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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결투 (1) (12/341)

결투 (1)

파리 중앙군사학교의 목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연히 미래의 프랑스 왕국 군대를 지휘할 장교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그러나 1700년대 통틀어 크고 작은 전쟁을 겪은 프랑스는 기존에 있던 장교진의 숫자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고, 입학 조건과 정원을 대폭 늘렸다.

당연하게도 이 늘어난 자리들이 모두 귀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새로 만든 자리에 들어간 생도들 중에는 평범한 평민이나 귀족으로 쳐주지도 않는 하급 귀족 집안의 자제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군사학교의 분위기는 철저하게 귀족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리 태생 중앙 귀족’

이 들이 바로 중앙군사학교 생도들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주 세력이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 생도나 평민 생도들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파벌을 형성하여 학교를 주무르고 있었다.

가해자들에게는 ‘파리’와 ‘중앙귀족’ 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그러나 당하는 이들에게는 아무 구심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고향도, 신분도. 어느 하나같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3할 내지 4할에 달하는 생도들은 오늘도 하염없이 6할에 의해 따돌림당할 게 분명하다. 서로 뭉치지도 못한 채.

분명 그랬을 터이다.

“···미친 놈.”

디종 출신의 마티유는 눈 앞의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기욤 드 툴롱.

제복도 채 받지 않은 꼬마가 콧대 높은 파리 놈들에게 쌍욕을 박은 것은 마티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런 놈이랑 절대 엮이면 안 되겠다.”

마티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저런 미친놈하고 엮이다니 절대 사양이다.

어차피 저 놈은 파리 놈들 등쌀에 못 이겨 곧 이 학교를 떠나겠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마티유는 더 이상 그 꼬마 녀석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꼬마 녀석은 질질 짜며 집에 가기는커녕 파리에 남았다.

그리고

“석차 1등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석차 2등 기욤 드 툴롱···.”

시작은 시험성적이었다.

어느 새인가 꼬마 녀석은 자기랑 처지가 비슷한 난쟁이 한 놈과 함께 친구를 먹더니, 파리 놈들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야 마티유! 그거 들었어? 저 2등인 기욤이란 놈 있잖아. 승마술에서 낙제점수준인데 2등이래!”

“뭐? 아니 한 과목 낙제를 받았는데 어떻게 2등을 먹어?”

“듣기로는 나머지 과목이 만점이거나 하나 틀리거나 그 수준이래. 그게 아니면 저 등수가 나오겠어?”

“허···. 저거 진짜 미친놈이네···.”

동기들의 말에도 마티유는 별 상관하지 않았다.

마티유는 똑똑하기만 한 놈들이 별의별 이유로 박살나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사회경험의 부족으로 박살나는 경우, 자기를 시기한 놈들에 의해 정치질을 당해 박살나는 경우 등등.

특히 저 꼬마 녀석은 지방 출신이다.

곧 자신을 시기한 파리 놈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래서 마티유는 더 이상 그 똑똑한 꼬마 녀석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꼬마 녀석은 질질 짜며 집에 가게 되리라.

그런데

“···야 이게 뭐라고?”

“뭐, 간편식사인지 뭔 지라고 부르던데? 간단하게 점심 때울 때 좋더라고.”

“아니아니, 이걸 누가 만들었다고?”

“기욤 드 툴롱. 그 왜 있잖아. 저번에 파리 놈들 면전에 대고 쌍욕 박은 새끼.”

“허···. 이거··· 진짜 개미친놈인데?”

똑똑한 꼬마 녀석은 방학 기간동안 무슨 궁리를 했는지 ‘이삭의 민족’이니 뭐니 하는 가게를 차려서 ‘간편식사’라는 걸 어마무시하게 팔아먹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파리 밖 근교 비앙쿠르에 2호 점을 냈다던데 도대체 돈을 얼마나 벌어 재끼는 거지?

“···대단하네.”

마티유는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말았다.

저 놈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

“어우 간지러.”

요즘 귀가 좀 많이 간지럽네.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내 뒤통수를 보고 쑥덕이는 사람이 좀 많아 진 것 같긴 하네.

보나마나 또 날 씹어 대시는 게 분명하구만 저 녀석들이 날 추종하거나 대단하게 볼 일은 없을 테니.

“···그러고 보니. 방학도 꽤 많이 지났는걸.”

난 나도 모르게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내뱉었다.

2월 13일.

방학을 한 지도 어느 새 두 달 가까이 지났다.

그 동안 내 사업은 나날이 늘어나서 이제는 2호 점까지 세울 지경이었다.

“아 평화롭구만. 아아주 만족스러워.”

난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면서 말했다. 아 이대로 계속 뒹굴 거리고 싶다.

탕탕!

“기욤 씨? 기욤 씨 댁 맞으십니까?”

아 더 뒹굴거리고 싶은데. 난 오늘따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제가 기욤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기욤 씨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 그럼 이만.”

편지? 나한테 뭐 편지 보낼 사람이 있던가?

아버지랑은 저번 주에 했고. 조르주 주교 아저씨랑도 며칠 전에 했는데 말이지.

설마 내 외모에 반한 미모의 여성이 보낸 그런 짝사랑 편지?

일리가 없지.

“아니 씨발 뭔데?”

위고 드 라.

아니. 이 새끼가 왜? 왜 나한테 편지를 보내?

설마 이제 와서 내가 잘나가는 걸 보고 시기심이 든 나머지 편지에 청산가리를 발라 날 독살하려는 건가?

음 콧대 높은 그 파리 놈들답군. 아아아아주 논리적인 판단인걸?

나는 펜 두 개를 필기함에서 뽑아 젓가락처럼 잡고 편지를 살며시 들어 올려 읽기 시작했다.

“허미···. 이, 이게 머선 일이고···.”

내용은 정말 간단했다. 너무 간단한 나머지 세 줄로 요약하자면.

- 야 씨발놈아 니 요즘 좀 깝친다?

- 깝치지 말고 짜져 살아라.

- 그게 싫으면 내일 오후 3시에 학교 광장에서 결투로 승부를 가리자.

이거···. 결투 신청서지?

씨발 좆 됐다!

***

“근데 위고. 그 꼬마 놈은 갑자기 왜 불러내는 거야?”

옆에 서있던 친구 한 놈이 말했다.

“왜긴. 난 처음부터 그 꼬마놈이 싫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그 새끼 토낀거 같은데?”

3시 9분.

약속시간 보다 10여분 정도 지났는데도 그 재수없는 꼬맹이 새끼는 보이질 않았다.

“쯧. 그래도 시건방을 떨길래 좀 줏대 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군.”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꼬마 놈이 요즘 설쳐대긴 하지만 그 놈은 같이 다니는 이탈리아 억양의 난 쟁이 놈 빼고는 불러낼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위고는?

이 곳, 파리는 위고가 나고 자란 홈그라운드다.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 친구들 중 학교에 같이 재학 중인 생도도 상당수 있다.

아무리 결투라지만 자기보다 두 살가량 많은 덩치 큰 형들이 나와 있는데 겨우 14살짜리가 혼자 쫄래쫄래 나올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건 위고의 뜻대로였다.

어차피 저 놈은 나올 수도 없을테고, 그러면 ‘명예로운 귀족 간의 결투에 무단 불참’했다는 수치스러운 멍에를 씌워 학교에서 저 놈의 평판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다.

위고의 귓 속에는 아직도 그 꼬마 놈하고 처음 만난 날, 그 놈 입에서 나온 말이 맴돌고 있었다.

- 니들끼리 처먹어. 씨발새끼들아.

이 고귀한 드 라 가의 장남, 이 위고 드 라 님이 특별히 자비를 내려 ‘프랑스의 미래를 책임질’ 그룹에 끼워 주신다는데 제깟 놈이 단순히 거부도 아니고 쌍욕을 처박아?

이래서 지방 놈들은 안 된다.

그 하찮은 농부들이나 어부 같은 천한 놈들하고 지내다 보니 고귀한 귀족으로서의 자세도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시건방지고 품격 없는 새끼다.

“흥. 아무래도 겁먹고 안나오는 것 같군. 하긴 촌놈들이 다 그러면 그렇지.

자 다들 돌아가ㅈ···.”

“위고! 저기 걸어오는 거 그 꼬마놈 아니야?”

위고는 시선을 돌려 친구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기욤 드 툴롱.

그 재수 없고 시건방지고 품격 없는 꼬마 놈이 걸어오고 있었다.

“허··· 진짜 나올 줄이야.”

위고는 말했다.

‘그래봤자지. 달라지는 건 없다.’

꼬마 한 놈이 뭘 어쩌겠나? 위고는 꼬마 쪽으로 발을 옮겼다.

***

“···뭐라고?”

“그러니까. 결투를 하되, 우리 학교에 걸맞은 식으로 하자 이겁니다.”

“···그 걸맞은 식이라는 게 눈싸움이라고?”

이 새끼가 뭐라는 거지.

고상한 사관생도로서 명예롭게 검으로 결투하는 게 아니라, 애새끼들처럼 눈을 던지면서 결투를 하자고?

“너 돌았냐?”

“어허 돌다니요. 말씀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

그러나 꼬마 놈은 이미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이 태연했다. 이 새끼, 대체 무슨 생각이지?

“우리가 다니는 학교가 어디입니까?”

“파리 중앙군사학교.”

“그렇죠. 그러면 우리는 모두 나중에 군대를 이끌 장교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원론적인 이야기다. 뭐 꼬투리 잡을 것도 없고.

“우리는 미래 프랑스 왕국군을 이끌어 국왕 폐하께 무한한 영광을 안겨드릴 소중한 인력입니다. 그러면 과연 검으로 서로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게 명예로운 일일까요? 국왕 폐하의 하해와도 같은 은혜를 받아 교육을 받는 우리가, 미래의 전우가 될 생도들에게 칼을 겨누다니. 허어 아아아주 위험한 생각이시군요.”

국왕 폐하.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를 비롯한 나머지가 움찔했다.

신께서 내려주신 절대왕권을 휘두르며 만인의 위에 군림하시는 국왕이시다.

그런 국왕 폐하를 내세워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다니. 토를 달아봤자 폐하께 반대하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겠군.

“···쯧. 그래. 검을 쓰는 결투가 국왕 폐하께 해가 된다는 건 인정한다.”

위고는 덧붙였다.

“그런데 왜 하필 검 대용으로 하는 결투가 눈싸움이지?”

“우리는 나중에 장교가 됩니다. 맞죠?”

“그렇다.”

“그러면 눈싸움만큼 그 장교의 자질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겁니다.”

“대체 왜?”

“서로 30명 씩 대동하고 모의 전투를 치루 듯 눈싸움을 하는 거죠. 눈에 한번 맞으면 전사. 전사 시에는 뛰지 말고 걸어서 기지에 있는 깃발을 만져야만 부활. 승패는 상대 기지에 있는 깃발을 뽑으면 승리. 어떻습니까? 장교로서 요구되는 리더십, 전략과 전술까지, 모두 시험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위고는 고민하고 있었다.

꼬마 놈의 제안이 합당한 것처럼 느껴지긴 했으나, 자존심 상 이 꼬마 놈이 하자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거 없을까?

“그렇다면···. 만약 눈에 맞은 사람이 자신은 눈에 맞지 않았다고 우기는 경우는 어떻게 하지?”

“우리는 모두 명예로운 사관생도 아니었습니까? 그런 행동을 하면 결코 명예롭다 할 수 없죠. 전 생도들의 자존심을 믿습니다.”

쯧. 더 꼬투리만 잡아봤자 이놈의 세치혀에 휘둘리겠군.

“···좋다. 일시는?”

“일주일 뒤 이곳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시죠.”

“좋아. 그때 보도록 하지.”

위고가 몸을 돌려 떠나면서 말했다.

‘하. 그래.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다. 저 놈이 무슨 수로 30명의 생도를 모은 단 말이야?’

그래. 이미 승부는 나있다.

수많은 생도와 동고동락하는 위고 자신과 기껏해야 한 두 명밖에 모르는 저 꼬마 촌놈. 이미 동원력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제깟 놈이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어 봤자 당일에 10명이나 모으면 많이 모은 거겠지.

이미 위고의 머릿속에는 결투에 진 채 박살난 체면을 가지고 끙끙대는 꼬마놈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

“휴. 일단 살았다.”

와 나 씨 진짜.

여기서 칼침 맞아서 죽는 줄 알았네. 저저 눈 봐라 저거.

기껏해야 16살짜리가 으딜 37살 아저씨한테 눈을 부라려? 정의봉만 있었으면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렸을 텐데 말이지.

“그나저나 30명··· 어떻게 모은다?”

그건 생각 안했는데 말이지.

오늘따라 날씨가 춥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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