마 이해할 텐데, 항만장은 무려 시가의 열배를 부르고 있었다.

소령은 이를 바득 갈며 말했다.

“겨우 술값 가지고 저렇게 탐욕스럽게 -아 고맙소.- 행동하는 자를 지켜줘야 하다니, 차라리 내가 영국 놈들한테 포로로 잡혀있을 때가 훨씬 더 명예로울 지경이야.”

소령은 웨이트리스가 가져다 준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술이 좀 들어가자 방금 전까지 폭발할 것 같았던 소령의 기분도 조금은 풀어졌다.

‘역시 뱃사람은 술 없이는 살 수가 없군. 젠장, 정말로 10배나 되는 돈을 써야하는 건가.’

***

요컨대, 툴롱에서 민간 항만장을 맡고 있는 자가, 해군에게 포도주를 바가지로 팔아먹고 있다는 거구만.

이거, 잘하면 꽁으로 배도 얻어 타고 돈도 벌 수 있겠어.

사업용 미소 ON!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군 장교들에게 가까이 간 뒤, 입을 열었다.

“큼큼. 신사 분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반갑소만. 누구시오?”

소령은 날 보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전 파리 중앙군사학교에서 재학 중인 기욤 드 툴롱 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학연, 지연, 혈연이다. 그리고 동종업계에 종사한다는 유대감도 상당히 좋은 것 중 하나다.

같은 군바리라는 걸 알자, 앞에 있는 장교들의 얼굴도 상당히 풀어졌다.

“흠, 그렇소? 난 해군 소령 루이 드 라투슈 트레빌이오. 그래, 그런데 육군이 우리 같은 해군한테 무슨 일이오?”

“제가 일부러 엿듣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포도주 관련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맞소. 여기 툴롱에 있는 항만장이 보통 탐욕스러워야지, 아예 상인들을 윽박질러 물류를 독점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소.”

소령은 그렇게 말하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 그것 참 안 좋은 일이군요.”

“그렇소.”

“만약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린다면 공짜로 배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소령은 내 말에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

“공짜는 무슨,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가는 것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태워주겠소!”

좋아! 겜 끝났다!

난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여관 주인에게 툴롱에서 가장 빠른 마부를 불러달라고 했다.

***

“···몇 년 만에 고향 근처로 와서는 집에 들리지도 않고 한다는 말이 ‘포도주를 달라’라니. 이건 뭐...”

게헨느의 영주 샤를 드 툴롱은 아들 기욤에게 온 편지를 보고 얼척이 없었다.

편지는 급하게 휘갈겨 쓰느라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있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포도주, 오크통으로 다섯 통만 빠르게 제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보내주세요. 대금은 통 당 100리브르면 평소 내다파는 것보다 좀 더 되니까 괜찮죠?]

“···어쩌시겠습니까?”

“기욤 그 녀석이 멍청한 녀석도 아니니 뭔가 쓸 곳이 있겠지. 생판 남밖에 없는 파리에서 성공한 녀석 아닌가. 알랭 자네가 몇 통 골라내서 보내주게.”

‘집 근처에 왔으면 가족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지 일이나 시키고 말이야. 그녀석 참 불효자가 따로 없구만.’

샤를은 문득 기욤이 조오오금은 미워졌다.

***

우리가 탄 코르벳 함 ‘승리 호’는 차가운 겨울 바다를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내 이번에는 큰 신세를 졌소, 기욤 생도!”

“뭘요, 저도 돈 좀 벌고 공짜로 배도 타게 된 걸요.”

트레빌 소령은 그런 내 말에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실로 들어갔다.

“마, 기욤이. 니는 자꾸 어디서 이렇게 방법이 생기나?”

“친화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운이 좋은 건지 아무튼 대단하단 말이야.”

소령이 들어가자, 나폴레옹과 듀퐁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허 이게 다 이 기욤의 혜안과 현묘한 기책 때문인 것이거늘, 에잉 쯧쯧.”

“사업하더니 아가 완전히 뻔뻔스러워졌고마.”

나폴레옹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낄낄 웃었다.

땡! 땡! 땡!

“코르시카가 보인다!”

곧, 배 안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마스트 위에서 견시를 하던 수병의 말에 우리는 선체 앞으로 가, 조그마한 점이 점점 커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왐마, 이게 몇 년 만이제. 하하하!”

나폴레옹은 큰소리로 웃었다.

그의 고향 코르시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너무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나 라플라스?”

“이게 다 자네가 평안했으면 해서 하는 말 아닌가, 하하!”

라부아지에는 그런 라플라스의 말에 싱긋 웃었다.

“미안하네, 요즘 수익이 영 시원치 않다보니 말이 조금 거칠어졌군. 내 다시 사과하겠네.”

요 근래 라부아지에의 부업은 예전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다. 덕분에 그의 실험도 멈추게 된 것은 당연지사였고.

“생캉탱에서 시민들이 굶어죽었다고? 거참, 일반적인 일은 아니구만.”

“그래, 그러니 자네도 세리 일 좀 멈추고 잠시 쉬고 있게나. 안 그래도 사람들이 세리 싫어하는 거 잘 알잖나. 그러다가 광인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흐음...뭐, 알겠네. 나는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자네 말대로 좀 자중하도록 하지.”

“잘 생각했네! 안전이 최고지! 하하하!”

라플라스는 라부아지에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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