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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즐거운 하루 (18/341)

즐거운 하루

청명한 가을 날씨의 오후. 나와 마티유, 나폴레옹 형은 파리 근교로 나와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마, 기욤이 니는 와 저런 아 데리고 다니나? 아무리 봐도 점마는 머리가 쪼매 돈 거 같다. 마티유 니는 우예 생각하나?”

“음음, 나도 나폴레옹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해.”

“아잇 씻팔, 그러면 형들이 헤실헤실하는 저 양반 얼굴에 대고 ‘아 좀 꺼져주세요’라고 하던가!”

“아니 뭐, 내 말은 그냥 좀··· 거리를 두자. 뭐 이런 거지.”

“마···맞다. 내도 막 내치고 고런거 말하는 건 아이다.”

내 일침에 나폴레옹 형과 마티유 형은 머쓱해진 얼굴로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사람이 이상해도 면전에 대고 ‘너 싫어요’하는 건 양심에 찔리니 만만한 동생에게 짬처리를 시키려고 해?

아아 미래 프랑스군의 장교들이 생도시절부터 짬처리에 맛들이다니 프랑스군의 미래가 어둡구나! 세상에나 마상에나.

우리 모두의 불편한 친구 그루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껄끄럽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까.

“하하하! 내 가장 소중한 친우들이여!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마주들이 말을 잘 안 빌려주려고 하더라고! 거참 까다로운 친구들이야. 하하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루시는 말 두 필을 끌고 나타났다.

그루시의 말을 듣자하니 마주들이 말을 잘 안 내놓으려 했다던데.

뭐 나라도 웃음을 여기저기 흘리면서 다니는 이상한 청년을 보면 어디 머리를 크게 다친 사람인줄 알겠다.

“자! 기욤! 어서 타게! 하하하!”

“아···알겠다구요.”

그루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날 말 안장위로 밀어 올리는 바람에 난 어쩔 수 없이 등자 위로 올라갔다.

내가 올라가자 말은 평소에 태우던 성인들보다 내 몸무게가 가벼운 게 맘에 드는지 콧소리를 내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

무섭다.

그것도 존나게 무섭다.

내가 괜히 시험 과목 중 승마를 낙제 받은 게 아니다.

21세기의 킹갓엠페러 이동수단들을 타고 다닌 대학생에게, 살아 숨 쉬면서 가끔씩 통제 안 되는 생물을 자가용 삼아 이리저리 타고 다니라는 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자칫 잘못하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운 나쁘면 목이 부러져서 사망, 운 좋으면 팔이 부러져서 생존이다.

와! 50 대 50! 엄 대 엄! 롯데 대 트윈스!

아 이런 걸 어떻게 타. 안 타! 못 타!

“나···나 내려갈래···.”

난 왼쪽 안장에서 발을 빼면서 말했다.

그러나 마티유 형은 그런 내 발을 잡아서 다시 안장에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어허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구.”

이번에는 나폴레옹 형이 내 오른발을 잡으면서 말했다.

“마티유 점마 말이 맞다. 마! 싸나이 아이가!”

이···이 나쁜 사람들!

평소에 그렇게 서로 고집피우면서 티격태격할 때는 언제고 이럴 때만 합이 착착 맞지!

두고 봐라 곧 모발의 신이 벌을 내려 당신들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갈 테니.

“하하하! 기욤! 괜찮네 괜찮아! 모두 처음에는 안절부절 하기 마련이네. 내가 차근차근 알려 줄 테니 나만 믿게!”

아. 맞다. 이 사람도 있었지.

그래, 그루시 이 양반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으아아아 당신만 아니었어도!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그런데··· 기욤 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있네.

- 에···? 또 이상한 얘기 꺼내서 사람 가슴 철렁이게 하지 마요.

- 큼큼. 다름이 아니라 자네의 승마 점수 말이네. 다른 과목은 모두 나폴레옹과 비슷하거나 앞서는 과목도 있는데 왜 승마만 낙제인가?

- 아, 그거요? 내가 사실 말을 탈 줄 몰라요. 핳핳

- 뭐···뭐라고? 아니! 어떻게 말을 탈 줄 모른단 말인가!

- 아니··· 뭐 딱히 탈 이유도 없고, 타고 싶지도 않···.

- 사람이 그러면 쓰나! 어서 나오게! 학교 제일의 승마 명인인 이 몸, 에마뉘엘 드 그루시가 친히 자네를 교육해주겠네! 으하하하!

- 어··· 난 별로 안타고 싶···.

- 하하하! 뭐부터 알려줘야 하나? 흠, 말과 교감하는 법은 무조건 알려줘야겠고 또···.

-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라고!

그런 그루시의 모습에 마티유 형과 나폴레옹 형은 날 골려먹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싫다고 하는 날 강제로 끌고 밖으로 나왔다.

특히 나폴레옹 저 양반, 날 골려먹을 기회가 생기니까 공부도 하루 포기하고 따라 나왔다.

당신들 내 말을 도통 듣지를 않는군요. 윽, 내면의 조커가 나올 것 같아.

“우아악!”

그러나 나의 상념은 타고 있는 말이 갑자기 로데오를 하는 바람에 깨져버렸다.

거의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육중한 말이 위아래로 요동치는데 누가 생각에 잠겨있을 수 있겠나.

“워, 워. 이 녀석 아주 기욤 자네가 맘에 들었나본데? 하하하!”

그루시는 언제 자기가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렸는지 어느새 내가 탄 말의 목덜미를 잡고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닿자 그 육중한 말은 어느 샌가 순하디 순한 강아지처럼 변해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뿜었다.

“음··· 원래는 내가 옆에서 같이 타고 가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자네 말 고삐를 내가 직접 잡아야 되겠구만! 하하하!”

그루시는 고삐를 쥔 채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타고 있는 말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뛰던 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순하디 순한 양이 돼서 그루시가 이끄는 대로 말발굽을 옮겨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게 무색해지자, 나도 어느정도 여유 있게 말 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휴 죽는 줄 알았네.

그런데 그루시 이 사람. 다른 건 몰라도 말 하나는 정말 빠삭하구나. 머리에 꽃밭만 가득한 바보는 아니었네.

역시 이 사람은.

중증 말박이가 분명해.

***

“으어어억 개피곤해.”

난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지며 말했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는 바람에 온 몸의 근육이 똘똘 뭉치고, 피로에 절어버린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나폴레옹, 마티유, 그루시, 언젠가는 복수하고 말 테다.

이 미친 작자들은 내가 말을 타고 어느 정도 중심을 잡으면서 걷기 시작하니, 바로 한 번 달려보라고 내 말 엉덩이에 채찍을 날렸다.

그 덕분에 난 근 십 여분 동안 이리저리 날뛰는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온 힘을 다해야 했고.

아니 이제 겨우 튜토리얼 깬 쌩뉴비한테 갑자기 보스몹을 잡으라고 시키다니.

당신들 무슨 다크소울 하다왔어? 역시 이 시대의 프랑스는 미친 게 맞다.

뭐? 예술의 민족 좋아하시네. 아직 에펠탑도 없는 파리가 무슨 예술이야 예술은. 예술이랑은 담 쌓은 듯 한 개 쌍마초새끼들만 즐비하던데.

“역시··· 집이 최고야.”

난 베개에 얼굴을 묻으면서 말했다.

아. 오늘은 이대로 그냥 잘까. 어차피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말이지.

잠이···

온···다.

쿨쿨ㅋ···.

쾅쾅쾅!

“기욤 드 툴롱! 안에 있소?!”

쾅쾅쾅!

이···씨이이이이발 누구야···.

이제 막 잠이 들려하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쾅쾅 두드려대는 소리에 나는 온갖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고 방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아 ㅆ···. 큼큼. 아 죄송합니다. 또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그러나 겨우 참은 짜증은 방문을 두드린 상대의 면상을 보자 터져 나오고 말았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세금을 덜 낸 것 같아 찾아왔소.”

방문을 두드린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내 어깨 사이로 조금 보이는 내 방을 요리조리 눈으로 훑어댔다.

아 이 씨발새끼.

내가 예전에 이 시대의 프랑스 국세청이 21세기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맞는 소리긴 하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돈 냄새는 이 시대 국세청이던 21세기의 국세청이던 기가 막히게 맡는다.

물론 21세기 수준의 금융장난을 알아차리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 내가 뭔가 장난을 쳤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겨우겨우 참아내면서 말했다.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잖아요. 나는 다 냈다고.”

“하! 사업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에 속아 본 게 한 두 번이여야 당신 말을 믿던가 말던가 하지. 내가 본 상인들은 딱 두 부류요. 탈세를 했거나 아니면 탈세를 할 사람.”

아니 씨발! 난 진짜 안했다고요!

내가 돈 가지고 장난친 건 딱 사업 출자금 마련할 때뿐이다. 정말로!

그 뒤로 한 번도 탈세라거나 돈으로 장난 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파리에 별다른 연도 없는 내가 혹여 범죄에 얽혀 들어가면 말도 안되게 귀찮아질 텐데. 난 그런 위험 감수하고 싶지도 않고, 또 어쨌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건 21세기 모범시민의 도덕관념에 부합하지도 않는단 말이야.

세금 징수관 이 양반은 그런 내가 아아아주 의심스러운 지 몇 달 전부터 계속 찾아와서 나한테 유도심문을 걸어대고 있었다.

아니 왜 선량한 사람한테 그러세요!

아 억울한 것도 정도가 있지. 꾸짖을 갈!

“아 진짜 안했다고요! 장부 다 까서 보여드렸잖아!”

“크흠. 그렇긴 하지만···. 혹시 모르지 않소? 당신 책상에서 금괴 같은 게 ‘안녕!’하면서 튀어나올지?”

갸아아아악! 씨발 이제는 나도 못참아!

“당장 나가요! 그렇게 내가 의심스러우면 고등법원에 신청해서 영장을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경찰을 데리고 오던지!”

“···쩝.”

세금 징수관은 내가 이 정도로 세게 나오자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더니 몸을 돌려 하숙집 문을 열고 나갔다.

“라부아지에인지 라부머시기인지 세금 징수관이여도 적당히 해야지! 씨발 머리에 뭐가 든 새끼 길래 사람 자는 밤에 들어와서 난리야 난리는!”

난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아버리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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