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뉴 프런티어 상술 (10/341)

뉴 프런티어 상술

“플로리앙, 오늘도 가는 거니?”

“제가 일해야 우리 가족이 먹고 살죠. 어머니는 푹 쉬고 계세요.”

“어쩜 이리 의젓한지...”

괜시리 붉어지는 어머니의 눈을 본 스물아홉 살의 플로리앙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신의 대견함을 칭찬하는 어머니의 눈물이겠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우는 것은 기뻐서건 슬퍼서건 더 이상 보기 싫었다.

아마 어머니의 눈물은 이미 질리도록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십 수 년 전 전쟁터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도, 어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하느님께서 패혈증에 걸린 일곱 살짜리 동생 앙리를 거둬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너무나도 서럽게 눈물을 흘리셨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와병에 플로리앙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을 다니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의 눈물을 흘리셨다.

플로리앙은 더 이상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플로리앙은 오늘도 공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했다.

하루에 받는 일당 25 수.

그나마 5 수는 자신을 좋게 봐주는 공장장 덕에 받게 된 추가금이었다.

먹물 좀 먹은 어린 친구가 홀어머니를 데리고 아등바등 살겠답시고 공장에서도 제일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게 기특하다나.

플로리앙은 그래도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생각하며 오늘도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자! 오늘 오전 근무는 끝! 자, 다들 20분간 휴식하고 1시 20분에 다시 근무시작하게!”

작업반장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피곤에 쩐 발을 끄시며 대충 이곳저곳에 걸터앉았다.

플로리앙도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지만 힘이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나마 노하우가 좀 생긴 덕에 예전처럼 밤마다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통 힘든 공장일이 아니었다.

“꼬르륵.”

플로리앙의 배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명종 시계가 울려댔다.

그 소리가 상당히 거슬릴 만큼 큰 데도, 플로리앙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군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두가 배에서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탓이었다.

“제길, 휴식시간이 있으면 뭐해? 밥을 먹을 수도 없는데.”

플로리앙은 옆자리에 앉은 노동자가 궁시렁대는 소리에 슬쩍 눈을 돌렸다가 그것마저도 너무 힘든 나머지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아 모든 것이 검게 물드는 순간이 플로리앙은 너무나도 좋았다.

눈앞의 그 검은 도화지에 플로리앙은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적고, 그리고, 또 만들어나갔다.

무엇보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보면 배고픔이란 생리현상은 어느 순간 잊혀졌다.

어떨 때는 늠름한 개선장군이 되어 시내를 행진하는 자신을 그려보기도, 얘기로만 듣고 한 번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귀족 나리들의 만찬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물론 정말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그가 상상하는 고급 요리는 실제 요리와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플로리앙의 상상에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은 없었다.

“꼬르륵”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상상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방해꾼이 있었다.

자신의 배가 이정도로 요동치는 것은 처음이었던 플로리앙은 이젠 하다하다 내 몸 동아리마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조금의 짜증이 났다.

‘어차피 여긴 네가 먹을 것도 없다. 이 자식아.’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던 플로리앙은 무언가 맛있는 냄새가 공장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서 공장 밖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려 움직였다.

플로리앙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 대열에 합류했다. 공장 밖의 광경은 정말 놀라웠다.

“이삭의 민족에서 만든 ‘간편식사’ 다들 한번 드셔보세요!”

“빠르게,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간편식사’입니다! 모두 드셔보세요!”

“단돈 1.5 수에 따듯하고 맛있는 식사를 해보세요!”

“이..이게 무슨 일이지?”

플로리앙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머니 몇 분이 쿠키 바구니에 빵에 무언가를 끼워 넣은 음식을 잔뜩 넣고 다니며 큰 목소리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거리는 갓 구운 빵 냄새로 가득했다.

그 황홀한 냄새에 플로리앙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플로리앙 뿐만 아니라 같이 냄새에 이끌려 나온 노동자들 모두 연신 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그 때, 한 노동자가 대열 밖으로 나온 후 아주머니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부인? 대체 뭘 파시는 건가요?”

“아! 저희는 ‘이삭의 민족’에서 나온 조리사들 입니다! 혹시 배고프시지 않은가요?”

“아니 뭐, 배는 고프다마는···.”

“그럼 저희가 만든 이 ‘간편식사’를 단돈 1.5 수에 드셔보시지 않겠어요?”

플로리앙은 노동자와 저 이상한 아주머니 중 한 명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곧, 노동자가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내고 아주머니가 빵 비스무리한 걸 꺼내 교환했다.

“이거, 그냥 잡고 먹으면 되는겁니까?”

“네! 그렇게 드시면 돼요!”

노동자는 그렇게 말한 뒤, 한 입 크게 그 ‘간편식사’라는 것을 베어 물었다.

“뭐, 뭐야! 이거 고기가 들어있잖아!?”

“뭐?? 고기?”

“고기가 들어있다고! 얼마나!?”

“무···무슨 고기가 이렇게 많아요!? 이거 잘못준거 아니에요? 아주머니 이거 1.5수가 아니라 15 수 아닙니까!? 당···당신 사기꾼이지!”

남자의 한마디에 모여 있던 노동자들은 제각기 흥분에 휩싸였다.

고기가 들어있다는 것에 놀란 사람부터 ‘간편식사’를 파는 아주머니들을 사기꾼 보듯 처다 보는 사람까지 공장 앞 거리는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그 시끄러운 걸 깬 건 음식을 판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정확하게 1.5 수에 해당하는 고기가 맞습니다. 우리 ‘이삭의 민족’은 절대 허풍을 치지 않아요!”

그 말이 끝나자, 노동자들은 조용해졌다.

잠시 말이지.

그 후로는 이전보다 더 큰 광란의 도가니였다.

“나! 나 하나만 주쇼!”

“나도! 나도 하나 주세요!”

“아줌마! 내 껏도 하나!”

그리고 그렇게 외치는 사람에는 플로리앙도 있었다.

***

플로리앙은 여분의 ‘간편식사’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깨끗한 손수 건에 둘둘 말아 품안에 꼭꼭 숨기듯 넣었다.

플로리앙은 기뻤다.

고기!

고기다!

그가 아버지를 여읜 이후 몇 번 구경도 못해본 고기!

그 ‘간편식사’를 먹은 지도 한 시간가량 지났건만 플로리앙의 혀에는 아직도 고기의 진한 맛이 감돌고 있었다.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빵과 그 속에서 아직도 구워질 당시의 온도를 간직하고 있는 고기, 그리고 아삭함을 더해주는 야채까지.

그 모든 것이 선사해주는 맛은, 플로리앙이 성숙해진 이후 먹은 식사 중 제일이었다.

때문에 플로리앙은 ‘간편식사’를 하나 더 사서 품에 숨겼다.

어머니에게 이 맛있는 걸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공장장이 주는 추가 수당 5 수의 값어치가 그에게 너무나도 각별하게 다가왔다.

공장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간, 플로리앙은 공장에 들어와 일한 어느 날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집에 귀가할 수 있었다.

***

여태까지 고용한 사람은 15명, 조리실은 아무래도 내가 왔다갔다하며 시찰하기 쉽게 하숙집 근처 빈 집을 임대하여 개조했다.

집을 개조하는데 돈이 꽤 들긴 했지만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 한꺼번에 일을 하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업 개시 첫날, 우리는 ‘간편식사’ 150인분을 만들어 38인분을 팔았다.

인건비 30 수, 원가 150 수, 판매액 57 수.

사업 개시 삼 일째, 우리는 ‘간편식사’ 230인분을 만들어 180인분을 팔았다.

인건비 30 수, 원가 230 수, 판매액 270 수.

사업 개시 일주일째, 우리는 ‘간편식사’ 377인분을 만들어 370인분을 팔았다.

인건비 30 수, 원가 377수, 판매액 555 수.

겨우 일주일 만에 ‘이삭의 민족’은 1.5배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해버렸다.

고용된 아주머니들도 시간이 지나자 노하우가 생겼는지 고기를 구워내는 속도도 늘어났고, 첫날 의심의 눈초리로 우리의 방문판매원들을 쳐다보던 노동자들도 이제는 앞 다투어 우리 ‘간편식사’에 돈을 뿌려대고 있었다.

“으하하핳! 크하하하하! 음후헤핳흐핳힠!”

돈이다 돈! 돈이 말도 안 되게 쏟아진다! 비트코인? 그런 거 왜해? 그거 할 시간에 샌드위치 만들면 그 배는 벌겠다!

이러다가 화성도 가는 거 아니야? 21세기의 미국 모 전기차 기업이 떠오르는 구만. 거기 CEO가 상당히 미친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화성! 갈 끄니까! 으히힣!

신난다! 너무나도 신이 나서 몸을 주체를 할 수가 없어!

무엇보다 신이 난건 아직까지 내 수중에 11,000 리브르라는 자본금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겨우 2,800 리브르의 투자가 아직 사업이 제대로 정착도 안 된 일주일 만에 하루 28 리브르 가량을 벌어다 주고 있다.

정말 한 달만 있으면 하루에 100 리브르까지도 빨아먹을 수 있겠는데?

심지어 우리 사업의 고용인들인 아주머니들은 스스로 우리 사업의 기수가 되어 온 동네방네에 우리 가게를 전파하고 있었다.

하기야 2시간 일하고 공짜 점심에 2 수를 받는 꿀의 직장이니 아주머니들도 이 가게가 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음 좋아. 벌써부터 노조와 사장이 한 몸이 돼서 나아가는 게 증말루 보기가 쪼아요~.

게다가 우리 샌드위치를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노동자 고객분 들께서 퍼트려 주신 소문 때문에 이미 우리 ‘간편식사’는 학교 옆 그흐넬르 거리를 넘어 파리 반대편에 위치한 생탕투안 거리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는 곧, 앞으로 만들 ‘이삭의 민족’ 샌드위치가 더욱 빠르고 쉽게 파리 전체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될 배경이자 성공으로 가는 하이패스가 돼 줄 것이다.

“스스로 마케팅도 해주시고 우리 고객님들 너무 감사한데. 뭐 이벤트라도 하나 해드려야겠어?”

나는 도리를 아는 한국인이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흠후헤헤헤 벌써부터 파리 시민들이 내가 할 일에 기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비열한 웃음이 멈추질 않는 걸. 이를 어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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