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아, 장사하자 먹고살자 (8/341)

아, 장사하자 먹고살자

“마, 기욤이! 이거 한번 읽어 봐라! 내가 이번에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쓴 기다!”

“아 보나마나 또 남자 주인공이 실연당해서 권총자살하는 게 엔딩이겠지. 뭘 심혈을 기울이긴 기울여! 그런 거 쓰지 말고 잠이나 제때제때 자기나 해!”

“아이다! 이번에는 진짜 자살 안한다! 한번만 더 읽어도!”

“에휴, 그러면 엔딩이 뭔데 이번에는.”

“이번엔 주인공이 실연당한 상대방한테 권총에 맞는 기다.”

“대체 뭐가 달라! 이 권총박이 양반아!”

나폴레옹과 같이 지낸 지도 이제 6개월이 되어가는 1784년 12월, 우리는 잘지내고 있었다.

가끔 이 양반이 자기가 쓴 개판 오 분전인 소설을 가져와서 내게 강제로 읽게 하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말이지.

어떻게 된 게 소설 엔딩이 죄다 주인공이 실연당하고 권총자살하는 엔딩에, 이번에 다르다고 열변을 토하는 엔딩은 실연당하고 권총에 맞아 죽는 엔딩이지?

저 사람 권총으로 사람 쏘는 거에 페티쉬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이게 다 저 양반이 맨날 옆구리에 끼고 사는 베르테르의 슬픔인지 기쁨인지하는 칙칙한 책 때문이다.

괴테가 나폴레옹 형의 머리에 독을 풀었다!

내가 우리의 친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씨가 혹여 권총 총구에 성욕을 느끼는 건 아닌 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

나와 나폴레옹 형은 내 하숙집에 도착했다. 요새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그런지 뻑뻑해진 하숙집의 문고리를 세게 열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플뤼에 부인! 우리 왔어요!”

“오, 기욤 왔구나. 오늘은 꼬마 대원수님도 같이 오셨네. 호호.”

“아지매! 그 꼬마 대원수 얘기는 고만 좀 하면 안 됩니꺼?”

“아무렴. 이 재밌는 걸 어떻게 그만두니? 6개월 전 처음 만났을 때 그 불같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저는 미래에 대원수가 돼서 금의환향할 겁니다!- 하던 나 폴레옹을 그리 쉽게 잊어 줄 수는 없지. 호호호.”

“끄응..”

플뤼에 부인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15년 된 하숙집의 주인으로. 서른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뒤, 재산을 털어 우리 학교 옆 저택을 사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플뤼에 부인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플뤼에 부인이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학생들의 하숙집을 운영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렇다고 부인이 학생들을 그저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숙집에 있는 모든 학생들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세끼를 직접 준비하고 열 명이 되는 하숙생들의 방까지 청소해주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 나폴레옹 형이 거주하고 있는 하숙집 주인은 매우 사나웠다.

그 주인은 나폴레옹 형의 모든 것이 맘에 안 드는지, 형을 볼 때마다 잔소리로 헤어드라기를 가동시켰다.

- 나폴레옹! 옷 꼴 좀 어떻게 못하겠니? 낡고 헐어서 원, 봐줄 수가 없구나!

- 나폴레옹! 이번 달 월세는 대체 언제 줄 거야!?

- 나폴레옹!

어찌나 잔소리가 심한지 어느 날은 양아치 놈들한테 조롱받아도 꿈쩍도 않던 형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었다.

“마, 기욤아! 내는 여기 한 달만 더 있으면 참말로 정신이 나가버릴 끼다! 정신 나갈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플뤼에 부인도 이를 아는 지, 요근래에 나한테 자꾸 나폴레옹 형을 데리고 와서 같이 밥 먹자고 형 몰래 얘기하곤 했다.

나 또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아서 곧장 형에게 우리 집에서 밥먹자는 말을 계속 꺼내고 있었다.

“와. 진짜로 아지매, 내 그짓말 몬하는 거 알지요? 아지매 요리솜씨가 요 프랑스에서는 최곱니더!”

“호호. 말만이라도 고맙구나. 어서 먹으렴!”

“하모 예!”

뭐, 본인도 좋아하고 부인도 좋아하고 나도 나쁘지 않으니 일석삼조는 아니더라도 일석이쩜오조는 되겠구만.

나는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타면서 생각했다. 1784년의 프랑스는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게 나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언젠가 혁명이 시작은 시작될 것이다.

이미 사회 곳곳에는 그 혁명의 기반이 될 분노와 원망이 쌓이고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 시작된 혁명의 불길은 지금 내가 서 있는 하숙집에도 몰아닥칠 것이 분명하다.

플뤼에 부인이 만들어준 호박파이를 뭐가 그리 맛있는 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먹고 있는 나폴레옹 형, 그런 형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플뤼에 부인.

그리고 그런 두 사람과 함께 잔잔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 이 모든 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곳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는가.’

수많은 고민 끝에 난 한 가지 결론에 도달 할 수 있었다.

혁명이 올 때 쯤,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군인? 기껏해야 소위 나부랭이가 뭘 할 수 있겠나.

관료?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한 뒤, 고등관료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고등관료시험을 통과해 고위관료가 된다 해도 혁명군에게 목이 잘리지 않을 수가 있는가?

성직자? 성직자는 말도 안 된다. 사제 서품을 25살에 받고 그 뒤로도 임지를 전전할 텐데 대체 혁명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답은 한 가지뿐.

사업. 내가 전생에서 말아먹은 그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본 것은 그것뿐이다.

돈을 존나게 벌어야 한다.

돈을 존나게 벌어서 21세기 몇몇 부자들처럼 사회운동을 하던 자선사업을 하던 어떻게든 민중에게 면죄부를 받아내서, 내 주변만큼은 혁명으로 분노한 시민들에게서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혁명, 한번 와보라지. 내가 돈으로 익사시켜주마.’

그런데.

뭘로 사업을 한담?

항상 여기서 막히네. 생각해라, 기욤! 아니, 임기찬! 너 이 새끼 그래도 수능때 1등급 좀 받아 봤잖냐.

기찬아, 상대는 대혁명이다! 이 일상을 죽일 대혁명이야! 생각해라! 생각해!

“근데요 아지매. 내 요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더. 간단하게 일하면서 먹을 수 있는 그런 건 없슴니꺼?”

“왜? 또 주인공이 권총에 맞아죽는 소설 쓸 시간이 없니?”

“아..아니 아지매마저 그라믄 지가 뭐가 됩니꺼! 아무튼 막 한손으로 펜 잡고 먹을 수 있는 그런 거 없심꺼?”

“뭐 비스켓이 있기는 하지.”

“아 그런 거 말구 좀 배가 차는 거 없심꺼? 뭐, 뭐야?”

“형! 사랑해! 형은 천재야!”

“마, 마! 니 뭐하노! 왜 갑자기 앵기는데! 저리 안 비키나!”

찾았다! 사업 아이템!

***

“그게···. 정말 되겠니 기욤?”

“아지매 말이 맞다. 그기 진짜 되긋나?”

“이 싸람들이 증말. 속고만 살았어? 이건 무조건 된다니까!”

나는 나폴레옹과 플뤼에 부인에게 나의 장대한 계획, 가칭 ‘점심대용 간편식 사’를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하려니까 떨리네. 대학교 1학년 때 했던 모의 창업 대회가 생각나는구만. 크 거기서 대상도 탔었는데 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참 힘든 대회였다. 고작 다섯 시간 주고 사업구상부터 예상소비자, 협업기업, 예상매출까지 모든 걸 하라고 했으니 원. 그거에 비하면 이건 껌이다 껌.

“내는 그···. 잘 이해가 안 가거든? 사람들이 와 집에서 밥을 안 묵고, 니가 파는 걸 사묵을 거라 생각하나? 집에 하인 있는 양반들이 굳이?”

“형님. 우리 주 고객은 노동자들입니다. 귀족이 아니라요.”

“그···. 기욤? 그러면 노동자들이 왜 우리가 만든 그 ‘점심대용 간편식사’를 먹을지 얘기해줄 수 있니?”

“당연하죠. 자, 형님. 플뤼에 부인. 만약 두 분이 노동자라고 가정을 해봅시다. 두 분은 아침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오후 1시까지 힘들게 일을 하셨어요. 오후 1시에 두 분은 뭘 느끼시겠습니까?”

““당연히 배고픔이겠지···?”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공장장이 말하기를 오후 1시 20분에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20분 만에 식사. 여러분은 가능하십니까?”

““그건···. 어렵지.”

“좋아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쳐있고 배고픈 앞에, 따듯하게 갓 구운 빵이, 그것도 조금이지만 고기도, 채소도 들어있는데다가 한 손이나 두 손으로 잡고 순식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 잠깐, 그렇게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사먹을 수는 있는 기가?”

“맞아. 기욤. 네 말대로라면 고기도, 채소도 들어가는데 노동자들이 쉽사리 살 수 있는 돈은 아닐 거야.”

“아니요. 살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욤을, 두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왜 되는지 손수 보여드리겠습니다.”

***

“귀리 100그램만 포장해주세요.”

“혹시 --부위 있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파리 근교에 가장 가까운 텃밭까지 마차로 얼마 정도 걸리죠? 아 한 시간이요? 알겠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춥지도 않은 건가. 아주 쌩쌩하구만. 나폴레옹과 플뤼에 부인은 생각했다.

아까부터 방앗간에 푸줏간에, 이제는 마차들이 서있는 마차 대기소에서 마부 들한테 무언가 열심히 물어보는 기욤의 모습은 정녕 이 엄동설한에 저 아이는 춥지도 않은가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한민국 철원 바로 밑에서 군생활을 한 기욤, 아니 임기찬에게는 이 정도 추위는 ‘추’자에도 못 끼는 거란 말이지.

아니 추위라고 할 거면 최소한 영하 20도는 찍어야 추위지. 겨우 영하 5도 정도에 저러다니. 에잉 쯧쯧. 아 참 돌맹이도 하나 주워야한다. 깜빡할 뻔했네.

“자 다 구한 것 같네요. 이제 한 번 만들어 봅시다!”

나폴레옹과 플뤼에 부인은 도대체 기욤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도 가지 않은 채로 기욤과 함께 집으로 움직였다.

***

“어떠십니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건···. 대단한데...?”

“하모, 이게 우예 되는지 지는 아직도 긴가민가 합니더.”

두 사람 앞에는 내가 사오고 플뤼에 부인이 만들어준 ‘점심대용 간편식사’가 접시에 담긴 채, 김을 모락모락 내뿜고 있었다.

“형! 한번 손으로 들고 먹어봐.”

내 말이 끝나자, 나폴레옹은 그 ‘점심대용 간편식사’를 두 손으로 들고 입에 가져다 댔다.

“이거···. 와 맛있나? 아니, 그보다 얼마에 팔 거라고 했제?”

“1.5 수.”

1.5 수. 21세기 한국 돈으로 바꿔보면 한 3000원 쯤 하려나. 노동자가 보통 하루에 20수 정도를 벌어가니 충분히 한 끼로 지출할만한 액수였다.

어떻게 이런 가격파괴가 가능하냐고?

프랑스에서 귀리는 사람이 먹지 않는다. 보통은 소여물이나 말 먹이가 되는 게 바로 귀리다.

요 몇 십년간 프랑스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났다. 때문에 밀과 라이보리 같은 ‘사람이 먹는’ 곡물의 값은 두 배 가까이 뛴 상태였지만, 가축의 수는 엇비슷했기에 귀리의 값은 다른 곡물만큼 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수십 년 전의 가격과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고 귀리로 빵을 못 만들어 먹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밀빵이나 보리빵에 비해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때문에 이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도태되어 버렸다.

당장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만 하더라도 이 귀리로 죽을 끓여먹지 않던가. 그게 바로 ‘오트밀(oatmeal)'이다.

고기? 고기는 이 서유럽에서 아무도 먹지 않는 부위를 넣었다.

뭐? 그런 부위가 있냐고? 있고말고. 아, 한국인에게는 좀 친숙할 수도 있다.

마 니 삼겹살 무 밨나? 마 뒤진다 아이가!

크- 킹겹살 찬양해! 1 킬로그램에 5 수도 안 되는 게 너무나도 대단하지 않나?

1인분에 100그램 정도를 통 크게 썰어 넣는다고 해도 0.5 수다.

애초에 고기는 입에 대기도 힘든 노동자들에게 100그램의 고기? 아 진수성찬을 넘어 눈물을 흘릴 걸.

채소는 상추를 넣었다. 한국에서 쌈 싸먹던 상추와는 좀 다르게 생긴 상추지만 어쨌든 이것도 상추다.

상추 하나에 3 수 정도 하고, 하나를 분해하면 대략 10장 정도의 상추가 나오니 하나 씩 계산해보면 장당 0.3 수.

마음 같아서는 여기 쌈장까지 투하하고 싶지만 그건 없으니 제외하고 소금과 후추로 어느 정도 간을 맞췄다.

고기를 상추에 싸서 빵이랑 같이 드셔보세요. 싸랑해요우 요네가중계.

이 모든 걸 합친 원가.

1 수.

난 33퍼센트의 순이익을 보고 있었다.

“허···. 이게 와 가능한지···.”

나폴레옹과 플뤼에 부인은 내 작품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 세상에 삼겹살을 먹는 프랑스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 내 턴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드로우 중이다 이 말이야.

“인건비야 아침 11시부터 1시까지 두 시간에 2 수 정도만 쥐어주면 너나나나할 것 없이 달려들 테고, 한 사람 당 최소 100인분씩 맡아 조리를 하고, 조리가 끝나면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공장에 들려 지친 노동자들에게 배달한다면 우리가 돈을 더 벌면 벌었지, 적게 벌지는 않을 겁니다.”

일반 비숙련 노동자가 반나절 일해서 받는 돈이 5 수 남짓한 시대다. 두 시간 일하고 2 수?

아, 이건 못 참지.

곧, 파리 전체에 있는 요리 좀 하는 아주머니들이 자기 발로 찾아와 우리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게다가.

“플뤼에 부인.”

“왜 그러니 기욤?”

“사람은 따듯한 음식을 좋아하죠?”

“당연하고말고.”

“우리가 이 ‘간단식사’를 배달하는 동안 음식은 식기마련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그걸 해결한다면 우리의 고객님들은 어떻게 할까요?”

“집에서 싸온 찬 도시락보다 따듯한 우리 음식을 찾겠지?”

난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 오븐에 넣어놓은 돌멩이를 꺼내 평소 플뤼에 부인이 쓰는 쿠키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이러면 우리 고객님들은 앞으로 우리 ‘간편식사’에 푹 빠질 겁니다.”

아무렴. 모든 사람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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