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푸근하고 추운 겨울 (11/341)

푸근하고 추운 겨울

“마리 아주머니, 오늘부터는 100인분을 더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꼬마 사장님.”

“그리고 그 100인분은 오늘 장사하러 가실 때 가지고 가지 마세요.”

“···네?”

“그 100인분은 제가 쓸 곳이 있어서 그래요.”

“뭐, 꼬마 사장님이 쓰실 곳이 있으시다면야 있는 거겠죠.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마리 아주머니. 아참 이번에 따님 생일이 돌아온다면서요? 이건 제 성의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안 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기욤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마리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

“예? 이게 뭐죠? 아니, 이게 다 무슨 돈이여요!? 하나, 둘, 셋···.”

“1 리브르 넣었습니다. 따님에게 예쁜 드레스 사 드릴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맛있는 거라도 많이 사주세요.”

“아이고 아이고 이 오십 먹은 아줌마가 무슨 도움을 드렸다고 이런 큰돈을 주십니까.”

“직원의 행복도 고용주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허튼 곳에 쓰지 마시고 꼭 가족끼리 좋은 곳에 쓰시면 됩니다.”

“아이고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우리 동료들! 오늘도 힘내서 해봐요!”

“”“네!”

“”

조리사들이 다 같이 외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욤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조리실은 꼬마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주머니들의 수다로 가득 찼다.

“역시 우리 꼬마 사장님은 다른 귀족 나리들하고 다르다니까? 저렇게 일하는 사람 한명 한명한테 극진하신 분은 보지를 못했어!”

“아무렴, 저렇게 마음 착한 사장님은 처음 봤어!”

“가끔은 저분 정도면 성경에 나올법하다고 생각한다니까?”

추운 겨울이지만 오븐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좋은 분위기 때문에 후끈후끈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삭의 민족’ 조리실에는 오늘도 따듯한 웃음꽃이 피었다.

***

“그러니까···이, 빈민들이 나리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간 게 아니라···.”

“예. 제가 직접 그분들께 나눠드린 겁니다.”

“···정말로요?”

“예.”

“아니, 왜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가진 것이 있는 자는 응당 베풀어야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하하하!”

‘이 꼬맹이, 단단히 돌았군.’

파리 경시청의 경관, 파트리크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순찰을 돌다가 어떤 귀족 자제가 몰지각하고 교양 없는 빈민들에게 강도를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정작 피해자라는 사람은 자기가 자진해서 빈민들한테 물건을 나눠줬단다.

‘제길 안 그래도 점심도 못 먹고 나왔는데 뛴 보람도 없구만.’

파트리크는 짜증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눈앞의 꼬마 귀족을 보았다.

꼬마는 자신과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빵 비스무리한걸 거지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 이거라도 드시고 힘내세요!

- 아이고. 나리, 이런 걸 왜 저희 같은 부랑자들한테 주십니까?

- 여러분도 저도 결국은 하나님의 자식 아닙니까. 본래 풍족한 자가 배를 곪는 자를 못 본 척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 가···감사합니다, 나리!

‘뭐, 나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시 순찰이나 돌아야겠네.’

파트리크는 그 모습을 뚱한 채 쳐다보다가 결국 몸을 돌려 방금 전 뛰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경관님!”

파트리크가 발을 떼려한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파트리크가 몸을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예의 그 꼬마 귀족이 손에 빵을 든 채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파트리크는 귀찮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집에나 들어가라는 뜻을 담아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마 순찰 때문에 점심도 못 드셨을 텐데 이거라도 드시라구요.”

꼬마 귀족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아직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빵을 내밀었다.

그 냄새가 텅텅 빈 배를 극심히 자극한 바람에 파트리크는 자신도 모른 사이 빵을 받고 말았다.

“그러면 수고하세요!”

꼬마 귀족은 그 말을 남긴 채 다시 총총거리며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마 남은 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거겠지.

“···그래도 영 예의 없는 꼬맹이는 아니구만. 윽···! 이···이거 뭐야!?”

파트리크는 꼬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낮게 읊조리면서 빵을 베어 물었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거 고기가 들어 있잖아!??”

추운 겨울 날씨에도 온기를 잃지 않은 따듯한 고기와 빵의 맛에, 파트리크는 놀라고 말았다.

***

요 근래 생겨나는 일을 나폴레옹은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친한 동생인 기욤이 사업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냐고?

아니다.

사업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다.

물론 기욤이 사업가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어린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면 대체 뭐가 이해되지 않냐고?

일단 기욤이 미친 듯이 팔아치우는 저 ‘간편식사’부터 이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고기를 뭉텅이로 썰어 넣고 비록 조금뿐이지만 야채까지 넣은 빵이 단돈 1 수에 만들어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폴레옹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은 기욤의 가게에 고용된 저 조리사들.

이 세상에 비숙련 노동자를 하루 두 시간 굴리고 2 수에 해당하는 거금을 주는 공장이나 가게가 있다니.

이건 뭐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이윤을 남겨먹는 사업가가 할 만한 짓은 절대 아니었다.

‘저게 사업이 맞나? 기욤, 점마가 단단히 돌아삔기가?’

그래서 나폴레옹은 기욤이 사업을 개시한 첫날, 기욤의 실패를 예측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었다.

사업 개시 한 달째, 기욤의 ‘이삭의 민족 간편식사’는 일 86 리브르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미 가게가 있는 그르넬흐 거리를 넘어 노르트담 성당까지 있는 모든 거리에서 기욤은 제가 만든 희대의 사업 아이템을 날개 돋친 듯 팔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기가 틀린 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모, 머리에 포술, 사격술만 박혀있는 내가 사업을 우예 알겠노? 내가 알지도 몬하는 걸 예측한다는 게, 애초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던 기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나폴레옹에게도 오늘 기욤이 한 일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

- 그란데, 기욤아. 100인분이나 되는 간편식사는 와 맨들라꼬 한기가?

- 아, 그거? 사람들한테 나눠주려구.

- 아니, 파는 거모, 그냥 아지매들한테 맺겨 놓으면 되는 거 아이가?

- 엥? 아니 안 판다니까? 나눠 줄거라구.

- ···?

- ···?

- 니 사업가 아이가?

- 맞는데?

- 사업가는 돈 벌라꼬 하는 사람 아이가?

- 맞는데?

- 그런데 그걸 다 나눠준다꼬?

- 엉. 빈민들한테 나눠줄거야.

- 아니, 그걸 왜?

- 형 내가 언제 이상한 짓 하는 거 봤어? 다 쓸모가 있는 일이야~.

- 하모, 이상한 짓을 안하면 기욤이 아이제.

- 흥. 맨날 이상한 소설 쓰는 형보단 안 이상할 걸?

- 마! 안 이상하거든?

- 플뤼에 부인도 그렇게 말하던데?

- 이익···!

- 맨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칙칙한 거만 읽으니까 그렇지. 모험서사시 같은걸 좀 읽어보라구~.

- 갸아아아악! 니 잡히모 죽이삔다!

나폴레옹은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잠시 이를 갈고 있었다.

괘씸한 녀석.

다른 건 다 참아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까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다음에는 정말 희대의 역작을 써내서 저 알량한 꼬마 놈의 콧대를 눌러줘야지. 암. 아암!

탕탕!

그 때 누군가 나폴레옹의 방문을 두드렸다.

나폴레옹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우편배달부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씨? 맞으십니까?”

“예. 맞심더.”

“코르시카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우편배달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사라졌다.

***

덜커덕 덜컹

1785년 1월 24일.

수십 년 만에 프랑스에게 찾아온 한파는 오늘도 어김없이 주택들의 창문을 연신 두들겨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이 두터워졌고, 벽난로에는 땔감이 타들어가는 타닥타닥 소리가 하루 종일 집 안을 채웠다.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후끈한 공기를 품은 채 가족들과, 친구들과 겨울밤을 지새고 있었다.

그러나 춥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자신의 앞 날을 고민하는 사람 또한 존재했다.

며칠 전 고향 코르시카에서 온 편지를 받아 본 뒤, 나폴레옹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자신의 방에서 이틀 간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나폴레오네에게,

나폴레오네. 잘 지내고 있니? 좋은 소식을 주지는 못할망정, 안 좋은 소식만 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편지지 값도 잉크 값도 줄여야하니 짧고 굵게 쓰도록 하마.

지금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졌단다. 네 이번 학기 학비를 도저히 제때 낼수 없을 것 같아. 부디 학교에 사정을 알리고 학비 납부 기간을 조금 더 늘려 줬으면 좋겠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고향 코르시카에서, 엄마가]

“제길···. 신이 있기는 한기가? 대체 와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고마···.”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탓에 편지가 구겨졌지만 나폴레옹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비굴했고, 너무나도 쓰라렸다.

정말 지독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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