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 (3)
“그러니까 성함이···?”
“프랑수아 마티유. 수업 시간에 몇 번 옆자리에 앉았는데 기억 안나?”
“어···음···”
아니 뭐, 평소에 다른 사람한테 뭐 관심을 가져봐야 조금이라도 알지.
공부하랴 사업하랴 교우관계에 시간을 쓰지 못한 게 후회되는구만.
“뭐, 됐어. 나도 여태까지는 기욤 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마티유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식으로 인사할게. 난 프랑수아 마티유. 69년생이고 디종에서 왔어. 앞으로 잘 부탁해.”
“기욤 드 툴롱입니다. 71년생이고 툴롱 옆 게헨느에서 왔어요.”
나는 마티유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악수가 끝난 뒤 마티유는 자신과 함께 온 열댓 명의 생도들로 눈을 옮기며 말했다.
“여기 있는 생도들하고 나는 모두 파리 놈들한테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들어서 왔어.”
생도들의 마지막 한 명까지 눈에 담은 마티유가 다시 내 눈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병력은 충분히 모아온 거 같은데. 우리 꼬마 친구 생각은 어때?”
“천군만마나 다름없죠.”
마티유의 말에 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결투’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이었던 머릿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
“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이게 뭐가 어때서?”
가칭 ‘반(反) 파리파 생도연합’이 출범한지 삼 일째.
우리는 심각한 분란을 겪고 있었다. 지휘관 선정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휘관 문제는 굉장히 간단하게 정리되었는데, 나폴레옹 형이 우리 생도 중 수석이라는게 컸다.
- 기욤, 그러면 지휘관은 누굴 시킬 생각이야?
- 어··· 전 나폴레옹 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 아 그 사람이면 뭐 믿을만하지.
- 엥? 마티유 형이 나폴레옹 형을 알아요?
- 우리 기수 생도 중에 그 친구랑 얘기는 안 해봤을지언정 그 친구가 수석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 오히려 우리 기수 1등이 지휘를 맡는 다는 점에서 생도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물론 나도 그렇고.
- 그렇군요···.
아. 그러면 대체 뭐 가지고 싸우냐고? 참고로 이 시대의 남자들은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사는 열혈낭만파들이 즐비하다. 때문에···.
“하모, 이건 어떻나?”
“아 구려구려. 너 진짜 작명센스 없구나?”
“뭔 소리고? 내만큼 잘 짓는 사람 있으모 한번 나와보라캐라!”
“그래도 ‘흰 닭 군단’은 좀 구리지 않나?”
“음 그렇고말고, 닭이라니 무슨···. 창공을 가르면서 유유자적하게 사냥감을 노리는 독수리도 아니고 닭이라니.”
“뭐? 독수리? 너 오스트리아 빠돌이야? 프랑스인이 무슨 독수리야 독수리는.”
“아니 말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참.”
“아 흰 닭 군단으로 하자꼬오오오!”
그렇다. 뇌에 낭만과 가오가 가득 찬 이 사람들은 지금 ‘반 파리파 생도연합’의 정식 이름을 짓는 것에 근 삼 일을 몽땅 박아 넣고 있었다.
흰 닭 군단
독수리부대
기타 등등
요 삼일 간 알게된 것은 마티유 형도 나폴레옹 형 못지않게 자존심을 상당히 세우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양반들 파리 놈들 때려잡는 것보다 우리 깃발에 무슨 이름 써넣을지 결정하고 싶어서 이번 ‘결투’에 합류한건가?
지금 요 꼬라지를 삼일 간 보고 있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 말이지.
“기욤!”
“마, 기욤이!”
예? 저요? 아니 님들끼리 정하세요. 갑자기 나는 왜 찾는 거야.
여태까지 흰 닭이니 뭐니 하면서 서로 으르렁거리던 사람들이 생뚱맞게 내 이름은 왜 불러.
“하··· 왜요.”
“왜긴 왜야! 앞으로 프랑스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이 쓸 이름인데 당연히 이 사건의 주동자인 기욤 너의 의견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
“하모, 기욤이 니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 아이가.”
아잇 씻팔! 지금까지 서로 으르렁 거리던 양반들이 갑자기 또 무슨 의기투합이야 의기투합은!
후···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두 자존심 괴물이 모두 만족할만한 이름을 지어 내라 뭐 이런 건가.
뭔가 있어 보이면서 저 낭만 뽕에 맞아 중독된 낭만중독자 프랑스 인들이 흡족해할만한 이름.
프랑스. 낭만.
그러고 보니까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각각 무슨 뜻이더라.
‘자유 평등 우애’였었지 아마.
자유 군단? 음 이건 아니야. 마치 집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폴란드 용병 같잖아.
우애 군단? 이것도 아니다. 무슨 테베의 신성군단도 아니고 남정네들끼리 무슨 사랑이야 사랑은.
평등 군단?
흠···.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재수 없는 파리 놈들의 간악한 불질에 빡쳐 하는 사람들이니 너나 우리나 똑같다는 말에 괜찮아할 수도 있겠다.
“평등 군단 어때?”
나폴레옹과 마티유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썩어 들어갔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이래? 그러니까 나한테 왜 맡겨.
“아 싫으면 앞으로 나흘 간 계속 싸우시던가!”
그날 저녁. 우리 ‘반 파리파 생도연합’의 이름은 ‘평등 군단’이 되었다.
***
결투까지 이틀이 남은 날 저녁.
나폴레옹 형과 마티유 형, 그리고 나를 포함한 생도들은 내 방에 모여 우리 학교가 포함된 브르넬흐 거리 지도를 펴고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우선은 부대를 셋으로 나눌끼다. 마티유 니는 니까지 열명을 데리꼬 우리 깃발을 지키라. 인원은 16세 이상으로 편성해가꼬 차출하모 될끼다.”
우리의 지휘관 나폴레옹은 우리가 모두 모이자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잠깐. 왜 내가 방어를 해야 해? 나도 공격해서 파리 놈들 엉덩이를 걷어 차주고 싶은데.”
“모름지기 모루가 단단해야 망치가 힘을 얻는 기다. 우리는 14살짜리 아도 있고, 17살짜리 행님도 있고 나이차가 다양한기라 전력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칸다.”
“그게 내가 방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마 봐라. 저 파리 점마들은 죄 위고 그 놈이랑 친구 사이 아이가. 죄 16살이상 멀대들인기라 우리가 방어할 병력이 등치가 없으모, 당할 수 밖에 없다 카이. 니는 키도 한 170cm로 크고, 체격도 좋으니께 저 개쉐이들 막아야칸다.
니 말고 막을 수 있는 아가 우리 중에는 없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맡겨준 역할은 충실히 수행 하도록 하지.”
마티유 형이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그 다음은 내가 나까지 여덟을 데리꼬 건물을 우회해서 놈들 왼쪽 측면을 칠끼다. 콧대 높은 점마들은 아예 방심하고 있을 테니까 상상도 못할끼지.”
“왜 걔들이 방심하고 있을거라 생각해?”
생도 중 한명이 말했다.
“마, 점마들은 지금 우리가 요로코롬 모인 것도 모를끼다. 저 비열한 놈들이와 기욤이 제안을 받았겠나? 점마들은 우리가 절대 30명 못 채울 거라고 생각한 기다. 보나마나 지금쯤 가시나들 엉덩이나 쫄래쫄래 따라다니고 있을 기다.”
나폴레옹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 마지막 열둘. 열둘은 별동대다. 기욤이 니가 맡아가꼬 학교를 아예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그르넬흐 거리 반대편에서 치고 달리온나. 아예 적 후방에서 기습을 해보라 카이. 내 말 알아 듣겠나?”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작전대로 다 잘 되모, 점마들은 아래, 왼쪽, 위쪽에서 협공을 당해 지리멸렬하게 무너질끼다.”
물론 우리 별동대들이 후방까지 숨어들어갈 때까지 모루가 버텨준다면 말이제.
나폴레옹 형이 덧붙이는 말에 마티유 형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지막으로, 기욤이. 내가 준비하라꼬 했던 건 잘 준비 됐나?”
“아 충분히 준비됐어. 기한은 맞출 수 있을거야.”
***
“난 아직도 꼬마 사장님이 이걸 왜 하라고 하신 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요 눈뭉치들을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 거지.”
“뭐 그래도 한 시간 더 일하고 2 수나 더 받는 건데 어려운 것도 아니니 우리한테는 잘된 일 아냐?”
“그건 그렇지 호호호!”
요 며칠 간 ‘이삭의 민족’ 조리사들에게는 사장님의 ‘특별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한 시간 초과근무를 하는 대신 2 수의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
업무는 사람이 한 손으로 잡고 충분히 던질 만한 크기의 눈뭉치를 뭉쳐 문 밖에 하루 동안 놓는 것 뿐이었다.
실로 꿀 업무가 다름 없었다.
오늘도 ‘이삭의 민족’ 조리실에는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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