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니···. 진짜로 갈기가? 내는 잘 모리겠다···. 후.”
“예, 어무니. 내는 갈 깁니더. 가서 출세할 깁니더.”
“출세를 한다꼬? 우에 할낀데? 하모, 코르시카 촌구석 촌놈을 누가 써줄 것 같나?”
“그 노마들이 날 써주는 게 아니라, 그 노마들이 날 무조건 쓰게 만들낍니더.”
“니는 어려가꼬 뭘 잘 모른다. 니가 저 간악한 아들한테서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그게 무서웠으모, 처음부터 말도 안꺼냈심더. 이 쪼매난 섬에서 바닷바람 맞느니 거 가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겠심더. 내 가서 어깨에 황금 견장 달기 전에는 안 돌아오겠심더.”
그 날로 나폴레오네 보나파르트는 고향 코르시카의 아작시오를 떠났다.
그가 형제자매들과 뛰어놀던 마당,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살아온 저택,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의 집, 항상 걸어가던 흙길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 씩 수평선의 점이 되어 갈 때마다 나폴레오네 보나파르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는 지금, 콜럼버스였다.
의지와 몸이라는 두 척의 산타 마리아호를 타고 미지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콜럼버스.
나폴레오네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의 미래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찬란해서, 나폴레오네는 마치 태양이 그의 눈앞에 떠있는 듯했다.
마치 손을 조금만 뻗으면 닿을 것 마냥 가까이,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은 나폴레오네가 프랑스 본토에서 처음 잠이 드는 날까지도 그의 눈앞을 가득 채웠다.
나폴레오네는 행복했다.
***
“야, 니 이름이 뭐라고? 다시 한 번만 말해봐.”
“내는 나폴레오네라 칸다.”
“뭐? 나, 나푸아이오네(Napoillione)? 말 좀 똑바로 해라 촌놈.”
“야 이 새끼 뭐라고 하는 지 들었어? 라파이오네(la paille au nez, 코에 박힌 지푸라기)래 라파이오네!”
“뭐라꼬? 마 니 조사삐기 전에 닥치라!”
나폴레옹이 본 찬란한 빛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왜일까. 세상은, 프랑스는 나폴레오네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나폴레오네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세상은 우스꽝스러운 말투의 코르시카 촌놈을 원한 적이 없었다.
브리엔의 육군학교에 간지 3일 만에, 나폴레오네의 가슴 속 콜럼버스는 죽어버렸다.
자신을 비웃는 자들에게 자신은 결코 콜럼버스도, 미지의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 모험가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에게 나폴레오네는 프랑스 인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어머니가 붙여주신 자랑스러운 이름 나폴레오네도, 그들에게는 프랑스식이 아니라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나폴레오네는 사랑하는 어머니마저 그 놈들의 모욕에서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세상에게 그저, 우스꽝스러운 코르시카 억양의 광대일 뿐이었다.
나폴레오네의 가슴은 그날 갈가리 찢어졌다.
더 이상 행복도, 슬픔도 그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을 수는 없었다.
오직 호승심.
자신을 홀대하고 핍박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그저 태어난 곳이 프랑스 본토라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는 저 돼지 놈들을 기필코 이기겠다는 마음.
그 뿐 이었다.
그날, 나폴레오네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되었다.
***
“아-. 아-. 아에이오우-. 나폴레옹, 나폴레옹,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오늘도 아침식사를 마친 이후, 세면대에 선채 입을 좌우로 움직이며 발음테스트를 진행했다.
브리엔 육군학교에서 지내던 시절 생긴 버릇이었다.
브리엔의 육군학교에서 파리의 중앙육군학교로 온지도 이제 몇 달이 지났지만, 나폴레오네는.
아니, 나폴레옹은 아직도 브리엔에 처음 발을 디딘 그 날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잊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복수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나폴레옹은 그 날을 자기 전마다 곱씹었다. 그리고 현실 또한 그 불꽃에 휘발유를 콸콸 부어댔다.
실제로 그가 파리에 있던 몇 달 간, 그가 만난 동기생과 선배 중 대다수는 브리엔에서 겪었던 그 돼지들과 놀라울 만치 흡사했다.
‘파리 점마들도, 결국엔 브리엔 금마들과 다를 것이 없다.’
오늘도 나폴레옹은 그 돼지들과 전투를 치러야했다.
수업 시간에도, 식사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학교의 돼지들은 브리엔을 실력으로 박살내고 파리로 온 나폴레옹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못살게 굴 것이 뻔했다.
그래도 가야한다. 가서 실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당당하게 황금색으로 장식된 견장을 차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렇지만.
‘하모, 친구라도 한 명 있으믄 좋을낀데.’
아직 사춘기도 다 떼지 못해 어린 탓일까, 눈에서 찔끔 나오는 눈물을 빠르게 손으로 훑어내며 15살의 나폴레옹은 오늘도 하숙집을 나섰다.
***
“니들끼리 처먹어, 씨발새끼들아.”
‘점마···. 정신이 나가삔기가?’
나폴레옹은 생각했다.
사회생활에 대한 일반인의 관점으로도, 전술적 판단에 의거한 군인의 관점으로도 나폴레옹이 보고 있는 광경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전학 온 첫날, 누가 봐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 사람 서너 명한테, 그것도 그 성질 더러운 놈들보다 두 살은 밑으로 보이는 사람이 쌍욕을 면전에 뱉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점마 아부지가 어디 공작이나 재무대신이라도 되는 기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나폴레옹이 엿듣고 싶어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살짝 엿들은 내용으로, 저 제복도 안 입은 꼬꼬마는 툴롱 옆 께뭐시기에서 온 촌놈이었다.
자신과 같은 촌놈!
물론 억양은 자신의 코르시카 억양처럼 독특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곳이 어디 저잣거리도 아니고 귀족들 중 똑똑한 놈을 모아놓은 파리 군사학교인데, 빽도 없는 촌놈이, 일진을 첫날부터 들이 받아버렸다.
‘마, 좀 치네?’
나폴레옹은 왠지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저 꼬꼬마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 됐다.
‘점마랑 친해지모, 심심할 일은 없긋다. 하하. 하모, 내랑 엮일 일은 없긋지만.’
나폴레옹은 읽던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
“마, 혹시 몇 살입니꺼?”
“1..13살인데요..?”
“아, 그러면 71년생입니꺼?”
“ㄴ..네..”
“거, 왜 이리 죽을 상입니꺼? 혹시 내 말투가 거리낀다, 뭐 이런 거가?”
“아뇨아뇨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문데? 뭐가 그리 무섭습니꺼?”
“진짜로 이름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신가요?”
“아, 맞다꼬. 내 지금 몇 번 말합니꺼!”
와.
와.
와.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
이 사람이 정말 나폴레옹??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 남아있는 나폴레옹 초상화랑 좀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초상화는 좀 더 펑퍼짐하긴 했는데. 뭐 사람이 늙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이 사람이 나폴레옹이면, 무조건 친해져야한다. 무조건.
이 사람은 언젠가 황제가 된다, 물론 그 뒤로 좀 있다가 유럽 각국한테 두들겨 맞고 결국에는 저어기 지중해인지 어디인지 모를 섬 어디엔가 유폐 되서 죽겠지.
아···. 내 코앞에 있는 사람의 운명을 내가 미리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 꺼림직 하긴 하네.
주술사의 삶이 이런 건가? 디스 이즈 샤-먼 라이프?
나폴레옹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나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내는 69년생인데, 혹시 실례가 안되모, 말 놔도 되겠습니꺼?”
“아유 당연하죠.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마치 왕을 대하는 내시처럼 말하고 말았다. 이런. 아까 작동하지 않았던 내 뇌 속의 ‘을’ 센서가 풀로 돌아가는구만.
“마, 그럼 기욤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나?”
“어우 맘 가시는 대로 맘껏 불러주셔도 됩니다!”
내가 말하자 나폴레옹의 미간이 좁혀진다. 뭐지, 내가 뭘 잘못 건드렸나? 내 내시 버전 말투가 맘에 안든 건가?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댄다. 이러다 부정맥 오는 건 아니겠지.
“동생.”
“예..예!”
“형 해봐.”
“예?”
“형이라고 해보라꼬.”
“혀..형.”
“마! 사내자슥이 그거밖에 안되나!”
“혀..형!!!”
“으하하하! 그래 그거다! 그게 내가 바랬던 거라꼬!”
“하..하하하.”
“기욤 동생!”
“예..예! 아니 으, 응! 형!”
“오늘 저녁에 뭐 약속 같은 거 있나?”
“없..없어....요..”
“하모, 우리 집에서 사내자슥끼리 속 탁 터놓고 함 얘기 좀 하까?”
“으, 응! 조, 좋아!”
삐빅. 삐빅. 기욤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강제 종료 중. 쉭쉭, 시스템을 재부팅하십시오. 삑. 치명적 오류 발생. 오류코드 ‘나폴레옹’, ‘나폴레옹’. 시스템을 재개할 수 없음. 3초 뒤 폭발합니다. 3, 2, 1···. 나는 또다시 내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나폴레옹의 하숙집에 끌려가 장장 다섯 시간 동안 그와 1대1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